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의 빈 무덤을 선택하다
[이규왕 목사의 아름다운 자연사진 이야기] (18)성지 예루살렘에 있는 두 종류의 무덤- 감람산묘지와 성묘교회(聖墓敎會)
구약의 역사와 예수님의 행적이 남겨진 예루살렘을 가리켜 흔히 성지(聖地)라고 하며, 크리스천들은 평생 한번이라도 그곳을 방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밟아 보고 싶어 한다.
오늘 소개하는 사진은 예루살렘성전 동편에 위치한 미문 또는 황금문 건너편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부터 감람산 기슭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을 촬영한 장면인데, 온통 무덤들뿐이다. 본래 황금문은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 문으로, 성벽의 다른 문들보다 아름답기 때문에 미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은 출입을 할 수 없도록 아예 문을 막아 버렸다. 그 이유는 장차 메시아가 동편 문을 열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는 예언 때문이라고 한다.(겔 44:1~2)
이처럼 메시아가 동쪽 문으로 오실 때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무덤들이 제일 먼저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기드론 동편에서 산언덕까지 수많은 석관들이 마치 벌통처럼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것이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아가 이미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하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아가 언젠가 그날 동편 황금 문을 열고 입성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예루살렘 동문 밖 무덤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곳에는 지금 묘지난이 생기고 말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수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여기에 ‘죽은 자들을 위한 도시’(City of the Dead)라고 일컫는 현대판 카타콤(Catacomb)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동편 해발 830m 높이의 감람산 전망대에 올랐을 때, 예루살렘 성곽을 경계로 하여 산 자들의 땅 예루살렘 성안과 죽은 자들의 땅 감람산 묘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보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현재 무덤에 묻힌 이들도 과거에는 성 안에 살았던 사람들인 것처럼, 현재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성 밖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지 예루살렘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고 오는 역사 속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밟아야 하는 인생길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간극(間隙)은 마치 백지 한 장의 앞뒷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의 경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산 자는 죽은 자의 땅으로 이주하지만, 이미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땅으로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종과 종파와 신분을 초월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경계를 무너뜨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처럼 죄인인 인간의 힘으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역주행이 불가능한 일이다.
예루살렘 순례객들이 감람산에서 내려와 성 안으로 들어가면 필수코스가 나타난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채찍질 당하시면서, 너무나 힘이 들어 때로 주저앉기도 하시면서 힘들게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던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길을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라틴어로 ‘비아(Via)’는 ‘길(way)’, ‘돌로로사(Dolorosa)’는 ‘슬픔’을 뜻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로마 병정이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주님은 심장에 있던 물과 피까지 다 쏟으시고 운명하셨다. 그 같은 상태로 차디찬 돌무덤에 삼일 동안 장사(방치)되었다면 부활을 반대하는 자들이 말하는 ‘기절설’ 같은 것은 불가능한 주장이다.
부활은 제자들의 위작이 아니다. 예수께서 예고하신 대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열두 제자는 물론, 일시에 500여 형제들에게 보이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 바로 부활이다. 성경은 예수 부활의 목격자들의 기록이다,
이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물증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필수코스로 찾는 장소가 성묘교회(聖墓敎會)이다. 필자가 성묘교회를 방문해보니 큰 교회당 안의 예수님 빈 무덤 터 위에 마치 계란 노른자위처럼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진 또 하나의 작은 교회당이 세워져 있었다. 각국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빈 무덤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으며, 필자도 줄을 섰다가 무덤 안에 들어가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독교의 본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이 죽은 자의 무덤이었다면 성 밖 공동묘지에 있어야 하겠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루살렘성 안에 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산 자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성 안에 편입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역주행인 것이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두 종류의 무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불신하고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며 성문 밖 죽은 자들이 묻혀 있는 무덤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 안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선택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지 여부로 결정된다.
글·사진=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원로)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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