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개혁주의 설교학

[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22)문맥이 본문 의미를 결정한다

미션(cmc) 2016. 3. 13. 07:00

[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22)문맥이 본문 의미를 결정한다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문맥을 떠난 성경 해석은 잘못
 

선택된 본문을 반복해서 읽는 일은 설교 준비의 기초 작업인 동시에 필수 작업이다. 본문 읽기는 일반적으로 본문 이해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교회의 회중을 위한 설교 준비를 위해서는 더욱 자세한 본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본문을 정확하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해석학적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해석의 관점을 지닌 안경을 써야 한다. 잘못된 해석학적 안경을 쓰면 언제나 잘못된 해석을 잉태하고 잘못된 적용을 낳기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의 승패는 본문 해석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기의 4중 해석법-문자적 해석(letter), 풍유적 해석(allegory), 도덕적 해석(moral), 신비적 해석(anagogy)-을 거부했다. 특별히 개혁주의자들은 문자적 해석 원리에 기초하여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Sacra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는 원리를 주장하였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고백하는 개혁주의 성경해석학은 언제나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전통을 지닌다. 이것은 결국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의 절대적 조명을 전제한다.

문법적·문자적 연구는 단어와 구와 문장의 문법적 관계, 논리적 관계, 문맥적 관계를 살피는 일이다. 문법적 연구는 무엇보다도 우화적 혹은 풍유적 해석을 거부한다. 풍유적 해석은 문자적 의미 뒤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인데, 자칫 잘못 사용하면 ‘이현령비현령’이 된다. 풍유적 해석은 성경의 문자 뒤에 숨은 신비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해석법으로 해석자의 주관적 해석이 지배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로(Philo)에 의해 시작되어 클레멘트와 오리겐으로 이어져 교회의 성경해석법으로 오랜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성경학자가 지적했듯이 “우화적 해석법이란 해석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장난에 불과하고 해석자의 주관적 상상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문법적 해석을 위해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성경학자들의 필수적 연구 도구인 바이블 웍스(Bible Works)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바이블 웍스는 성경연구를 위한 거의 모든 필수 도구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단어 연구:중요한 단어들, 반복되는 단어들, 특정한 단어들 연구를 위한 사전들, (2)주어진 단어가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를 보여주는 성구사전(Concordance), (3)문법(grammar)과 구문(syntax) 연구. 그 외에도 다양한 언어의 성경 번역본을 포함하고 있다.

문법적 해석에 있어서 글의 흐름을 따라 해석하는 문맥 연구가 필수적이다. 문맥은 본문이 자리하는 환경이자 배경이다. 동일한 단어라 하더라도, 문맥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문맥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브루스 왈트키(Bruce K. Waltke)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스피치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규칙은 문맥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모세 실바(Moises Silva) 역시 문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문맥은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문맥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문맥을 떠난 성경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9장 31절의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는 말씀을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극장에 가면 안 된다고 설교하는 것은 문맥을 떠난 자의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본문은 연극이나 영화 관람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바울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들어가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 역시 문맥을 고려하는 것이 해석의 황금률로서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본문의 의미를 취급하는 일에서 황금률, 하나의 절대적인 요청이 있는데, 그것은 정직이다. 우리는 우리가 택한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본문을 언제나 문맥 가운데서 다루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법칙이다.”

이러한 문법적 해석은 성경이 지닌 독특한 영적 이해를 돕기 위한 기초적 작업이다. 본문의 올바른 이해는 단지 문자적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영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문 이해를 위한 문자적 해석과 영적 해석의 관계를 바르게 규정한 박윤선 목사의 조언은 매우 유용하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영적 해석을 하지 않게 되면, 성경 자체가 요청하는 바 영적 방면의 증거를 외면하는 것이니 그런 해석은 불충분하다…영적 해석이란 것은 문자적 해석을 하는 가운데서 종합적 해석을 하게 되고, 그 본문이 정확하게 의미하고 있는 진리를 바로 찾아낼 때에 그것이 영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