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파노라마
신약(1)
Ⅰ. 복습
1. 창조시대
창조로부터 아브라함 시대 이전까지의 역사로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 사건등을 기록한 창세기 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과 셋, 그리고 노아 시대로 들어와서 인간의 타락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홍수의 과정 그리고 인간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바벨탑 사건을 공부 했습니다.
2. 족장시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요셉까지 족장들의 역사로 아브라함의 가족상황과 갈대아 우르를 떠난 그의 삶의 여정, 그리고 이삭의 평안함 삶과, 야곱의 험난한 삶, 그리고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을 공부 했습니다.
이 내용은 창세기 50장까지입니다.
3. 출애굽과 광야시대
고센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에 따라 출애굽하는 과정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훈련받는 과정,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내용입니다.
4. 정복시대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끝마치고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정복하는 과정입니다.
제일먼저 가나안 중부 지역인 여리고성, 아이성등을 정복하고, 남부로 내려가 아모리 다섯왕을 물리치는 등 남부 정복, 그리고 하솔 왕을 주축으로 한 북부 지방을 정복함으로 어느 정도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기업 분배가 이루어 지는 부분으로 여호수아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5. 사사시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게 됨에 따라 나타난 하나님의 징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사들의 활동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사사들은 웃니엘을 시작으로 삼손까지 열두명의 사사로 사사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6. 단일왕국시대
사울 왕부터 시작하여 솔로몬 왕까지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던 왕으로 사울왕의 등극에 얽힌 사무엘 선지자의 활동부터 시작하여 솔로몬 왕의 타락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 상부터 열왕기상, 하 부분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7. 분열왕국시대
솔로몬 왕의 범죄에 따른 왕국 분열과 북 이스라엘 19명 왕의 활동과 남 유다 20명 왕의 활동에 대해서 공부 했습니다.
열왕기상, 하, 역대 상, 하 부분 부분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대부분의 선지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8. 포로시대
북이스라엘은 호세아 왕때 B.C722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유다는 시드기야 왕때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한 과정과 그 이후 바벨론의 포로생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에스더, 에스겔과 다니엘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9. 포로귀환시대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서기관 예수아의 인도로 시작된 포로귀환은 2차 포로귀환은 에스라의 인도로 3차 포로귀환은 느헤미야 인도로 이루어 졌음을 공부 했습니다.(9만 5천명)
에스라, 느헤미야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10. 침묵시대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를 공부한 다음 신약성경 마태복음이 쓰여질때까지의 기간에 대해서 공부 했습니다.
이 시대의 여러 가지 상황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시기의 배경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세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① 정치적 상황
B.C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스라엘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고레스 원년부터 시작하여 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바사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사가 B.C331년에 알레산더의 헬라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헬라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이후 4개의 나라로 나누어 지는데 이스라엘이 속한 팔레스틴 지역은 애굽왕조였던 톨레이 왕조와 시리아 왕조였던 셀류커스 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셀류커스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 특히 안티쿠오스(안티오커스) 4세의 극심한 박해 때문에 일어난 이스라엘 마카비 왕조의 독립 운동으로 최소한 100년동안 이스라엘의 독립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마카비 왕조는 타락하여 하스몬 왕조를 형성 하게 되었고, 특히 아론의 후손이였던 대제사장직을 다윗시대때 와서는 사독후손들이 대제사장직을 이어받았는데, 자신들이(하스몬 왕조) 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타락하고 부패한 가운데 나라를 이끌어 가다가 로마의 아리스토불루스 2세에 의해 B.C 63년에 완전히 멸망당하고 속국이 됩니다.
로마의 지배을 당하게 된 팔레스틴(이스라엘)은 에돔사람으로 거부였던 헤롯 안티파터가 유대 왕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왕이 바로 이 헤롯 안티파터,즉 헤롯 대왕입니다.
그리고 헤롯 대왕사후 유대는 그의 세아들 아켈라오, 안디바, 빌립에 의해서 나뉘어져 다스려지게 됩니다.
이때 로마 왕은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였습니다.
② 사회적 상황: 정복당한 지역으로서 복잡한 인적 구성을 가진 혼란한 사회였습니다.
. 로마를 등에 업은 권력층과 독립투쟁 세력(헤롯당과 열심당)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헤롯당: 유대지역의 왕이였던 헤롯 가문의 세력으로 정치적으로 타협주의요 실리주의자들
열심당: 주로 로마를 상대로 암살, 테러를 하며 투쟁하던 그룹
. 종교적 기득권 세력과 비판 세력(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이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자신들의 욕심을 종교적으로 위장한 무리들로 타락한 대제사장 그룹들이 하스몬 왕조를 지지하고 헬라화를 주창하면서 부와 권력을 추구했던 귀족주의적, 세속주의적 당파
(부활, 천사, 영이 없다고 주장)
바리새파: 유대교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이였던 그룹으로 평민들속에서 회당의 예배와 교육에 더 관심을 두었고 부활, 천사, 영에 대해서 믿고 있었던 지파
③ 문화, 사상적 상황: 전통적인 유대주의가 헬라 사상에 의해 위협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히브리즘) 헬라니즘
신 중심의 사고 인간 중심의 사고
관계 중심의 사고 개체 중심의 사고
의미 중심의 사고 사실(현실)중심의 사고
④ 지리적 배경
Ⅱ. 신약
1. 신약의 구조
① 복음서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② 역사서 - 사도행전
③ 서신서 - 바울서신(로마서, 고린도전, 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 후서, 디모데전,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일반서신(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 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④ 예언서 - 요한계시록
2. 신약의 세 가지 주요 시대
① 예수 그리스도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장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으며, 공생애 삼년은 병들고, 귀신 들리고, 가난한 자에게 회복을 선포하던 시간이었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사건이였습니다.
4복음서가 이 시기에 해당됩니다.
② 성령시대(1) - 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교회가 탄생한 시기입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사역을 감당하는 것으로서, 이 시대는 주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며 갈등하던 시기였습니다.
사도행전 1-15장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됩니다.
③ 성령시대(2) - 선교시대
주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선교의 명령을 감당했던 시기로 예루살렘과 유대에 머물러 있던 복음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해당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
신약(2) - 9/20
Ⅰ.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시절 - 사생애
Ⅱ. 공생애
Ⅲ. 십자가와 부활, 승천
* 4복음서에 대해서
① 공관복음 - 마태, 마가, 누가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공관성(공통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말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주로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공관 복음은 그리스도가 우리들 앞에서 행하신 이적, 비유, 연설을 들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 예수님을 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원래 유대인을 위하여 쓰여진 책으로 예수님이 그들이 오랫동안 고대한 메시야이시며 다윗의 자손이고 그의 삶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생애임을 유대인에게 보여주고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약을 인용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 예수님을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원래 로마인들을 위해 기록된것이며 여기에는 예수님의 가계보(족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종의 족보에 대해서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서 안에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은 이적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로마인은 말씀보다 행동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완전한 인간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헬라인을 위해 씌여진 것이며 예수님의 세계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로 소급되어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②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장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생애시 역사적 배경
① 예수님 탄생 당시의 역사적 배경
이 기간의 역사를 살핌에 있어서 두가지 큰 사건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B.C 4년 예수님의 탄생 직후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헤롯 대왕의 2세 이하의 유아 살해 사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올라 오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사건으로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내린 인구 조사 명령입니다.(눅2:1)
전자의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사건으로 헤롯 대왕이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2세 이하의 유아들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헤롯 대왕이 동방 박사 말에 이렇게 과잉 반응을 보인 것은 헤롯 대왕은 집권 말기 자신의 권좌를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왕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대에 왕이 나타난다는 소식은 헤롯왕에게는 엄청난 큰 충격이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후자의 사건은 로마 제국은 로마 시민들의 재산 상황 파악과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매 14년마다 한번씩 정기적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조사는 로마 시민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속국에도 실시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도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 팔레스틴 지역에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올라와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였습니다. 그때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② 예수님 유년 시절의 역사적 배경
성경에서는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12세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는 기록뿐입니다.(눅2:40-51) 그러나 성경 이외의 책을 통해서 잠시 살펴보면
헤롯대왕이 죽은 이후 팔레스틴 지역은 헤롯의 세명 아들에 의해서 분할 통치되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유언으로 분할 통치가 바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인준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는 점령지의 자의적인 왕권 세습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로마가 헤롯 대왕에게는 팔레스틴 전체를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고 정식으로 유대 왕이라는 칭호를 주었으나 그 아들들에게는 유대 지역 전체가 아닌 일부 지역만 관할할 수 있는 분봉왕의 직위 밖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헤롯 아켈라오(유대와 사마리아), 헤롯 안디바(갈릴리와 베레아), 헤롯 빌립(드라고닛 지방)이였습니다.
