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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자녀교육/(마18장6-7)

미션(cmc) 2011. 10. 24. 18:05

올바른 자녀교육(마18장6-7)

성경본문: 마태복음 18:6-7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점점 청소년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되기는 쉽다. 어머니 되기는 쉽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다운 아버지,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되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노릇을 잘 할 수 있을 가요? 우리 모두의 고민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늘 합니다. “럭비공과 자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조 용기 목사님도 자녀들이 자꾸 사고를 치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존경을 받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자식 기르는 데만은 실패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1. 자녀를 경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첫 계명은 자녀를 경시하지 말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18;6-7)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여 갖고 있는 두 가지 잘못 된 생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내 소유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소유가 아닙니다. 내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은 자살을 애타(愛他)적. 이기적. 아노미(anomie)적. 숙명적 자살로 나누었습니다. 애타적 자살은 사회의 통합이 지나치기 때문에 개인의 관심이나 생명이 과소평가되는 사회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규범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능을 잃을 때 개인 간의 결합력이 약한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의 변동기 때 가치의식의 붕괴로 인해 개인의 방향감각이 상실되거나 안정감이 없어질 때 발생을 한다고 합니다.

숙명적 자살은 죄인의 경우 등 과도한 억압 상태에서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입니다. 며칠 전 일어나 전남지사와 같은 투신자살의 경우입니다. 비리에 연루된 유명 인사의 자살, 자살 사이트를 통한 집단자살,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동반자살 등 우리 사회의 잇따르는 자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중에 반인륜적인 자녀동반 자살. 살해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혼 후 다섯살 난 딸과 생활하는 것을 비관해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30대, 전처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자 아들. 딸과 함께 독극물을 마시고 아들과 같이 세상을 등진 30대 경찰관, 이혼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40대, 동거녀가 집을 나가자 한살배기 딸을 살해 후 자살한 30대 등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반인륜적 부모들의 행동입니다.

어느 노신사가 길을 걸어가는 데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모지게 패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 한 노신사가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그렇게 때릴 수 있소?”

그랬더니 그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내가 내 새끼 때리는 데 당신은 왜 참견이야?“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자녀를 주셨지만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부모는 양육권만 있지 소유권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게벳은 모세를 낳았을 때 자기 아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다른 부모들은 아들을 낳으면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 부모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애굽왕의 핍박이 심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아이이기에 하나님께 죽고 사는 것을 맡기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갈대 상자를 만들어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내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노엽게 하면 안 됩니다.

둘째로 자식을 부모 한을 풀어주는 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자식을 보모가 이루지 못 한 꿈을 이루어 줄 도구로 생각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의사가 되려다가 못 되었으니 자식은 의사가 되게 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보상원리입니다. 내가 대학을 공부 못 하였으니 자식은 꼭 대학을 보내리라고 결심합니다. 자식에게서 만족을 얻으려는 자세도 잘못 된 자세입니다. 자녀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인정하여 주어야 좋은 부모입니다.

바이얼라 윌덴 목사님이 뉴욕 인근에 살고 있는 가정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그 가정에 4살된 아이가 있었는데 얼마나 총명하고 사랑스러운지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가 조금 후 밝혀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산더미같이 설겆이 할 것이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나 바빴습니다. 그런데 4살 된 아들이 책을 들고 오더니 물었습니다.

“엄마! 이 사람은 무엇을 하는 거야?”

엄마는 설겆이를 하다 말고 아들을 데리고 소파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다 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렇게 설명을 하여 주었더니 아들은 “알았어!” 하면서 만족한 얼굴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데 어떻게 그렇게 아들이 물어 보는 것을 다 대꾸하여 줍니까?”

이 질문에 엄마가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설겆이는 평생하는 것입니다. 지금 못 하면 나중에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들의 질문은 평생 처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순위는 아들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소중히 여겨야 좋은 부모가 됩니다.

2. 매를 적당하게 들며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매를 들고 훈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말하고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자녀를 때리지 않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정 풀이로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나서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매입니다. 정말 잘 하라는 회초리입니다. 솔로몬은 또 말했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돌 볼 책임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왔으나 부모가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양육권만 있지 소유권은 없습니다.

