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신.구약 개 론

구약개론(하)

미션(cmc) 2009. 4. 16. 19:37

1. 서   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감취었던 비밀이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멀리서>(히11;3) 희미한 가운데 바라보던 하나님의 경륜을 신약의 성도들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증거 하기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3;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바로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인가?>를 계시해 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밀의 경륜, 즉 작정하신 바를 성취해 나가셨습니다. 알파로부터 시작하여 오메가로,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22장에 <그것을 지어 성취>(렘33;2)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의 역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깨우치실 때에 하신 방법이 이 구속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열한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이에 저희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라 하신말씀은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키는 말씀이고 모든 선지자와 시편과 모든 성경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라고 하셨으니 이는 구약 성경 전체를 들어서 증거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66권은 통일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권의 책이며 한 성령님의 저작입니다. 성경은 구속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범죄 하였으며 그 범죄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여 주시고 회복하여 주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부터 요한계시록“내가 새 하늘고 새 땅을 보니(21;1) 신천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고,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한 뼈대 없는 해파리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정에 좌우됩니다. 굳건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창세기부터 말라기,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이르도록 척추와 같은 중심적인 말씀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성경전체 파악 실패는 성경이 본래의 목적과 의도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서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3;1) 이 이유는 <말의실수> 때문에 진리에 대한 왜곡으로,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11;52)고 책망하십니다. 설교자란 설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설교에 의한 심판인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정확무오 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그것은 말씀에 대한 실수입니다. 첫째는 필요가 원칙을 앞서기 때문이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예배당 건축의 필요 등이 말씀을 혼잡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회중들의 영적미숙입니다. (히5;12;14) 설교자란 어린이와 같은 회중들을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엡4;11.15)  이것은 한국 교회의 당면한 요청이요 시재적 소명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시작-끝까지, 또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너희를 견고케 하실(16;2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를 견고케 하는데 있습니다.


2. 창 세 기


1. 창세기는 어떻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지며 4대 사건과 4대 족장은 누구 입니까?


  1부분-창세기1-11장까지, 인류를 대상으로 삼음.

        (4대 사건 - 천지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홍수, 바벨탑사건.)


  2부분-창세기12-50장까지, 아브라함의 한 가정을 중심.

         (4대 족장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가 기록)


    

2.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세가지 언약은 무엇입니까?


  ①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실것

  ②영적 가나안인 하늘나라 기업이 주어질 것을 의미

  ③천하만민이 구원의 복을 얻을것(창12-50)


3.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서 어떠한 하나님으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까?


  ①전능의하나님(1-2장) - 창조사역(천지만물을 창조하심)

  ②사랑의 하나님(3-4장) - 타락한 아담에게 첫 복음을 주심

  ③공의의 하나님(6-9장) - 홍수 심판

  ④통치의 하나님(10-11) -  바벨탑사건

  ⑤구주의 하나님 - 아브라함 과 언약

  ⑥신실의 하나님 - 이삭을 통한 언약성취

  ⑦주권적 은혜의 하나님 - 야곱을 택하심

  ⑧역사의 하나님 - 요셉의 생애

  

4. ①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며

   ②인간은 어떻게 보답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③하나님은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①천지 만물을 창조해 주셨고, 사람을 지으시되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으며, 그들과 교제      를 갖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창조)


  ②3-11장까지 평화로운 동산에 죄가 침입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한 반면      사탄의 달콤한 말을 믿고, 순종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호6;7)

   죄는 세상에 퍼져나가 홍수 심판 때에 세상에 가득하였고, 바벨탑을 쌓는 반역으로 나타     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배은망덕한 보답이었고, 사망이 왕노릇 하게 되었     고 하나님의 나라는 파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배반)


  ③하나님의 언약으로 나타납니다. 창3;15의 선언은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입니다. 이것을 <첫 복음> 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인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그 두 사이에 원수와 같은 적대감이 있을 것이다. 종래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는 인류의 구원자로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메시야는 육신을 입고 나타날 것과 발꿈치를 상하게 될 해를 당할 것과 사탄의 정복자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사실 을 창세기에서 알고 메시야가 태어날 계보를 파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아벨대신 셋을 “다른 씨로 주셨다(4;25)고 말씀합니다. 5장에는 아담의 족보가 나오며, 아담으로부터 셋으로 이어져 10대만에 노아가 탄생 두부류가 혼합될 만큼 죄가 득세, 여자의 후손들이 세속화되어 홍수심판이 내려지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6;5)함에 대한 진노와 메시야가 태어날 의로운 씨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노아의 세아들 중 셈을 통해 계승 아브람이 탄생 구속사에 아담, 셋, 노아, 아브람으로 이어져 언약을 구체화시켜 나가십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과(26;3-4)-야곱에게로(28;13-15)계승되어 나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해주신 하나님이 은혜 언약입니다.(약속의 성취)


3. 출 애 굽 기


1.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 내려 보냈다가 구출해 내신 세 가지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아내야 할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관영치 아니했기 때문입니다(창15;16)

②메시야가 탄생할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시기 위함(창38;1-2, 45;5-7)

③출애굽 사건을 통해, 구원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고안해 내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유월절 양(12장) 흠 없는 1년 된 수양을 잡아 그 피로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심은 구속의 교리이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린 양의 피 에 있었습니다.

애굽에 내린 재앙은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보여준 사건(롬9;17)으로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린 (12;12)사건으로 이세상 신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출애굽기에서 그리스도는 어떻게 계시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유월절 양(2;1-28)으로 만나로(16;1;36), 생수를 솟아 내는 반석으로(17;5-6)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성막으로(40;34) 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만나>와 물을 주셨으며 병을 치료해주셨고(15;26), 광야 생활 40년 에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신29;5), 광야에서 구름과 불로 보호하여 주셨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앞서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로 자기 백성들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 율법, 성막을 세워주심도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 였음을 명심하고 구속함을 얻은 우리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4. 레 위 기


1.레위기의 두 큰 주제는 무엇입니까?

-전반부(1-17장);거룩하지 못한 죄인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수가   있는가?

-후반부(18-27장);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를 지속하며 동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떻게 해서 열려졌습니까?

대속 제물의 피 흘림, 즉 죽음을 통해서이고 이속죄제는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해 드려지고 있음으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이 대속 제물과 대제사장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모형입니다. 히브리서10;4은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10;5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8;1에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7;23은 육적인 대제사장은 반복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자기를위한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만 했습니다(16;11) 그것은 대제사장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히8;1은 중요한 요점으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요19;30은 에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을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던(마27;51)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려졌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10;19-20)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하여 그림자로보여주신 대속제물과 대제사장의 중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취된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심이라(벧전3;18)고 말씀해 줍니다. 이 길만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열어 놓아 주셨습니다.


3. 속죄일에 드리는 속죄제를 설명해 보십시오.

레위기의 핵심은 16장입니다. 16장은 1년에 한번 드리는 대 속죄일에 관한 규례입니다. 대제사장이라 해도 이날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속죄 제물로 수염소 둘을 취합니다.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립니다.

-16;15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피를 가지고 장안에 들어가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피를 가지고야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피는 속죄소에 뿌려집니다.

-아론은 두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애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죄를 고하고 그죄를 염소 머리에 두어 정한자에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16;21-22)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아사셀>을 위한 염소라 하는데 이는 우리에게서 죄과를 멀리 옮기(시102;12)심을 의미합니다.