③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의 역사적 배경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아켈라오가 로마에 잘못보여 고울이라는 곳으로 추방되고 그 대신 빌라도가 제 5대 유대 총독으로 오게됩니다.
원래 총독들은 평상시에는 팔레스틴 지역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로마의 직영으로 세운 도시인 가이사랴에 머물러 있다가 유월절과 같은 명절이나 폭력 사태가 발생될 것이라 우려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는 예루살렘에 임시 총독 관저를 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만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할때도 그러한 상황이였습니다. 유대 총독은 대개 법률과 치안, 그리고 세금 징수만 관장했으며 나머지는 산헤드린을 통한 유대인의 자치에 맡겨졌습니다.
④ 예수님의 승천에서 예루살렘 멸망까지 역사적 배경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기독교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먼저 복음이 유대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물론 선교 초기에는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의 문제를 놓고 어느 정도의 논쟁이 있었지만 그것은 바울을 통하여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더욱이 선교 역사에 있어 바울의 출현은 매우 회기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에 의한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은 지중해를 사이에 둔 여러 지역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매우 많은 결신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수난 직후부터 기독교는 계속 박해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은 그의 속국들에게 황제숭배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기독교인들은 유일신 여호와 신앙을 가졌음으로 당연히 박해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하여 A.D 64년 로마의 대화재 사건때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가
극에 달한 박해의 대표적인 모습이였습니다.
* 예수님에 대한 예언 및 성취 구절
Ⅰ.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시절
1. 동정녀 탄생
예수님은 인간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분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원죄의 사슬 속에 있는 사람은 결코 죄 가운데서 인간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잉태할 당시 마리아는 ‘정혼’상태였는데, 이것은 약혼과 달리 이미 결혼 한 것이지만, 아직 동침하기 전의 상태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의 자손 요셉의 후손인 것입니다.
2. 족보
예수님의 정체성은 족보 속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두 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족보(마1:1-17)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이스라엘 족보), 다윗왕가의 중심의 족보(다윗에서 솔로몬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누가복음 족보
예수님부터 하나님까지(온 인류의 족보), 왕가 중심의 족보가 아님(다윗에서 나단으로)
온 인류의 구속자로 오신 두 번째 아담으로서 예수를 헬라인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좁게 보면 약속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오셨지만, 그 이스라엘의 존재를 택하신 이유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온 인류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3. 탄생시 일어난 일들
예수님의 탄생 시에 일어난 일들은 인류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시는 일과 인간 가운데 가장 비천한 자로 태어나심을 현실적으로 보여 주는 일,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인류의 왕으로 오심(이스라엘 왕으로 오심)
엘리사벳의 예언(눅1:39-45)
동방 박사들의 경배(마2:1-12)
목자들의 체험과 경배(눅2:8-20)
헤롯의 유아 학살 사건(마2:15-18)
시므온과 안나의 찬양(눅2:25-38)
- 비천한 자로 태어나신 현실(예수님의 사역 내용)
마굿간에서 태어 나심(눅2:1-7)
애굽으로 피신(마2:13-15)
나사렛에서 이름없이 보낸 유아기(마2:19-23)
그러므로 이 탄생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어린 시절
- 정결예식(눅2:22-39)
모세의 정결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감
- 첫 번째 유월절(눅2:41-52)
성경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 가운데 열두살 때 첫 번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야기만을 유일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주 의미가 큽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생애동안 인간들과 똑같은 삶을 사시면서도 계속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처럼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어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생애와 유월절
열두살 때 처음으로 성전에 올라 간 날이 유월절임
공생애 기간동안 매년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십자가에 죽으신 날이 유월절임
최후의 만찬도 유월절 식사였음
Ⅱ. 공생애
1. 세례받으심
세례는 원래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할 때 과거의 죄를 씻기 위해 받는 예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요한이 모든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베풂으로써 영적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죄 있는 자가 그 죄를 씻기 위해 받는 세례를 죄 없으신 주님이 왜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으나 크게 두가지로 답을 한다면 구약의 예언을 이룸을 통해서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바톤 터치입니다. 예수님께 요한이 세례를 준 것은 주의 길을 예배하는 자로서 자신이 할 마지막 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므로 그 준비된 것을 인수 받으신 것입니다.
2. 금식기도
40일간의 광야 금식기도는 공생애를 출발하는 예수님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금식 기도를 통해서 깨달은 바를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확인하신 시간이었습니다.
- 시험 내용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내게 절하면 보이는 모든 것을 주겠다.
뛰어 내리라 천사가 받들어 줄 것이다.
3. 예수님 초기 사역(직접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고치시며 사람들을 회복시키셨음)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주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갈릴리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하신 일은 ①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고, ② 그 제자들과 함께 직접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교육과 선교와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신 그것이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메시지가 다르고,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메시야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열광적인 백성들이 주님께 모여들기 시작하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사두개와 바리새파등의 종교 지도자들이 서서히 예수님을 주목하면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4. 예수님 후기 사역(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수난을 예고하며 십자가를 준비하심)
언제부터 후기 사역이라고 정확히 나눌 수는 없지만, 대략 열 두 제자를 파송하셨던 그때부터를 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후기 사역동안 주님은 갈릴리 북부를 비롯해서 온 이스라엘을 두루 돌아서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먼 거리를 여행하시며 초기처럼 많은 사람을 고치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등 회복의 사역을 하시는 한편, 세차례에 걸쳐서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무렵 종교 지도자들의 감시가 더 심해지고 예수님의 헛점을 잡으려고 집요하게 노리는 것이 심해지는데도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판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와지고, 메시지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으면 기절한 정도의 파격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예수님의 주요 사역지
Ⅲ. 십자가의 부활, 승천
1. 십자가(마27:32-56, 막15:21-41, 눅23:26-49, 요19:17-37)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 죽음 안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① 십자가의 죽음은 사탄의 세력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헛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이고 투쟁하는 것은 사탄의 장기이지만, 희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② 고통의 대가가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0일 금식기도 때에 이미 얻은 결론이였습니다.
