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신앙의 인물

박관준

미션(cmc) 2009. 10. 19. 07:21

이 름 박관준
성 별 :  남
출신지역 :  영변
생년월일 :  1875년 4월 13일
입학년도 졸업년도 출신학교 및 전공
학력 비고
박관준은 1875년 4월 13일 평북 영변에서 토호 박치환의 4념 2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원체 많은 돈을 가진 부호의 아들인 박관준은 어릴적 방탕하여 한때는 병까지 얻게 되었다. 이 병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 감정을 갖게된 그는 나름대로 심령의 안식을 얻기 위해 구도를 했다. 불교는 물론 侍天敎에서 3년을 수도생활까지 했으나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던 중 1905년 30세 되던 해에 묵상에 잠겨 있다가 "십자가 종교에 들어가라 ."는 영음을 듣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이고 예수를 위해 사는 길이라고 믿고 의학을 해서 십자의원을 개원해서 환자들에게 전도하기에 힘썼다. 그러다 보니 치료비를 받는 경우보다 투입하는 약값이 더 많았다.

십자원을 개원한 후 교회를 개원해 장로가 된 후에는 평양으로 이주해 병원을 개원했다.

1935년 그는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 "나를 위해 피를 흘리자가 누구냐?" 는 부름에 "제가 흘리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나의 십자 군병이 되거라"라는 계시였다.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모인 장로교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되자 박장로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미나미총독을 면회하여 결판을 내려고 평양에서 13회나 서울총독부에 올라왔으나 면회를 못하고 그러는 가운데 "모든 종교는 일본제국의 승인 하에 신봉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단체법을 상정 통과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보성여학교 교사직을 사임한 안이숙과 일본에 건너가 일본신학교에 재학중인 25세 박영창과 함께 전조선총독 우까끼, 문부대신 아라끼.척무장관 야다를 찾아보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1939년 3월 22일 세 사람은 방청권을 구입하여 제74회 일본제국의회(일본제국중의원-국회의사당) 방청석에 들어가 국회가 사무절차를 밟아 종교법안이 상정될 때 야스후지 의원이 단상에 오르는 순간 박관준장로는 번개처럼 뛰어나가며 손안에 든 대 봉투를 아래층 의사당 안으로 내 던지며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자다"소리를 질렀다.

의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박장로는 즉석에서 체포되고 경시청에 32일 구금되어 있는 동안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가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다.

한국으로 송치된 그는 1941년 봄 천황에 대한 반역자로 투옥되었고 옥중에서도 신사참배를 반대했음은 물론 1945년 1월 1일부터 70일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금식기도 70일째 되는 3월 10일 내일은 밖으로 나가 3일간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 앞으로 오라" 하는 소리를 들었고 1945년 3월 11일 병보석으로 나와 평양기독병원에 입원했다.

박장로는 병원에서도 문병자들에게 전도하고 "신사참배는 안됩니다 ---열심히 예수를 믿읍시다"라고 하다가 3일 후인 3월 13일 오전 10시 가족이 모인 앞에서 이사야 11:10-16절을 유언을 하고 순교했다.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평양교회의 공동묘지인 돌박산에 순교자 주기철 최봉석 목사가 묻혀있는 그 옆자리에 안장되었다.

그 후예로는 박영창목사가 되를 이었다.

제국의회에 보내는 박장로의 경고문은 다섯 조목이다.(순교신서 3권 제1집 175쪽에 있음)

출처: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신학연수과 > 신앙의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리캅의 순교사화  (0) 2009.10.25
윤함애  (0) 2009.10.19
츠빙글리  (0) 2009.10.19
블레이즈 파스칼   (0) 2009.10.19
요한 웨슬레  (0) 200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