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가 북한에 납북되었습니다. 당시 천왕호 선원 33명이 납북되었는데 그 중 한명인 고명섭씨가 유일하게 2005년 중국을 거쳐 귀환했고 이번에 사무장이었던 최욱일(67)씨가 지난달 성탄절날인 25일 중국으로 탈출해 31일에 한국에서 찾아온 부인 양영자(66)씨와 31년만에 해후했습니다.
이번에 최욱일 씨의 탈출은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긴박감이 넘치는 탈출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 최욱일씨의 집에 낯선 남녀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1998년 중국을 통해 남한의 가족들에게 살아있다는 편지를 보낸 뒤 2001년부터 여덟 번째 찾아오는 낯선 이들이었습니다. 납북된 이래 30여년 동안 한시도 잊지 않은 고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엔 날카로운 감시와 경계의 눈초리가 항상 도사리고 있어 그냥 돌려보내거나 보위부 등에 자진 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최씨의 꿈에는 부쩍 자주 아내 양정자씨가 보였습니다. 결국 최씨는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행을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12월 22일 최씨는 안내인들을 따라 김책시를 출발, 회산행 화물차에 올랐습니다. 덮개도 없는 화물차 짐칸에는 쌀부대, 돼지 잡은 것 등 온갖 잡동사니 화물과 그 위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오금을 펼 수도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았지만 12월 험준한 백두산 기슭에서 불어오는 북풍(北風)은 뼛속까지 스몄습니다. 24일 밤 회산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13개의 검문소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경비대원들은 화물차 짐칸에 올라 꼬챙이로 쌀부대를 꾹꾹 찔러봤습니다. 이틀 밤을 화물차 짐칸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24일 마침내 회산에 도착, 하룻밤을 묵고 25일 초저녁, 최씨는 또 다른 중국인 안내인들과 합류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최씨가 남쪽 가족으로부터 돈만 받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줄만 알고 있던 안내인이 최씨가 북한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중국 공안(公安)에 신고라도 하는 날이면 끝장이었습니다.
최씨 일행은 두만강을 건너자마자 미리 대기시켜놓은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눈길을 달려 그날 밤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長白)에 도착했습니다. 창바이엔 미리 와 기다리고 있다던 아내와 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최씨는 “그때 ‘아내가 날 남한으로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짐작했다”고 말했습니다. 12월 26일 오전 최씨 일행은 아내가 있는 곳을 향해 눈길을 달리다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서 가던 원목을 실은 화물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뒷자리 가운데에 앉아있던 최씨는 앞으로 튕겨나가면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습니다. 최씨의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8바늘을 꿰맸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중국 공안이 들이닥칠지 두려운 최씨 일행은 급히 병원을 떠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만나기까지는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2월 31일 오후 드디어 부인 양씨를 만나러 가자는 기별이 왔습니다. 북한인 안내인을 포함해 안내인들과 함께 중국 모처의 한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 꿈에도 그리던 아내가 있었습니다.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패이고 돋보기를 썼지만 분명 부인 양씨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목 놓아 울 수도 없었습니다. 북한인 안내인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인 안내인들이 북한인 안내인에게 술을 권하며 안심시키는 한편 최씨와 양씨가 조용한 곳에서 얘기나 나누도록 하자며 북한인 안내인을 따돌렸습니다.
최씨 부부는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그곳을 떠나 또 다른 안전가옥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최씨가 북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탈북한 최씨는 지난달 31일 중국 모처에서 부인 양영자(66)씨와 31년 만에 해후한 뒤 지난 2일 선양 한국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양(瀋陽) 한국영사관은 지난 2일 한국행을 바라는 최씨 부부의 전화 도움요청에 대해 수차례 ‘전화돌리기’로 책임을 회피하고, 담당자마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오히려 최씨에게 따진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습니다.