③ 인간의 본성은 철저하게 타락했으므로 십자가에서 함께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두가지 재판을 받았습니다. 종교 재판과 정치 재판이였습니다. 종교 재판에서 받은 죄목은 ‘신성모독, 성전 모독’이었고, 정치 재판에서 받은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사칭한 것 즉, 반란죄’였습니다. 이렇게 두 번의 재판을 받으신 이유는 그 당신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죄목을 만들어 붙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육체가 겪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과 죽음, 인격의 철저한 파괴, 그리고 영혼의 버림받음까지, 완전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 십자가 수난의 시각
2. 부활(마28:1-10, 막16:1-18, 눅24:1-12, 요20:1-18)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결론이요, 마무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위대한 것은 그 죽음 뒤에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수난예고 때마다 언제나 십자가의 죽음뒤에 나왔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영, 혼, 육의 완전한 부활이었습니다.
3. 승천(막16:19-20, 눅24:50-53, 행1:9-11)
주님의 승천은 그 당시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별 이야기’였으나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만남의 이야기’입니다. 성령을 통해 만나고, 남은 사역을 위탁한 교회를 통해서 만나고, 아니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승천은 이제 가신 그 모양대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영생을 위한 기회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사사
어떤 개별적인 위기 상황에서 그 상황을 해결하도록 여호와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일어선 구원자들로 한 지파나 더 많은 지파들을 지도하였던 인물을 말합니다. 그들의 직무는 일시적인 것으로 왕조와 같은 권력의 계승은 없었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한 옷니엘, 미디안에 대항하여 북쪽 지파(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연합을 지도한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 등등
*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는 대변자들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로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한 지파나 여러 지파만 사역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대상으로 사역함
참선지자의 기능에 대해서는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18:1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파노라마
신약(3) 9/27
* 사복음서 비교
|
마 태 복 음 |
마 가 복 음 |
누 가 복 음 |
요 한 복 음 |
예수를 보는 시각 |
약속된 메시야
(슥9:9) |
순종과 희생의 종
(사42:1) |
흠없는 인자
(슥6:12) |
성육신 하신 성자(사40:9) |
대 상 |
유대인 |
로마인 |
헬라인 |
온 세상 |
주 제 |
그리스도가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도래 시킴 |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세상을 섬김 |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심 |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에 대한 믿음의 당위성 |
족보의 유무 |
있다
왕의 신분을 입증함 |
없다
종은 족보가 필요치 않음 |
있다
인간임을 입증함 |
없다
하나님은 족보가 필요치 않음 |
저자의 직업 |
세관원(세리) |
부유한 집안 출신의 선교사 |
의사 출신의 선교사 |
어 부 |
그리스도의 사역 |
천국을 설립하여 통치자가 되시기 위해
왕으로 오심 |
죄인된 인간을 섬기고 구속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종으로 오심 |
인간을 창조 당시의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심 |
구원을 계시하고 성취하기 위해 성자로
오심 |
Ⅰ. 마태복음
지난 시간에 이야기 한 것처럼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오랫동안 고대한 메시아시며 다윗의 자손이고 그는 왕으로 오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을 우리는 이 말씀의 첫절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자 마태는 구약을 29번이나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위치는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이후 예수님의 탄생 선포가 있을 때가지 400년간의 침묵을 깨뜨린 책입니다.
마태복음서는 구약 성경에 뒤이어 신약 성경 맨 처음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만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잇는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의 특징
마태복음은 유대인이었던 마태가 그 동족 유대인을 위하여 그 역시 한 사람의 유대인이었던 예수에 대하여 쓴 유대인의 복음서입니다. 이러한 마태복음은 결코 구약의 참 정신을 인본주의적이요 폐쇄적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곡해한 유대교적 오류에 물들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과 구약 계시가 상호 연속성을 가진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메시야 사상의 강조와 구약의 빈번한 인용등 유대적 색체가 강함
. 예수님의 왕적 지위와 왕적 교훈의 강조
. 구약의 예언들에 대한 그 성취를 보여주고 있음
. 마태의 직업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화폐와 수치에 대한 빈번하고 자세한 언급
1. 왕의 오심(1:1-2:23 그리스도의 족보,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 박사들의 경배, 애굽 도피, 헤롯의 유아 학살, 나사렛으로 돌아옴)
장소: 베들레헴, 애굽, 나사렛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요한 골자는 나사렛 예수는 모세와 또 다른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요 구주이심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① 지도와 일력
세계의 모든 지도와 모든 일력은 그리스도의 탄생지와 탄생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② 왕의 계보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왕손 계통에 속한 분으로서 왕으로, 메시아로, 유대족의 사자로, 이스라엘의 약속된 통치자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③ 왕의 경배자들
복음서 저자들 중 마태만이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박사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파사(페르시아) 나라의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2. 왕국의 선포(3:1-11:1 세례요한, 세례, 시험, 갈릴리사역개시, 산상수훈, 왕의 능력 드러냄 (치유, 이적), 제자삼고, 파송)
장소: 유대, 갈릴리, 나사렛
① 세례요한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선지서 가운데서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의 오심을 말할 때 그는 “한 소리”라는 말로써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바로 이 세례 요한이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였습니다.
② 옛 율법을 완전케 함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율법과 규범이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하늘의 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가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③ 하늘 나라
마태복음에는 나라란 말이 무려 55회나 나오고 있고 “천국”이란 표현은 35회나 나오고 있는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입니다.
3. 왕의 거절당함(11:2-20:28 바리새인들의 배척, 나사렛의 배척, 헤롯의 배척, 서기관과
사두개인들의 배척, 베드로 신앙 고백후 3차에 걸친 수난 예고)
장소: 갈릴리, 유대
성경말씀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1)”란 말씀입니다. 애초에 하나님 나라는 상속권을 가진 이스라엘의 자손(유대백성)에게 주어졌으나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유대인의 손으로부터 거두어져 다른 나라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① 그들은 자기 나름의 길을 원했습니다.
② 약속하신 교회
예수님은 북쪽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셔서 그의 제자들과 사적인 면담을 하며 크나큰 진리를 드러내셨습니다. (마16장)
복음서 가운데는 마태복음에만 “교회”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③ 십자가의 그림자(16:21-23, 17:22-23, 20:17-19)
이때로부터 예수님은 미래를 가리고 있는 커텐을 열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4. 왕의 승리(20:29-28:20 예루살렘입성, 재림과 종말 경고, 최후의 만찬,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 부활)
장소: 예루살렘과 성전
종려 주일 아침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군중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이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곤 간악한 자들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왕의 승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개요
Ⅱ. 마가복음
이 책의 저자는 마가라는 성을 가진 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었고, 바나바의 생질이였으며(골4:10),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나중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120명의 사도들이 모일 때 집을 제공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 1차 선교여행시 동행을 했다가 도중에 되돌아와 나중 2차 선교 여행시 바울과 바나바를 싸우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한 사람이였습니다.
* 마가복음의 특징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의 주제가 종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었기에 자연히 저자 마가는 예수님의 교훈이나 그에 대한 교리보다도 그의 행동, 특히 그의 이적이 다른 무엇보다 강조되어 있습니다. 더더욱 마가복음 문체 자체도 직선적이고 간결합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한 사건과 또 다른 사건 사이에 ‘곧 또는 즉각’이란 단어가 42회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1. 종의 준비됨(1:1-13)
① 세례 요한에 의한 준비 - 1:1-8
② 세례를 받음으로 준비 - 1:9
③ 성령을 받음으로 준비 - 1:10
④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준비 - 1:11
⑤ 마귀에게 시험받음으로 준비 - 1:13
2. 종의 사역(1:14-5:43 비유, 치유, 이적, 제자임명, 파송)
장소: 갈릴리, 예루살렘
마가복음은 종(그리스도)의 계속적이며 부단한 봉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서에서 우리는 “그리고 예수께서 이같이 행하시고, 그리고 예수께서 저같이 말씀하시고”하는 식의 연속적인 말씀을 여러 번 읽을 수 있습니다.
