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즐거이 찬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 68:3-10
어찌 즐거이 찬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 68:3-10)
(시 68: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 68: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시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68: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시 68: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시 68:9)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시 68:10)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오늘은 세계 기독교교회가 종교개혁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그 이유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4-1546년)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서 떠나 부패해진 문제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붙인 것이 발단이 되어 마침내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루터가 없었다면 오늘의 기독교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오늘의 개신교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변질되어 가고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고 저마다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개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변질된 신앙이 성경적으로 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물론 개혁되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잘못 꿴 첫 단추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과연 이 대로 좋은가? 라고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가 이대로 좋은가? 라고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보다 가장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 예배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68편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왜 찬송을 부르는 것이며, 어떻게 찬송을 부르는 것이 올바른 예배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찬양의 사람 다윗
오늘 성경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가장 많이 지은 다윗 왕의 시라고 오늘 성경 표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 68: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어떤 사람이냐? 고 묻는 다면 한 마디로 ‘찬송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윗은 어린 목동 시절부터 왕이 된 후에도 일평생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즐겨했던 사람입니다.
1) 다윗의 찬송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노래가 있는데
1)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
2)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
3) 귀신을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신이 다윗과 함께 하였으며 다윗의 찬양 소리에 악신이 떠나갈 만큼 다윗의 찬양에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삼상 16: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그렇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인 반면에 귀신을 벌벌 떨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에는 그와 같은 능력이 변함없이 지속됨을 믿어야 합니다.
예화
평택대학교 김문기교수는 ‘루터의 찬송과 종교개혁’이라는 논문에서 루터가 얼마나 찬송을 소중하게 여겼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은 '오직 말씀'(sola scriptura)과 더불어 음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첨부시켰습니다.
루터는 음악을 신학 다음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여겼습니다. 음악은 태초부터 창조에 속한 것으로, 성령은 음악을 사용하고, 인간은 음악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루터의 찬송은 설교와 더불어 루터의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었다. 루터의 개혁에 동조했던 모든 도시의 길거리나 장터에서 사람들은 종교개혁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하였기 루터를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종교개혁을 승리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루터의 반대자들이 "루터의 찬송은 그의 글이나 설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고 비난한 것은 루터의 찬송이 복음 전달에 있어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지니고 있는 찬송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오늘의 우리 개신교는 오찬송의 중요성과 그 능력을 루터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송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로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루터가 찬송의 힘이 아니었다면 로마가톨릭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종교개혁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루터는 위기 때문에 찬송으로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그 유명한 찬송이 바로 시편 46편을 근거로 하여 만든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입니다.
2) 다윗이 왕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된 후 무엇보다 간절히 소원한 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날 다윗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대상 13: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
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여기서 ‘힘을 다하여’라는 말은 ‘힘, 능력, 권능’이라는 말과 ‘모두, 전체, 완전함’이라는 두 말을 합친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의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법궤를 옮기다가 웃사가 즉사하는 바람에 부득히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다윗이 제일 많이 상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포기하였나요?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머무르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용기를 내어 재도전하여 마침내 성공하였습니다. 그 때 다윗이 얼마나 기뻤든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삼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삼하 6: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중에 찬송은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고 우리도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힘쓰기로 결심하고 다짐하는 종교개혁주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통해서 온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상 16:9)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대상 16:23)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2. 찬양하는 이유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찬송을 부른 사람이 아니라 어찌 보면 경건스럽지 못하다고 오해할 정도로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였음을 오늘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시 68: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여기서 ‘뛰놀며’라는 말($l'[;, 알라츠)은 ‘크게 기뻐 뛰놀다’ 라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그 좋은 예가 다윗 왕은 여호와의 법궤를 무사히 다윗 성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를 조직케 하였습니다.
(대상 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그렇다면 왜 시편 기자 다윗은 그렇게 춤을 추면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악을 반드시 징벌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 68:1)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본래 목동이었던 시편 기자가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비즈니스 석에 무임승차한 사람처럼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 다윗은 그 때문에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고 원수들이 죽이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다했기 때문에 정처 없이 피신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겪은 사람입니다.
그 때마다 시편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부르짖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시편 기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악인들을 망하게 해다라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 68:2)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물론 당시에는 그 기도가 즉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하나님이 자기를 악인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 68: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시 68: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속에는 지난 날 이스라엘 역사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배어 있습니다. 특히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한 일입니다.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시 68: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시 68: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애굽 땅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시내산 아래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의 법인 율법을 제정하여 선포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전쟁에 능한 일곱 족속의 나라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나그네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한 민족들로 천연 요새라고 할 수 있는 산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수 11: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수 11:2)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수 11:3)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더구나 그와 같은 가나안 왕들은 철병거와 같은 우수한 무기와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수 11: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연약하기 그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을 때 그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수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이 하나님이 구원하신 은혜를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니 크게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시 68: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3) 하나님은 날마다 짐을 져주기고 그것을 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여기서 ‘짐을 지시는’이라는 말(sm'[ 아마스))은 ‘짐을 싣다, 짐을 운반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시편 기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짐도 여전히 운반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출애굽의 자유만 얻기만 하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만 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기만 하면,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기만 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했으나 홍해가 길을 막았고 홍해를 건넜으나 광야에 목마름이 있었고 가나안을 점령했으나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나라를 세웠으나 분열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어려울 때마다 그 짐을 대신 저주시고 또한 그 짐을 질 수 있도록 힘을 주셨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의인의 찬양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은 왕족이 아니라 목동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통일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후에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자기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는 자기 혼자서 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치 않고 자기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의인들에게 자기와 같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라고 오늘 성경에 명령하고 있습니다.
(시 68: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 68: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기서 의인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죄가 없이 일평생을 사는 의인은 전에도 지금도 후에도 없습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누구나 다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시편 기자는 그 의인은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악한 세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아보려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의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게 번역된 성경은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인을 가리켜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시 68:3) “하나 바르게 살려 몸부림 치는 이들 어찌 즐거워하지 않으랴. 어찌 기뻐 펄쩍펄쩍 뛰지 않으랴.” (시 68:4) “하나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의 이름 찬양하여라.
여기서 몸부림이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양심적으로 살아보려고,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신앙은 결코 몸부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보아도 세상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수없이 경험해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13)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바로 루터가 깨달은 것처럼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으로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평생 벗어버리지 못하는 죄와 질고와 죽음의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과 영광스런 부활로 다 이루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구원함을 우리 성도들이 항상 힘써야 할 것이 예배이고 예배 중에 말씀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찬송을 바르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일평생 필수적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무엇보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요 기도회에 하나님을 찬양할 때 보면 청년들이 펄쩍 펄쩍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오랜 교회 전통에 익숙해진 우리이기 때문에 오늘 시편의 문자대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마음만은 오늘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지극히 정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 우리를 죄에서 이미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2) 우리의 인생길에서 무거운 짐을 대신저주시고
3) 마땅히 내가 저야 하는 무거운 짐을 능히 질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죄와 고통과 죽음뿐인 세상에서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이며 또한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 150:1)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분의 능력이 머무는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50:2)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두고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은 한없이 위대하시니 그것을 따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50:3) “나팔 부는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프와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50:4) “탬버린을 치고 춤을 추며 여호와를 찬양하라. 현악기와 오르간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50:5) “큰 소리 나는 심벌즈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심벌즈의 높은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50:6)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