설 교/이규왕목사

온 맘 다해/(시 9:1-4)

미션(cmc) 2013. 9. 4. 18:04

온 맘 다해
(시 9:1-4)

(시 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시 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 9: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시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의 신앙의 연조가 점점 더해지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타성에 젖어 예배의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점점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메말라간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학교가기를 싫어하고 살살 달래서 학교에 보내면 학습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스마트 폰만 하다가 집에 돌아온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몸이 아파서 학교를 못가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우리의 신앙 연조가 점점 더 오래 갈수록 묵은 장처럼 맛이 깊어지고 성경을 읽기와 기도와 찬송과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며 은혜가 된다면,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내고 헌금을 드리고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이 더욱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사람이며 하나님은 항상 그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언제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첫 번째 삶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죄를 멀리하게 되고, 선을 행하기를 즐겨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시편 기자의 결심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나, 친구를 사귈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외모를 보고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게 되면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갈라서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외모와 마음씨, 좋은 스펙과 믿음을 골고루 겸비한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 아니라 사람을 보실 때 외모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시며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삼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중심’이라는 말(bb;le(3824, 레바브))은 ‘인간은 내면, 정신, 의지’를 뜻하는 말이고, 또 ‘보느니라’는 말(ha;r;(7200, 라아) )은 ‘보다, 바라보다, 조사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지속적으로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외형만 보는 인간과 달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처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대신 마음 중심을 다해 신앙 생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구약 시대만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마음 중심을 원하신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입니다.

(시 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여기서 ‘전심으로’라는 말은 ‘모두, 전체, 완전하다’는 말(lKo(3605, 콜) 과 인간의 내면의 ‘마음, 정신, 의지’를 뜻하는(ble(3820, 레브) ) 두 말이 합쳐진 것으로 쉽게 번역하면 ‘온 마음을 다해’라는 뜻입니다.

1) 온 맘 다해 감사하겠다.
여기서 ‘감사하오며’ 라는 말(hd:y:(3034, 야다) )은 ‘감사하다, 찬양하다, 고백하다’는 뜻의 미완료 형으로 한 두 번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겠다는 뜻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시편 기자와 같은 결심을 한다고 하면 먼저 마음속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만 그러한 감사와 찬양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테면 죽을병에서 고쳐 주시고, 가난을 벗어던지고 부요해지고, 멸시 천대의 자리에서 일어나 존귀하게 되어졌을 때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온 맘 다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고 다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무슨 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겠다는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편기자와 같이 온 맘 다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주 예수의 이름을 항상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2) 온 맘 다해 전파하겠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온맘을 다해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기이한 일들’이라는 말(al;P;(6381, 팔라) )은 ‘뛰어나다, 비범하다, 놀랍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우주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적으로 하신 많은 일들 가운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이례적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일이 기이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창과 칼을 쓰지 않고 출애굽을 시키신 일이 기이하며,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고, 광야에서 사십년을 살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전쟁의 경험이 전무 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전쟁에 능한 가나안 일곱 족속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신 일이 기이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과 동등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일은 더 놀랍고 기이한 일입니다.
그 보다 더 기이한 일은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설령 죽음이 온다고 할지라도 영생을 보장받게 된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며 시편 기자처럼 입을 열어 만 백성에게 전파해야 할 증언인 것입니다.

3)온 맘 다해 기뻐하며 찬양하겠다.
시편 기자는 온 맘 다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기이한 일들을 만인에게 전파하겠다는 결심과 더불어 온맘 다해 기뻐하며 찬양하겠다고 다부지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시 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여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하리니’라는 말은 모두 미완료 동사로 시편 기자는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하는 일을 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살던 시대는 주변의 나라들이 모두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느 신보다 지극히 높으신 절대자 이심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가 있고,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깨달았다면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출석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아무리 많이 불러도 다함이 없고 하나님은 기쁨이 넘쳐서 부르는 우리의 찬송 소리 듣기를 기뻐하심을 깨닫고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온 맘 다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면서 찬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2. 시편 기자의 처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나도 시편 기자와 같이 온 맘을 다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하나님을 자랑하고 기쁨이 흘러 넘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때로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수명이 다해가는 밧데리처럼 점점 무기력해지는 까닭은 나의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삶이 여유로웠으면 그처럼 “온 맘 다해 감사하고 전파하고 찬송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의 처지는 정반대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그처럼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할 형편이 아니라 정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담하기 쉬운 처지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 원수들에게 둘러 쌓여 언제 공격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원수들을 자신의 힘으로 막아 낼 수 없어서 주께 도움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 9: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시편 기자를 억울하게 송사하고 있지만 아무도 시편 기자의 편에서 변호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의롭게 심판하셨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시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심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에 대해서 심판을 미루시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와 긍휼입니다.

