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개신교 선교사들의 입국
이종찬목사
1. 언더우스(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Jenry Gerhart Appenzeller)의 입국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상륙함으로 한국 개신교 선교사에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했다.
1880년은 미국교회사에 있어서 선교에 대한 열심과 관심이 신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해였다. 1800년 10월 뉴 져지(New Jersey) 주의 뉴브론스윅(New Brunswick)에서 모여 정식으로 미국 전국신학교 협의회(American Inter-Seminary Alliance)를 조직하였고 이후부터 이 협의회는 해마다 회원교인 신학교에서 번갈아 가며 모였다. 이 협의회는 그 후 계속 모이다가 1897년 대학 Y.M.C.A. (The Inter Collecgiat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와 합하였다.
1883년 이 전국신학교 협의회는 10월 24일~28일까지 5일간 코넥티컷(Connecticut) 주의 하트호드(Hartford)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미국 개혁교회 신학교에서도 참석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한국 장로교 선교의 아버지인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의 아버지인 아펜젤러도 끼어 있었다.
언더우드는 화란개혁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신학 연맹을 통하여 선교사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처음엔 인도로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였지만 알버트 올트만(Albert Oltmans) 학생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되었고 언더우드는 인도가 아닌 한국으로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아펜젤러도 한국 선교에 뜻을 세운 것은 언더우드 목사처럼 대학재학시절 부터였다.
2. 각 교파 선교사들의 입국
(1) 남장로교 선교사
근대화의 머릿돌로서 선교를 한 언더우드 목사는 1891년 10월 안식년에 귀국하여 내쉬빌에서 모인 외국 선교 신학교 연맹(Inter Seminary for Foreign Mission)에서 한국 선교를 열심히 호소하였다. 이 설교에 감동받은 데이트(Lewis Boyd Tate), 존슨(Cameron Johnson), 레이놀드(William Davis Reynolds)였다. 이에 남장로교 선교부는 1892년초 실행 위원회를 열고 이들은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이들의 한국에서의 주 선교지역은 전라도였고 성공적인 선교를 펼쳤다.
(2) 남감리교 선교사
남감리교의 선교를 위한 배후 역할자는 윤치호씨였다. 북경에 주재한 남감리교 선교사 핸드릭스(E.R.Hendrix) 감독와 리드(C.F.Reid) 목사는 윤치호의 알선으로 1895년 10월에 내한하여 실정을 살핀 후 1896년 8월에 리드 목사가 한국 선교사로 부임했고 다음해인 1897년 5월 중국 연회로부터 독립하여 한국 선교부를 조직하였다. 완전분립은 1907년에애 이룩된다.
(3) 캐나다 장로교
캐나다인으로 처음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는 멕킨지(William Jogn Meken Zie)였다. 그리고 1898년에는 구레선 박사(Dr. Mrs Robert G. Grierson), 부두일(Rev. W.R.Foote), 마구레 목사(Rev. D.M. McCrea)등이 내한하게 되었다. 이들은 함경남북도를 중심한 선교를 하였고 원산 함흥등에 선교부를 두고 선교 사업을 전개하였다.
(4) 호주 장로교 선교사
호주 장로교의 한국 선교는 1889년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선교회 선교사 데이비스(Rev. Herny Davis)와 그의 매씨 데이비스양이 내한하여 경상남도를 선교구로 정하고 선교한데 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891년부터 호주 선교부는 경남지방을 중심으로 선교사업에 착수하였다.
(5) 성공회 선교사
한국에서 성공회 선교는 월푸(J.R. Wolfe) 선교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6) 침례교 선교사
한국 침례교 선교의 창시자는 펜윅(Malcon C. Fenwick)이다. 그는 1889년 내한하여 황해도로 가서 서경조 집에 머물면서 전도하였다.
(7) 동양 선교회
성결교회의 전신인 동양선교회는 1907년부터 선교를 시작하였다. 동양 선교회의 창시자인 카우만(C.E. Cowman)은 1901년 동야 선교회를 창립하고 1907년 한국 전도를 시작하였다.
(8) 구세군
구세군 창설자 부츠(William Booth) 대장이 1907년 일본을 방문하는 동시에 네일톤(Nailton) 부장을 한국에 파송하여 탐사케 한 후 1908년 10월 8일 혹가드 정령(K. Hog Gard) 번위크 부령을 파송하여 한국 구세군 교회를 설립토록 하였다.
