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 외에 아무 빚도 지지 말라
크리스천에게 과도한 빚은 신앙인격의 문제
▲ 방선기 목사 |
우선 탐욕에서 나온 빚이 있다. 현대인들이 지는 빚을 보면 가난 때문에 지는 것보다 탐욕 때문에 지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예를 들어, 집을 사기 위해서 은행 빚을 지는 경우에 돈이 없어서 빚을 지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많은 경우 그 빚을 얻어서 빨리 부를 증가시키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많다. 이 둘 사이에 구별을 흑백으로 나눌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마음의 동기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경우 하나님은 빚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정죄하신다. “허황된 것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니라(잠 28:19)”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28:20)” 결국 투기성 사업을 위해서 빚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혜롭지 못할 뿐 아니라 죄악이다.
도적질이 되는 빚이 있다. 기업인들을 만나면 돈을 꿔준 후에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된다.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면 그들이 빚을 질 때 이미 그 돈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것은 이미 빚이 아니라 도적질에 해당된다. 크리스천들 중에서 빚을 빙자해서 도적질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모양이다. 도적질은 남의 집 담을 넘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빚을 빙자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도적질이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이런 사람들에게 빚은 죄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인내의 부족으로 지는 빚이 있다. 자동차 등을 살 때는 의례 월부로 사게 된다. 거의 당연시 되어버린 이런 제도를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빚을 내어서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돈을 저축해서 그 물건을 살만한 능력이 있을 때 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먼저 산 후에 지속적으로 그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입장에서는 참 편리한 제도이지만 사는 사람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보통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지는 빚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돈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지는 빚이다. 물론 월부로 사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정죄할 수는 없으며 현실적으로 편리한 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약 5:7~8) 우리도 돈을 사용하는 일에 조금 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빠질 수 있다.
무절제로 인해 얻는 빚이 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요즈음 가장 문제가 되는 빚은 역시 신용카드로 인해 생기는 빚이다. 이것도 위의 경우나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구별해서 생각해보면 절제의 부족으로 인해 지게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만 있으면 너무 쉽게 물건을 구입하거나 돈을 지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절제가 부족한 사람은 금방 빚의 덫에 걸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함에 절제가 필요하다. 신용카드 사용을 절제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아예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대안이다. 크리스천 재정상담가 래리 버켓은 빚없는 경제를 이루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신용카드를 버리라고 한다. 신용카드 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죄악의 본질은 아니지만 카드 사용을 절제하지 못해서 빚을 지게 되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것 역시 죄에 속한다.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 않지만 술을 절제하지 못해서 취하게 되는 것이 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신앙인격의 문제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빚은 인정해줄 수 있으며 가능한 한 면제하거나 탕감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이다. 그러나 신앙인격의 표현으로서 빚에 대해서는 좀더 강한 도전이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에 빚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빛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있으면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10)”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빚을 졌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도록 해야 한다. 종종 빚을 갚지 않은 크리스천들 때문에 크리스천 전체가 욕을 먹기도 하고, 그 바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는 것을 보게 된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다면 그런 사람의 신앙은 그야말로 위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다 탕감해주셨지만 그 예수의 피가 우리가 이웃에게 진 빚까지 탕감해주지는 않는다.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악을 다 사해주신 하나님은 우리들이 빚을 지고도 갚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를 향해 빚이나 갚고 나오라고 하시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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