4.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레위기 후반 18장에서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라(18;3)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18;4)

-(11;45)에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지속해 나가는 동행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5. 민 수 기


1.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라는 말고 그들을 <군대>라고 부르고 있음에     대해 느낀 바를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믿음군대로 언약궤를 지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고 복종하는 믿음의 군대입니다. 믿는자가 그 믿음을 지키려면 영적으로 무장하고 영적싸움으로 환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순종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참 이스라엘인으로 하나님의 참된 군대가 되어 주님께 영광 돌려야한다


2. 그들은 누구의 지휘를 받아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전진해 모세로 전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복종한다.


3. 민수기에서 그리스도는 어떻게 계시되어 있으며,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어떤믿음입니까?

-광야생활에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이니될 두가지 요소는 만나와 생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자신을 만나로 7장에서는 생수로 증거해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됨을 말씀하셨습니다.“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히6;18)<도피성(35장)으로 계시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민21;9)에 있습니다. 성경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민수기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가를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순종으로 여호수아와 갈렙 에게는 믿음의 순종이 있었으나 열명의 족장들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6. 신 명 기


1. 신명기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언약의 갱신으로 요단강을 건너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죽기 전에 행한 세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신명기는 세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설교를 요약해 보십시오.

-첫번째설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던 역사를 회상하는 내용(1;6-4;43)

(1;19)시내산에서 가나안까지는 열흘 남짓한 거리를 40년이나 방황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31-32)는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말해 줍니다.과거를 회상하는 첫설교는 한마디로 후회하는 설교입니다.


-두번째 설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키고 행해야 될 율법을                 설명해 주는 내용.

<잊지 말라>12회, <기억하라>15회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여호와를 잊지말고(6;12), 광야에서 하나님 여호아를 격노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9;7)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잊어버림으로 겪게될일들과 열국중에 흩으실것과(4;27,28;25), 끌려간 포로에서 귀환하게 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30;1-3) 더욱 놀라운것은 대적에 에워싸여 먹을것을 얻지 못하면 태에서 난 자식을 먹으리라(28;57)고 경고적 말씀인데 이예언이 엘리사 선지자 당시 아람와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을 때에 역사적인 사실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왕하6;24-29)

-세번째 설교; 언약을 갱신하는 내용입니다.(27;1-34;12)

두길만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순종의 길-축복,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27;11-15)고 명합니다.

*불순종의길-저주,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리라(28;15)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모세의 명령이 행위구원론적인 단순한 순종,복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선행함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맹세로 보증하신 언약이 우선합니다. 믿음의 순종으로 화답하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요, 믿음으 순종이 없으면 못들어갈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제2세대들을 들어 약속하신바를 성취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3. 신명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18;15)합니다.


7. 여 호 수 아


1. 여호수아서는 어떻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집니까?

-1-12장;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 .

-13장이후;점령한 땅을 분배하는 내용.


2. 여호수아서에 계시된 두모형은 무엇입니까?

지상교회와 천상교회입니다.

-지상교회;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가는 것은 전투적인 교회의 모형으로 지상의 교회를 말합니다. 전투적인 교회에게 주어진 표어는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노화 함께 하느니라(1;9)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자 전투전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영적 싸움에 임하는 정신무장과 승리의 비결은 선민의식 과 은총의식 으로, 6;1의 여리고성이 영적무장한 하나님의 군대들의 믿음의 순종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할례;하나님의 선민된 표 /*유월절;구속의 은총을 잊지 않기 위해 행하는 기념행사

-천상교회;땅을 분배하고 정착하게 되는 것은 안식하는 교회의 모형으로, (<안식>이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한 후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상의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를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에 전투적인 교회(지상), 안식하는 교회(천상)를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3. 여호수아서의 주제는 무엇이며 이것이 언제 성취되는지 개인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으로     말씀해 보십시오.

<선한 싸움을 싸운 후에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출애굽한 제1세대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씀을 청조치 아니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14;29-30) 이는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95;11), 그것을 <안식>으로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이로보건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에 대한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승리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예표에 불과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그 분만이 참되고, 항구적인 안식을 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장(24;1-14)은 <섬김>이 강조되어 있는데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요,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섬김입니다. 백성들은 (24;24)에 서약합니다. (24;25)에서 여호수아도 죽기 전에 언약을 갱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1;26)은 주님에 의해서 세우신 언약을 계속적으로 갱신시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역사적인 종말이 이르기까지 언약의 갱신은 중단됨 없이 계승시켜 나가야 합니다.

-개인적인면;애굽 에서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던 노예(이스라엘 자손)들이 안식을 갈구하였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한 고백대로, 육신의 수고를 그치게 될 때에 주어집니다(계14;13)

-역사적인면;“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21;43-45), 21장에 나오는 말씀의 풀이는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 맹세하신 온 땅을 다 주셨으므로 약속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둘째, 출애굽의 대장정의 목적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투적인 교회의 목표도 결국은 안식입니다. 그들은 기나긴 고난의 여정을 통과,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한 후 비로소 안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호수아에서,

(1;15);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22;4);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주셨으니.

(2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지 오랜후 에,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안식>은 여호수아서의 핵심적 단어일 뿐만 아니라 신. 구약 성경 전체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단어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히4;8은 여호수아는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안식은 오래가지 못했고, 여호수아뒤 사사기가 말해 줍니다. 히4;9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고 말씀합니다. 그 궁극적인 안식은 재창조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에야 주어질 것입니다.


8. 사 사 기


1. 사사기에 나타난 일곱 번의 악순환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사사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원론과도 같은 서론부분(1;1-3;6)과 서론에서 보여준 악순환이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는 사사기의 역사와(3;7-16장) 당시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두 개의 부록(17;21)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범죄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의 대적을 통해 징벌하십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구원자를 세워 구원해 주십니다. 그 땅에 평화가 옵니다.

-시간이 지나 망각 속에 빠집니다.

-여호와목전에 또 악을 행합니다.

-징벌하십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7번이나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2. 여호수아 이후 세대가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이유, 패역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화근이 될 것을 아시고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신7;2,16, 20;17). 그러나 서로 교제하며 통혼하고 결국 그들의 신을 섬기기에 이르렀습니다(3;5-6) 이는 하나님 백성이 세속화되었음을 의미 합니다. 1장에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34절에 보면 도리어 쫓겨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2;10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신앙교육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죽기전 당부하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4-7)...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했는데 이 분부를 등한히 여겼던 것입니다.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2;10)는 의미는 하나님을 안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지.정.의적으로 아는 전인격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4;6)에 탄식하면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아를 알자(6;3)고 말씀합니다. 결론적으로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14;2)오라고 호소합니다. 사사시대의 세대들은 이러한 앎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이유, 레위인이 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레위지파는 48성읍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중 6개의 도피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통해 레위인의 사명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오살자(오살자)에 대한배려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48성읍에 흩어져사는 레우인들의 영향권에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사사기 17장이하는 당시 어두운 시대상의 두편의 부록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레위인 들이 두사건에 모두 개입, 어두운 세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와 타락의 장본인으로 등장, 사사 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 와 제사장이었던 두 아들 홉니 와 비느하스가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하였는가를 보아서(삼상2;12;36)사사시대의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영적 상태를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3. 사사기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심 주제가 무엇입니까?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에 왕이 세우지기까지(약300여년간)의 기간에 사사들이 활동하던 기록입니다. 제1세대들은 출애굽을 감행하였으나 믿지 아니하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제2세대들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였으며 제3세대들은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사기의 중심점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언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3;9,15)하신 <구원자>에게 있습니다. 사사기는 <태평>한 시기에 대한 기록을 생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범죄 하여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워주셔서 구원하신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기록한 목적입니다.

