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12)중보자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영원한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다
1. 직분을 기꺼이 다 수행하심
“주 예수는 이 직분을 가장 기꺼이 떠맡으시고 이를 수행하시기 위하여 율법 아래에 나셨고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셨고, 가장 극심한 고통을 자기 영혼에, 가장 괴로운 고초를 자기 몸에 직접적으로 겪으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으며, 장사되시고 사망의 권세 아래에 머무셨으나 어떤 부패도 보지 않으셨다. 셋째 날 그는 고난을 당하신 그 동일한 몸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고, 그 몸으로 또한 하늘로 오르셨으며, 그곳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중재하신다.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다.”(8.4)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우리는 사도신경에서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잉태, 탄생, 고난당하심, 죽음, 장사, 부활, 승천, 재위(보좌 우편에 앉으심)를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서, 재림을 일어날 역사적 사건으로서 고백한다.
주님은 ‘기꺼이’ 자신을 드려 대속의 의를 이루셨다. 이에 합당하다 여기시고 죄가 없으심에도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고(마 3:15; 막 1:4), 시험을 받지 아니하심에도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눅 4:1; 마 4:1). 이후에 당하실 수난을 누차 예언하셨고(마 16:21; 17:22~23; 20:17~19), 마지막 때 보냄을 받은 아들로서 ‘성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아셨으나(마 21:37~40; 히 13:12), 그 자리로 나아가시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셨다. 잡히시던 밤에 떡과 잔을 제자들과 나누시며 그것들이 자기의 살과 피의 표징이 됨을 말씀하셨으나(마 26:26~29), 제자들과 함께 찬미하는 가운데 묶는 밧줄이 기다리는 감람산으로 가셨다(마 26:30). 그리고 이미 자기를 팔 것을 알고 계셨던 가룟 유다가 이끄는 무리 앞에 나서서 ‘내가 그니라’하시며 잡히셨다(마 26:21~25; 요 18:6).
초대교회의 교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말했듯이, ‘취해지지 않은 것에는 치유가 미치지 않는다’(quod assumptum non est, curationis est expers). 주님은 우리와 같이 영혼과 육체의 전인(全人)이 되셔서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구원하셨다. 주님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셨다. 그 영혼의 ‘질고’와 ‘수고’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씨(후손)가 되었다(사 53:10~11).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히 5:7).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그 영혼에 극한 놀라움, 슬픔, 고민, 괴로움이 있었다(막 14:33; 마 26:37~38; 요 12;27).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버림을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버림받음을 대신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심으로 그 대속의 유기(遺棄)를 선언하셨다(마 27:46; 참조. 시 22:1).
영혼의 최고의 고통은 죽음 그 자체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무에 달려 저주의 죽임을 당하셨다(마 27:50; 갈 3:13; 신 21:23). 그 죽음으로 모든 의가 다 이루어졌다(요 19:30).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그가 율법 아래에 나셔서(갈 4:4)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타락으로 인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죽음의 종 노릇하는 인류를 위한 대속이 값을 치르셨다(갈 3:10; 히 2:15).
주님은 죽음으로 죽음을 죽이셨다. 그리하여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은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죽음 가운데서의 죽음의 죽음>(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이라는 제명으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다루었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중보자 그리스도가 인성에 따라서 죽으시고 신성에 따라서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셨다(롬 1:3~4). 그리고 그 권능으로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도 그리도 이후에도 우리를 다스리신다(히 12:2; 벧전 3:22).
2. 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
“주 예수는 자기의 완전한 순종과 영원한 성령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단번에 하나님께 올려드린 제사에 의해서 그의 아버지의 의를 충분히 무르셨고 아버지가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화목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영원한 유업을 사셨다. 대속의 사역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의 성육신 이후까지는 실질적으로 야기되지 않았지만 그것의 능력, 효력, 은총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 약속들, 모형들, 제사들 가운데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서 세상의 태초로부터 모든 세대에 계속적으로 교통되었다. 그것들에서 그는 세상의 태초로부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뱀의 머리를 상할 여자의 후손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계시되셨고 의미되셨다.”(8.5-6)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형제 삼기 위함이셨다(히 2:11, 17).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엡 2:1, 3), 영원히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자녀요 상속자로 삼으셔서, 그 품에 안고자 하셨다(엡 2:1, 3; 롬 8:17; 요 1:18).
