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시 47:1-9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
(시 47:1-9)
(시 47: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 47: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시 47: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시 47: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시 47: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시 47: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시 47: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시 47: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시 47: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살이가 인간의 일생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하루살이는 고작 하루 밖에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너무 불공평해 보이고 불의가 판을 치고, 약육강식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명언과 같고, 이 시대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요,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강대국이 패권을 쥐고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년을 넘어 천년을 넘어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지난날의 모든 역사는 분명히 정의와 자비라는 원칙을 가지신 절대자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제국들과 나라들이 새로 생겨서 번성했다가 하나님의 통치 원리이신 정의와 자비를 거역하는 나라와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항상 공평무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고 핍박하는 여러 나라 중에 일등은 해마다 북한 공산주의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수많은 성도들이 정신교화소에서 짐승처럼 살다가 마지막에는 구타와 굶주림으로 쓸쓸히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잠잠히 계시기만 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예 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정권이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행크 그린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며 "북학은 지구 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장 제재를 많이 받고' '가장 단절된 국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은 잔혹하고 폭압적이며 그래서 북한 정권은 심지어 주민을 제대로 먹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정권(북한)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제재 수단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면서 "북한은 모든 돈을 전쟁 무기에만 투입한다. 북한이 100만 군대를 보유하고 핵 기술과 미사일도 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우리의 능력은 다소 제한돼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 동맹국인 한국이 바로 옆에 있고, 전쟁이 벌어지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오늘 성경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 오늘 성경말씀은 오늘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1. 너희 만민들아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공평무사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 해주는 것이 세상 나라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모든 시대와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제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최상위 질서인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의하고 무자비한 통치를 한 제왕들의 마지막은 비참하였고 결국 그 제국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상에 어느 나라도 영원한 나라는 없습니다.
1) 그 좋은 예가 출애굽기의 배경인 이집트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으나, 오늘날 이집트는 조상들의 유물 때문에 먹고 사는 관광국으로 전락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위세는 역사에 드물 정도로 강력하여 적그리스도 제국의 상징처럼 계시록에 까지 그 이름이 오를 정도였습니다.
2) 다니엘은 유대 왕족으로서, BC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가서 왕의 시종으로 뽑혀 고레스 원년까지 섬겼습니다(BC 538, 단 1:21).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벨사살왕이 고관 1천 명을 초청하여 큰 술잔치를 배설하여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간 금은 기명으로 술을 마시게 하며 우상을 찬양할 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맞은 편 분벽(粉壁)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 신"이라는 글짜를 썼으나 해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혜자 다니엘을 불러 해석하게 하였더니
1)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3) `우바르신'은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고 해석한 대로 벨사살 왕이 그날 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단 5: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단 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3) 예수님 당시 전 유럽을 석권할 정도의 로마 제국의 후예인 이태리, 유태인들의 저승사자와 같았던 히틀러 제국의 패망과 구소련의 붕괴와 같은 역사적인 공통점은 한 마디로 지상에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볼 때 약자는 다니엘이고 강자는 베드사살이기 때문에 다니엘이 더 일찍 죽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베드사살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작품입니까? 누구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까? 과연 누가 세계 역사를 핸들링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한 두 번이라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날의 모든 역사 속에 동일한 원리라면 그 역사의 주권자와 감독자가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마땅히 세계 역사와 인간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 47: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여기서 ‘만민’은 ‘모두, 전체’라는 말(lK 콜)과 ‘백성, 민족’이라는 말(![, 암)이 합친 것으로 이 지구상 어느 나라도 예외가 없으며, 해아래서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이 공존한다면, 잘사는 나라의 백성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기 때문에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알 수 없고 인생살이가 너무 고달프게 느껴지고 심지어 하나님이 있다면 자신을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느냐고 원망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소리를 외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것을 샘플로 보여주신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는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기보다 전쟁과 내분이 끊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통해서 영원한 진리인 성경 말씀을 주셨고 만민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심으로 만민의 구주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은 행복한 나라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 당시에는 하나님을 별로 찬양할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만민이 찬송하여야 마땅한 하나님이십니다.
(시 4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하며 하나님께 외쳐라.” (시 47:2) “온 땅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왕, 가장 높으신 여호와는 얼마나 장엄하신 분인가”
2. 너희 선민들아 하나님을 찬송하라
(시 47: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하나님께 세계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택하심을 받은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서 그의 후손이 모두 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자 이삭이 낳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모태에서 구별하신 야곱의 자손만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소리 높여 찬송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다윗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직 태어나시지 않은 메시아가 자기 후손을 통해서 세상에 오실 것을 미리 알고 그를 가리켜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의 자손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크게 소리 높여 찬송해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 22: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마 22: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축복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찬송을 끊이지 않기 위해서 왕이 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고 그의 평생 소원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지상 목표요 삶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오늘 성경에서도 무려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말이 연속해서 반복하였습니다.
(시 47: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시 47: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여기서 ‘찬송하라’는 말(rm'z:, 자마르) )은 ‘노래하다, 찬양하다, 연주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혼자서, 여럿이, 악기를 동원하여’ 노래하고 찬양하고 연주하라는 명령입니다.