사사시대는 구원자 곧 왕을 찾고 있던 시기입니다.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이 네 번 되풀이 되고있으며(2;25, 17;6, 18;1, 19;1), 마지막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가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고 끝맺고 있습니다. 9장에는 나무들이 왕을 세우는 우화가 나옵니다. 감람나무로 시작 모든나무 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하나 거절하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만이 왕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8;23)에 거절합니다. 구속사의 관점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이미 왕을 예선해 놓으셨음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9. 룻 기


1. 룻기서가 사사기와 사무엘상 사이에 끼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룻기서는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끼어 있어서 척추사이에 있는 연골과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므로 룻기의 해석이 잘못되면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척추와도 같은 구속사의 맥락이 이탈이 되어 마치 척추를 못 쓰는 사람처럼 되고 맙니다. 룻기는 왕이 없던 혼란한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한 왕(다윗)을 준비해 놓으셨음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2. 룻기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한 왕을 예선해 놓으셨는데 그분이 다윗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룻기의 주제입니다. 보아스 는 룻을 아내로 맞아 오벳 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끝나고 있는데 중심점이 다윗에게 있는 것 입니다.룻기의 주인공인 보아스 부터 시작치 않고 베레스(4;18)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4;12)라고 말씀하여 베레스가 유다의 아들임을 증거하고 다윗을 왕으로 예선해놓으신 것은 유다에게 한 예언의 성취임을 말씀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49;10에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 하리로다 하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다윗의 계보는 바로 이구속사의 선을 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왕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룻기는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2-33)한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위가 유다지파를 통해서 계승될 것을 말씀하면서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하였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기업무 를자>라는 말입니다. 룻기서 속에 12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잃게 되었을 때에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이를 대신 찾아 주는 제도로 채무로 인해 종으로 팔렸 을때 그 채무를 대신 갚아주고 그를 자유케 해 주는 일, 빚으로 인하여 분배받은 땅을 잃게 되었을 때 땅을 사서 돌려주는 일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계대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주는 일, 억울하게 죽었을 때에 대신 원수를 갚아주는 일 등입니다.


3. 기업무 를 자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기업무를 자 곧<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가까운 친척이어야 하고 둘째 자원하여야 하고 셋째, 고엘이 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보아스가 자청하여 기업무를 자의 권리를 이행해 줌으로써 그 계보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되고 보아스 와 룻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1-22)고 말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탄생하실 계보를 이어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업무를 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친족이 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으며 기쁘신 마음으로 자원하여 주셨으며 그 분만이 기업무를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4. 룻기서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업무를 자로 보내주셨고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속전>을 지불하셔서 죄에 팔린 우리를 해방시켜 빼앗겼던 기업을 찾아 주시고 우리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시는 우리의 기업무를 자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나오니는 룻에게(3.18)에 말하듯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아니하십니다.(사9;6-7) 룻기서의 배후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전편에 걸쳐 깔려 있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으러간 것이 “우연히 엘리 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가도록 인도하신일(2;3) 보아스 가 룻을 만나도록 해 주신일(2;4) 그 이전에 이삭줍는 제도를 마련해 주신일(fp23;22)은 자비를 룻은 입고 있는 것입니다. 룻은 이렇게 기원합니다.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 이니이다(3;9)


10. 사무엘상


1. 백성들 이 왕을 구한 것이 왜 죄가 되었습니까?

사무엘 상에서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소(8;5)하고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이요구를 기뻐하지 아니하였고 성경은 이요구가 죄악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12;17)

-첫째; 그들이.....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8;7)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신정체제였습니다. 패역한 백성들은 보이는 왕보다도 더 인격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인식하는데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왕국과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왕국의 목적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두번째; ‘우리에게도 왕을 세우달라’고 요구한 동기는 “저 열방과 같ㄴ이” 이것이 동기 였습니다. 열방의 왕들처럼 적들을 정복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며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그런 왕을 요구했습니다.(8;19-20).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구속사에 있어서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 왕국의 예표로서의 왕국을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셔서 다스리실 신정왕국은 메시야 왕국에 대한 명백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저들의 잘못은 천하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되는 구속사적인 신정왕국을 바란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게 해줄 세속왕국을 요구한 데 있습니다.


2.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점을 말씀해 보십시오.

사울- 백성이 구한왕, 사탄의도전

      하나님이 택하신 왕이 아니라 백성이 택한 왕이었습니다.(12;13, 8;18)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법궤는 기럇여아림 에 방치 상태에 있었습니다(7;2)

      하나님은 왕권이 유다지파라 하셨는데, 베냐민지파사람 이었습니다(9;1)

다윗- 신정왕국 하나님의나라

      하나님이 택하신 왕(11;1)

      다윗 즉위 후,  하나님의 궤를 옮겨옴.(대상13;3)

      하나님이 예표하신 유다지파사람.

     

3. 다윗과 골리앗의 기사 중에서 <한 사람>의 대표성에 대해서 깨달은 바를 나누어 봅시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기사도 동떨어진 사건이 아닌 구속사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져야만 마땅한 것입니다. 골리앗이 말하기를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17;8) 그래서 대표자끼리 1;1로 싸워서 승부를 가르자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할 때 대표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중요한 요점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상하게하고 발로 �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것과 발등상 만드실 것으로 인도해 줍니다. 로마서16;20에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모습과는 상관없이 작은자도 크게쓰시고, 큰자도 하나님앞 에서는 낮아지니, 또 한사람의 대표자로 인해 죄가 되기도 하고, 축복이 되기도 하고, 사탄이 하나님나라를 세움에 항상 방해의 대표자가 있다는 것이다. 믿는자 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모든일을 거역해서도 않되고, 하나님 예정하시는 모든일 들을 도울 수 있는 참 이스라엘인의 협력자가 되어야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의 축복을 간구하고, 작정하신 하나님나라 의 진정한 대표자는 예수그리스도 라는 것이다.


11. 사무엘하


1. 사무엘하 의 중심장과 주제는 무엇입니까?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신정왕국을 세우는 것이 중심점입니다.

사무엘하의 7장은 사무엘 상하를 통 털어 핵심장이 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었으며 이는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 부터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왔습니다.(6장)

하나님은 구별된 사람들에 의해 받들어 섬김 받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스리시고 만물들은 인간에 의해 관리 되기를 원하셨습니다.(8;6-7)(대상15;13)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정왕국의 원리였습니다. (7;5,11,12,15)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워 주시겠다는 말씀은 다윗의 가문에서 왕위를 폐하시지 않으시고 이어가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2. 사무엘하 는 어떻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까?

-신정왕국의 통치

-다윗의 악한 범죄로 인한 징벌


3. 다윗과 세우신 언약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워 주겠다.

아브라함-다윗-예수그리스도-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

-구원계획을 성취해 나가시기 위해 그를 징벌하실지언정 왕위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 된다는것


12. 열왕기상


1. 열왕기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통일왕국으로 출발하여 분열 왕국이 되고 종래는 패망하기까지의 여러왕 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위를 계승시켜 나가겠다> 이것이 열왕기서의 주제입니다.


2. 열왕기 상의 핵심장과 핵심단어는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그토록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시고 한 지파를 남겨주시고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겠다는 11장입니다.