주님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원대로 행하셔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땅에서는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자들에게 평화를 주시려고(마 26:39; 요 17:5; 눅 2:14) 모욕과 수치와 능멸 가운데 죄의 판결을 받으셨다. 그리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말씀이 성취되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주님은 자기의 몸을 화목제물로 삼아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한 사람’의 피로 ‘영원한 속죄’가 ‘단번에’ 이루어졌다(롬 5:19; 히 9:12). 주님은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셨다(히 9:14).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 즉 존재를 주셨다(엡 5:2; 갈 1:4; 딛 2:14).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른 영원한 왕이시자 대제사장으로서(히 6:20; 시 110:4), 자기 몸을 제물로 삼으시고 십자가에서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히 10:10~1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계 5:12)으로서, 보아스가 룻에게 그랬듯이, 우리의 기업을 무르셨다(룻 3:9).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제사장,’ 자기 자신을 ‘양’으로 드리신 ‘선한 목자’(요 10:11, 17), 자기 자신을 ‘종’으로 비우신 ‘믿음의 주’가 되셨다(히 12:2).
구원 받은 백성의 명부(名簿)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주신 어린 양의 생명책이다(계 13:8). 그 책에 기록된 자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아들과 함께 영원토록 동일한 복을 누린다(히 13:8). 그 복은 그 양의 살과 피로 양식과 음료를 삼아 영원히 사는 것이다(요 6:53~55).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3. 다 이루신 의의 전가
“그리스도는 그가 구속의 값을 지불하신 모든 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시고 말씀 가운데 그리고 말씀에 의해서 그들에게 구원의 비밀들을 계시하시면서, 자기의 영으로 그들을 효과적으로 감화시켜 믿고 순종하게 하시면서, 자기 말씀과 영으로 그들의 마음을 통치하시면서, 그의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경륜에 가장 조화로운 방식들과 방편들을 사용하여 자기의 전능한 힘과 지혜로 그들의 모든 적을 싸워 이기시면서, 그 동일한 것을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적용하시고 나누어 주신다.”(8.8)
주님은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셨다(요 4:25). 그가 구약에 계시된 모든 언약과 절기와 제사를 다 이루셨다(요 19:30). 이제 그를 믿는 자마다 단지 ‘약속 아래에’ 있지 않고 ‘약속의 성취 아래에’ 있게 되었다. 즉 ‘은혜 아래에’ 있게 되었다(롬 6:14). 구약의 백성이 ‘바라며’ 믿었다면(히 11:1), 신약의 백성은 ‘보고 자세히 보고’ 믿게 되었다(요일 1:1). ‘영원한 생명’을 보게 되었다(요일 1:2).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보혜사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를 모두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셨다(행 2:33). 즉 값 없이 전가해 주셨다(롬 4:4~8; 고전 6:20).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가 없다(롬 8:1). 하나님이 죄를 사하셨으니, 아무도 죄를 삼지 못한다(롬 8:34). 빛이 임하여 어둠을 물리쳤으므로, 빛의 자녀로서 더 이상 어둠에 속하지 않는다. 그 빛이 사람들의 생명이므로 더 이상 사망이 주장하지 못한다(요 1:4; 롬 6:9). 여전히 곤고함이 없지 않으나 죄를 범하여도 주님이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롬 7:24; 요일 2:1). 주님이 끝까지 이끄신다. 보호하시며, 열매 맺게 하신다. 주님이 끝까지 견인하신다. ‘한 영원한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다(히 10:12, 14). 아멘.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