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만주사변 이야기

미션(cmc) 2016. 12. 24. 19:02

1931년 9월 18일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당시 세계는 경제 대공황으로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1929년 10월 24일 아침 뉴욕의 맨하탄에 있는 월스트리트 주식거래소는 이상한 징후에 휩싸인다. 갑자기 주식매도주문이 늘어났는가 하면 사상 초유의 주가 폭락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뉴욕에서는 주식 브로커 수십명이 맨하탄의 고층빌딩에서 투신자살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렇게 암흑의 목요일이 시작되면서 세계는 대공황의 늪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이라고 대공황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쇼와공황으로 이어진다. 1930년 1월 11일이었다. 1930년 한해 동안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800개의 기업이 도산하였고 300여만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바로 이러한 경제위기를 시장 확장으로 해결하려는 일환으로 일으킨 전쟁이 바로 만주사변이었다. 일본군은 펑텐교외의 류타오후 부근에서 남만주 철도의 일부를 폭파시킨다. 이는 철도 폭파를 중국군의 소행으로 돌려 전쟁의 빌미를 만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계략이었다.

일본은 이미 같은 해 7월 완바오산 사건에 격분한 조선인들이 국내 거주 중국인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소상하게 발표해 만주와 중국에서 조선인이 박해를 받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과정에서 일제는 재만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출병을 시작한 후였다. 장학량의 아버지로 만주 최대의 군벌세력 장작림을 열차폭발로 죽인 저들은 1932년 3월 1일 청의 제12대 황제로 296년의 청의 역사를 마감시킨 선통제 푸이를 앞세워 동북3성인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에 괴뢰정권 만주국을 세운다. 푸이는 처음에는 집정으로 있다가 1934년 만주국의 황제가 된다.

만주사변은 제국주의 일본이 위싱턴 체제와 중국 민족주의에 일격을 가한 도발로 역사는 성공적 전쟁이라고 평가한다. 만주사변은 일본근대국가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만주사변은 1920년대 자유주의적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정당정치에 대한 군부와 우익세력의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만주사변은 자신의 나라 일본이 근대국가로서 안고 있던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하려던 군국주의자들의 야욕이었다. 만주사변과 1937년의 중일전쟁, 1941년의 태평양 전쟁은 이러한 연속선상에서의 제국주의적 음모의 침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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