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믿음과 순종 /(창 22:6-12)

미션(cmc) 2016. 5. 10. 09:40

믿음과 순종 
(창 22:6-12)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가정의 달 5월 둘째 주일인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이 무슨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정의 달에 여러분들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옛날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는 마치 북한 사람들처럼 쌀밥과 고기국을 실컷 먹어 보는 것이었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월세로 갈까 전세로 갈까 집걱정하지 않도록 크지 않아도 좋으니 내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온 가족이 다 예수 믿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모든 다 이루어진 것일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예수를 믿되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가문이 자손 대대로 좋은 신앙을 이어가는 신앙의 명문 가문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과연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신앙의 명문 가문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에서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1. 네 부모를 공경하라

우리가 핏덩이로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만난 사람도, 맨 처음 나를 가르친 선생님도, 내게 기쁜일이 있을 때 나보더 더 기뻐해주고, 내가 슬픈일이 있을 때 나보다 더 걱정한 이가 부모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오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요, 땅위에서는 두말 할 것 없는 부모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자기를 낳아 기른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1) 구약 시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지켜야 할 열 가지 계명을 주시는 가운데 제일 첫 번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라는 명령과 더불어 땅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으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다가 끝내 멸망을 당하고 오랜 세월동안 암흑시대를 보내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신약시대는 어떠하였을까요?

2) 예수 시대
어느날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라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어서 예수님께 어느 계명이오니까?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이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3) 이방인 시대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을 지나 멀리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교회가 에베소 교회라면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timavw, 티마오)은 ‘가격을 정하다, 존경하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자기 집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값비싼 패물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부모를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기 부모를 자신의 재산이나 자녀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자녀인가? 하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앞서 부모에게 얼마나 순종하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순종하라’라는 말(uJpakouvw, 휘파쿠오)은 ‘말을 듣다, 따르다, 복종하다, 열다’라는 뜻의 동명령 현재 능동태로 언제 어디서나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사람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함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아래로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도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2.  아버지 아브라함의 순종
인류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된 모든 인류에게 정녕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시고 부르셨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쉽게 따를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명령에 그와 같이 순종했던 아브라함에게 오늘 성경에 내리신 명령은 도저히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묵묵히 순종하는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를 본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기서 ‘그 일 후’라는 말(hL,a, 엘레)은 ‘이것들’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 전개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무슨 일들이 있었습니까?
 (1) 창 21장에서 아브라함이 우물 브엘세바에서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과 상호간에 화친의 조약을 새롭게 맺은 사건입니다.
(창 21: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 또 ‘그 일 후’는 이것들이라는 뜻으로 복수로 브엘세바 사건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아브라함이 사라의 요청에 따라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낸 가슴 아픈 사건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 때문에 아브라함은 심히 근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창 21: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여기서 ‘매우 근심’이라는 말([r'y:, 야라)은 많이 ‘흔들리다, 떨다, 몹시 걱정하다’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미완료 형으로 아브라함이 이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의 씨인 이삭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명령은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가리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이스마엘을 쫓아내고 달랑 독자 이삭만 남았을 때였습니다.
더구나 이스마엘을 내어 쫓는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잘 아시면서 그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순종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매우 신속하고도 능동적이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적극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의 그와 같은 행위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믿음과 순종이 잘 균형을 이룬 모범적인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고 그 명령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오직 하나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내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에서 시작하여 십계명과 성경에 기록된 ‘하라, 하지 말라’는 모든 말씀은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때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마치 아브라함처럼 현재의 처지, 이 시대의 문화, 사람들의 동향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처럼 무조건 따르기가 쉽지 않은 명령으로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3. 아들 이삭의 순종

아브라함의 그와 같은 순종은 아브라함 혼자만의 힘만으로 될 수 있는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완벽한 순종을 위해서는 장성한 이삭의 순종이 동반되어져야만 가능한 순종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전혀 듣지 못한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명령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아버지나 어머니만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힘을 합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쌓아놓은 재산만이 아니라 신앙과 명성을 자녀들이 산산히 조각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은 뜻밖에도 아브라함의 말에 고분고분 순종하였음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번제용 나무를 미리 준비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나무는 짐승 한 마리를 불사를 만큼 많은 양의 나무를 이삭이 지고 산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이삭이 그만큼 장성했다는 뜻입니다.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준비되어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할 정도로 이삭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묵묵히 장작을 짊어지고 아버지를 따라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통해서 후일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산에 오르실 모습이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산을 오르던 이삭이 아버지를 뿌리치고 뒤돌아서서 산을 내려가 집으로 도망쳐서 어머니 사라에게 이 사실을 고자질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3) 설령 이삭이 너무 착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모든 명령들을 묵묵히 순종할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순종하기 어려운 막다른 순간이 왔습니다.
그것은 나이 많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꽁꽁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았을 때,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어 이삭의 목을 치려할 때 이삭은 얼마든지 노인 아버지를 밀쳐 버릴 수 있었지만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였고, 이삭은 늙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시험을 톱으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장소인 모리아 산이 후일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삼대 신앙을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이삭의 순종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동일하게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발표한 치매인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인구는 2015년 65만 명에서 2020년 84만 명으로 5년간 20만 명 가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제 노인은 그 자녀와 가정에 점점 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고 치매에 걸리고 암에 걸려 고통당하는 부모를 학대하는 자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십자가와 같이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수평적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믿음과 순종의 균형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에게 약속하신 상급에 대하여 신구약 성경에 다루고 있습니다.
(신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또 ‘약속이 있는’ 이라는 말(ejpaggeliva, 에팡겔리아)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그 명령을 순종한 자에게 반드시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이 어떤 것일까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매사가 잘되고, 그 생명이 땅에서 길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잘되고’라는 말(eu, 유) )은 ‘번영하다, 형통하다, 좋게 되다’라는 뜻이고, ‘장수하리라’는 말(makrocrovnio" 마크로크로니오스)은 문자적으로 ‘긴 시간, 오래 사는’ 장수를 뜻하는 모든 복을 다 내포하는 포괄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불신자는 말할 것 없고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늘에 복만을 사모하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복을 원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제부터라도 세상에 그 누구보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효도의 원조들이 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 가문의 하나님이 되시는 신앙의 명문 가문을 만들어 가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손자 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