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생활 신앙

[방선기 생활신앙 (48) ]전세대란에 대해서

미션(cmc) 2011. 6. 23. 17:30

신앙적 배려가 이웃 웃게 한다

약간의 물질적 양보, 이웃 사랑의 실천 모범 보여줘

   
  ▲ 방선기 목사  
 
요즘 전세가가 많이 올랐고 전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임대인들이 많다고 한다. 집이나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대다수의 집 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아가기가 팍팍해지는 심각한 어려움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상황을 개선하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정부가 법이나 제도를 바꾸어서 전세가를 낮추거나 전세를 월세로 바꾸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바람직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하기도 힘들다.

주택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입자의 임대차 현황을 신고하고 임대차등록부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저금리 상황에서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힘들지만 그 속도는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세입자의 월세 납부금에 대해 소득공제를 확대해주는 것도 한 방안이다. 또한 집주인의 임대 소득을 합산과세하여 소득이 높은 집주인의 월세 전환을 주저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

소형주택 의무화나 임대주택 의무화 제도를 원상 복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며 아울러 보금자리주택 공급에서 분양 주택 비중을 줄이고 공공임대 주택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도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정부가 빨리 이런 방안을 구체화시켰으면 좋겠다. 이런 일을 개인이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성도들이라면 이런 일들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수 있다. 또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주택 정책이 시행되도록 청원과 요구를 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이보다는 간단한 해결책이다. 집주인이 전세가를 올리지 않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집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므로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집주인이 그런 결단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간단하지만 역시 쉬운 방법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천들이 앞장서서 전세대란을 완화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세례요한이 무리들에게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을 때 무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때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답했다(눅 3:11). 만약 오늘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말한다면 “집이 두 채 있는 자들은 집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적용한다면 집이 있는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에 대해 배려하라는 것이며 전세 가격을 올리지 않거나 월세로 바꾸지 않는 것으로 그 배려를 구체화할 수 있다. 물론 주택 임대인들의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다. 한 지역에서 자기 집을 임대하고 다른 지역에서 자신도 임대한 집에서 사는 1주택 소유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집 외에 다른 집을 한 채 이상 가지고 있으면서 임대 수익을 얻는 사람이라면, 우리 크리스천들만이라도 세든 사람들에게 이런 배려를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전세대란을 조금은 완화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종종 전세로 사는 사람들 중에 집주인이 전세를 올리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 집주인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셈이다. 크리스천으로서는 그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계명에 순종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추수할 때 어려운 이웃과 나그네들을 위해 모퉁이까지 다 추수하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남겨두라는 율법의 규정을(레 19:9, 23:22) 현대 사회에서 적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구제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이웃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사역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 위에서 언급한 1주택 소유자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 일하기 힘든 사람이 자기 소유의 집에서 나오는 월세나 전세 이자로 생활을 해야 한다면 이런 요구가 과도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 자신이 이웃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교회가 이 일에 마음을 모아서 실천가능한 성도들을 통해서 이 일을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에 작은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주님의 계명이나(마 22:39)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말씀(마 7:12),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는 바울의 권면을(빌 2:4) 실천해보자. 나보다 힘이 없고 여유가 적은 이웃을 배려해 약간의 물질을 양보한다면 얼마든지 전세대란 속에서 생활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