3. 종이 거절당함(6:1-15:47 배척, 수난예고, 십자가 처형)
장소:갈릴리, 변화산, 예루살렘, 유대
마가는 왕국의 왕이 되심에 대한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왕되신 그가 받게 될 대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고통과 거역의 냉랭한 대접이었습니다.
4. 종이 높여짐(16:1-20 부활)
종이 되신 예수님은 그의 생명을 만 백성을 위하여 대속물로 드린 후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습니다.
Ⅲ. 누가복음
이 책의 저자는 바울의 동료인 의사 누가입니다. 누가는 성경의 저자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이며 안디옥에 거주하던 헬라인 의사였습니다.
누가는 많은 교육을 받은 예민한 관찰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1:1을 보면 사도행전도 누가에 의하여 쓰여진 책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지난 시간에도 언급한 것처럼 원래 헬라인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헬라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대인이나 로마 사람과 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헬라인은 보다 폭 넓은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미를 사랑하고, 수사학, 철학을 추구하는 민족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고등교육을 받은 누가가 복음서를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이상적인 완전한 사람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의 특징
누가복음의 저자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의 주제와 연결하여 예수님의 기적적인 탄생에 대하여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이었던 누가가 자신과 동일한 이방인들인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죄로부터 순결하신 유일한 인간으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완전한 인간이셨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지신 인자이심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의 족보, 성장과정, 인간적 감정 상태 등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방인, 여자, 가난한 자 등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과 인간의 삶 전반에 관한 예수님의 깊은 이해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 특징적인 면
. 목자들의 경배
. 예수님의 유년기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언급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인간성
성을 내려다 보며 우셨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인간의 고통과 고뇌를 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를 주체로 하여 복음서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 찬송의 복음
누가복음은 시의 복음서입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시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노래로 채워져 있습니다.
마리아의 기쁨의 노래(1:46-55)
사가랴의 노래(1:68-79), 천사의 노래(2:8-14)
. 기도의 복음서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심 - 3:21
홀로 기도하심 - 5:16
밤이 맞도록 기도하심 - 6:12
산에서 기도하심 - 6:28-29
기도의 본으로 기도하심 - 11:1-4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심 - 22:31-32
동산에서 기도하심 - 22:41-42
십자가 상에서 기도하심 - 23:34
1. 인자의 등장(1:1-4:13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 탄생과 관련된 사건, 유아시절,
공생애 이전 사건)
2. 인자의 사역(4:14-19:48 갈릴리중심사역, 유대중심사역)
3. 인자의 고난 - (20:1-23:56 고난주간, 십자가)
4. 인자의 승리 - (24:1-53 부활)
Ⅳ.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기독교를 구약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리하여 역사적 정통성이 없는 신흥 종교의 하나로 몰아붙이는 유대주의자들과 헬라 사상의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방인들에게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입증하고 이들로부터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이런 이유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신성을 강조하며 예수님의 공생애를 외적 사건 자체 로서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 나는 - 이다’와 같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많습니다.
. 사건보다는 대화와 설교 등의 교훈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구약 배경에 대한 이방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된 구약 성경의
인용이나 히브리인의 절기, 풍습에 대해 꼼꼼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증거들
-일곱가지 증언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세례 요한의 말) - 1:3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나다나엘의 고백) - 1:49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시라(베드로의 말) - 6:69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마르다의 말) - 11:27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도마의 말) - 20:28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요한의 말) - 20:31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그리스도 자신의 말씀) - 10:36
-일곱가지 이적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 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 4:46-54
베데스다의 병자를 고치심 - 5:1-47
5,000명을 먹이심 - 6:1-14
바다 위로 걸어가심 - 6:15-21
소경을 보게 하심 - 9:1-41
나사로를 살리심 - 11:1-57
-일곱 번 말씀하신 “나는, 내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니 - 8:12
나는 양의 문이라 - 10:7
나는 선한 목자라 -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14:6
내가 참 포도나무요 - 15:11
*내용
1.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1:1-18 성자의 성육신)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의 갓난아기로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던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2. 세상에 왔고(1:19-12:50 세례요한의 증거, 가나의 혼인잔치, 유대사역, 사마리아사역,
갈릴리사역, 예루살렘배척, 갈릴리배척)
그는 친히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사 행동과 말씀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군중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를
봅니다.
3. ‘고난과 죽음’ 다시 세상을 떠나(13:1-19:42 마가의 다락방, 겟세마네동산, 유다의 배반과 체포, 십자가 고난)
13-17장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시고 그의 제자들의 곁을 떠나시려 는 것을 보게 됩니다. 18-19장에서 예수님은 대적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십자가라는 무서 운 문을 통하여 세상을 떠나십니다.
4. ‘죽음을 이긴 승리’ 아버지께로 가노라(20:1-21:25 부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얼마 동안 뒤에 남은 제자들을 위하여 머물러 계셨으나, 이미 그의 얼굴은 하늘의 집을 향해 계셨습니다.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 사복음서 대조표
사복음서 대조표란 먼저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사복음서의 전체 기사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나서 어느 한 기사를 사복음서가 각각 어느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지를 대조 비교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어느 한 사건이 예수님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연대기적 위치를 확인하는데 있어서 또한 어느 한 기사의 평행 기사가 사복음서 각각 어느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찾아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성경파노라마
신약(4)
☞ 성령시대Ⅰ - 교회시대
1.교회의 탄생
2. 교회의 성장
3. 1차 박해
4. 교회의 확장
1. 교회의 탄생: 성령 강림으로 시작됨
성령 강림의 첫 번째 열매는 교회의 탄생이었습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고, 곧 그것이 교회의 시작이였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지상 명령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는 말씀의 실현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탄생한 교회는 ① 성령 공동체였고, ② 능력이 있는 공동체였고, ③ 증인 공동체 였습니다. 특히 영적 체험도 많았지만 동시에 인간 사이의 모든 이기심과 죄악이 사라져 버린 나눔과 사귐의 공동체였습니다.
① 부활후 40일간 공생애
제자들을 만나시고(게바, 12제자, 오백명), 보혜사 성령 약속하시고 승천하심,
②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세움(요셉)
③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 성령받음
2. 교회의 성장: 놀라운 성장 속에 각지에서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외침으로 하루에 삼천 명, 혹은 오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고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도들의 메시지는 ‘예수가 부활하셨고 그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였습니다.
- 수 많은 기적이 나타났고, 성도의 변화된 삶이 있었습니다.
- 본토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 및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도 많이 믿었습니다.
① 베드로의 설교(오순절설교 삼천, 솔로몬 행각 설교 오천)
②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고침(베드로와 요한)
③ 물건을 서로 나누고 통영함( 바나바 4:5-37, 아나니아와 삽비라5:1-113)
3. 1차 핍박: 헬라파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일어남
교회가 성장하면서 최초의 내부적인 갈등이 왔습니다. 그것은 본토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이 갈등이 표면화 된 것은 좀 치사하게도 먹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과부들의 구제 문제를 헬라파 유대인 대표 일곱을 뽑고 그들에게 맡김으로써 본토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잠재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명령대로 이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이르도록 퍼져 나가야 하는데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뽑았음에도 문제는 그치지 않고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를 시발로 해서 큰 핍박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때의 핍박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핍박이었습니다.