3. 선교사들의 신앙
1)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앙
한국 개신교회는 초장기부터 보수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자라왔다. 특히 장로교회는 미국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들의 신학적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장로교신학을 형성했던 선교사들의 신앙적 배경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개혁주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앙의 인물들이었으며 이러한 신앙이 한국 교회에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2) 감리교 선교사들의 신앙
한국 감리교회는 그 초창기 시절부터 자유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리교 선교사의 선교정책은 진보주의적이요, 자유주의적이었다. 교리면에서도 감리교회는 자유주의적이였다.
4. 선교사들의 활동
1) 선교지역 구분
1893년 1월 28일 장로교 정치를 체용하는 선교부가 조직한 장로교 공의회를 ‘선교사 공의회’라 하였다. 이 회의에서 각 선교구역을 정하였는데 북장로교 선교부는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낙동강 이북으로 하였고, 남장로교 선교부는 전라도, 충청도였다. 캐나다 선교부는 선교지역을 함경도로 정하였다. 호주 선교부는 부산을 근거지로 삼아 선교 사업을 하였다.
1907년 성결교 선교부는 서울과 평안도, 1908년 구세군은 경남 단양과 서울 등을 각각 선교구로 정하고 마찰이 없는 상태에서는 서로 연합하여 전도, 교, 의료사업을 하게 되었다.
2) 선교 정책
한국이라는 토양 위에 복음의 씨를 어떻게 뿌리고 가꾸어야 할지 그 선교사업의 방법을 결정하는 일은 선교 사업에 있어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채용한 선교방법은 네비우스 방법이였다. 이 네비우스 방법의 4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래의 직장이나 업종에 남아있어 자치자립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한 몫의 일꾼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둘째, 본토 교회의 운영과 기구조직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능력 범위 안에서 발전시킨다.
셋째, 교회 자체가 인물과 재정을 공급할 수 있을 때에만 전도사업에 유자격자로 택하여 세운다.
넷째, 본 교인으로 하여금 자력으로 교회 건물을 짓게 하되 건축 양식을 본토식으로 하고 그 규모는 교회가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한다.
초기 장로교회는 이 방안을 채탁함으로써 한국 교회 성장에 놀랍게 공헌하였다.
제2강 G.M.S. (Global Mission Society)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로부터 세계선교를 위임받아 만들어진 기관이 총회세계선교회인 G.M.S.(Global Mission Society)이다.
사실 장로회 총회는 독노회가 조직된 1907년 제1회로 7인의 목사를 장립하면서 제주도에 이기풍 선교사를 파송시킨다. 이렇게 한국교회 총회의 전신인 독노회로부터 우리 총회는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총회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제3회 독노회는 해삼위에 있는 50만 동포를 위해 최관흘을, 도쿄 한국인 학생들을 위하여 한석진을, 또 켈리포니아와 멕시코의 한국인을 위해 방화정을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그리고 다음 해인 1910년 제4회 독노회는 박영일 씨를 동경에 전도인으로 4개월간 파송하여 동포 전도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 후 1912년 출발한 총회이후 1913년 제2회 총회는 중국에 박태로, 사명순, 김영훈 씨를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복음을 나눠주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제3회 총회는 길림성과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주공삼 선교사를 동경연합교회로 파송한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복음의 초기부터 국내전도와 해외선교에 힘을 기울여 나간다. 따라서 G.M.S.의 역사는 그 연원이 초기한국교회로 거술러 올라간다.
1910년 미북장로회, 미남장로회, 케나다 장로회, 호주 빅토리아 장로회 선교부는 공의회를 조직하고 전도부를 설치하는데 이것이 G.M.S. 전신이라고 보아야 될 것 같다. 총회 선교부는 6.25 사변의 아픔 속에서도 태국과 중국, 대만에 선교사를 보내면서 고난 속에서 교회의 본질인 전도와 선교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실 이 시절 선교는 교포 선교가 그 위주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로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동포들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 따라서 독노회와 총회는 이들을 위한 선교사를 파송해야만 했다.
