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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 군가가 아닌 재미있는 노래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가 높은 모모타로(桃太郎) 노래다. 복숭아 속에서 나온 모모타로는 허리에는 칼과 수수경단을 차고 도깨비(오니·鬼)들이 사는 섬을 정벌하러 출정을 한다. “소라 스스메, 소라 스스메” 작대기를 들고 진격의 추임새를 하며 걸어가면 정말 수수경단 하나씩 주고 부하를 만든 개, 원숭이, 그리고 꿩이 내 뒤를 쫓아오는 것만 같다. 드디어 도깨비 나라에 당도하자 꿩은 날아서, 원숭이는 성벽을 넘어서, 모모타로와 개는 열어준 성문 안으로 돌격해 도깨비들을 모두 퇴치한다. 항복을 받은 모모타로는 빼앗은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엥야라야, 엥야라야” 수레를 끌며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모모타로는 늘 마음을 졸이게 하는 소금장수가 아니다. 여우와 도깨비들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모타로는 거꾸로 그들을 정벌해 보물을 빼앗아 온다. 일본 노래를 부르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는 어른들도 모모타로의 노래를 부를 때만은 따라 부른다. 언젠가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를 몰고 고향에 돌아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어린애였지만 왜 나는, 그리고 주변의 많은 어른들은 모모타로를 우리를 괴롭힌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지 못했을까. 탈아론(脫亞論)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인이면서도 모모타로를 침략자로 규정했다. 가훈을 통해서까지 자기 아이들에게 “모모타로가 도깨비섬으로 간 것은 보물을 빼앗으러 간 것이니 도둑이나 진배없다”고 가르쳤다. 설령 도깨비들이 세상을 해치는 악한자라고 해도 이들을 응징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보물을 약탈해 오는 것은 사욕에서 나온 비열한 행위라고 했다.
왜 내가 모모타로 노래를 하고 놀 때 그와 같은 가르침을 준 어른들은 없었는가. 내게 더욱 충격을 준 것은 한국에도 팬이 많은 아쿠타가와(芥川龍之介)가 쓴 모모타로의 패러디를 읽었을 때였다. 아무 때고 인터넷을 열어 검색을 하면 읽을 수 있는 그 소설에서 도깨비섬은 야자수가 우거진 극락조가 우는 아름다운 낙원으로 설정돼 있다. 도깨비들은 거문고를 켜고 춤을 추면서 옛날 시를 읊기도 하고 여자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겨운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높은 문화와 평화의 섬에 부하들을 이끌고 침입한 모모타로는 모든 것을 부수고 살육하고 평화롭던 섬을 초토화한다. 그리고 보물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항복을 한 대장은 간직한 보물을 내주면서 이렇게 묻는다. “혹시 우리가 댁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일이 있었나요.” 그러나 모모타로는 자기가 일본 제일의 무사라는 것과 자기에게는 세 부하가 있기 때문에 이 섬에 쳐들어 온 것이라고 말한다. 명분도 논리도 없는 말을 하고는 인질까지 잡아 가지고 보물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도깨비들은 평화주의자로, 모모타로는 침략자로 그려졌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모모타로를 패러디한 아쿠타가와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가 중국에 갔을 때 청말의 대 국학자요 노신의 스승이기도 한 장빙린(章炳麟) 선생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아쿠타가와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일본인은 모모타로”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아쿠타가와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그 모모타로가 침략의 캐릭터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실제 인물, 살아 있는 일본 사람보다도 가공의 설화적 인물인 모모타로를 더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을 것이다. 실체보다도 허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창조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현실.
우리 지식인들은 왜 아쿠타가와의 모모타로와 같은 텍스트를 창조하지 못했는가. 우리 어른들은 왜 장빙린 국학자처럼 모모타로가 살아 있는 일본인들보다도 더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주지 않았을까. 이것이 커서도 내가 잊지 못하는 모모타로 콤플렉스다.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다.
중앙일보 고문 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