화초를 길러 보면 압니다. 물을 안 주어도 죽고 너무 많이 주어도 죽습니다. 적당하여야 합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도 자녀를 망치게 하지만 자녀를 과잉보호하며 우상처럼 여겨도 자녀를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사모님의 친구 아들이 공부를 무척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금방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의사였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들이 공부하는데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 사모님은 친구 아들인 그 아이를 전도하기 위해 가끔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최고의 학부와 대학원을 나왔는데도 정신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정서적으로 불안했으면 친구가 없어 늘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이 사모님이 예수를 영접하도록 몇 번씩 권해도 그의 마음에는 주님이 자리를 잡을 공간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대학자가 되었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최고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나는 예수를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부모의 과잉보호가 빚은 결과였습니다. 부모가 공부를 위해서 애를 너무 과잉보호를 하더니 애가 망가진 것입니다. 자식을 학대하여도, 자식을 우상화하여도 안 됩니다. 자식에게 바르게 자라기 위해 매를 들고 호되게 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경찰당국이 만들어 낸 자녀들을 잘못 기르기 10가지를 발표하였습니다.

1.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것을 다 주면서 길러라. 자라서 온 세상이 자기 것같이 생각하고 살 것이다.

2. 나쁜 말을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그냥 버려두면서 아이를 길러라. 웃어 넘겨라.

그러면 자라나서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되는 말을 마구 뱉아 놓는 사람이 될 것이다.

3. 아무런 영적 훈련을 시키지 말고 내버려 두며 길러라. 자라나고 나면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길러 보아라. 자라나서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떠나 갈 것이다.

4. 잘못 된 행동을 책망하지 말고 길러라. 자라나서 자동차를 훔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지역사회 잘못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5. 아이가 정돈하지 않은 이불, 신발, 버려둔 책, 마구 어지럽히면 대신 정리하여 주어라. 그러면 이 다음에 자라나서도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책임을 미루게 될 것이다.

6. 보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보고, 먹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먹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면 자

라나서 쓰레기통 인간이 될 것이다.

7. 아이 앞에서 자주 싸우는 부모가 되라. 그러면 자라나서 틀림없이 가정 파탄이 될 것이고 가정이 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8. 용돈을 달라는 만큼 주어라. 떼를 쓰면 다 해주면서 자라게 하라. 곧 죽게 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9.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해 달라는 것,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지 말고 다 해주어라. 자라나서 누구에게 거절당하면 쉽게 실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 누구와 대립될 때 아이 편에 서주어라. 자라나서 이 세상 모두가 대적자가 될 것이다.

이어령 수필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수염을 잃어 버렸고

어머니는 사랑을 잃어 버렸다 것입니다.

수염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수염은 에헴의 상징입니다. 수염을 붙드는 것은 모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수염을 잃어버린 것은 아버지 권위가 사라진 상징입니다. 아버지 말 한 마디는 곧 가정의 법이었습니다.

어머니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

옛날은 엄한 아버지, 사랑스러운 어머니 즉 엄부자모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주일에 자녀들과 한 두 번 볼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만나면 “돈 줄까? 맛있는 것 사줄까?”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대신에 어머니가 잔소리를 감당하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짜증스럽게 아이를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수염과 어머니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때릴 줄 압니다. 회초리를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막 된 가정일수록 부모가 엄하지 않습니다. 정돈된 가정일수록 엄한 부모가 있습니다.

3.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에게 본을 보일 줄 압니다. 말하지 않고 행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고 행하는 것을 봅니다.

어느 가정에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늘 교육을 시켰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시키지 말아라!”

그리고 나서 좋지 않은 전화가 왔습니다. 자녀가 전화를 받는 데 어머니가 들으니 반갑지 않은 전화였습니다. 어머니는 손을 저으면서 “없다고 그래” 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아이는 헛갈리게 됩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딸이 기도할 수 가 있을 가요?

부모가 신앙대로 살아가는 보여준 적이 없는 데 자녀가 신앙적으로 살 수 있을 가요?

부모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들이 예배를 정성껏 드릴 수 있을 가요?