11장에는 <한 지파>(유다지파)를 주시겠다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13,32,26)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1장; 통일왕국(성전건축)

-12-22장까지는 분열왕국(엘리야 선지자의 활동)


3. 역사서의 두 큰 줄기는 무엇입니까?

①죄악 세상을 비춰주시는 등불 되시는 메시야를 만나야 한다.

②그 빛 아래서 자신은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받을 것 밖에는 달리 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3. 열 왕 기 하


1.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교차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17장;분열왕국

-18-25장;잔존 왕국인 남쪽 유다의 역사로 결국 바멜론에 패망함.

중심점이 북쪽 이스라엘에 있지 아니한가 싶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먼저 언급한 후에 유다의 역사를 말씀하곤 합니다. 선자자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들이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약 하여 북쪽 이스라엘을 징치하시므로 남쪽유다가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뚜렷한 대조점은 무엇입니까?

남 유다가 19대에 이르도록 왕조가 바뀜이 없이 다윗의 왕위가 계승되어 내려온 반면,

북 이스라엘은 19대의 왕위가 아홉 번이나 왕조가 바뀌면서 반역과 피흘림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며, 그 혈통에서 메시야를 탄생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던 것입니다.


3. 언약하신 다윗의 왕위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습니까?

7대에 아달라라고 하는 영왕이 6년을 왕위에 있었는데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 간에 태어난 딸로, 여호람(요람)의 왕비가 되었던 자입니다. 그녀는 남편인 여호람왕과 아들 아하시야에게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을 숭배하게 하여 악을 행하게 하였습니다.(8;18) 아달랴가 아들인 아하시야 왕이 죽자<일어나 왕의 씨(친손자)를 진멸>(11;1)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의 딸인 여호세바가 어린 왕자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해 여호와의 전에 6년을 숨겨 양육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어린왕자를 구출해 낸 여호세바는 대제사장의 아내였던 것입니다.(대하22;11) 이는 구속의 역사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음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음모가 대제사장 내외에 의해 좌절되고 다윗의 왕위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계승되게 됩니다.


14. 역 대 기 상


1. 역대상의 세 가지 큰 주제는 무엇입니까?

족보, 다윗왕, 성전

①족보 ; 1-9장까지 아담으로부터 포로 시기까지 의 족보.

②다윗왕 ; 10장21;17까지는 다윗 왕의 통치.

③성전 ; 21;18-29장까지는 성전건축을 위한 다윗의 준비.


2. 세가지 주제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습니까?

①족보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하실 족보를 이어주고 있으며,

②다윗의 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승되고 있음.

③그분이 하나님의 참 성전을 건축하실 다윗의 자손임을 계시.


3. 세 가지 주제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①족보를 찾아 주어 자신들이 분명한 언약백성임을 확인시켜 주고,

②다윗 왕을 부각시킴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왕위의 정통성이 계승되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③성전을 강조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제도 자신들과 함께 하심을 확신 시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15. 역대기하


1. 역대하의 주제

<성전>이 중심 주제입니다. 제1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제2성전을 건축하라는 영으로 끝납니다. 1-9장까지는 솔로몬에 대한 기록인데, 그의 사명은 성전건축자로 등장합니다. 그의 다른 업적은 생략이 된채 성전 건축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2. 구약의 성전과 오늘의 예배당과의 차이점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임마누엘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명백한 예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예베당은 피로사신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십니다. 주님께서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을 때에 오순절날 다락방에 모인 120명 제자들에게 성령은 충만하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십니다(행17;24)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은 구속받은 성도들로 서로 연결하여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고 말씀합니다.


3. 제2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로 끝마치고 있는 의미

역사의 연속성과 하나님의 언약이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입증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2성전은 외모로 보기에 솔로몬의 선전과 비할 바가 못되는 초라한 것이었습2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크리라(학2;9)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참 성전 되시는 <임마누엘>로 인도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16. 에 스 라


1. 성전 중건과 개혁운동은 각각 누구에 의해 주도되었습니까?

성전 건축을 주도한 스룹바벨은 유다19대 왕 여호야긴(여고냐, 대상3;16-19)의 손자임을 역대상의족보는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지파이며 왕손입니다.

개혁운동은 약80년 후에 제2차로 귀국을 주도한 에스라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6장과 7장 사이에는 약80년의 공백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7;6)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십대손이라“(7;5)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에 의해 시행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대하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벌하시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6;13)하시겠다는 말씀대로였던것이고 거룩한 씨가 이땅의 그루터기니라(6;13)고 <거룩한 씨>를 남겨 두시기 위해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포로 귀환의 구속사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은 에스라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적인 메시지임을 명심하십시다.


17. 느 헤 미 아


1. 느헤미야서의 두 큰 주제는 무엇입니까?

-1-7장;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복원 역사이고

-8-13장;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 갱신과 부흥운동

느헤미야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내외적인 방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악전고투 끝에 52일 이라는 최단시일내에 성벽 복원을 완성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느헤미야는 증거합니다(2;8-18) 적들까지도“...이 앎이니라(느6;16)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 성벽 복원의 현대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명합니다. 내적으로 거룩과 성결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보다는 내적으로 부패시키는 누룩을 더욱 경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벽이 완성된후 에스라를 중심으로 전재한 회개 운동과 언약갱신은 육적인 재건에서 영적인 재건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들이 파기한 언약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①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고(13;15-22)

②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였고(13;10, 말3;8)

③이방 여인과 통혼하였고(13;23,말2;11)

④제사장 직분을 더럽힘으로(13;29, 말 1;6) 예배를 경멸히 여기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등이었습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는 성벽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18. 에 스 더


1. 아하수에로 왕 때에 유대와 바사에서 각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중건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 역사가 있었고 바사에서는 유대인들을 진멸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스7;9) 예루살렘에서는 스룹바벨을 도구로 삼으시사 성전을 중건케 하셨고 바사 나라에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2. 모르드개와 하만의 대결을 구속사의 맥락에서 설명.

하만은 사탄의 대리자로 이를 대항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려는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인의 대적 하만(3;10,8;1,9;24) 유대인의 모르드개, 하만의 신분 <아각 사람 하만>, 아각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임의로 살려준 아말렉의 왕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음은 출애굽시 하나님 백성들의 진군을 저지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손을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출17;11)고 말씀합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싸움은 이싸움의 연장선으로 모르드개(베냐민지파)에 의해 진멸이 됩니다. 반일 하만에 의해 바사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이 진멸을 당했다면 에스라 느혜미야를 통한 2차, 3차의 귀환도 불가능 했을 것이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도 무사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큰 위기에 직면하였을 것입니다.


3. 에스더서와 나자신과는 어떠한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게하심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변함없는 진리는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에 대한 전망입니다. 에스더를 들어서 유대인을 보호하여 주신 것은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4;22) 하신대로 메시야 탄생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으며 메시야를 통해 형제와 나를 구원하시려는 섭리였음을 깨닫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려는 것이 에스더서와 나와의 관계성입니다.


19. 욥  기

1. 욥이 당한 시험의 의미

하나님을 대적 하는자 앞에서 욥이 조건부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고, 또 그것을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송사하던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2. 욥기의 핵심 단어

순전입니다. 성경은  욥을 <순전>한 사람이라고 소개 합니다(1;1) 하나님은 욥을 <순전한 사람>이라고 사탄에게 자랑을 하십니다(1;8) 2장에서도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2;3)고 칭찬하십니다. 욥의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고 비난하나 욥은 불같은 시험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던 것입니다.