① 일곱집사를 선택함(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② 스데반의 설교와 죽음
4. 교회의 확장(8-12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확장해 가며 땅끝을 준비하였습니다.
1차 핍박의 결과는 교회의 확장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의 다섯가지 였습니다.
①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8:4-25),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 간다게에게 전도(8:26-40)
② 사울의 회심과 소명(9:1-22)
③ 베드로의 온 유대 전도 여행(9:32-43)
룻다에 사는 중풍병자인 애니아(8년)와, 욥바에서 죽은 도르가를 고침
④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9:44-10:23) - 욥바에 있는 시몬집,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음
⑤ 안디옥 교회 설립(11:19-22) -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핍박으로 흩어진 자들에 의해서
생겨남
⑥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12장)
☞ 성령시대Ⅱ - 선교시대
1. 1차 선교 여행
2. 예루살렘 종교 회의
3. 2차 선교 여행
4. 3차 선교 여행
5. 로마행
1. 1차 선교 여행: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13-14장)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 섬을 지나 지금 터어키의 북북 지역인 갈라디아 지방에 가서 약 2년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특이한 내용은 복음 전파의 주된 대상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옮겨 졌다는 것입니다.
구브로 섬(바예수라는 거짓 유대인 마술사가 눈이 먼 사건) - 소아시아 버가(마가요한이 바울 일행을 떠남) - 버시디아 안디옥(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함) - 이고니온(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돌로 치려는 것을 피해 도망) - 루스드라(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 고침, 돌에맞음) - 더베 - 버가 - 앗달리아 - 안디옥
2. 예루살렘 종교회의: 이방인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15장)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결과, 많은 이방인 결신자들이 생겼는데 교회가 그들을 받아 들일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논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 준수의 문제, 특히 할례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때까지 교회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전도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이방인들이 본격적으로 믿게 되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바울의 주장과 율법을 지키고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는 주로 유대주의자들 편이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리더였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베드로를 준비시켜서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한 체험을 갖게 하셨고, 이 간증의 결과, 회의는 이방인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외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3. 2차 선교여행: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16-18:22)
마가요한 문제로 파트너를 바나바에서 실라로 바꾸어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난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처음 계획을 변경하여 아시아에서 마게도냐, 즉 그리스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더베, 루스드라 - 드로아(마게도냐로 건너감) - 빌립보(두아디라시에서 자색 옷감장사인 루디아집에 거함, 귀신들린 여종 고쳐 줌으로 감옥에 갇힘) - 데살로니가(안식일에 강론하다가 쫓겨감) - 베뢰아(신사적) - 아덴(철학과 종교심이 많은 곳) - 고린도(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고린도회당의 회당장인 그리스보 온 집안 세례받음, 1년 6개월 머뭄) - 안디옥
4. 3차 전도여행: 양육을 위한 여행(행18:23-20장)
세 번째 선교 여행은 이미 개척한 선교지를 돌아보고 양육하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세우고 두 해동안 가르친 것이 이때였습니다. 은 오만에 해당하는 마술책을 태울 정도로 대단한 성과도 있었으나 반대로 격렬한 반대도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바울 사도는 땅끝까지 가기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브루기아 - 에베소(두란노 서원 강론, 바울을 통한 기적이 일어남, 마술책 불태움, 아데미 소동일어남) - 마게도냐 - 헬라 - 빌립보 - 드로아(유두고) - 밀레도(에베소 장로들과 고별 인사) - 예루살렘
5. 로마 행: 땅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기 위하여 로마로 감(행21-28장)
바울사도는 땅끝까지 가기 위하여 로마 교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예루살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본 교회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와 불편한 관계로 땅끝까지 가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거기서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체포되고, 로마 시민권을 이용한 황제 직소 요청에 의해 가이사랴로 압송되어 2년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그 후 로마로 가서 셋집에서 2년을 보낸 후, 잠시 풀려 났다가, 다시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해 집니다.
예루살렘 - 가이사랴(벨릭스 총독앞에서 섬, 가이사에게 상소) - 시돈 - 무라(알렉산드라) - 미항 - 뵈닉스 - 그레데 해변으로 항해(유라굴로 광풍 만남) - 멜리데(보블리오 부친 열병과 이질을 고쳐줌, 3개월 지냄) - 수라구사 - 레기온 - 보디올 - 로마
성경파노라마
신약(5) 10/11
서신서
1) 명칭
‘서신서’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여러 지역의 초대교회 공동체 또는 특정 일개인에게 신앙의 도움을 주기 위해 써 보낸 편지들 중 성령께서 초대 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근거가 되게 하시고자 특별히 영감하신 편지들로서 훗날 신약 정경으로 채택된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의 21권의 책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러한 서신서는 성도들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교회의 일원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원리와 지침들을 제공해 주는 책일뿐 아니라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인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전반을 다른 성경의 어떤 부분들보다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큽니다. 한편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복음의 확장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한 것이라면 서신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성도의 삶과 연결하여 구체적으로 적용시킨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분류
서신서를 분류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은 저자별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서신서는 바울의 저작 로마서- 빌레몬까지의 13권과 익명의 저작 히브리서 1권, 야고보의 저작 야고보서 1권, 베드로의 저작 베드로전, 후서 2권, 그리고 사도 요한의 저작 요한일, 이, 삼서 3권과 유다의 저작 유다서 1권으로 분류됩니다.
한편 바울이 저술한 서신들은 바울서신이라 부르며 그리고 그 이외의 저자들이 저술한 서신들은 통칭하여 공동서신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서신서는 그 저자를 기준으로 하면 일단 크게 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빌레몬서까지의 13권의 ‘바울 서신’과 바울외의 사도들이 기록한 히브리서-유다서까지의 8권의 ‘공동 서신’입니다.
그리고 특징별로 좀더 나누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권은 ‘옥중서신’으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3권은 목회서신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서신서의 수신자에 따라 분류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 교회에게 보낸 바울 서신
. 개인에게 보낸 바울 서신
. 일반서신
3) 서신서의 구조적 특징
세부 내용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약 서신서 거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구조적 특징은 전적으로 그것이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사실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신약 서신서도 일반 서신과 마찬가지로 본론을 전후로 시작 및 끝맺는 문안 인사가 있는 소위 삼분 구조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러나 신약 서신서는 사도가 교회 전체에게 보내는 공식 서신의 성격이 강력히 추가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시작하는 인사 - 본론 - 끝맺는 인사’나 또는 ‘서론 - 본론 - 결론’으로 나누는 것은 비교적 부정확합니다. 신약 서신서는 사도권을 반영한 공식 문안 인사와 시작하는 말을 동시에 포함한 앞 부분, 그리고 중반부에 위치하여 각 서신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본론부 및 그 이후에 다시 끝맺는 말이나 당부의 말과 사도권을 반영한 끝맺는 문안 인사가 동시에 포함된 뒷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를 도입부, 본론부, 종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4) 서신서 전반의 기록 배경
신약 성경 서신서는 가장 먼저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가 대략 A.D.51년경에 기록되었고, 가장 마지막의 요한삼서가 대략 A.D.90년경에 기록되어서 서신서 21권 모두가 A.D.1세기 후반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는 사도행전이 A.D.1세기 후기 시대의 초대 교회의 역동적 성장 과정의 역사 자체를 보도하는 반면 서신서는 그런 시대에 각 사도들이 각 교회에 보낸 서신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결국 동일한 시대 배경을 갖고 있기에 사도행전의 전반적 역사 배경으로도 참고될 수 있습니다.
