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사람/(시 66:8-15)

미션(cmc) 2015. 9. 24. 18:43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사람
(시 66:8-15)


(시 66: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시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시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시 66: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시 66: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 66:13)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시 66: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시 66: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모든 음식에는 간을 해야만 제 맛이 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에는 반드시 사랑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사랑은 아름답고, 좋고, 즐겁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끝까지 이루지 못하고 사랑이 변하여 미움과 갈등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사랑장’이라고 일컫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모든 것을 덮어주는 것이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누가 그와 같은 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물론 아무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사랑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원조이시며, 하나님의 별명도 사랑인 것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구원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기대감이 있다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기대가 있으실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실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만백성들의 찬양
 오늘 시편 기자는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1절)” 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느 특정 국가나 특정인이 아니라 온 땅, 곧 세계 만국백성들이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로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즐거운 소리’는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겼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호할 때와 같은 그 소리로 하나님을 환호하고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을 뜻합니다.
[삼상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명절은 우리나라처럼 추석이나 설이 아니라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로 이미 수천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것을 자손들이 기념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아무리 출애굽한지 오래되었을지라도 만일 그 출애굽이 없었다면 오늘의 삶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에 자손대대로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인종과 문화와 종교를 초월하여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을 지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이 매일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자손대대로 기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보면서 즐겁게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궁극적인 목적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 나를 막론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살아간다면 그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로 찬송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1)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노래하고 찬송하라고 하였씁니다.
(시 66:2)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2) 온 땅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노래하고 노래하라고 하였습니다.
(시 66: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다른 피조물들은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는 말씀처럼 각기 나름대로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만물보다 더 많이 만물 중에 가장 으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찬송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기대를 많이 하신 인간은 도리어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을 숭배한다면 얼마나 섭섭하실까요?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말씀처럼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
 창조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를 하면 배은망덕한 인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하셨던 영광돌림과 찬송을 포기하셨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기대하셨던 기대를 결코 포기하기 않으셨음을 오늘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 66:5)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자손인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보면서도,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인간들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더더욱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지 않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신가를 역력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굽에서 400여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시고 또 홍해를 육지와 같이 갈라지게 하심으로 애굽 바로왕의 손에서 구원을 얻게 하신 출애굽 사건입니다.
(시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여기서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라는 말씀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육지 같이 갈라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은 무사히 홍해를 건너게 하신 반면 뒤쫓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을 시키셨습니다.
 아무리 강퍅하고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그 같은 홍해의 기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렸습니다.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물론 오늘 시편 기자는 그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처럼 모세 오경을 통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마치 그 당시 홍해에서 그 시실을 목격한 사람처럼 조상들이 아니라 ‘우리가’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시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여기서 바다를 ’변하여’라는 말(&p'h;, 하파크)은 ‘변화시키다, 뒤집어 엎다’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처음서부터 육지가 아니라 본래 바다였던 것을 하나님께서 마른 땅으로 변화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라는 말(rb'[, 아바르)은 ‘지나가다, 통과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마치 시편 기자는 물론 오늘 우리들도 그 홍해를 건넨 것을 뜻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후에 평탄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메마른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과 만나와 생수를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새 나라를 세우게 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백성들과 달리 출애굽의 하나님께 자손대대로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예배자들이 되게 하기 위한 온 백성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라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신 26: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왕상 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그래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신전들이 아닌 유일한 성전이 있었고, 사람이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대하 7:6)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그 최전성기가 다윗 왕의 시대이고 솔로몬 왕이후 이방나라의 우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드리면서 이스라엘 나라는 마치 암세포가 전이되듯이 역대 왕들이 점점 더 우상 숭배에 극심하면서 멸망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절정기가 바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멸망시기로 여호와의 전까지 우상으로 더럽히고 모든 제사장들까지 타락을 하고 바른 말을 하는 선지자들을 비웃고 멸시하고 욕하면서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멸망을 재촉한 시기입니다.
(대하 36:14)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대하 36:16, 개정)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이는 이스라엘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고 유일하게 남은 유다 백성들마처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유다 백성들을 이방나라에 넘기심으로 성전 안에 보물은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져 방어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대하 36: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대하 36: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모든 나라들을 살펴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66:7)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 (셀라)
 여기서 ‘살피시나니’라는 말(hp;x 차파)은 '둘러보다, 지켜보다, 망보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입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이 민족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동성애와 같은 죄악을 버리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모든 백성들아 찬양!
 온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말미암은 멸망은 또 한 번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면서 거셨던 기대, 이스라엘을 택하시면서 거셨던 기대는 무산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면 저버릴수록 하나님의 기대는 더욱 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에 만민에 대한 기대입니다.
(시 66: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그 만민이 누구일까요? 지구상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1) 신구약을 막론하고 모든 시대에 그 영혼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시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2) 물과 불의 시험 가운데서 건지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시 66: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3)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시 66: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4)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시 66: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5) 거룩한 입술로 부르짖어 기도하고, 정결한 혀로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시 66: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세상에서 그러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내 힘으로는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내 힘으로는 나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할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이 가능함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은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나요, 우리들이요, 온 세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고 죄가 없이 태어난 사람인가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쁜 생각, 나쁜 말,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1)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적이 아니었으면 감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었고 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억 만 가지 죄악을 속죄 받을 수 없었고,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날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한 갈대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오늘 우리에게 그와 같이 과분한 은혜를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거셨던 기대,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에게 거셨던 기대를 다 저버렸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동일한 기대를 거셨기 때문입니다.
” (엡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거시는 마지막 기대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기대가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요,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요, 교회를 세우신 이유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기도회를 갖기도 하고, 사회봉사를 하기도 하고, 전도를 나가기도 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 모든 일들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까?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들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고 명령하신  일이기 때문에 부득불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100%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하는 유일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배 중에 가장 중요한 순서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은혜받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지 은혜를 받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배순서에 오로지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찬송이요, 기도요 헌금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최선의 목적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요,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요, 하나님의 마지막 기대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찬양대에게만 맡기지 말고, 남의 찬양을 듣는 소극적인 자세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내가 찬송의 주역이 되어 감사와 영광 돌리는 마음을 듬뿍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기쁘시게 받으신 것처럼 우리의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기대를 만족시켜 드리는 사람입니다.
(시 66: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시 66: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