3. 욥기를 통해서 깨달은 것

어려운 시험과 고통이 따를 때, 인간은 하나님이 원망스럽게 될 때가 많다. 그러나 욥의 성경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치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값없는 사랑을 주셨듯이 인간은 강건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순전한 믿음을 지켜, 믿음에 승리하여 대적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20. 시  편

1. 시편1편이 어떻게 시편 전체를 요약해 주고 있나?

1편을 진리의 빛 아래서 잘 관찰하여야만 합니다. 1편은 두종류의 사람을 대조해서 보여 줍니다. 의인의 진영과 죄인의 진영으로 대조됩니다. 1절은 “복 이싸는 사람은” 이렇게 말씀하고 4절에서“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결국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기로 하고 두 길을 대조하므로 결론을 맺습니다.


2. 시편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까?

시편 중심인물은 다윗 왕입니다. 다윗왕은 다윗의 위에 오르실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음을 의미 합니다. 이점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말이 이것이다(눅24;44) 하신 말씀을 통해서 도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3. 시편 150편의 찬양은 하나님의 어떤“능하신 행동을 인한”찬양입니까?

150편은 전체의 송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 할 찌어다” 하고 하나님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 찌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 할 찌어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일 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21. 잠  언

1. 잠언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 느니라”(28;28)


2. 잠언서를 기록한 두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1-9장; 원리와도 같은 말씀이고

-10-31장; 원리에 입각한 다방면에 걸친 적용, 즉 훈계의 말씀입니다.

잠언은 <길거리와 광장과 성문 어귀에서>(1;20) 후몰아치는 세파와 유혹에 직면해 있는 광경입니다. 악한 자 곧 사탄의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에도 <의인의길>과 <악인의 길>이 있으며, <생명의 길>과<사망의 길>이 있으며, <의인의 집>과 <악인의 집>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이 진리는 에덴 에서부터 시작 세상 종말까지 이릅니다. 계시록 19장에 보면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고 음녀가 심판 받는 날이 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지혜와 훈계에 관해서 느낀 점을 나누어 봅시다.

하나님 말씀에서 지혜를 와 훈계를 얻어, 악인의 길에서 의인의 길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의로운 자가 되어 지혜와 훈계로 믿음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로 세상 사탄의 유혹에 잘 빠지는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지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것이다.


22. 전도서

1. 지혜와 권세와 영화를 다 누려 본 전도자의 충고는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그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는 허무함을 말해 줍니다.


2. <해 아래>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육에 속한 자의 삶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죄 아래>(롬3;9)사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허무로 끝남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 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신앙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하나님 신앙의 역설적인 표현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3. 전도서의 작은 결론들을 말씀해 보십시오

-작은 결론은 3;;14에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달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노라”고 말씀합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회> 할지니라(5;7)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회하지 아니함이니라(8;13)고 반대의 경우도 말해 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뭄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2;1)고 권면합니다.


4. 전도서를 기록한 목적 즉 총 결론은 무엇입니까?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  도다 모든 것이 헛  도다”(12;8)고 지금까지의 진술을 요약해 주면서“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 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  니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 이란 말은 인생이란 ‘헛되고 헛된 허무한 것도 아니요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없이 던져진 숙명적인 존재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목적  신 바 본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 느니라”고 전도서 3;11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합니다.

전도서는 어찌  면 영원의 문을 여는 열쇠를 찾아 고뇌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만이 ‘내가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 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10;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16;19)하십니다. 심판이 있으리니(히9;27)하십니다. 결국은 각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대해서 평가 받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다 경험해 본 한 전도자의 뼈아픈 충고를 통해서 읽는 이와 듣는 자로 하여금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또다른 구원 초청인 것입니다.


23. 아 가


1. 솔로몬과 술람미 여자와의 관계는 누구의 모형입니까?

예수그리스도와 이스라엘백성

솔로몬이란 이름은 ‘샬롬’ 즉 ‘평강’이란 뜻인데,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그이름을 <여디디야>(삼하12;25)라 하셨는데 이는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하신 말씀과 상통합니다. 아가서는 이처럼 고귀한 왕과 얼굴이 햇볕에 검게 탄 시골처녀 술람미 여자(6;13)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백성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묘사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구속사의 맥락에서 아가서는 해석되어져야만 합니다.


2. 비밀 중에도 큰 비밀이 무엇입니까?

구속의 은총에 있어서 극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진리를 가리켜“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와 합하여 그둘이 한 몸을 이룸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고 말씀합니다. 이 신비는 기독교의 극치입니다. 아가서는 바로 이신비의 극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히브리 이름은 ‘쉬르하쉬림’으로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3.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아가서는 영적 교제와 교통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4절에서는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합니다. 이는 밀실 즉 지성소에서의 영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아가서의 핵심적인 구절은 2;16과 6;3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니라”고 하신 부부일체를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주님은 이연합의 관계를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요15;4)고 말씀하십니다. 신부인 우리들은 신ㄹ항을 만날 날까지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기를 사모하고 힘써야만 하기 때문에 이 당부는 신랑(주님)이 신부(우리)에 하는 말로 봄이 타당합니다.구약개론(하권)


선지서 서론

성경을 기록한 문서 선지자들은 모두 16명입니다.  포로이전 식(11명)과포로시기(에스겔,다니엘), 그리고 포로 이후 시기(학개,스가랴,말라기)의 세부류로 나누어지며 그들이 활동한 기간은 불과 4백여년 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후하여 선지자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셨으며, 이들의 메시지를 기록케 하셔서 후대에 전해 주셨음을 유의하여야만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전후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만을 후대에 전해 주신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구속사에 있어서 이 시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한 경고가 최후 심판에 대한 경고를 포함한 계시의 복합성 또는 이중성에 있습니다. 예언서를 상고할 때에 유의하여야 할 점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건이 겹쳐져 있기도 하며, 첫번 성전 파괴(느부갓네살)와 두번째 성전 파괴(로마의 티도)와 최후의 환난이 겹쳐 있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한결같이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심판에 대한 경과와 심판 후에 있을 남은 자에 대한 위로와 소망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기록케 하신 목적은 당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후 세대에 세움받을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이 말씀을 그 입에 담아 선포케 하심으로 첫번 선지자에게 임한 말씀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각 시대에 외쳐지기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성은"내 빅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렘8:11)하고 거짓 평안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미혹하게 하리라(마24:11) 심상히 여기면서 회중들이 좋아할 거짓 평안만을 말하고 있는 그가 바로 거짓 선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참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어 보십시요."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신 주님의 설교는 어떠합니까?  화 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33.34)  주님의 설교에서 몇 가지 요점을 붙낮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말씀의 표적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둘째. 주님의 설교(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만으로는 그들이 천하에 못된 약종들로 여겨지지만 서리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다시로는 가장 존경받는 계층이었으며, 백성들은 감히 올려다 볼 수도 없는 그렇게 경견한 삶을 사도라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주님께서는"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을 보내매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채짹질하고 구박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어느 시대나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두 흐름은 있어 왔습니다(눅11:50.51)  우리가 선지서를 상고 할 때에 명심해야 할 점은 먼저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진 이 시대상을 살피고 그드러이 이 시대에 세움 받은 선지자라면 무엇이라 외쳤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라고 되묻는 마음으로 관찰해 나가십시다.