부모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데 자녀가 십일조를 드릴 가요?

부모가 만나기만 하면 싸우면서 시집가는 딸에게 “화목하고 행복하라!” 라고 말하면 될 가요?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밑에서 자란 아들이 똑같이 술주정뱅이가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학대받은 며느리가 후에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되지 않는 가요? 군대에서 쫄병 생활 호되게 한 병사가 고참이 되면 지독한 고참이 됩니다. 미워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깨가 쏟아지게 사랑하고 사는 것을 보여주면 자녀는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보여 주면 됩니다.

4. 비교하지 말고 그 아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부모는 비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만 찾는 것입니다.

모세 어머니 요게벳이 그랬습니다. 다른 가정에서는 아들낳으면 죽이라는 바로 왕의 명령에 따라서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 부모는 남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내 자식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겠다고 생명을 걸고 살렸습니다. 요즈음 말대로 개성있게 행동하였습니다. 드디어 훌륭한 모세와 같은 자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흔히 자녀에게 자극을 주려고 비교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언니 좀 봐라. 공부도 잘 하고 얼마나 얼마 잘 하니? 언니를 닮아 봐라”

“306동 406호 철수 좀 봐라. 밤낮 일등만 하지 않니?”

이렇게 비교하는 말로 꾸짖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비교하면 잘 하게되고 본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는 비교하면 비교당하는 대상을 미워하게 됩니다.

비교 당하게 되면 비교하는 그 대상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니만 없다면 내가 이런 말을 안 들어도 되는 데..... 언니가 빨리 죽지 않을 가?”

“306동 아이만 없다면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데.. 그 놈 이사갔으면 좋겠다.”

비교하면 비교대상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상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미워하게 됩니다.

비교하게 되면 대상만 미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도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럴가? 나는 못난인가? 금오강 물에 뛰어 들어 버리고 말가? 언니는 잘 하는 데... 102동 언니는 잘 하는 데...나는 무능한가?”

비교하면 오히려 열등감을 심어주어서 더 못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는 금물입니다.

셋째는 비교로 자기 부모에게 원망하게 됩니다.

비교하게 되면 대상을 미워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비교하는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엄마 나같은 것을 왜 났어? 안 낳으면 돼잖아?”

비교하는 사람까지 미워집니다.

넷째는 드디어 하나님까지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언니는 머리도 좋게 만드시고 나는 왜 머리를 돌대가리로 만드셨나요? 인간차별

하시는 것인가요?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데 나는 왜 이렇게 창조하셨나요? 차

라리 낳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까지 원망하게 되니까 신앙이 성숙되지 않습니다. 성격이 원만하여지지 않습니다.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 와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게 창조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5. 내 자녀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잘 돌볼 이는 없습니다. 부모보다 하나님은 자녀를 더 잘 돌보십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모세 부모가 모세를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일을 잘 되게 하셨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자기 소유물인 줄 알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부모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더 잘 돌보실 것입니다. 이것이 명답입니다.

이스라엘 야드 바쉠에 가면 유대인 학살 기념장이 있습니다. 그 정원에 조각이 있습니다. “마지막 행진”(The last march)라는 조각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사형 당하러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그 조각 가운데 어머니가 손목을 붙잡은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 병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가스실로 끌려간다. 마지막이다. 너를 데리고 가면 죽는다. 버려도 병들었으니 누가 돌보지 않을 터이니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를 하나님께 버린다.”

그리고 손을 놓았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 훌륭한 조각가 되어 그 조각을 자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조각한 것입니다.

위대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면 문제가 없습니다.

부산에 사는 저의 친척 장로님은 피난을 와서 고추 마늘 장사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딸들아! 나는 네가 달라고 하는 것을 줄 수가 없다. 재산도 마련한 것이 없단다. 너를 행복하게 하여 줄 수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네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네 손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길 수는 있다. 너희들에게 억만금을 물려주지 못 하여도 하나님에게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남은 전 재산을 새롭게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다 바치고 자녀들에게는 돈을 주지 않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의지하라는 믿음의 유산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시고 자녀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잘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자녀가 믿음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 처 ; 김명 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