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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사건’ 해결의 숨은 주역, 김용목 목사

미션(cmc) 2012. 1. 12. 06:31

“약자의 아픔 보듬는 건 당연한 교회의무”

인화학교 사건 진상규명 더불어 피해학생 상처 치유에 동분서주
“한국교회가 장애인 문제 진정성 있게 접근해야 사회적 신뢰 회복”


   
2005년 여름은 세상에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그로부터 7년여 요지경과도 같았던 교내 성폭력과 비리에 대한 내막이 하나씩 공개되면서 잠시 들끓었던 여론이 이내 수그러들고,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에 이은 학교의 ‘정상화’, 마침내 소설에 이은 지난해 영화 ‘도가니’의 등장과 이에 대한 엄청난 반향에 이르기까지 숱한 일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여정 뒤에는 한 목회자의 집념어린 분투가 있었다. <편집자 주>


“제 나이 마흔 아홉, 2011년은 아마도 제 생에 결코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도가니’ 영화 상영이 시작된 이후에는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들이었지요. 심지어 하루에 이 문제로 150건 이상의 통화와 연락이 온 적도 있습니다. 약 두세 달 간은 제 업무일지가 온통 인화학교 관련 일정으로만 채워지기도 했을 만큼, 마치 ‘도가니’ 속과 같은 치열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김용목 목사는 도가니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장애인을 비롯해 약자 편에 서는 모습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용목 목사의 현재 직함은 실로암사람들 대표, 광주겨자씨교회의 협동목사, 그리고 광주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 상임대표이다.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다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3급 판정을 받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성장해 신학교 졸업 후 순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자이자 장애인사역자로 일해 왔다. 설립 35주년을 맞은 한국실로암선교회에 간사로 들어와 현재는 대표로서 사역을 이끌고 있다.

그가 인화학교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05년 6월 22일의 일이다. 당시 광주장애인차별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김 목사에게 성폭력상담소에 제보된 인화학교의 복마전 같은 스토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점은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저희 선교회에서 주최하는 청소년캠프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자주 만났던 사이인데 그처럼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죠. 아이들과 수화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안쓰러운 생각과 함께, 우리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왜 이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지 못했을까하는 자괴감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그는 당장에 진상규명과 사태해결을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11개 단체가 대책위원회 깃발 아래 모여들었고, 이들과 함께 광주 광산구청 앞에서 책임자 처벌과, 인화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법인 우석의 임원해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애초부터 간단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상황은 우려스럽게 흘러갔다.

명명백백한 범죄와 이에 대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고, 오랜 시간 아이들의 치를 떨게 한 당사자들은 머지않아 학교로 복귀했다. 사회적 관심도 점점 식어져갔고, 이대로 피해자들의 가슴에 상처만 남긴 채 그냥 잠잠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처럼 허탈한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적어도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법정에서 호되게 혼내줄 수는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이런 세상이라면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집행유예’라는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난감했지요.”

가장 큰 문제는 피해학생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화학교 말고는 광주 시내에 청각장애학생들을 수용할 시설도, 기관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들은 다시 시작되는 불안과 공포를 각오해야했다. 결국 실로암선교회가 나서 짐을 지기로 했다.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세 곳의 홀더지역아동센터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지난 5년 동안 홀더지역아동센터는 인화학교 피해학생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되찾는 소중한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 인화학교 출신들을 위한 홀더지역아동센터 후원행사인 ‘행복의 도가니’가 열리고 있다.  
한 편으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책임자들의 양심 속에서 이 사건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투쟁은 광산구청 앞 시위에서, 광주시교육청 앞 천막수업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점거농성으로, 다시 광주지방법원 앞 항의시위로 끝 모르게 이어졌다. 그렇게 3년여 시간이 흘렀을 무렵 한 여성작가가 광주를 찾아왔다.