① 초대 교회의 대내적 상황과 과제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형성되었던 제자의 수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당일날 개종한 새신도만도 3,000명에 달했으며, 연일 새 성도의 수가 계속 증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초대 교회가 태동한 발원지인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기독교인 숙청이 일어나 사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도들이 팔레스틴과 인근 각처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복음과 초대 교회를 일단 전팔레스틴에까지 확산되게 하고 나아가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형성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하게되었습니다. A.D.30년 예수님의 승천 후로부터 A.D.46년에 이르는 대략 15년간 이 기간의 초대교회 성도는 거의가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었습니다.
한편 그 사이에 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도 바울의 회심과 대략 A.D.40년 전.후의 베드로를 통한 이방인 고넬료 개종 사건, 안디옥 이방인 교회의 설립등의 예비 사건들이 있은 후에 A.D.47년부터 개시되어 57년까지 10년 동안 전 3회에 걸쳐 실시된 사도 바울의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 사역으로 초대 교회의 지평이 전 이방 세계로까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초대 교회에 이방인 출신 성도들이 더욱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의 초대 교회는 한마디로 구속사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되었으나 아직 구약과 신약의 상관 관계 및 제반 관련 요소들의 관계 곧 율법과 복음의 관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등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도기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유대인 및 이방인 출신 성도가 함께 어울려 교회 공동체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생활하게 되었으나 마치 조직이나 제도는 정비되지 못한 격변기로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초대 교회 시대를 전후한 시대에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대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대교는 비록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들의 종교였으나 태초 아담의 때부터 계승된 순수한 정통 신앙이 아니였습니다. 즉 그들은 B.C.5세기 무렵부터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인본주의적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인 순수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취하여 이를 왜곡 해석하고 거기에 유대인 자신들의 전승까지 가미하여 여러 가지 그릇된 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교의 분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려는 구원은 유대인 자신들만을 중심으로한 이 지상에서의 정치적 승리와 평화이며 이런 구원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메시야가 와서 이루어 줄 것을 고대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교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께서 참 메시야로서 구약의 성취로 오사 구속 사역을 성취하고 새로이 신약을 주셨음에도 주님이 그들의 착각과 달리 세계 만민중에 택한 모든 자들을 오직 믿음을 통하여서, 이 땅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새 천국으로 인도하심으로써 구원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시자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메시야 예수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의 제자들이 다시금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유대인과 이방인 구분없이 전파하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금 ‘그리스도의 도’를 전파하는 무리들을 무조건 유대교를 문란케 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정치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해를 가했던 것입니다.
② 초대 교회의 대외적 상황과 과제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참된 신자들의 거룩한 모임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역사 가운데서는 태초 스스로 타락한 후 마침내 인간까지 타락시키고 죄로 오염된 이 세상에서 잠시 공중 권세를 가진 사단의 세력과 영적인 투쟁을 필연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처음으로 설립되고 활발히 성장하던 초대 교회 시대에 이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먼저 전제국적으로는 로마제국이 이제 막 정치 경제적 안정을 구축해 놓고 각종 타락한 문화에 젖어들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유대 자체로는 로마 식민 치하에서 민족주의적 불만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비록 일반 민중들과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어쨌든 선민이라는 자부심에서 종교 생활을 극히 중시했던 유대 민족사이에서 유대교는 그 어떤 때보다도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새로이 예수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초대교회를 그저 신흥종교의 하나처럼 간주하게 하여 아예 그 태동 단계에서부터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획책이 횡행하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근본적으로 사단에게서 기인한 교회 외부의 공격은 유대교 및 로마제국의 박해와 각종 이단의 활동이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ㄱ. 정치 종교적 박해
전반적으로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는 초대 교회가 갓 태동되어 일단 로마 제국 전역에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A.D.30-60년 사이의 초기에는 주로 유대교가 그리고 일단 로마 전역에 뿌리를 내린 A.D.60년 이후에는 로마 제국이 앞장섰었습니다.
A.D.60년 이후에는 워낙 로마 정부가 극렬히 초대 교회를 핍박했고 또 A.D.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참변을 겪는 과정 속에서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지위 유지 문제에 급급하여 특별히 초대교회 핍박에 나설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A.D.60년 이전에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유대교의 일파로 간주했던 관계로 유대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에는 초대 교회도 같이 핍박을 받으면서 또 다시 그런 유대교인들에게도 핍박을 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었습니다. 이에 많은 서신서들이 바로 이러한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이러한 핍박을 천국 소망으로 인내해 낼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a.유대주자들의 핍박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A.D.27년경에 로마 제국의 전체 인구는 약 3,300만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유대인은 약 7%로서 23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전체 약 80만명이 거주했던 팔레스틴내에는 58만명 정도의 유대인만이 살았고 나머지 172만명 가량은 로마 제국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유대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본격적 태동이전 유대교가 역사상 가장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가르침을 베풀었던 종교였던 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한편 초대 교회는 그 직접적 태동지가 유대인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이었고 초기의 신자가 거의 유대인 출신이었으므로 당시 유대인 사회의 절대적 종교였던 유대교와 어떻게든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와 유대교가 신학적 및 역사적으로 구약적 전통을 공유하는 특성 때문에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처음에 전도한 곳이 주로 유대교 집회장소였던 각처의 회당이었고 거기서 많은 유대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하였으며 초대교회의 각종 의식이 유대 회당 의식을 차용하는 등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관계가 일면 수립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순수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내용에 자신들의 구전 율법과 각종 전승까지 가미하여 구약 정통 신앙에서 멀어져간 변질된 종교였습니다. 단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세계 만민중에 택한 모든 자의 구원을 위한 역사 전개의 통로로서 성경의 계시와 각종 약속을 만민을 대표하여 미리 수여받고 또 메시야 예수가 태어난 혈통으로 예비된 선택된 민족으로서 자신들에게 주신 선민의 지위를 크게 곡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배타적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자신들 선민을 이방인과 철저히 구분하고 자신들이 이 지상의 지배자가 되어 자신들을 중심한 평화와 번영이 이 땅위에 구현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시려는 구원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에다가 자신들이 인본주의적으로 첨가한 구전 율법 등의 율법을 인간이 행하여 스스로 위인의 지위를 보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세계 만민중에 택한 모든자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개방적이며 신본주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독교와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마찰은 주로 정치 종교적 기득권을 가졌던 유대교인들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로 나타났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의 스데반 순교(행7:1-60),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행8:1-3),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의 순교(행12:1,2), 베드로의 투옥(행12:3-5) 및 예루살렘에서의 바울의 체포(행21:27-36) 등입니다.
b. 로마 정부의 핍박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에서 출발하여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로마 제국은 그 주도 세력인 라틴 민족이 본래 다신교를 숭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대한 지역의 제국을 무리없이 통치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피식민지의 종교 생활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A.D.1세기 후기부터 로마 제국이 정책 자원에서 황제숭배를 강요하면서부터 다른 이방 종교들과는 달리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신으로 섬기는 기독교와 로마 제국 정부는 심각한 갈등 관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좀더 약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C.27년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27-A.D.14)가 황제가 됨으로서 지금까지의 공화정이 폐지되고 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제정은 동방국가의 전제군주제와는 달리 그 이전의 공화정 때 있었던 원로원을 유지시키며 타민족의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등 비교적 온건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식민지의 종교를 인정하는 로마의 개방적 종교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이후 그의 양아들 티베리우스(Tiberius, A.D.14-37) 및 친족 4명이 연이어 제위를 계승하면서 제정이 점차 안정된 기반을 갖게 되자 더욱 더 제정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황제를 신으로 격상시키는 황제 숭배 정책을 시작함으로써 기독교와는 정면으로 배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3대 황제 칼리굴라는 반유대주의적 의식을 가졌으며 지나친 독제를 시행하였고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로마 민간 종교의 제사 의식을 부활시켰으며 로마에서의 유대인의 집회를 금하고 그들을 추방하였습니다(행18:3). 당시까지는 기독교도 외부사람들의 눈으로는 유대교의 일파로 보였으므로 이러한 조치에 함께 적용되었습니다.
