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희생 제사의 열가지 특징
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흠 없는 수컷 짐승을 선호 … 신분의 차이는 물론 남녀의 차별도 없어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제사를 공부할 차례다. 앞서 말한 대로 제사의 종류는 다섯 가지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중 소제는 곡식의 제사이고 나머지는 짐승의 제사다. 우리는 각 제사들을 공부하기 전에 성경의 제사의 몇 가지 특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짐승을 바치는 제사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특징을 갖는다. 당장 레위기 1:2~5의 번제 규정에 몇 가지 특징들이 확인된다.
1) 가축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2절는 모든 희생 제사의 서론적 진술이다. 여기서 명시되는 희생 제물의 첫 번째 원칙은 그것이 ‘가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개역의 ‘소나 양’으로에서 ‘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쫀(tson)은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를 의미하므로 가축은 소, 양, 그리고 염소를 가리킨다. 가축의 요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요행이나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보다는 제사자 본인의 땀과 정성이 깃든 소득과 생산물을 제물로 바칠 때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산양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의 사례처럼 예외는 있지만, 원칙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인 가축이었다. 소제물의 경우도 자신이 직접 재배하고 기른 농산물이 제단에 오를 자격이 있었으며 자연에서 채취한 것은 배제되었다.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는 기르던 비둘기를 바쳤는데, 다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면 야생 비둘기를 잡아 드릴 수 있었다.
2) 흠 없는 짐승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3절은 그 가축이 ‘흠 없는’ 가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가축 중에서 가져오되 대충 골라오지 말고 흠이 없는 상품의 가축을 선별해서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짐승의 흠들의 목록은 레위기 22:19~25에 제시되는데, 몸에 문제가 있거나 병이 있는 가축은 배제되었다. 아마도 겉으론 흠이 없다 해도 너무 마른 짐승은 속병이 의심되어 제외되었을 것이다. 애써 키운 가축이라는 조건과 그것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정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짐승을 키우는 사람들은 평소에 이미 어떤 녀석이 최상품의 물건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바로 그것을 아깝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갖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제사일 것이다. 흠 없는 짐승이 요구된 이유는 거룩하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 걸맞은 짐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수컷이 선호된다.
레위기 1장 3절은 번제물에만 해당되는데 ‘흠 없는 수컷’이라고 명시한다. 다시 말해 번제물은 모두 수컷이 요구된다. 다만 비둘기의 경우 암수 구분이 불필요했다. 아마 너무 작은 짐승이라 암수 판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제 외 다른 제사들에서도 수컷 우월성은 확인된다.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수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치고, 평민은 족장보다 낮은 등급인 ‘암명소나 암양’을 드린다. 속건제에서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죄인이 ‘숫양’을 바친다. 수컷 우월성은 특히 속죄제에서 평민은 암염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다만 대부분의 고기를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던 잔치의 제사인 화목제의 경우 암수의 구별 없이 원하는 대로 바칠 수 있었다(레 3:1). 그렇다면 수컷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당시 수컷이 더 비쌌다거나(Wenham), 수컷이 종자 가축으로서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가 빈약하다. 종자 가축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예나 지금이나 가축의 시장 가격은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물로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는 제사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제의적 가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수컷 선호는 수컷의 존재론적 가치와 대표성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스라엘은 가부장적 중동 문화의 영향권에 속했다. 하나님께서는 문화적·역사적·지리적 한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제의 체계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율법에서 정한 제의적 가치에 따라 수컷이 우월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의 본질과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컷은 본질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틀에 불과하다. 본질은 더 나은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수컷이 제물로서 우월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여 구약의 성차별적 경향을 따지고 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흠 없는 짐승을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기른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
4) 짐승의 등급이 나뉘었다.
짐승은 크기에 따라 소, 염소/양, 그리고 비둘기의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의 신분과 조건에 따라 짐승의 등급과 서열이 결정되었다. 번제나 화목제의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짐승의 크기가 달라졌을 것이며, 속죄제의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가 기준이 되었다.
5) 짐승의 머리에 안수한다.
레위기 1장 4절은 ‘그는 번제물에 안수할지니’라고 명령한다. 이후 모든 희생 짐승들에 이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서 ‘그’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자를 의미한다. 제사자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레위기 1~5장의 제사 규정에 ‘손’(히. yad)이 단수로 쓰였다는 점을 들어 이를 한 손으로 간주하면서 아사셀 염소 위에 시행된 두 손(레 16:21)과 구별 짓는다. 그들에 의하면 한 손으로 안수하느냐 두 손으로 안수하느냐에 따라 안수의 내재적 기능은 물론 그 효과도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한 손이든 두 손이든 안수의 목적에 따라 안수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우리는 나중에 안수 문제를 다시 살펴볼 것이다. 특히 속죄제/속건제에서는 안수의 기능이 중요한 쟁점이다.