이 사 야

이사야서의 핵심 장을 말할 때에 53장을 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사야서에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장이 있음을 관과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은 6장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53장에 나오는 어린 양의 속죄사역이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복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이 복음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의해 계획하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그 주체가 하나님이시랄는 사실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1:1) 이사야가 본 "높이 들린 보좌"가 중심에 와야 하고 그의 백성되고 자녀된 자들이 이를 기억하고 바라보아야만 한다는것은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요점인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어지고 있는데 1:39장까지는 심판에 대한 경고요, 40-66장까지는 은혜에 관한 위로입니다. 전반부의 심판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공의의 발로요, 후반부의 은혜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사랑의 발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1장은 이스라엘에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들의 반역과,반역에 따른 심판고, 심판후의 남은 자에 대한 회복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 후에 남은 자에 대한 위로와 소망에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은 그들의 반역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중단됨이 없이 남은 자를 통하여 성휘되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성경에 계시된 구속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를 탄생시키시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양육해 오셨던 것입니다(55:3)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1:4)" 하고 그들의 배역과 범죄를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은 북쪽 이스라엘은 돌이키기에는 이미 때가 늣어서 앗수르에 패망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왕상17:18)고 말씀합니다.  유다 왕국의 잘래를 바라보면서 경성과 회개를 촉구하며 나가 다가오는 심판을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들의 상처가 치유받을 수 있는 길이 53장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53:6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으셔야할 심판의 진노를 자기 아들에게 담당시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6:13) 심판 중에도 남은 자가 있을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들의 반역과, 반역에 따른 심판과, 심판 후의 남은 자에 대한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이는 이사야서 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하고 말씀합니다.  이사야서는 보이지 않는 왕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그가 수난의 종으로 배척을 당할 것을 아울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날아오는 돌들을 바라보며 순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고 보좌와 어린 양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높이 들린 보좌와 일찍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십시다.


예 레 미 야

예레미야는 참으로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불타는 것과 유다의 멸망을 목격하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본 이상은 살구나무 가지와 끊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광경이었습니다."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4:19)고 말합니다. 1:10에서 예레미야의 사명을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임무는 파괴적인 면과 건설적인 두 면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파괴적인 면이 4대 2로 강조적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두드러진 주제는 심판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함을 보면서도 경성하거나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3:8)고 말씀합니다  패역한 예루살렘을 훼파하시고 그들을 연단하신 후에 남은 자를 통해 다시 건설하시며, 회복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룻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룻을 만들더라"(18:3-4)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손에 있느니라"(18:6)고 말씀합니다. 남은자로 하여금  다시 건설하시며, 회복케하신다는 것이 예레미야서의 메시지입니다.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9:7)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나라 하며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23:17)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6:13)  축복하는 설교를 해야 성도들이 좋아한다는 등의 시류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허나 예루살렘성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지만 여호와 께서는 바발론에서 70년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하리라고 소망의 말씀을 주고있습니다.핵심장31장에 이스라엘집과 유다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31:31)고 말씀하십니다. 옛 언약인 행위언약이 아니라 거져 주시는 바 은혜언약 곧 새언약을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새언약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이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 하신 말씀 안에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은혜언약이었음을 알게 될 때에 무엇이라 말할 바를 찾지 못하게 합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에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고 보존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원복음으로 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과 다윗 언약, 새 언약등을 일직선상에 있는 동일한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성취해 나가시는 은혜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아서에서는 또한 다윗언약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하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담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2-3)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주어진  말씀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보다 더 크고 비밀한일은 달리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영원 불변한 새 언약이 있지 않습니까? 먹장 구름이 내 마음를 덮을 때에, 가정을, 사업장을 덕을 때에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새 언약의 무지개를 바라 보십시다.


예 레 미 야 애 가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이 비참하게 파괴되고 불타 버린 직후에 예러미야 선지자가 지은 5편의 슬픈 노래입니다. "아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역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니 자가 되었도다(1:1)로 시작 됩니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1:16)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썽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그 몸이 헐려야 되심(죽으심)은 우리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기 때문이었다. 진노와 노를 합하면 15회나 나옵니다.  진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3:2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진노(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에 성막이나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이였듯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 장막에 쏟으시고(2:4) 성막을 헐어 버리심은(2:6) 성전으로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실 자기 아들에게 쏟으실 진노에 대한 예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사건들이 신약에서 성취될 그림자였듯이 성전이 훼파됨도, 그들이 포로에서 귀한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표였다는 말씀입니다. 3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3:1)고 1인칭 단수로 시작하는 3장은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3:8)라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주님의 기도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러나 "내가 주께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3:57)하고 부활의 소망을 말해 줍니다.  핵심은 3:19-33에 있습니다. 낙심 중에도"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3:21)하고 소망을 말합니다.  열조들에게 세워 주신 언약을 상기했을 것이며 새 언약에 관한 말씀등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애가서가 단순한 애가에 그친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으머, 그것이 성경에 포함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다림의 소망은 구약의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에 스 겔


에스겔은 느부갓네살의 2차 예루살렘 침공시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 온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33:20절 입니다.  전반부는 심판에 관한 경고요 후반부는 회복에 관하 약속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보다도 훨씬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면서도 예레미아와는 달리 그의 메시지에는 눈물이나 애통해함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을 때에도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24:16)라는 권면을 받기까지 합니다.  신분이 제사장이었던 점(1:3)과 에스겔서에서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뢰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신분임으로 자세를 흩트려 뜨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불경스러운 일이 되고 나아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는 불신앙의 행위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셩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역사도 자연도 모두가 하나님 계시입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목격케하심으로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자기 계시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실패란 없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지 12년 10월 5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33:21) 에스겔은 그 후부터는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대포적인 것이 37장에 있는 마른 뼈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아주 말라버린 심히 많은 뼈를 보이시면서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물으십니다.  이 계시는 3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뼈 들은 이스라엘 온 존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릴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37:11-12)고 그들이 포수로부터 귀한하게 될겻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37:14)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심령들이 거듭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셋째로, 이 계시는 궁극적으로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였을 때에 일어날 부활 사건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에스겔서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말씀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를 요약하면 전반부는 성이 파괴되며, 여호와의영광이 떠나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지 아니하리라 이고, 후반부는 새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이 되며, 여호와의 영광이 돌아오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니라 입니다.  포로 중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면서 징벌의 기간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 니 엘

유다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의 노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1차 침공하여 성전 기물과 귀족들을 사로잡아 갔는데 그 중에 다니엑과 세 친구가 끼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다어시 세계의 맹주국이었던 바벨론 왕궁에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사신이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이 그 빛을 비워 줍니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22)"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21)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 상에 기록된 하나님의 궤(법궤)를 불레셋 군대에서 빼앗긴 사건도(5장) 법궤가 이르는 곳마다 블레셋의 우상들은 굴복을 하고 독종이 발하여 결국 그들 손으로 정중히 돌려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방에서 더럽힌 자신의 이름을 아끼셨습니다. 3장에 나오는 금으로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다가 7배나 뜨겁게 한 풀무에 던짐받은 사건과 6장에서 다니엘이 왕의 조서를 무시하고 하루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짐받는 사건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6장에서도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려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 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특별계시는 이방신들에 비해 하나님의 우월하심과 진지전능하심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바벨론의 신들을 허무하게 만드시고 자신의 거룩하신 명예를 아끼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다니엘서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명칭에서도 증명이 도고 있습니다. 아도나이와 엘로힘 이라 부르고 있는데, 아도나이는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를 뜻하며 엘로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미 합니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6장은 주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7-12장까지의 어섯 장은 주로 예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장래 하실 일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꿈을 꾸게 하시고 파송한 사신 다니엘로 하여금 해몽케 하시므로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6-47)고 고백하게 만듭니다. 다니엘 7장에서 본 이상 중의 네 짐승은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신상의 네 부분과 동일한 진리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요점은 바벨론을 신상의 황금 머리와 짐승 중의 왕자인 사자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바벨론의 우위를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바벨론에 의해 신정 왕국인 유다가 패망하게 되니 이것은 "이방인의 때" 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 때 바벨론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방인의 때가 종말을 고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바벨론은 이방인의 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의 핵심장은 9장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레가 니날 것이요....(9:2)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서는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12:13)고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말로 마침니다.