물론 성경 여러 곳에 보면 때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심판하시고 이방나라를 심판하시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이고 예표적인 경고성의 심판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완전히 제거되고 억울한 자가 없이 정의가 하수처럼 흘러넘치는 완벽한 세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는 미래에 대 심판이 있을 것을 약속하시고 그 날에 모든 죄악과 불의가 없는 정의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시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한 나라나 개인을 심판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으로 불의를 미워하시며 여전히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죄에 관해서는 택한 백성이 따로 없고 이방 민족이 따로 없습니다.
시편 기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억울한 일을 자주 경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기도 하고 법에 공정한 재판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허탈감에 빠지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시편 기자와 같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가고 오는 세상을,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만인을 심판하시는 심판장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악이 여전히 악이 존재하고 의로운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미래에 도래할 그 완벽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면서 지금 판을 치고 있는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판단하시고 불을 때고 계심을 믿고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억울한 자들을 위해 시편 기자와 같이 기도의 불을 계속 때야 합니다.

1) 의인의 안전을 위하여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18절).

2) 의인의 승리를 위하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18절).

3) 악인들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여호와여 일어나신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19절).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악한 자들이 아무리 강한 척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심판 받을 죄인이요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3. 시편 기자의 믿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면 알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그가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뵈올 수 없으나 그를 신뢰할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세상 모든 피조물은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저 큰 군대에 맞설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우리 눈은 여호와만 바라볼 뿐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원수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억울하게 송사를 당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심판주가 되심을 알기 때문에 그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습니다.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미 다 안다는 말이 아니고 계속해서 알아가고 있다는 말이며, ‘의지하오리니, 주를 찾는 자들’이라는 말은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찾고 구한다는 미완료 형입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주를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고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를 더욱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우리에게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서 ‘힘써’라는 말(#d'r;(7291, 라다프) )은 ‘뒤따르다, 추격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저절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성경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려주는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쳐 줄 때 그것을 듣고 이해하는 깊이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를 막론하고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잠시 얼굴을 숨기실 때도 있으나 여호와를 깊이 알 때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에 온 맘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인간과의 관계는 자주 만나 대화하고 상대방을 점점 더 깊이 알아 갈수록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친구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멀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화
기독교에 가장 적대적인 이슬람인구가 세계 57개국에 18억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하루 생활 전체가 종교입니다.
이슬람의 예배는 하루 다섯 차례의 의무 예배 (와집)와 임의로 드리는 임의 예배 (순나)가 있습니다. 의무 예배는 해의 움직임에 따라 새벽 (파즈르), 정오 (주흐르), 오후 (아스르), 일몰 (마그립), 밤 (이샤) 예배로, 새벽은 동이 막 터올 무렵 검은 실과 흰 실이 구분되기 시작할 때 드리고, 정오 예배는 하루 중 해가 한 가운데 있을 때이고 오후 예배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햇빛이 노래지기 시작할 때, 일몰 예배는 해가 막 떨어진 직후에 드리고 밤 예배는 완전히 어두워져서 흰 실과 검은 실이 구분되지 않을 때 드린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매일 그렇게 합니다.
예배 전에는 반드시 몸을 청결히 닦은 후 예배를 드리는데 이를 "우두"라고 합니다. 우두는 손 - 팔 - 입 속 - 얼굴 - 머리 - 목 - 발의 순서로 닦으며 모든 부위를 세번씩 닦습니다. 우두를 행하지 않으면 예배를 볼 수 없고 만약 우두 없이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는 무효가 됩니다.
예배는 정해진 형식에 따라 진행 되는데 먼저 선 상태에서 팔장을 끼고 꾸란(코란)의 제1장을 외우고 다시 짧은 구절을 외웁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해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도 이슬람 못지않은 열심을 가지고 매일 새벽기도와 여러 차례의 주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후발 종교이지만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그 열심히 사라졌으나 이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예배의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에 자주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이느냐? 라는 목적 여하에 따라 이슬람을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곧 감사의 표현이 우리들의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일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린다면 그의 마음은 마치 사막을 건너는 방랑자의 길처럼 메마르고 거칠어져 생명의 풍족함을 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온 맘을 다해 감사해야 합니다. 슬플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온 맘 다해 전도하고 온 맘 다해 찬송해야 합니다.
(대하 15: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그리고 온 맘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가 경험한 것과 같은 악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악이 여전히 악이 존재하고 의로운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미래에 도래할 그 완벽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면서 지금 판을 치고 있는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판단하시고 불을 때고 계심을 믿고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억울한 자들을 위해 시편 기자와 같이 기도의 불을 계속 지펴야 합니다.

1) 의인의 안전과 승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시 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2) 악인들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 9: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3) 악인들이 자신들의 악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 9: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