6) 피는 제단에 처리한다.
레위기 1장 5절은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는 안수와 마찬가지로 제사를 바치는 사람, 즉 제사자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이 도살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제사장은 자신의 제사와 더불어 공적 제사에서 안수와 도살을 직접 집행할 뿐이다. 제사장은 양푼에 받은 짐승의 피를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안수와 도살 모두 제사자가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만일 제사자가 심약하거나 신체적 문제로 도살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제 삼자가 대신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제단에서 피를 처리하는 방식은 네 가지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속죄제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7) 제물에서 나온 모든 기름은 하나님께 바쳤다.
피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하고 ‘모든 기름은 야웨의 것’(레 3:16)이기에 인간은 피와 기름 중 어느 것 하나 먹을 수 없었다(레 3:16~17). 따라서 희생 짐승의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번제에서는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바쳤지만, 속죄제/속건제와 화목제에서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사에서 동물의 내장의 기름 부위는 반드시 제단에 바쳐야 했다. 내장의 기름 부위란 내장을 덮고 있거나 내장에 붙어 있는 기름 덩어리, 간엽 및 콩팥을 말하며(레 3:9~10; 4:8~9), 양의 경우 기름진 꼬리를 포함했다(레 3:9). 제의 법안에서는 종종 이것들이 통틀어 ‘기름’이라 표현된다(레 4:19, 26, 31, 35). 기름은 왜 항상 하나님께 바쳐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화목제를 다룰 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8) 고기의 처리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번제의 경우 모든 고기를 제단에 태웠다. 그러나 속죄제/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에서는 기름과 일부 내장만을 제단에 바치고 살코기는 인간이 먹었다. 속죄제의 경우 중대한 제사에서는 기름을 제외한 부위를 진 밖에서 태웠으나(태우는 속죄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먹는 속죄제). 속건제를 드릴 때는 숫양을 바쳤는데 이때도 기름을 제외한 고기는 언제나 제사장에게 돌아갔다. 반면 화목제의 짐승은 제사장에게 일부를 할당하고 거의 대부분은 제사자가 가져가 가족과 친족,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9) 제사 중에는 침묵하지 않았다.
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아마도 출산과 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는 감사의 고백과 찬양이, 죄나 부정결의 문제로 제사를 드릴 때는 죄의 고백과 자신의 부정함에 대한 설명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제사를 다 마친 뒤에는 제사장의 축복의 선언과 죄사함이나 정결함의 선언이 뒤따랐을 것이다.
10) 제사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모든 제사는 신분과 빈부의 차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남녀의 차별도 없었다. 남녀평등의 원칙을 따라 여성도 언제든 제사를 바칠 수 있었다. 다만 가정에서 바치는 번제나 화목제, 또한 절기에 의무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바쳐야 하는 제사들은 가장인 남자가 주도했을 것이다. 한나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자라 해도 개인적인 감사와 헌신을 위해 번제나 화목제를 바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경우 죄인의 여성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제물을 들고 올라와야 했다.
(5) 5대 제사 ①번제 : 예배는 번제처럼
번제는 하나님 향한 기쁨의 봉헌이자 전적인 헌신의 제사
공적 행사에서 기본 제사로 드려 … 차별없음이 번제의 정신이었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
요아킴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가축 중에 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소 상품의 물건으로 찜해 둔 녀석을 골라 몸 상태를 잘 살핀 후 아무런 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성소로 가져갔다. 성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크고 작은 짐승을 바치려고 올라와 있었고 제사장들은 제사를 집행하느라 분주했다. 제단은 피로 흥건히 얼룩져 있었고, 제단 주변에는 짐승의 흘린 피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잠시 기다리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요아킴은 양을 끌고 자신의 번제를 담당할 제사장 앞에 섰다. 제사장은 양의 몸을 다시 면밀히 검사하여 흠이 있는지 살폈다. 합격 판정이 내려지자 요아킴의 번제 바치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을 양의 머리에 얹고서 이 번제를 통해 비천한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왜 이 번제를 바치는지 말씀드렸다. 그는 시편의 감사시를 낭송하여 부르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린 뒤 도살용 칼로 그 짐승의 고통이 최대한 빨리 끝나도록 목의 급소를 찔러 짐승을 도살했다. 요아킴과 제사장은 번제의 절차를 따라 신중히 그 제물을 마지막 순서까지 무사히 잘 드렸고 정성을 다해 바친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약속을 기억했다. 요아킴은 기쁨으로 충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은혜가 집안에도 가득히 들어차 있음이 느껴졌다. 요아킴은 매일 자신이 받은 축복을 감사하며 지냈고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에는 번제를 드린 순간의 결심과 감격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인내했다.