호 세 아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세우신 선지자입니다.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1-3장까지에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정부를 따라간 음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와의 사랑의 관계에 비유하면서 중에 가장 무겁고 무서운 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 고멜과 결혼하여 세자녀를 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붙여 주신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라는 이름을 영적 간음을 행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란 의미이며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바로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3장에 보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또 꾐에 빠져 가출한 것을 보게 되고 그녀가 정부에게도 버림을 받아 얼마 안되는 돈에 팔려 간 비참한 창부의 신세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매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렘3:14) 하시면서 그를 다시 받아 주실 것을 말씀하심니다.  1:2에서는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가 되는 이유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그러했듯이 호세아 선지자도 심판과 함께 소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0은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그들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은 중단됨이 없이 성취해 나가실 것을 말씀합니다.

이 언약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인데 메시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백성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을 것과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는 말씀은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1:18)라고 했습니다.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즉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는 것입니다.

요   엘

요엘서의 핵심적인 단어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1:15,2:1,2:11,2:31,3:14등 짧은 요엘서에 모두 다섯번 나옵니다. 요엘이 증거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이란 어느날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요엘 당시에 극심한 메뚜기의 재난과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휩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계시는 선지자 요엘에게 임하였습니다.  "오호라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라고(1:15)외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메뚜기의 재앙을 통해서 견책하시며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궁극적으로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은 메뚜기의 재난도 바벨론 군대의 침락도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인 계시는 메뚜기와 근대의 심판 너머로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날을 삼중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분명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한 날만이 여호와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말씁입니다.  메뚜기의 재난이 전국을 휘쓸던 날도 여호와의 날 이었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불사르던 날도 분명 여호와의 날이었습니다.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진대 매일매일 모든 일들이 여호와의 날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매일 매일이 여호와의 날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큰일(2:21)을 준비해 놓으시고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엘은 그때가 언제인지 몰라 그후에로 표현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성령강림이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성취임을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후에를 말세에 라고 고쳐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그리그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면 그 때부터가 말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세라 부르고 있는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은혜의 기간이 끝나는 날 그날이 임할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로고 전파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들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날에 구원을 얻도록 인도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아 모 스

아모스는 주로 복쪽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정치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 속에 영적으로는 타락하여 사치와 안일과 지기만족에 빠져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은 오늘의 시대상과 너무나 흡사하여 어느 선지서보다도 이 새대에 적용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이런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겁 모르는 선지자 아모스를 들어서 사회를 고발하며 지배계급을 책망하게 하셨습니다.  아모스는 드고아 지방의 목자가 불과하였습니다.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다(7:14-15)고 말합니다. 그는 세례요한 같이 들 사람이며 투박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경고한 대상자들은 블의한 재판관(2:6), 부자(2:7) 권세자(4:1), 사치계급(6:1), 거짓 제사장(7:10)등 주로 그 시대의 지배 계급이었습니다.  아모스는 먼저 이스라엘을 둘러 싼 주변국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지적된 죄의 목록들 호전적이요 포악한 그들을 향하여 심히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과 유다에 불을 보내어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약 200년 후에 임할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말씀하십니다. 자기 백성의 죄악도 결코 묵과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해 줍니다. 그들은 깨닫는데 실패하고 우연한 자연의 재닌으로 간주해 버렸던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다섯 가지 환상중에는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 계신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시행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심판으로 끈나고 있지 아니합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너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9:11,14)하고 그들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분명히 다윗과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7:12) 하신 메시야 왕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15)고 아모스서는 끝맺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오 바 댜

오바댜서는 전체가 21절밖에 안되는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글 입니다.  진리의 농도는 높습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1차적인 내용은 에서의 후예인 에돔 족속에 대한 심판입니다.  오바댜서는 세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9까지는 에돔에게 행하실 심판입니다 10-14까지는 에돔이 심판 받게 된 이유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에돔과 이스라엘간의 적대감은 멀리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리브가의 태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데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굼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가인과아벨, 에서와야곱 이두 줄기는 결국 두 사람의 만남으로 귀결이 되고 맙니다.  야곱의 계보에서는 예수가 에서의 계보에서는 헤롯이 탄생하게 되었고 두 사이의 적대감은 누가 진짜 이스라엘의 왕이냐 왕위를 놓고 대결하게 이르렀던 것입니다.  에돕 족속은 영과는 상관없이 육에 속한 자요 야곱은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결국육에 속한 자는 물질 세계에 뿌리박은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가고(빌3:19)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미워하며 대적합니다.  성경은 어느 시대나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갈4:29)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시온산에 오른 자들은 구원으로, 에서의 산에 오른 자들은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바댜서는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장엄한 송영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바댜서의 결론이요 셩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후에 부른 모세의 노래도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출15:18)고 끝맺고 있습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영광스러운 복음의 교리를 끝마치면서 "이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하고 송영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요  나

유년 주일학교 어린이들이라 할지라도 요나를 모르는 사람이 엾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나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알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열왕기하 14:25에 의하면 요나는 여로보암2세 치하 때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나서의 중심적인 내용은 마음이 완악하고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 이방인의 성 니느웨를 보라. 저 이방인들은 요나의 경고를 득고 회개하고 구원되었다.  이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용서해 주실 것이로되 그렇지 아니하면 멸망 받고야 말 것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니느웨의 구원 얻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로 (시기 네게)롬:11:11 하여 저들로 구원 얻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 였습니다.  니느웨 성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였던 것입니다. 심판 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기록하여 문서로 남긴 선지자들이 16명이나 등장합니다.  한결같이 회개와 심판을 경고한 하나님의 대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목적달성을 이룩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실패자들이였습니다.  심판을 면한 자가 없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으로 해석해 주고 계십니다.  니느웨를 표적으로 삼아 오고 오는 세대에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3)는 목음전파인 것입니다.  2장은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회개하는 요나의 기도는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는 성경의 대주제로 마치고 있습니다.  요나서의 주제는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구원 초청이라고 말씀드릴수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보다도 이스라엘을 더 아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따의 모든 족속중에 너희만 알았나니(3:2)하십니다.  요나서는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 증거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니느웨 즉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기뻐하십니다.  요나도 회개했고 니느웨도 회개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니느웨의 표적을 보고도 홰개하지 않다가 멸망 받았습니다.


