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미완의 전쟁 이야기

미션(cmc) 2016. 12. 25. 06:11

1921년 6월 27일 소비에트 러시아령의 알렉세옙스크 즉 자유시 일대에서는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였다. 당시 자유시에는 1920년 10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경신참변을 피한 독립군 부대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조직화 된 독립군의 무장투쟁으로 대패한 일본은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분 하에서 간도출병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경신참변으로 1920년 10월~11월 사이 조선인 3600여 명이 일제의 관동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당시 독립군들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전열을 재정비 하고자 북만주미산에 집결했다. 대한독립군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1921년 1월 소비에트 러시아 이만을 거쳐 알레세옙스크로 이동했다. 자유시에는 만주에서 옮겨온 민족계열의 독립군 부대와 연해주의 빨치산 부대까지 총집결해 있었다. 1921년 6월 이들은 부대 지휘권을 놓고 상해파와 이루크츠크파 즉 고려 공산당의 대립으로 ‘자유시 사변’이라는 유혈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이후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부대와 민족계열의 무장부대가 연합할 수 없는 불행의 서막이었다. 흑하사변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독립군 960명이 전사하고 약 1800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의 사건이지만 이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이 민족을 양분시켰다. 그것이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싸움이었다.

이 이념적 전쟁은 남북을 갈라놓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 동족상잔의 6·25였다. 이 전쟁은 냉전시대에 동서를 대신하여 우리 민족이 싸운 전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간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지금도 한국 근현대사를 전쟁터로 하여 싸우고 있다. 해방과 함께 분단된 나라. 그리고 6·25전쟁 이후 155마일 268킬로의 장벽이 남북을 가로막은지 52년. 지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좌우이념 대립으로 또 하나의 분단을 이룬 민족이 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 ‘백년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완의 이념 전쟁을 매우 정직하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검인정 한국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바른 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토양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와 자손들이 자유민주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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