명칭에서 살펴 본 번제의 의미
요아킴이 드린 제물은 번제였다. 이때 그 제물은 전체를 모두 제단 위에 올려서 태웠다. 번제는 우리말로 ‘태우는 제사’를 뜻하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에서도 마찬가지로 ‘the burnt offering’이다. 그러나 번제의 히브리어 ‘올라’(ola)는 단순히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올라가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a)에서 기원한 명사다. 번제의 이름 ‘올라’는 우연하게도 우리 말 ‘올라가다’와 발음이 일치한다. 이런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번제의 짐승의 모든 부위가 제단 위에 ‘올려 바쳐져’ 불에 타면서 짐승 전체가 연기되어 향기로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를 태워 드린다는 의미를 반영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로 번역하기도 한다.
▲ 번제를 드리기 위해 양과 염소, 또는 소의 가죽은 벗겨지고 몸 안의 오물들이 제거됐다. 또 가죽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웠다. 번제는 이처럼 누구나 드릴 수 있었지만 드리는 자의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했다. |
번제의 특징
희생 짐승은 마당의 제단 근처에서 잡는데,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의 경우 “제단 북편”으로 도살 장소가 정확히 명시된다(레 1:11). 그러나 대형 가축인 소의 경우 위치가 정해지지 않는데, 아마 그 이유는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소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하고 다 태운다. 가죽은 제사장의 수고비로 돌아간다(레 7:8). 가죽을 벗기는 행위에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속사람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실은 가죽의 특성상 잘 타지 않고 다른 부위도 덩달아 잘 타지 않게 되며 또한 향기로운 냄새가 아닌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가죽을 벗겼을 것이다.
가죽을 벗겨내고 짐승으로부터 더러운 똥와 오물들을 다 깨끗하게 제거한 뒤 모든 부위를 다 드렸다(레 1:9): 몸통, 머리, 정강이, 창자. 번제는 다른 제사들과 달리 인간의 몫이 없이 모두 하나님께 태워져 바쳐진 이유로 랍비들은 번제가 다른 희생 제사들보다 우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적어도 감사의 목적으로 바친 목축하는 사람의 짐승의 번제와 농사꾼의 곡식의 소제 사이에 우열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번제가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드리는 때
오대 제사중 처음 세 가지,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자발적인 제사로 ‘감사’가 그 기본적 동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각 제사의 용도는 그 외에도 다양했다. 예를 들어 소제의 제물은 감사의 예물로만 바치지 않고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한 속죄제로 바쳐질 수 있었다. 번제 또한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고 중대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바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번제의 취지는 “감사와 봉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번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성전에 올라가 번제를 드릴 수 있었다.
성경에는 노아가 홍수 후에 감사의 번제를 드릴 때 처음 등장한다(창 8:20). 여호와께서는 그 번제의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의 악한 본성으로 인해 물로 땅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창 8:21; 9:11). 이처럼 번제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완화하고 태도를 바꾸시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어린 양을 바친 아벨의 제사 역시 번제의 속성을 가졌다(창 4:2~4).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신 제사법이 후손에게 전수된 것이 번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번제에 드린 짐승의 가죽이 제사장에게 돌아간 것은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입혔던 것을 연상시킨다(창 3:21). 이것은 분명 신학적 암시를 담은 구절이다. 에덴이 일종의 성전이었다고 가정하면 아담은 그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최초로 번제 드리는 법을 전수받은 인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성경에서 번제는 대부분 공적인 행사에서 기본 제사로 드려진다. 의외로 지극히 사적인 번제는 구약성경에서 드물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면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아낌없이 모두 드릴 때(삼상 6:13~14), 완전한 헌신을 다짐할 때(창 22:2; 삿 11:31), 고난 중에 하나님께 탄원하며 의지하고자 할 때(삿 21:2~4; 미 6:6) 번제를 바쳤다. 때로는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화목제와 더불어(레 7) 번제를 함께 올리기도 했다(레 22:18). 그러나 번제를 의무적으로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크게 다음 세 가지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a. 상번제: 상번제란 항상 드리는 번제를 의미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사장이 일년 생 숫양을 드리곤 했는데(민 28:3~4)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침에는 처소에서, 저녁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마음으로나마 번제에 동참했을 것이다.
