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종 교 개 혁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미션(cmc) 2009. 3. 27. 07:09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내가 교회사를 전공할 수 있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학문과 사역과 인생과 관련하여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양면성적’ 사고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어거스틴의 ‘출생과 소년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어거스틴이 19살 되던 해인 373년에 심각한 종교적 ‘회심’(conversion)을 경험했다고 했다. 시세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으면서 갑자기 세상의 모든 소망이 무가치하게 보여졌고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면서 불멸의 지혜를 갈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애지 추구에 불붙은 어거스틴이 지혜를 찾기 위해 관심을 돌이킨 곳이 성경이었고 교회였지만 어거스틴은 실망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기독교가 너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고 권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니교의 추종자”

이러한 기독교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은 청년 어거스틴을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교인들의 극단적인 반발을 샀다. 이 즈음에 새롭고 ‘영적인’ 기독교의 강한 조류가 전통교회의 거대한 율법주의에 역류해오고 있었다. 이 새로운 ‘기독교’는 구약을 비 영적인 혐오의 대상으로 낙착시켰다. 이런 ‘기독교’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히브리 선지자들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직접 영혼들에게 말씀하시는데, 그의 고상한 메시지와 그의 지혜와 그의 기적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단은 마음뿐이며 특히 어거스틴과 같은 젊은이의 마음이었다. 이와 같은 사상이 297년부터 칼타고에 들어와 퍼지기 시작했는데 370년경에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지식층 사이에 활발하게 나돌고 있었다. 이 사상은 페르시아의 교주 마니(Mani)로부터 유래하여 로마 기독교 세계로 파급된 이원론적 혼합 종교인 마니교(Manichaeism)였다.

마니교는 하나의 절충주의적 종교이며 세계적 종교를 지향한 대담한 종교였다. 마니는 그의 고향인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로부터 이원론을 빌어왔고 엘카사이트파와 노스틱파로부터 금욕주의를 빌어왔으며 불교로부터 환생의 교리를 빌어왔고 기독교로부터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예수 존중을 빌어왔다. 마니는 구원의 메시지가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져 왔는데 이제 마니 자신이 이 모든 선포들을 한 복음으로 종합해서 온 세계에 선포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포르 황제에게 보낸 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혜와 행위가 하나님의 사자들에 의해서 인류에게 시대마다 주어져왔다. 한 시대에는 부처에 의해 인도에 주어졌고, 다른 시대에는 자라두스트에 의해 페르시아에 주어졌으며, 또 다른 시대에는 예수에 의해 서방에 주어졌다.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이 계시와 이 예언이 하나님의 진리의 사자인 나 마니에 의해 바빌론에 주어졌다.” 통일교의 문선명 비슷하다고 하겠다. 마니의 글은 다음과 같이 계속되었다. “나의 교회는 이 전의 교회들보다 우월하다. 이전의 교회들은 특수한 나라들과 특수한 도시 안에 세워졌는데, 나의 교회는 모든 도시 안에 세워질 것이고 나의 복음은 모든 나라에 미칠 것이다.”

칼타고에서 마니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들은 금식과 복잡한 타부들에 매여 창백한 모습을 한 남녀들로 구성된 ‘선택된 자들’(Elect)로 주변에 ‘청도자들’(Hearers)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청도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영웅들인 ‘선택된 자들’의 금욕생활을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찬탄하였다. 그들은 불가항력적인 신비감을 풍기고 있었고 복잡한 비밀 기도를 하였고 커다란 양피지로 된 마니교의 책들을 지니고 다녔으며 ‘빛’(Light)과 ‘어두움’(darkness)이란 용어 밑에 베일로 가려진 깊은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고 다녔다. 그들이 볼 때 카톨릭 교인들은 ‘반쪽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가 중심 인물이었다. 그들은 어거스틴에게 ‘열려진 순수한 진리’를 제시한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결국 마니교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가운데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교만 가운데 지껄이는 육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입은 마귀의 덫과 같았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경의 이름의 음절들을 섞어 만든 마귀의 올가미였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항상 그 이름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가슴에는 진리가 없는 공허함 뿐이었습니다.” (참회록, 3권 6장 10절). 그러나 그 당시 어거스틴에게는 마니교가 그를 줄곧 괴롭혔던 정욕과 악의 기원과 자기 인식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같이 보였다. 마니교는 이 세계 안에는 빛의 원리와 어두움의 원리가 뒤섞여 있는데 악한 것은 모두 어두움의 원리의 소산이라고 했다. 악의 원리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악한 행동을 하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악행의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작용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있다고 가르쳤다.

어거스틴은 마니의 “창시 선언문”을 듣기 위해서 마니교의 비밀 집회에 참석하곤 했다. “창시 선언문”(Letter of the Foundation)을 듣는 순간 ‘청도자들’은 빛으로 충만해지는 소위 ‘조명’이란 종교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체험을 겪는 동안 자기 자신의 상태를 예리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마치 깊은 잠 속에 빠졌던 자가 멀리서 들여오는 외침에 잠이 깬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해서 잠에서 깨어난 마니교도는 자기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자기의 참된 정체는 자기의 일부분에 불과한 자기의 ‘선한 영혼’인데 정욕과 격분과 성욕 등으로 발동하는 육체에 의해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본래의 완전한 상태인 ‘빛의 왕국’으로 돌아 가는 것이 인간의 착한 성품의 유일한 소원과 욕망이 된다.

마니교도가 된 어거스틴은 전통적 기독교의 편협한 사상들을 일시에 떨쳐버릴 수 있었고 진리에 대한 확신을 소유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거스틴은 이제 보다 엄격하고 ‘영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다. 29세가 된 어거스틴은 아직 육체적 쾌락에 매력을 느끼며 그것을 계속 추구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자기의 선한 영혼을 깨끗이 보존하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어떤 다른 성품이라는 견해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잘못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게로 돌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참회록, 5권 10장 18절). “주여, 나에게 정절과 절제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지금은 안됩니다.” (참회록, 8권 7장 17절). 사람은 누구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