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칼 럼

믿음이란?

미션(cmc) 2010. 1. 18. 07:20

믿음이란?

 

사나 죽으나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믿음은 진리 위에 선 것이 믿음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로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 소망, 사랑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아닌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미신입니다. 잘못된 진리 위에 선 믿음은 이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아주 중요시 합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믿음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 됩니다.지금부터 여러분이 믿는 믿음이 진리위에 서 있는지 점검 해보겠습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

    어느 교회 목사님이 마태복음 17장 20절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어떤 집사님이 엄청나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농부입니다. 땅이 없는 소작농 입니다. 이 집사님이 조상대에서 부터 내려오는 유산이 잇는데 집 뒤에 있는 돌산 입니다. 이 집사님이 평소에 생각하기를 집 뒤에 있는 저 산이 돌산이 아니고 평지였다면 3천 평은 되겠는데, 그 땅에 농사를 지어면 우리 식구가 큰 부자로 잘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설교 중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저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서 

    “하나님! 하나님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페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의 계자 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이 산더러 옮겨가라 고 하면 산이 옮겨 간다는 것을 믿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고 집사 된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주일 범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새벽 예배 하루아침도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십일조 헌금 한 번도 안 바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제 믿음을 잘 압니다. 부족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야 없겠습니까? 믿습니다. 이 산이 옮겨서 저 인천 앞바다에 빠질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틀림없이 옮겨간 줄 알았는데 눈을 떠 보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아하, 이상하다. 성경 말씀이 틀린 것인가? 성경 말씀은 틀린 것이 없지요. 그런데도 바위 하나도 안 옮겨갔습니다. 이 집사님은 너무너무 실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산이 옮겨가는 것이 아니고 태산과 같은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다. 고 해석합니다. 참 잘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것으로 끝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믿으면 산이 직접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새도록 파도와 싸우면서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 왜 의심하였느냐 ?’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14:25-33) 


 


   믿음이 좋은 어떤 목사님이 이 성경 말씀을 읽다가 화가 났습니다. 베드로 사도 정말 주책이지 믿고 물위를 걸어갔으면 끝까지 갈 것이지 파도를 보고는 의심이 들어 물에 빠지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느냐? 이 목사님은 한강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나는 서울에 있는 ㅇㅇ교회 목사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물위에 걸어가다가 믿음이 약해져 의심하다가 물에 빠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제가 여러분에게 제대로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물위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제 제가 이 성경책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만 믿고 한강에 뛰어 내려서 물위로 걸어가겠습니다. 제가 물위로 걸어가는 것을 보시고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리고 이 목사님은 “주여 믿습니다!” 하고 한강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물 위로 걸어갔을 까요?,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퐁당 빠졌을까요? 이 목사님은 베드로처럼 의심하지 않았는데, 물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물에 빠졌을 까요? 이 목사님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물에 빠졌을까요. 참 이상합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급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우리들을 매장할 데가 없어서 이 홍해에서 우리를 매장하려 한다고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게 하라!” (출14:16)모세가 지팡이를 가진 손을 바다위로 내어 밀었습니다.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홍해를 건넌 그 날 밤 모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애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상 단 한번밖에 없는 홍해가 갈라지는 장관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 온다고 경황이 없어 미처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네일 아침에는 홍해 가에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아 놓고 어제 구경 못한 홍해의 갈라지는 장면을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해변에 다 불러 모아놓고 어제 홍해 갈랐던 것같이 오늘 아침에 홍해를 다시 한 번 가를 테니, 이제는 느긋한 마음으로 홍해 갈라지는 것을 구경 좀 하라 고 했다고 합시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 믿습니다. 어제같이 홍해를 갈라 주십시오. 믿습니다.” 하고 지팡이를 든 손을 홍해 위로 내 밀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질까요? 안 갈라질까요?” “안 갈라집니다.”“왜요? 어제는 갈 졌는데?”

    물위로 걸어온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걸어오라 했습니다. 베드로는 걸어가다가 파도를 보고 의심이 생겨서 물에 빠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든 요한이 베드로 형님 참 주책이다. 걸어가려면 끝까지 갈 것이지 어부가 파도를 보고 믿음이 약해져 물에 빠지다니? “나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는다.” 라고 하고 요한이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요? 요한은 한 발자국도 못 가고 빠졌을 것입니까? 왜 그럴까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믿음대로 되고, 어떤 때는 믿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 교회에 부흥회 다니며 물어 봤는데 모두 같은 대답입니다.

   어떤 경우는 믿음대로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어떤 경우는 아무리 믿어도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히 압니다. 그렇다면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믿음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 믿음의 기준이 무엇인가? 이제부터 성경 말씀(진리)을 찾아서 밝혀내도록 합시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만이 믿음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웹2:8)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정의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받아서 믿을 때 그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믿음을 내가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그것은 믿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인간의 신념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과 신념을 구분 못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면 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새마을운동을 시작 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념입니다. 인간의 신념도 대단한 위력이 있습니다.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신념의 힘은 참으로 대단 합니다. 그러나 신념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아닙니다. 이제까지 예를 든 것을 정리 해보십시다. 

    돌산을 옮겨 달라고 기도한 집사님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니고 자기가 믿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산이 옮겨 갈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께 돌산을 옮기는 믿음을 주실 때만 산이 옮겨 갑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데 자기 스스로 믿는 것은 신념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물위에서 걷을 수 있었든 것은 주님께서 “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실 때 믿음을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주신 믿음도 의심이 생기면 물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자체는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도 내가 믿어야 합니다. 끝까지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이것을 받아서 믿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옆에 있다가 베드로 형님도 참 딱하기도 하지 끝까지 걸어가지 왜 잘 나가다가 중간에서 의심하다가 물에 빠지는가? 나는 베드로 형님같이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물에 뛰어 들어도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위로 걸어오라 했지 요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목사님은 어떻습니까? 진짜 그런 어리석은 목사님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비유로 창작한 목사이지 실제로 그런 목사님이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짜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물에 뛰어 들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니면 물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홍해를 가르라는 명령을 주실 때 그만한 믿음을 주시면서 명령하였기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모세가 홍해를 가르려고 하여도 바다가 갈라지지 않을 것은 여러분들도 다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어제는 모세에게 홍해를 가르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믿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서 나온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6-17)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하)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拙著 [저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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