b. 안식일과 절기: 상번제 외에 안식일에는 소제와 전제와 더불어 일년 생 숫양 두 마리를 함께 드렸다(민 28:9). 절기마다 번제에 요구되는 짐승과 그 숫자가 달랐다(민 28~29장 외).
c. 기타: 경우에 따라 속죄제를 드릴 때 번제가 요구되기도 했다. 일례로 레위기 12장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부정해졌는데 이때 그녀는 일정 기간의 자연 정화 과정을 거친 뒤 성전에서 속죄제와 더불어 번제를 바쳐야 했다. 그 외에도 다시 정결한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흔히 속죄제와 번제를 함께 드렸으며(레 14:13; 15:15), 나실인 서약을 할 때도 속죄제 및 화목제와 더불어 번제가 요구되었다(민 6장). 출산한 여인의 경우 속죄제는 부정결한 산혈로 인한 제단의 오염을 씻어내기 위해 바쳐지나 번제에는 자녀를 얻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부정한 자를 깨끗케 하는 속죄제에 번제가 동반되는 것도 다시 정결해진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기능과 목적
번제의 일차적 목적은 감사로 드리는 헌신과 봉헌이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 그분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진술이 그 증거다(레 1:2~3). 즉 번제는 여호와께 전적인 기쁨이 되는 제사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신 하나님의 요구는 곧 아브라함의 완전한 섬김과 헌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창 22:2). 자주 번제는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바쳤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때 화목제가 동반될 수 있는데 번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고 화목제는 사람들을 초청해 그 고기를 먹으며 감사와 기쁨을 나누었다(출 18:9~10).
제물에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어야 한다. 정성스러운 번제를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한다. 미드라쉬 레위기 주석에서 랍비들은 희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 올리는 희생 제물은 부서진 마음이다; 오 하나님, 부서지고 회개한 마음을 멸시하지 마소서.” 번제에 의한 속죄는 전적인 헌신의 표시에 뒤따른 부수적 효과라 할 수 있다(레 1:4):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발생한다. 이미 죄를 위한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사가 별도로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번제는 이런 제사들과 어떤 기능적 차이가 있는가? 속죄제·속건제는 쌍둥이 제사로서 구체적인 죄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다면 번제를 드린 목적은 인간의 기본적 죄성(sinfulness), 즉 원죄의 속죄를 위해서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모든 죄를 영원히 속죄하시기 전까지는 원죄 역시 거듭해서 속죄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레위기에서 속죄제·속건제가 신설되기 전에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번제를 드렸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욥 1:5). 즉 번제는 본래 구체적인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도 했으나 속죄제·속건제가 생긴 이후로는 원죄를 속죄하는 제한적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참조. Milgrom 1991: 175~176).
물론 레위기에서 제사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잘못을 저지른 뒤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번제를 드리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다윗이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야욕에서 인구조사를 벌이자 그 결과가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여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다. 다윗이 황급히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자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고, 재앙이 멎었다(삼하 24:25; 대상 21:26).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은 인간의 원죄의 근원적 뿌리다. 따라서 번제는 원래 하나님께 기쁨의 표시로 바쳐지곤 했지만 때로는 자신의 죄된 본성을 용서받고 욥처럼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번제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봉헌물이자 감사의 표시로서 전적인 헌신과 아낌없는 드림을 보여주는 제사였다.
번제의 종류와 비둘기 번제가 주는 의미
번제의 짐승은 다음과 같이 등급이 나뉘었다. 본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새나 곡식을 바치는 것을 허용했다는 사실에서(레 5:7, 11)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각기 다른 등급의 제물이 권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제물의 크기나 종류와 상관없이 번제의 효력은 동일했다는 사실이다. 9절과 13절, 그리고 17절 끝에서 소와 염소/양, 그리고 비둘기의 번제 각각의 효과에 대한 최종적 진술이 나타난다: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와 비둘기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차이가 나지만, 여호와는 모든 제물을 동등하게 평가하셨다. 겉모양과 크기를 보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중심과 태도를 보시기 때문이다. 신약에는 두 렙돈 밖에 바치지 못하는 과부의 헌금에도 동일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대목이 있다(막 12장; 눅 21장). 번제의 정신은 차별 없는 제사에 있다. 누구에게나 여호와 앞에 나와 예배할 자격이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신분이나 빈부, 인종, 지역에 따른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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