한편 더욱 비극스러운 상황은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네로(Nero, A.D.54-68)가 이제 유대교와도 차별을 둔 상태에서 로마 거주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대화재의 죄목을 뒤집어 씌워 수천명의 기독교인들을 죽인 대대적인 박해를 가함으로써 야기되었습니다(A.D.64년). 이 박해의 연장 선상에서 A.D.67년과 68년에 바울과 베드로가 각각 순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후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D.81-96)때에도 황제 숭배를 거절하던 기독교를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여 박해하였으며 이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계시록을 기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트라야누스(Trajanus, A.D.98-117)때에는 지금까지 기독교의 박해가 주로 로마 주변 지역이나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때 마지막으로 남은 사도였던 요한이 순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로마 제국의 박해는 국가 지상주의와 황제 숭배를 내세우던 로마 정부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황제 숭배와 종교의 다양성을 절대 부인하고 국가 혼란을 야기시키며 국가적 화합을 깨뜨리는 정치적 반역 단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시행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는데서 오는 핍박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으로는 베드로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을 들수 있습니다. 또한 서신서 전반에 걸쳐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환난을 잠시 받는 고난에 불과하여(고후4:17) 그 무엇도 성도를 하나님에게서 끊을 수 없는 것이므로(롬8:35-39) 낙심치 말고(엡3:13) 인내와(딤후4:5) 기도로서(약 5:13)이를 극복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자주 발견됩니다.
ㄴ. 이단의 공격
앞에서 언급한 박해가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가 끝까지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행한 것이라면 이 부분에서 언급할 각종 이단의 공격은 외형적으로는 일단 교회의 일원이 된 자가 교회 안에서 일으킨 도전입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이런 이단의 기원도 결코 교회 자체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단의 사주에 있는 바 이는 좁게 보아 교회 내부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보다 궁극적으로 넓게 보아 교회 외부로부터의 도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의 활동 역시 서신서 집필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서신서 가운데서 거짓사도’(고후 11:13), ‘거짓 선생’(벧후2:1), ‘거짓 선지자’(요일4:1) 등의 표현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초대 교회 시대의 이단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기독교 진리를 소위 유대교적 오류에 의해 왜곡 해석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 유대주의적 이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당시 로마제국내의 여러 민족들의 이방 종교나 헬레니즘 사상의 근본 개념을 버리지 않은 채 기독교를 받아들여 복음을 곡해한 헬레니즘적 이단입니다.
a.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이단의 공격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대교는 구약 성경의 일부만을 확대 해석하고 여기에 하나님의 계시인 구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본주의적 장로들의 유전을 가미하여 기독교 사상을 박해하였습니다.
b.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이단의 공격
급속한 양적 팽창을 이룩한 초대교회의 병리 현상 가운데 하나는 이방 종교나 헬레니즘 사상이 여과없이 기독교 사상과 혼재하여 교회에 수용됨으로써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단이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침투한 각종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쓰여진 골로새서를 보면 골로새 교회에는 ‘세상의 초등학문’(골2;8), ‘형식적 율법주의’(골2:1-17), ‘천사숭배’(골2:18), ‘금욕주의’(골2:23)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들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의 철학과 우상숭배, 그리고 동방의 신비주의나 미신적 마술행위 및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뒤섞인 혼합주의였을 것으로 봅니다. 비단 골로새 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초대 교회가 다양한 민족들과 사상들을 접할 수 있었으므로 이와 같이 혼란에 빠져들기 쉬웠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헬레니즘 계열의 가장 중요한 이단 세력은 영지주의(Gnosticism)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절대 구분하는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아 다신교적, 지식 숭배적인 터무니없는 사상체계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런 영지주의가 초대교회 내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영과 육을 철저히 구분한 나머지 예수의 신성과 인성 어느 한 측면을 거부하는 잘못된 기독론을 유포한 것과 역시 육을 절대적으로 천시한 나머지 극단적 금욕주의를 주장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육체의 타락과 방종은 어차피 별 가치없는 육체와 관련된 것이니 무방하다고 유혹하는 잘못된 현실생활 자세 등 두 분야에서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베드로후서가 교회 안에서 발생한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부도덕한 쾌락주의에 빠진 것을 경계하고 배교의 위험을 영지주의가 당시 자주 사용하던 ‘지식’이나 ‘앎’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경고하고 있는데서 잘 반영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및 유다서 등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의 하나인 가현설을 분쇄하고 그리스도의 선재설과 그리스도의 신인양성론을 입증하는데 주력하는 것도 영지주의가 특히 기독론 분야에서 큰 오류를 퍼뜨리고 있던 초대교회의 종교 문화적 배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교회에게 보낸 바울 서신: 지역 교회에게 보낸 편지
신약의 22편의 서신 중 13개는 사도 바울에 의하여 쓰여졌는데, 그 중 9개는 지역 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며, 수신 교회의 이름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 로마서
로마의 교회는 누가 창립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오순절 때 로마로부터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개심하여 복음의 씨를 갖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로마에 그리스도 교회를 창립하였다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① 저자: 사도바울
② 기록연대: A.D. 56년경
③ 기록장소: 고린도시
④ 기록동기 및 목적
첫째는 당시 로마 제국 도처에서 이방 선교 사역에 몰두하던 바울은 자신이 친히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더 시급한 문제로 인해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로마 교회에 알리며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먼저 로마 성도들에게 참 구원의 원리를 미리 편지로 설명함으로써 전에 그들이 들었던 복음에 대한 오해, 곧 구원이 인간의 선행이나 공적 또는 율법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인 양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시정하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음으로 구원받음을 설파하기 위하여 였습니다.
둘째는 로마 교회가 당면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간에 야기된 몇가지 문제들에 대해 전해 들은바 이를 해결함으로써 로마 교회 내의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목케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⑤ 로마서의 특징
첫째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포괄적으로 인간 구원의 원리를 제시한 책으로서 성경 중의 금강석으로 불리우는 책입니다.
둘째 로마 교회에 있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 그리고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들이 갖고 있었던 현실적 한계의 극복을 위해 그 어떤 서신들보다 논리적 체계성을 지닌 논문과 같은 성격을 띤 교리 서신입니다.