미 가

미가서 1:1과 이사야서 1:1을 대조해 보면 미가와 이사야 선지자는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곱의 두령들과 ....치리자들아 들으라"(3:1)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들의 죄악상이 사실적이고도 원색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미가 선지자의 강직함이 엿보입니다.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1:1)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선지자들을 고발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평강과 축복을 말하지만 주는 것이 없는 자에게는 공갈 협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거짓 평강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포도주와 독주"(2:11)를 마시우게 하듯이 백성들의 신앙을 혼돈케 하고 마비시키는 역활을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유형의 선지자들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를 향해"너희는 예언하지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니 욕하는 말을 그치라"(2:6)고 득기 싫어했습니다.  미가는 그들을 향해 이 땅을 더럽히지 말고 떠나라고 명합니다. 제사장의 죄를 고발합니다.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3:11)합니다.  여호와를 시중드는 봉사직이 아니라 직업적인 삯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력을 상실한 형식적인 종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미가서 6:8)은 미가서의 핵심 귀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나" 이 말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를 진단하는 원리가 됩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한다면 그 사회와 교회는 병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종교적 지도자입니다.  선지자들은 도덕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세우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로서 창차 오실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의 모형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세우신 목적은 메시야 왕국의 예표가  되는 공의를 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적인 사명을 한 몸에 지니신 참된 통치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가와 함께 활동했던 이사야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릴에게 주신바 되었는데"(9:6)하고 그 분이 한 아기로 태어나실 것을 보았습니다. 미가서에도 남은 자의 교리가 현저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회복과 궁극적인 속량은 미가서 끝 부분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험에서 나신 이에게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시키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이를 성취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는 근거로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보증하여 주신 언약을 상기시킵니다(창22:18)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20) 이 신앙의 메아리가 누가복음1장에서 메시야를 잉태한 마리아가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55)하고 화담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이 경이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는 목적입니다.


나 훔

나훔서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훔서의 경고는 1`차적으로는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1:1)로 되어 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투기는 사랑의 마로입니다.  그러므로 보복은 사랑을 배반한 죄에 대한 보응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하나님은 우리 죄를 그냥 사해주신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에 대한 진노를 그 아들에게 대신 쏟드시고야 용납하여 주심이 가능하셨던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서 알아야됩니다.  나훔서1:5와6에 나오는" 그의 앞에서"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존전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1:15) 거부한다면 당신 자신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십시요 "진노의 큰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6:17)하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훔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하는 불변의 진리는 행악하는 자가 한  때 창성하는 듯하나 종국에는 심판으로 갚으시고 경건한 작가 한 때 고난을 당하는 듯하나 결국은 영광과 위로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중한 경고"의 책인 나훔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중은 심판이 주가 아니라 구원이 주가 되심을 명심한다는 것은 중요한 요점입니다.


하 박 국

하박국에서는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답변하시는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 말기로 추측이 됩니다.

요시야 왕 때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거기 기록된 말씀을 듣자 옷을 찢고 개혁운동을 전개하던 것도 잠시일 뿐 종말론적인 상황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습니다.

 하박국서의 요절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신약성경에 세번 인용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의미의 중요성을 짐작케 합니다. 이 말씀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하신 "교만한 사람"과 "그하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 역사는 두 부류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습니다. 바벨론은 뱀의 후손을 유다는 여자의 후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박국-바울-루터-나-세상종말에 이르기까지 이말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될 구속사에 있어서 위대한 획을 긋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3장은 부르짖음이 찬양으로 의혹이 확신으로 하박국선지자의 기도를 볼수있다. 말씀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마지막으로17절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여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찬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의 삶입니다.


스 바 냐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1:18) "여호와의 기쁨의 날(3:14)에 관한 말씀입니다.  분노의 날이 지나간 후에 기쁨의 날은 올 것이며 분노가 크면 클수록 그 후에 임할 기쁨도 더욱 클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예레미아 선지자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습니다(1:1) 렘(1:2)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하신대로 예루살렘의 심판을 앞두고 선지자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셨으나 백성들은 찌끼같이 가라앉고 지도자들은 부패하여 끝내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부어짐은 당연할 수 �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교만과 찌꺼기에 대한 형벌을 제하고 난 후에 남은자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고 말씀함은 부조화가 아니라 금을 연단한 후에 더욱 빛나듯 아름다운 조화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앗수르와 바벨론도 망함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날은 부분적으로 임하는 것이아니라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임할 종말적인 날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쁨의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수로부터 귀한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말4:2)띌 기쁨의 날은 모든 성도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학 개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를 세시기 즉 포로 이전과 포로기와 포로 이후 시기로 니눌 수 있습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이후에 활동한 선지자들입니다.  포로 이후 시기란 곧 회복기를 의미 합니다.  학개서의 내용은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는 말씀입니다.  성전의 의미는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신 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말씀합니다(출25:8)"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출25:22) 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찾아 오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며, 성전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는 장소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회복기에 처한 성도들은 성전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는 임마누엘 곧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을 잊어 가고 있었습니다.  책망 하신 대로 그들은 세속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개서의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학개서에서 하나님의 칭호는 "만군의 여호와"로 계시도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말씀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13회)로 되어 있습니다.  

학개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1:8)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라는 격려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학개서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전이 건축된 이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개서를 통해서 주시는 오늘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된 것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임재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5)는 말씀입니다.


스 가 랴

스가랴서는 이사야서와 함께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은 메시아의 예언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에는 선지자의 당대인 회복기와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걸쳐 3중적인 계시가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 선지자 보다 두달 뒤에 활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스가랴서에는 1-6장까지에 8가지 환상이 전개됩니다.  그 내용은 궁극적으로 메시야 왕국에 대한 환상입니다.  3장은 네번째 환상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앞에 산자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것이러.....(23:5,33:15)하십니다.  그 메시야를 통하여 "이 땅의 되악을 하루에 제하리라"(3:9)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표현은 이사야서에서도 발견됩니다"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4:6)합니다. 

3장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관한 말씀이고, 4장은 총독 스룹바벨에 관한  말씀인데 우리는 이 두 직분과 관련된 말씀을 주목해 보아야만 합니다.  죄과를 제하여 버리는 구속 사역을 다스리는 직분, 정복하는 권세 ,대제사장과 총독 즉 왕직은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적 사명을 예표해 준는 직분입니다.  스가랴서의 핵심 장은 14장입니다.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14:4)합니다.  이 광경은 주님의 승천하실 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행1:12)하고 말씀해 줍니다. 

스가랴서의 핵심 단어는 14장9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하십니다.  그에게 면류관을 띄워 드림으로(^6:11) 그가 메시야 왕국의 왕위에 오르시는 대관식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스가랴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호칭에서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열 네장 속에 53회나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왕중 왕이시요 천하에 홀로 하나이신 왕이시요 곧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말 라 기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구약의 결론이며, 동시에 신약과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말라기서는 느헤미야서가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지막 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방 여인과 결혼문제와, 십일조에 헌물에 관한 문제가 말라기서에서도 그대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서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의 예배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되고, 많이만 드리면 기뻐하시며, 그 사람은 신앙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구약의 예배에 있어서도 신약 시대나 다름이 없이 첫째가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율법의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역시 사랑 외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될 수 없음을 말라기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라기서의 마지막 말씀이자 구약 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케게 하리라 들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4:6)하신 말씀 이 말씀은 다름 아닌 영적으로 구약 시대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저주"이고 신약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은혜"(계22:21)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추진되어 내려왔는가 그 맥락을 살펴보았습니다.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롬3:4) 구약 성경 파노라마의 막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말라기서가 신약 성경과 연결시켜 주고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면 이제 신약 성경 파노라마가 어떻게 펼져질지 기대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