1907년대 이후 이민의 물결을 따라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떠나간 동포들을 위한 동포선교는 계속되어진다. 일본 선교는 조선 선교의 마게도니아인 이수정의 편지로 미북장로회의 선교사역이 있었던 것처럼 역시 일본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출발되었다. 임종순 장로는 이 일환으로 학생선교는 물론 교민 전체를 상대로 전도하면서 1912년에는 감리교회와 연계 공동사역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1932년 장로교 총회는 일본에 대한 일본기독교단 창설을 주도하여 재일본조선인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2012년 3월 현재 G.M.S.의 일본사역은 여러 지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교포상대를 넘어서 일본인들을 위한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1909년 소위 해삼위라 불리는 블라디보스톡에 최관흘 선교사를 파송한 총회는 이 지역 선교를 위하여 한병직을 선교사로 보낸다.
1922년 당시 해삼위는 독노회가 조직될 만큼의 교세였으나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 정책으로 동포들이 시베리아로 흩어지면서 러시아 동포선교는 위기를 맞기도 한다. 1901년부터 1945년까지 총회는 100명 이상의 선교사를 만주 땅에 파송하여 전도한 결과 6개의 노회가 세워지고 1941년에는 독립된 총회를 조직하면서 신학교까지 경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총회는 국내전도와 해외 선교에 주력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본격적인 타문화 선교의 시작은 1954년부터이다.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루에서 동아시아교회 협의회모임이 있었는데 여기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이 도전을 받고 최찬영과 김순일을 선교사 후보로 선정 1956년 5월과 11월에 파송하였다.
총회의 선교(G.M.S.)는 1959년 통합 측 이탈 후 1970년까지 3가정뿐이었다. 1998년 11월 18일 공식명칭을 G.M.S. 총회 세계선교회로 발족시킨 총회는 2012년 3월 11일 현재 103개국에 2,169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한국교회에서 가장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교단이 되었다.
특히 70년대 이후 총회는 대단한 교세성장과 함께 선교의 시대를 맞는다. 당시 한국 선교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김활란, 김준곤, 조동진, 김의환이 었는데 이 중 총회인사가 3명이었다. 개교회목사로 총회 선교에 앞장선 이들은 김창인 목사와 김창렴 목사였다. 이제는 원로가 된 한국 선교사의 선임자들은 대부분 총회 파송 선교사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는 선교의 황금시기를 구가한다. 특히 개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시대가 된 것이었다. 사실 1960년대는 개교회 선교사가 없었다. 전부 총회 파송선교사였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총회 선교부는 개교회 열심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1980년대 개교회가 주축이 되어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는 시대를 열었다. 모든 짐을 개교회가 졌던 것이다. 이후로 총회는 이런 선교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총회 선교부가 그 짐을 나누어 맡는다.
앞서 기술한대로 1998년 총회선교부에서 총회세계선교회 G.M.S. 로 거듭난 후 선교사의 복지나 사역의 공동화를 위하여 새로운 기반을 구축한다. G.M.S. 본부는 선교사 출신으로 국내사역을 하게 하였고 실제 업무를 분담함으로 실제성과 전문성을 극대화 시킨다. 총회 선교부 시절 10명이였던 직원이 현재 40명 정도가 될 정도로 확대되었고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리 110-1번지에 선교훈련원과 은퇴선교사 숙소까지 마련하면서 선교사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G.M.S.는 목사 선교사들이 대부분이라 사역의 편중이 심하다고 보아야 한다. 21세기는 지식 정보화 시대로 사역이 다양화 되어가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때 이제 평신도의 선교사역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선교사의 개념도 목사뿐만 아니라 각계에 인물들이 장단기로 해외에 파송되어 해외 한인선교는 물론 타민족 선교에 앞장서야만 한다.
현재 48개 지역 훈련원을 통해 열심히 선교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G.M.S.가 더더욱 발전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2011년 8월 27일에서 9월 2일까지 안산 동산교회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선교대회는 교단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총회선교로의 도약을 통하여 과거 100년의 선교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확립하면서 다시 한 번 총회 선교의 열정과 결실의 모습을 보게 하였다.