작가 공지영씨였다. 인화학교의 진상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낯 뜨거운 이면을 소설을 통해 고발하겠다는 의지로 취재차 광주를 찾아온 공지영씨가 처음 만난 이도 바로 김용목 목사였다. 마침내 2009년에는 소설 ‘도가니’가, 그리고 다시 2년 후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고마웠죠. 엄청난 국민적 분노와 정의실현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에 감사했고, 아이들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영화 ‘도가니’는 신앙인으로서 김 목사에게 깊은 상처가 됐다. 영화 속에서 가해자들은 죄다 기독교인들로 묘사되고, 교회는 그들을 두둔하는 이익집단처럼 비쳤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종교는 제 각각이었고, 아이들 편에서 오랜 투쟁을 한 이들 중에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기독인들과 교회가 존재했던게 실상이었다. 소설 속에는 잘 맞춰져있던 종교적 균형 감각이 영화 속에서 무너진 이유에 대해 김 목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억울하지만, 안타깝지만 이 부분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안고 가야할 부분이겠지요. 먼저는 그 동안 교회들이 약자 편에 서는 일을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하며, 당장은 뭇매가 날아오고 소나기가 내리더라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경주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인화학교의 폐쇄와 우석법인의 인가 취소, 가해자들에 대한 재수사와 구속 등 사태가 빠르게 진전되는 속에서 김용목 목사는 온전한 상황수습과 동일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또 다른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광주시 주월동에 있는 실로암센터에는 그래서 인화학교 사건의 철저한 매듭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여전히 내걸려있다.

광주지역에 공립 특수학교가 정상적으로 설립되어 현재 교육사각지대에 있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수용하고, 사회복지사업법이 조속히 개정되어 장애인 인권 침해를 예방하는 일이 현재 대책위원회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동시에 피해학생들이 충분한 심리적 치료와 회복을 거쳐 자신 있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홀더지역아동센터 후원행사인 ‘행복의 도가니’가 공지영씨, 배우 김여진씨, 가수 박혜경씨 등이 출연한 가운데 열렸고, 연말에는 인화학교 출신들을 위한 카페를 광주시내에 개설했다.

인화학교 사태를 치르는 동안 김 목사 개인이나 선교회 사역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도가니 사태 이전의 선교회사역이 주로 제도권 밖의 복지와 선교사역에 치중했다면, 지난 5년 사이 법 테두리 안에서의 활동과 사역이 크게 늘어난 것이 한 예이다. 그 과정에서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아하장애인가족지원센터, 무진장애인장학회와 같은 기관들도 개설했다.

“특수학교 개교는 드디어 내년 3월경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대책위원회에는 영화 상영 이후 동참의 물결이 쇄도해 현재 40여 단체가 함께 하는 모임으로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우석법인 측의 사법대응이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노력에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광주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교회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애인 문제를 ‘너’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바라봐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장애인선교 자성 움직임 잇따라

법개정 촉구 이어 대안모색 토론도 활발


   
  ▲ 인화학교 사태 이후 호남지역 교계에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디아코니아연구소 주최 사회복지세미나.  
인화학교 사태, 일명 ‘도가니’ 사태는 한국교회, 특히 사건의 발생지인 호남지역 교계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성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다.
광주시기독교연합회(광주NCC)는 최근 인권주간 연합예배를 통해 인화학교 사태가 공명정대하게 처리되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해소되기를 기원했다. 이에 앞서 광주NCC는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가니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성명서에서는 앞으로 기독인들이 앞장서 “세상의 바른 십자가가 돼, 장애인들의 염원인 탈시설화와 자립생활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전북인권선교협의회는 지난해 11월 29일 전북CBS에서 도가니 사태에서 드러난 기독교사회복지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종걸 국회의원, 한일장신대 사회복지과 김옥순 교수, 한국장애인복지법정시설협회장 허욱 목사 등이 참여해 심도 깊은 토론과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국가 복지정책과 교회 주도의 복지사역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개선책들이 논의되었다.
디아코니아연구소(소장:김웅수 교수)도 앞서 10월 10일 한일장신대에서 열린 사회복지세미나에서 독일 기독교사회봉사국 대표를 역임한 헨리 폰 보세 목사를 초청해, 장애인들의 인권과 선교 및 복지가 조화를 이루는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특히 UN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독일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소개가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김용목 목사는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그 동안 인화학교 사건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과 복지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지역교회들의 관심이 조금씩 환기되고 있다는 바람직한 증거”라고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