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씨/(행 8:1-8)
꺼지지 않는 불씨
(행 8:1-8)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때로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말씀들을 하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려고 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불은 어떤 불이고 누구에게 던지시겠다는 불일까요? 불신앙의 사람에게 내리실 심판의 불일까요? 아니면 신자들에게 내리실 성령의 불일까요? 뿐만 아니라 왜 불을 던지시겠다는 것일까요?
1. 부흥하는 교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세상에 알리는 선구자였던 세례 요한은 자기를 메시아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막 1:8)“고 하였습니다.
때가 되매 세례 요한은 마치 무대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사회자처럼 사라지고 난후 하나님께서 성령을 기름 붓 듯이 하심으로 공생애 기간 내내 권능이 충만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성령을 제자들에게도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각 사람에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행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만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예수님과 더불어 역사하신 동일한 성령을 부어주신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말씀으로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가깝게는 예루살렘에서 멀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성령 충만한 교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 전도의 능력이 임하여 복음을 전하는 여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의 아름다운 소문이 나서 교회가 날로 더욱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교회란 어떤 곳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정답에 가까운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그 비결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요인이 총체적으로 작용을 한 결과이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주도적인 원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루살렘 교회 온 성도들이 불과 같은 강력한 성령을 충만히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히브리 파 유대 지도자들이 처음에는 그와 같은 사도들의 외모만을 보고 우습게 여겼으나 복음이 예루살렘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베드로와 요한을 강제로 체포 구금하여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였으나 단연코 거절하였습니다.
(행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위축을 당하거나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욱 산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물론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때로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씨가 바람을 만난 것처럼 겉잡을 수 없도록 복음의 불길이 확산되어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왕성하게 부흥 성장하였습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렇다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성령의 은혜임에 틀림이 없지만 불신자가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우연이가 아니라 누군가 기도하고 누군가 전도하고 누군가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면 삼천 명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불씨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그처럼 계속적으로 그리고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외적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내적으로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그와 더불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게하는 일을 힘쓰는 사랑의 실천하는 흠잡을 데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행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이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균형은 오늘의 교회들이 닮고 배워야 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 밖으로 전도하고 안으로 사랑으로 교제하고 섬기는 교회가 될 때 교회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박해 받는 교회
바람이 불게 되면 높은 나뭇가지가 제일 먼저 흔들리는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과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미워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은 전통적인 히브리파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였습니다.
복음이 점차 확산되면서 예루살렘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그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본 당국자들이 두려워한 나머지 공회를 소집하여 비상 대책 회의까지 열 정도로 극도로 경계하였습니다.
(행 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행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 사도들의 체포와 구금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세운 대안은 원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급을 체포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압력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가하며 점점 예루살렘 교회를 압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행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여기서 ‘퍼지지 못하게’라는 말(dianevmw, 디아네모)은 신약에서 딱 한번 나오는 말로 ‘분배하다, 나누다’라는 뜻으로 전도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불신자의 눈으로 본 전도의 정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마치 베세다 들판에서 굶주린 오천 명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오병이어가 제자들의 손에서 무리들의 손을 거쳐 각 사람에게 나눠지는 동안에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복음의 떡이 사도들을 거쳐 집사들을 거쳐 평신도를 거쳐 예루살렘 전역의 사람들에게 분배되어진 것이 전도였습니다.
2) 흑색 선전
당국자들은 사도들을 위협하면 더 이상 복음이 확산되지 않기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복음이 더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해 예수님에게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유능한 차세대 지도자를 본보기로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표적이 바로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사람들에게 전도하할 때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 집사를 체포하여 공개 재판을 열어 거짓 증인들을 세워 위증을 하게 하여 합법을 가장하여 스데반 집사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행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3) 살인
예수님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과 율법을 거역하였다는 것과 나사렛 예수가 성전으로 헐고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뜯어 고칠 것이라는 말을 거짓 증인들이 들었다고 증언하게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성전 모독과 율법 왜곡은 죄인에게 돌팔매질하여 죽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죄였습니다.