부록
1. 장로회 연합 선교 공의회 시대 (영어 공의회)
No |
연대 |
회 장 |
서기.회계 겸임 |
1 |
1893 |
레이놀드 (남) |
무어 (북) |
2 |
1894 |
베어드 (북) |
정킨 (남) |
3 |
1895 |
정귄 (남) |
기보 (북) |
4 |
1896 |
리- (북) |
휘트모어 (북) |
5 |
1897 |
데이드 (캐) |
다루 (북) |
6 |
1898 |
푸드 (캐) |
기보 (북) |
7 |
1899 |
언더우드 (북) |
벨 (남) |
8 |
1900 |
웰빈 (남) |
그리이슨 (캐) |
2. 장로회 합동 선교공의회 시대 (조선어공의회)
No |
연대 |
회장 |
영어서기 |
조선어서기 |
1 |
1901 |
스완론 (북) |
푸드 (캐) |
서경조 |
2 |
1902 |
레이놀드 (남) |
번하이슬 (북) |
서경조 |
3 |
1903 |
그리이슨 (캐) |
번하이슬 (북) |
양전백 |
4 |
1904 |
앵글 (북) |
번하이슬 (북) |
주공삼 |
5 |
1905 |
마펫 (북) |
불 남) |
주공삼 |
6 |
1906 |
벨 (남) |
번하이슬 (북) |
주공삼 |
3. 당시에 활동한 선교사들 (N.P=미북, S.P=미남, C.P=캐나다, A.P=호주)
( 내 한 일 자 )
마포삼열 (馬布三悅) N.P(마펫, S.A.Moffett)1890. 1. 16
이길함 (李吉咸) N.P(리, G.Lee)1892. 10. 1
배위량 (裵緯良) N.P(베어드, W.M.Baird)1891. 3. 25
나부열 (羅富悅) N.P(로비츠, S.L.Robres)
편하설 (片夏薛) N.P(번하이슬, C.F.Bernheisel)1900. 10. 5
윤산온 (尹山溫) N.P(맥큔, G.S.McCuns)1905. 9. 12
소안론 (蘇安論) N.P(스완론, W.L.Swallen)1892. 2. 10
위대모 (魏大模) N.P(휘트모어, N.C.Whiteemore)1896. 10. 25
방위량 (邦緯良) N.P(불레어, H.E.Blair)1901. 3. 5
로세영 (盧世永) N.P(로스, C.Ross)
모의리 (牟義里) N.P(모우리, E.M.Mowry)
피 득 (彼 得) N.P(피터스, A.A.Piters)
한위렴 (韓緯濂) N.P(헌트, W.B.Hunt)1897. 10. 4
왕길지 (王吉志) N.P(엥겔, Q.O.Engel)1900. 10. 1
군예빈 (君芮彬) N.P(쿤스, E.W.Koons)1903. 10. 10
남행리 (南行理) N.P(램프, H.W.Lampe)
곽안련 (郭安蓮) N.P(클라크, C.A.Clark)1902. 9. 22
이눌서 (李訥瑞) N.P(레이놀드, W.D.Raynolds)1892. 11. 4
기 일 (奇 一) N.P(케일, J.S.Cale)1888. 12. 11
사우업 (史佑業) N.P(샤프, C.E.Sharp)1910. 10. 18
황호리 (黃浩理) N.P(화이팅, H.C.Whieiny)1910. 1. 24
최의덕 (崔義德) S.P(테이트, L.B.Tate)1903. 11. 3
배유지 (裵裕祉) S.P(벨, E.Bell)1893
오월번 (吳越璠) N.P(웰빈, A.G.Welben)1900
마로덕 (馬路德) S.P(매큐첸, L.O.Mecuchen)
전위렴 (全緯廉) S.P(정킨, W.M.Juncin) 1892. 11. 12
안의화 (安義和) N.P(아담스, J.E.Adams)
심익순 (沈益舜) N.P(스미스, W.E.Smith)1902. 10. 3
맹의화 (孟義和) N.P(맥파렌트, G.F.MeFarland)
업아력 (業亞力) C.P(로스, A.R.Ross)1901. 10. 8
'선 교 > 수원L.M.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원Lmtc 제14기1학기 개강 (0) | 2014.03.26 |
---|---|
선교와 기도 (0) | 2012.06.11 |
선교사의 삶 (0) | 2012.06.11 |
제12기(2012년) 수원LMTC 개강 안내 (0) | 2012.03.24 |
제11기 수원LMTC(평신도단기선교원) 수료식 (0) | 201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