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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19)] 언어 생활

미션(cmc) 2011. 5. 12. 08:07

[김근수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19)] 언어 생활
김근수 목사(한울교회)

•요절: 야고보서 4장 11~12절

   
  ▲ 김근수 목사  
 
야고보는 실천적 신앙의 기초적 행위는 언어생활에 있음을 강조했다. 기독자의 언행일치는 생명력있는 신앙의 당연한 귀결로 교훈했다. 이제 그는 불경건한 언어의 절제와 파괴적 언어의 자제를 요구한다.

1. 형제 비방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형제를 피차에 비방”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율법은 범죄함으로써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원리요 규범이요 질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율법으로써 인간을 판단하신다.

집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은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그것이 가장 서운한 것이다. 어떤 허물과 범죄라 할지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용서하신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비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같이 실수하고, 같이 범죄하고, 같이 아버지 집을 떠난 다른 형제가 자기 형제를 비방한다면 그 얼마나 가증한 짓인가. 우리는 형제를 비방할 입장이 아니다. 더욱이 “비방”이라는 용어는 무고히 형제를 정죄하는 파괴적 언어생활을 가리킨다. 이는 성도를“참소”하는 사단의 모습이다.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징계와 심판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우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비방하지 말자. 로마서에서는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희의 “정욕”과 “욕심”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셨다”고 했다(롬 1:24; 26; 28).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포기한 자가 형제를 비방한다는 의미이다.

2. 형제 판단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판적 정죄를 일삼는다. 사람들의 심판은 오판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속사정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심으로써 형제를 판단하는 자신이 더 큰 죄인임을 알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먼저 자신의 눈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 낸 피의 흔적을 가지고 형제를 권고하라는 교훈이다. 형제가 혹시 범죄하여 사랑의 공동체에 손해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먼저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충고해야 한다. 그래도 범죄를 계속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할 때에는 교회에 보고하고 교회가 처리해야 한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는 것은 신앙적 방법은 결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남을 판단하는 그 판단과 남을 정죄하는 그 정죄가 바로 자신에게 신속하게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방과 판단을 삼가하라는 야고보의 교훈은 불의를 보고도 짖지 못하는 개처럼 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건설적인 비판과 충고의 공동체를 세우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의 표현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