(행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행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나 망할 징조는 가장 정직해야 할 종교지도자나 법관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고, 심지어 돈을 풀어서 증인들을 위증하게 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스데반은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돌무더기가 되는 순교를 당함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위기가 몰아 닥쳤습니다.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으며 이를 빌미로 예루살렘 교회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체포하였기 때문에 부득불 성도들은 교회만이 아니라 집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여기서 ‘잔멸하새’라는 말(lumaivnomai, 뤼마이노마이)은 ‘해치다, 파괴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박해가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여기 한번 만 나오는 말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앙의 박해는 있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반드시 세 가지 중에 하나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하나는 박해를 두려워하며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 둘째는 다른 곳을 도피하는 사람, 셋째는 끝까지 맞서 순교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 박해는 지금도 세계 도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이상의 박해를 받으면서 믿음을 지키는 수많은 성도들과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위협을 당하고 심지어 끔찍한 고문과 순교를 당하는 성도들이 지구 도처에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과 믿음의 한 형제자매입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최선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울 사도도 옥중에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3. 흩어지는 교회
교회나 개인이 그와 같은 경우에 범하기 쉬운 과오는 자신이 무척 잘 믿는 줄 착각하거나 자기 힘으로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든 줄 착각하고 자만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는 외형적으로 볼 때 현대 교회가 부러워할 정도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이상적인 교회처럼 생각될 정도로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예루살렘 교회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그와 같이 축복하시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교회 부흥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목적지인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확산 시킬 계획이라고 세우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전혀 그 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만 급급한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사마리아 지방이나 소아시아나 마게도니아 지방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대대적인 박해가 가해졌을 때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들이 그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부득불 아브라함처럼 고향 친척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성경은 흩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여기서 ‘흩어진’이라는 말(diaspeivrw 디아스페이로)은 ‘두루 두루 뿌리다’라는 뜻의 현재형으로 가는 곳마다 성도들이 복음을 확산시켰음을 뜻합니다.
당국자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폐쇄하기만 하면 더 이상 복음이 확산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결과는 정 반대로 더 널리 확산되어 예루살렘 교회가 가야만 한 다음 목적지 사마리아 지방에까지 복음의 불이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마술사 시몬의 왕국이나 다름이 없었던 사마리아를 복음화시킴으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임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기쁨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음으로 복음의 불모지 사마리아 땅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전체가 교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행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에 그와 같은 불이 붙게 한 사람들은 사도가 아니라 일개 집사요 다수의 평신도들이었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성령의 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가 그렇게 복음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오늘 성경에서 흩어진 무명의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복음을 전함으로 사마리아도 예루살렘처럼 복음으로 불붙고 더 나아가써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 까지 복음의 산불이 번져 나간 것은 흩어진 평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복음의 불씨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때로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말씀들을 하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려고 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주석가 '알포드'(Alford)는 이 '불'을 성령으로, '엘리코트'(Ellicott)는 심판으로, '플러머'(Plummer)나 '브루스'(Bruce)는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분쟁으로 각각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왜 부흥하는 교회가 때로 시험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분쟁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 모두 전도에 대한 거룩한 부담과 때로는 그로 인해 불같은 시험과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상 교회의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가 고난과 핍박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불씨를 받고 흩어졌으나 교회가 잔멸되지 않았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 거센 바람으로 불씨가 널리 퍼져 진화하기 어렵도록 산불이 확산되는 것처럼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과 교회에 불어 닥치는 핍박이나 시험은 도리어 개인의 신앙을 돈독하게 하고 복음을 확산시키는 불씨가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성령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뿐 아니라 흩어진 불씨가 되어 이웃과 이 도성과 민족과 세계를 불붙게 하기 위해 우리를 예배당 안에서만 살게 하지 않으시고 직장과 학교와 사업장으로 보내어 불신자들을 매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다 죄인이지만 특별히 예수를 믿고 이미 속죄함을 받은 우리들이 가장 많이 범하고 있는 죄가 전도하지 않는 죄임을 알 아야 합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 복음이 정말 좋은 소식이라면, 그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도록 나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그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죄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 도성을 장악하고 있던 마술사 시몬을 제압하고 그 도성이 복음으로 불붙게 하였던 성도들과 빌립집사처럼 우리도 흩어지는 불씨가 되어 수원도성을 영적으로 짓누르고 있는 어두움의 권세를 몰아내고 사마리아 성처럼 기쁨이 충만한 도시가 되게 하는 흩어진 불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최소한 성경을 일독하고 집에 있든지 교회에 나오든지 매일 한번은 깊이 기도하고 불신자 한 사람 이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