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시편 133:1-3)
1. 공동체란 무엇인가?
오늘 시편 133편은 아주 짧지만, 우리가 따라야 할 공동체의 모범을 제시해줍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절)
공동체는 우리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혼자서만 생활하는 크리스천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창 2: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쁘다’라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았다, 미완성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주셔서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립된 개인들과 함께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공동체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기준이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할 근거입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사셨고 함께 사역을 하셨습니다. 120명의 성도가 한 곳에 같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이 오시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행2). 초대 교회에서도 일부 교인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빠져나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려 했을 때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히10:24~25)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경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떠나 홀로 은둔생활을 하면서 하는 신앙생활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런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이”라는 말에 그 어려움의 핵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형제자매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험으로 압니다. 사실 한 집에서 형제자매끼리 서로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어릴 때는 많이 싸웁니다. 특히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면 더 많이 싸웁니다. 형제들끼리도 싸우고, 자매들끼리도 싸우고, 남자와 여자도 싸웁니다.
성경에도 함께 사는 형제 이야기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뭡니까? 가인과 아벨입니다.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영적인 일에 시기와 질투가 있었고,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성경의 조금 뒤로 가보면, 또 다른 형제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버리는 이야기입니다.
형제자매로 산다는 것은 그처럼 다툼과 갈등이 생각나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노래하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나 성격대로 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심한 싸움이 벌어지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쳐다보는 구경꾼들만 신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시편 133편과 같이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함께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놓인 아름답고도 힘겨운 과제입니다. 이보다 더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릴 때 눈에 보이게 함께 모인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지만, 주중에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복음 증거와 봉사와 기도로 관계를 맺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1) 기름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2절)
공동체에 대한 이 그림은 출애굽기 29장에서 나온 것인데, 출애굽기 29장을 보면 아론을 비롯한 제사장들을 임명하는 지침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인 아론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시면서, 레위 지파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아론과 그 아들들과 자손들이 제사장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희생 제물이 준비된 다음 아론과 그 자손들은 제사장의 예복을 갖추어 입습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출 29:1, 9)
성경 전체에서 볼 때 기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이고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기름 부음에 사용되는 기름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기름이라는 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기름이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흐르고, 수염을 지나 어깨로 또 밑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제자매가 곧 나의 제사장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이라고 신약성경에서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바라볼 때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존재로 봐야 합니다.
2) 이슬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3a절)
두 번째 공동체에 대한 표현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는 것입니다. 주변 지역에서 가장 높은 헐몬 산은, 이스라엘 북쪽의 레바논 산맥에 속해 있고 높이가 2,700미터가 넘습니다. 그렇게 높은 산에는 이슬이 굉장히 많이 내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방이 온통 젖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에 있을 때 헐몬 산의 아침에 사방에 이슬이 온통 젖어 있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계속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새로운 사람들이고, 그들의 가능성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에서 지루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늘 보아도 또 새롭고 그 다음에 보아도 또 새롭습니다.
아론의 수염까지 흘러내리는 기름은, 따뜻하고 제사장다운 교제를 뜻합니다. 헐몬의 이슬은 신선하고 기대감으로 가득 찬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기름과 이슬, 이 두 가지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삶을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해줍니다.
3) 영생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3b절)
이 시편의 마지막 부분은, 선하고 즐거운 공동체 삶은 영생인 자리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한 삶에 대해 대략 알긴 해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시편 133편은 천국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진정으로 친밀한 교제는 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관계를 누리고 새로운 기대를 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함께 하는 삶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멋진 파티라도 하나님 나라에 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있으면 가장 좋은 친구들을 생각해보시고,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동료들을 생각해보시고, 가장 격려가 되는 관계들을 생각해보시고, 가장 즐거웠던 때를 기억해보시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모든 사람들이 지금 함께 모여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너무 좋겠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천국에 비하면 몇 천만 분의 일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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