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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3대’의 해피엔딩

미션(cmc) 2008. 12. 29. 08:48

‘과속 3대’의 해피엔딩

 

[윤성은의 이달의 영화 하나_‘과속스캔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과속의 잔불은 없는지 돌아보고, 있다면 그것을 끌 수 있는 용기와 책임감을 구해야겠다.

   

지난 11월 말쯤이었던가? 친구와 영화관 앞을 지나는데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한 아가씨가 영화 시사회를 본 후 별점을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영화 보고 글 쓰는 게 업인 나로서는 그 제안이 반가웠지만, 제목과 포스터가 썩 구미에 맞지 않아 제안을 뿌리쳤다. 그리고 3주 후, 몇 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린 ‘과속 스캔들’을 보고야 말았다.

‘과속 스캔들’은 인기 DJ 남현수에게 스물두 살의 미혼모 황정남이 아들 황기동을 데리고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황정남은 남현수가 중3때 옆집 누나와 사고를 쳐서 생긴 딸이고, 황기동은 황정남이 고1 때 첫사랑과 속도위반을 해서 낳은 남현수의 손자이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감도 떨어지고 신선한 맛도 없다. 갑자기 나타난 자식과의 부적절한 동거는 ‘파송송 계란탁’이나 ‘아기와 나’등의 영화에서 이미 여러 차례 보았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과속 스캔들’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개성 있는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내는 세 배우의 찰떡호흡과, 익숙한 멜로디의 배경음악, 제목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는 구성 때문이다. 그런데 ‘과속 3대’의 해피엔딩이 초절정 속도위반의 결과라는 점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해야 마땅할 대를 이은 속도위반은 코미디 영화의 설정으로 무마되었고, 관객은 그저 이들의 화해 여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객들은 폭로된 진실에 대한 ‘적절한 마무리’가 절실하다. 이러한 심리는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알았든 몰랐든 이미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잘’ 수습하는 것뿐이다. 상황에 따라서 그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극중 현수의 경우처럼 ‘진실’만이 고통의 실타래를 끊을 수 있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될까봐 계속된 거짓말로 진실을 덮었지만, 현수는 실체 없는 인기를 지키는 대신, 가족의 진실을 밝히고 행복을 찾았다.

완전무결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더 큰 발전의 가능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과속의 잔불은 없는지 돌아보고, 있다면 그것을 끌 수 있는 용기와 책임감을 구해야겠다.



윤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