최욱일 씨의 탈북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중국측과 외교 경로를 통해 최씨의 한국행을 위한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어제 정부의 한 외교 소식통은 “5일 아침 옌지(延吉)를 출발해 저녁 선양(瀋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도착한 최씨가 현재 중국 공안 당국에 인계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공안은 한국행의 전제조건으로 최욱일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국행이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최욱일씨는 강제납북 31년 만에 한국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납북 어부 최욱일! 그는 아직 중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영향권 안에서 한국으로 간다는 전제조건으로 중국 공안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아직 중국에 있으나 이제 곧 자유 대한에서 조선인이라는 옛 사람을 벗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변화된 새 사람으로 살아갈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5장에 있는 말씀을 몇 절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중심은 1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라는 말로 불리움을 받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전 것>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으로서,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사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또 그것은 율법아래 얽매인 인생, 불신앙의 인생, 어둠속의 인생, 저주 속에 죽을 인생, 지옥 영벌에 처할 인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인생, 예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은혜아래 자유함을 얻은 인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이전 것>과 <새 것>의 의미는 극(極)과 극(極)의 상태로 우리 인생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의 의미가 마귀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천국백성인가? 지옥자식인가? 축복인가? 저주 속에 있는 자인가를 판가름하는 단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아담의 자손인 이전 존재
아담의 자손인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옛것>입니다. 옛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말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화가 끊어진 것을 죽는다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과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웃지 못하고 성내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는 산자와 대화가 끊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이 죽어 버리고 대화가 끝나고 만 것입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 절하고 귀신과 점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옛사람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은 죄가 누룩으로 우리 생애 속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농주를 담을 때 메주 같은 것을 쑤어서 쌀을 찧고 그 속에 넣으면 누룩이 퍼져서 완전히 부패해지고 그래서 술이 되었습니다. 누룩은 부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속에도 죄라는 누룩이 들어오면 인격적으로 부패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죄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벌써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벌써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자마자 그 속에 누룩과 같은 죄가 유전되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탐욕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도덕한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탐욕을 만족시킨다면 무엇이든지 하는데 이것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은 그 마음이 자아중심적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利己主義者)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있습니까? 자기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요,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아중심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은 육체적으로 병든 자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별수 없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리에 걸렸습니다. 태어났으면 늙고 병들고 죽는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 할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전도서 5장에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17절)고 했듯이 옛사람은 항상 심신에 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옛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죽고 난 다음 영원한 생명이 없으니까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 철학인 것입니다. ‘내일 죽을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 하늘나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지옥 있는 것도 모르니 그냥 죽으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비참한 생각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도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렇게 하나님이 없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죽으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13절에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새 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아직까지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 있어서의 새로운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거듭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밤중에 유대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그때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이 말은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는 것이 아닙니까?’고 묻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물론 이 새로운 피조물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육신을 가지고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그의 생명은 정죄 받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이런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졌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된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입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기도 좋고 해서 새 기분이 납니다. 그렇다고 새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옷이 날개라고 새 옷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져 보기는 하지만 새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2007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를 맞으면 어떻습니까?
새해가 되면 무언가 새로워집니다.
‘지나간 해에 못 다한 것을 새해부터는 해야지’ 하면서 새 마음, 새 결심을 하면서 우리는 새로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움이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가 되었다고 새 시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 사람은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회복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한 부자를 만납니다. 그는 당시 세무공무원으로 부정축재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는 어찌 보면 평범한 인물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행복하지 못한 고민이 있었는데 세상의 재물과 안락과 평안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인 갈증, 영적인 기갈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명성과 소문을 듣고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군중들로 만원을 이룬 거리에서 유달리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궁리해낸 것은 길가 가로수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였으며, 세무 공무원이어서 어쩌면 여리고 지방의 유지였을 그가 체면을 무릅쓰고 뽕나무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삭개오입니다.
삭개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의 지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무를 올려다 보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뛸 듯이 기뻐하며
“예수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여기가 저희 집입니다!”하면서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감동을 받은 삭개오는 일순간 회개를 통해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색하고 부자였던 삭개오는 마음이 열리고 욕심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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