(대상 16:4) “다윗은 레위 사람 몇 명을 뽑아 여호와의 궤를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것을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감사드리며 찬양하는 일을 했습니다.” (대상 16:5) “지도자인 아삽은 제금을 연주했습니다. 그 밑에서 일한 레위 사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입니다. 그들은 비파와 수금을 탔습니다.” (대상 16: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정해진 때마다 나팔을 불었습니다.” (대상 16:7) “그 날, 다윗은 아삽과 그의 친척들을 시켜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고, 찬양하는 일을 처음으로 하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을 크게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다윗의 리더십을 강력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강한 나라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이 무엇보다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와 찬양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며, 또한 찬송을 통해서 높여 지시는 분이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47: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여기서 ‘올라가시도다’라는 말(hl;[, 알라)은 ‘올라가다, 높여지다, -에 달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너희 성도들아 하나님을 찬송하라
(시 47: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여기서 ‘뭇 나라’라는 말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 !yMi[' 명사 남성 복수)로 이스라엘처럼 특정한 한 나라가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들을 뜻합니다.
이를 쉽게 번역한 성경을 보면 ‘뭇 나라들의 고관들’을 ‘세상의 통치자들, 모든 나라의들 귀족들. 이방 나라들의 통치자들’이라고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숭배만 일삼는 백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나라의 고관들의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상징이나 수식어가 아니라 미래에 그 말씀대로 반드시 되어 질 것에 대한 선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통치하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 신앙이 온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였고 그 후에는 이스라엘 나라마저 이방신들을 섬김으로 나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었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뭇 나라 고관들이 모이고 그들의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예언의 말씀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은 때가 차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복음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까지 선교되어지면서 시편 기자의 예언이 역사적인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나라들이 바로 복음을 받지 않았을 때는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최고로 여기던 나라들이었고, 포악한 야만인들이었으나 복음이 전파되어 여러 나라의 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제후들이 덩달아 예수를 믿는 전 국가적인 개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음은 마치 산불처럼 구라파 전역에 확산되어 중세 시대의 기독교 전성기를 이루었고 그 시대의 음악은 오늘 성경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 음악의 전부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헨델의 메시아요, 하이든의 천지 창조와 같은 장엄한 노래이며 그 노래를 듣는 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늘 성경 말씀처럼 손바닥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 화
유럽사에 있어서 19세기는 영국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영국은 자칭, 타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렸다. 지구가 돌아 영국에는 밤이 오더라도 세상 어딘가 영국의 식민지 중 한 곳 이상은 낮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64년의 기간으로 영국은 전무후무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어느 날 빅토리아 여왕이 헨델의 <메시아> 연주회에 참석했을 때 함께 수행한 시녀가 여왕에게 말했습니다. "폐하께서는 대영 제국의 여왕이시므로 신분을 생각하셔서 연주 중에 백성들이 일어서더라도 그대로 앉아 계셔야만 합니다." 여왕은 그 말을 기억해 두고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 속에서도 조용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곡의 클라이막스인 "왕의 왕,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라는 대목에 이르자 여왕은 더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왕관을 벗어 두 손으로 받들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외형적인 기독교의 번성은 점차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과, 성경의 근본 원리에서 벗어나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하나님 중심이던 중세 시대는 르네상스라는 혁명을 통해서 인간중심, 과학 중심의 인본주의 시대로 변천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인본주의가 기독교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는 르네상스의 산문인 인쇄술을 통해서 성령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복음이 세계 각 곳으로 선교되어지면서 서구 중심의 기독교에서 탈피하여, 동서양을 막론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게 복음이 확산되고 전파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특정한 나라와 특정한 사람들만 믿었던 기독교가 온 세상 나라 만민에게 전파되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신 실현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말씀이 사실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뭇 나라 고관들만이 아니라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라고 하신 말씀대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창과 칼이나, 금이나 은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 전파되었을 뿐이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조상대대로 믿었던 우상을 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끊지 못했던 나쁜 습관과 죄악을 회개하고 돌이켜 새사람이 되는 변화의 역사가 선교 현장마다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사람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까? 이전에는 술에 취해 세속적인 가무를 즐기던 사람이 변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은혜를 춤추며 찬송하는 사람들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상 대대로 우상과 미신을 숭배하며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모든 속죄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무한하신 자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도, 왕이나 귀족도 아닌, 세계 속에 작은 나라, 그 작은 나라 속에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것만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은혜와 축복인 것입니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와 같은 은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빈부귀천 유무식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와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찬송하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1) 하나님이 이를 위해서 인생을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성령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인쳐주셨습니다.
(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예배는 설교가 다가 아니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기도가 다가 아니라 찬송입니다.
이제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소리를 외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깨닫고 좀 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 47: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시 47: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예수님을 찬송해야 할 까닭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믿는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받을 때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깨우치시고 확신하게 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항상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설교를 듣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일임을 깨닫고 이제부터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힘써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우리에게도 속죄함과 치유와 회복과 마음에 평안과 더불어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날마다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