셋째 구원에 관한 교리적 진술 뿐 아니라 성도의 삶속에서 이루어야 할 의의 실천에 관한 실천적 교훈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과거 구약 선민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방에게로 확장된 사실을 밝힌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기독교의 장대한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⑥ 로마서의 개요
ㄱ. 정죄: 이신득의의 필요성(1:18-3:20)
ㄴ. 칭의: 이신득의의 과정과 결과(3:21-5:21)
ㄷ. 성화: 칭의 이후(6:1-8:39)
ㄹ.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9:1-11:36)
ㅁ. 이신 득의로 구원받은 성도의 실천 윤리(12:1-15:13)
ㅂ. 종결부(15:14-16:27)
*고린도 전서
① 저자: 사도 바울
② 저술연대: A.D 55년경
③ 저술장소: 에베소
④ 저술동기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시 창립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가 위치했던 고린도시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매우 번성하는 항구 상업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린도시는 각종 문화가 혼재하였으며, 물질 문명을 우선시 하는 로마 세속 문화가 왕성하였고, 전통적으로 숭배하던 소위 그리스-로마의 만신 숭배등과 같은 우상숭배와 성도덕이 극히 문란하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는 고린도인들은 기독교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혼합주의, 성적 문란, 무절제, 경박함등의 당시 고린도 문화의 부정적 영향을 온전히 청산하지 못했고, 이것 때문에 초창기 고린도 교회내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서신으로 조언과 문제 해결을 요청하게 되고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떠난 지 대략 3-4년이 경과한 시기때 에베소에서 본서를 집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7:1)
⑤ 서신특징
전체 내용 중에서 당시 초창기에 있던 교회들의 문제들이 잘 반영되어 있고, ‘이방인 사도’와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⑥ 고린도시에 대하여
그리스의 항구도시로서 당시 로마 영토에 속했으며 부유한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고대 고린도시는 큰 야외극장과 아프로디테 여신 신전의 매춘행위로 유명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비교적 오래 선교활동을 하면서 로마서와 데살로니가 전서등을 기록했습니다.
⑦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고린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전파된 것은 A.D.49-52년 사이의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중인 A.D.50년경입니다. 당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선교 전략상 매우 중요하면서도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우상 숭배로 가득찬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였고, 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행18:2)에 의해 로마에 살 수 없게 된 유대인들 중 고린도에 와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장막 만드는 일에 함께 동업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아울러 마게도냐로 파견되었던 디모데와 실라도 고린도 복음 사역에 합류하게 됩니다.(행18 :1-5)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초기 사역은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을 중심으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안식일 강론을 하면서 이뤄졌으나, 유대인들의 반발로 나중에는 이방인 개종자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회당장 그리스보를 비롯한 많은 현지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바울은 향후 총 1년 6개월 동안의 고린도 사역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행18:4-11)
⑧ 서신의 개요
ㄱ. 시작하는 말(1:1-9) - 문안인사, 고린도 교회로 인한 감사
ㄴ. 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망과 권면(1:10-4:21)
ㄷ. 교회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책망과 권면(5:1-6:20)
- 근친상간의 죄에 대해서, 성도간의 송사에 대한 책망
ㄹ. 고린도 교회의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7:1-16:4)
- 결혼에 관한 질문, 우상 제물의 식사문제에 대해서, 은사들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부활에 관하여, 공공 예배에 대해서, 성도 구제를 위한 연보에 대해서
ㅁ. 끝맺는 말(16:5-24) -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선한 일꾼의 추천과 교제 권면,
마지막 인사
* 고린도 후서
① 저자: 사도 바울
② 저술연대: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후 6개월이 경과된 55년 말 내지 56년 초
③ 저술장소: 에베소
④ 저술동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각성과 회개를 구체적으로 촉구하기 위하여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발송한 직후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본래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방문을 유보하겠다고 밝힌 계획과 달리 고린도 교회를 친히 방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였음에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린도 교회의 완전한 회개를 보지 못한채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후 바울은 소위 ‘눈물의 편지’라는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 사도서신을 고린도 교회에 발송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 대부분의 성도는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참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달리 자기들의 유익을 소위 ‘다른 복음’을 퍼뜨리는 거짓 사도들의 획책에 의하여 극히 일부의 성도가 이제는 아예 바울의 사도권 및 사도직 자체를 부인하고 나서는 일대 위기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사도권을 확립하여 결국 복음의 요청에 의해 회개를 일관되게 촉구하는 자신의 교훈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고자 본서를 집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⑤ 서신의 특징
ㄱ. 그 직접적 기록 동기가 사도 바울 자신의 사도권 변호에 있는 본서에는 그 어느 서신에 서 보다도 사도 바울의 개인 신상에 관한 언급과 개인적 확신과 심경에 대한 직설적
토로가 빈번합니다. 단적으로 바울 서신 중 가장 자서전적 서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ㄴ. 본서는 객관보다는 주관, 논리보다는 감정이 더욱 풍부한 책입니다.
⑥ 서신 개요
ㄱ. 시작하는 말(1:1-11) - 문안인사ㅡ 고난 중의 위로에 대한 감사와 간증
ㄴ. 사도권에 대한 소극적 해명(1:12-7:16)
-고린도 방문 계획의 변경 해명, 사도직의 확실성과 그에 대한 바른 자세의 해명
화목케 하는 자로서의 사도의 직무
ㄷ.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연보(8:1-9:15)
ㄹ. 사도권에 대한 적극적 주장(10:1-13:10)
- 사도권에 근거한 권징의 의지, 사도권을 입증하는 구체적 증거들, 사도권 주장에 대한 최종 변론, 세 번째 고린도 방문 계획 예고와 결론
ㅁ. 끝맺는 말과 문안 인사(13:11-13)
*고린도 전, 후서와 관련된 바울의 행적
① 고린도 1차 방문: A.D.49-52년 사이의 제2차 전도 여행중 고린도를 처음 방문하여 1년 6 개월간 체류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창립합니다.(행18:1-18)
② 제 3차 전도 여행 개시: 제 3차 전도 여행은 A.D. 52년에 시작되어 57년까지 대략 4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중심 사역지는 대략 2년 6개월 이상을 체류했던 에베소였습니다.
③ 고린도 전서 발송: A.D.55년경 이때 바울은 에베소 → 마게도냐 → 고린도 → 예루살렘 의 전도 여행 계획을 밝힙니다.(고전16:5-9; 고후1:15-16)
④ 고린도 2차 방문: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급히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계획을 변경하여 급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곧 다시 에베소로 귀환해 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슴 아픈 방문’ 이었습니다.(고후1:15-24)
⑤ 눈물의 편지 발송: 고린도 교회의 온전한 회개와 개혁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다시 에베 소에 돌아와야 했던 바울은 실로 ‘눈물의 편지’라 불릴 정도의 심각하고도 애절한 편지를 써서 디도편으로 고린도에 보냅니다. 이 편지는 현재 전승되지 않고 있습니다.(고후2:4)
⑥ 고린도 후서 발송: 새로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주로 자신의 사도권 변호를 주 내용으로 하는 고린도 후서를 에베소에서 기록하여 디도편으로 발송하였습니다.
(고후8: 16-17)
⑦ 고린도 제 3차 방문: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뒤, 바울은 고린도를 세 번째 로 방문합니다. 이때 대략 3개월간 체류하는 중에 아직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못한 로마 교회를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 발송하게 됩니다.
'성 경 > 성경 파노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40일 탐구 (0) | 2009.07.09 |
---|---|
성경파노라마 신약(2) (0) | 2009.07.09 |
신구약 성경의 흐름(파노라마) (0) | 2009.07.09 |
구약파노라마 율동 키워드 (0) | 2009.07.09 |
구약 성경 개관 (0) | 2009.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