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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 (고전 7장 3-5)

미션(cmc) 2011. 10. 24. 17:50

건강한 가정 (고전 7장 3-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7장 3절 5절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부부가 뜻이 맞지 않아서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몇년 후 불행하게도 성품이 나쁜 여자와 재혼을 해서 그 여자와 똑같이 나쁜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내도 나쁜 남자를 만나서 재혼을 했는데 그 나쁜 남자는 그 여자를 만나서 이상하게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 여자처럼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해줍니다. 즉 결혼의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행복을 지향하는 가정은 많지만 참으로행복한 가정은 많지 않습니다. 바을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성도의 가정생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 도전서 5장에서 파괴 되어진 가정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고, 6장에서는 왜 가정이 파괴되었는가의 원인을 강조하고 있으며, 7장에서는 어렇게 하면 가정이 파괴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과 20절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중요한 교훈은 결혼이란 마음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로, 몸과 몸으로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밥을 먹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삶으로 말마암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생활, 성공적인 가정생활, 그리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영위 할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절, 2절을 보면 '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는 말씀을 봅니다.

그리고 본문 9절에서는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유의할 것은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는..."이라고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평소에 바울 사도에게 가정 문제,결혼 문제, 성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하여 편지로 물어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의문점에 대하여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니"라는 말씀에서 "좋다"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칼론' 이라는 말로써 '편리하다, 유익하다'의 의미 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삶에 편리하다는 이 말씀은 결혼을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당면하고 있었던 당시의 특수성에 비추어서 어쩔수 없이 독신생활의 유익한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다 보면 환난을 당하게 되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런 환난을 당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정을 가지고 서 아들 딸 낳고 살다보면 환난을 당하고 여러 가지 가정적인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을 피하면서 살아가려면 독신생활이 결혼생활보다는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고, 때문에 본문 1절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당시의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쾌락적 영지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금욕적, 영지주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라는 말은 '나스태큐'라는 말로 영과 육을 분리하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반대로 쾌락적 영지주의란 영과 육체라는 것은 별개이므로 육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영과 육체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로 영혼은 육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상인 것입니다. 이런 쾌락적 영지주의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음행을 하며 죄를 범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금욕적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고 저급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정욕을 발산하는 것은 악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성적인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생활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두 종류의 영지주의가 자기가 개척한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오고 있는것을 보고 잘못된 사상을 시정하고 바른 결혼생활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고린도전서를 쓴 것입니다. 특별히 쾌락적 영지주의자들을 위하여 고린 도전서 6장의 말씀을, 금욕적 영지 주의자들의 잘못된 결혼관을 고쳐주기 위하여 7장1절에서 7절의 말씀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남자로든 여자로든 태어났으면 반드시 나이가 들고 결혼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만고불변의 법칙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도 보면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의 말씀은 결혼은 만고불변의 법칙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교훈함으로써 결혼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모형을 우리에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관계의 행복과 불행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관계를 가르쳐 주는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두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1. 행복이 상대적 관계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상대적인 관계라는 것은 대등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3절을 유의해 보면 남자와 여자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 계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결혼생활의 행복이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대등한 관계에서 출발 할때에 행복해 질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여자를 만들 때에 남자의 머리를 잘라서 만드시지 아니한 것은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또 남자의 발가락을 잘라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여자가 남자의 종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 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라고 하는 것은 서로의 위치와 입장을 이해해 준다는 뜻이 있고, 서로 평등한 존재로 인정해 준다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 남자와 여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우선 남성, 여성으로 성별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방식과 관념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고 하는 것은 화합하기 보다는 도리어 갈등을 갖고 깨어지기가 더 쉬운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태도로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주장만을 펼 때에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 4절을 보면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 고 하는 말씀은 상당히 의미가 깊은 말 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지나치게 자기 주장만을 하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다 가정의 일원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모두 가정의 일원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가정의 일원이라고 할 것 같으면 남편과 아내는 자신들의 강한 개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상대방의 의견과 뜻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아내와 자기 남편의 개성을 존중하지 못하게 된다면 가정은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남자는 자기 아내를 꼭 자기 스타일로 바꾸어서 교육을 시킵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을 자기의 스페이스에 맞추어서 살도록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정생활은 이성이 만나는 공동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위주의 생각이나 행동을 저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데서 행복이 생긴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상에서, 역사 속에서, 나에게 가장 합당한 사람을 뽑아서 만나게 해 주신 것이니까 서로 존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토레이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높여 귀하게 여긴다면 그분께서도 당신을 높이실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이 하찮게 여긴다면 그분도 당신을 하찮게 여길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나의 관계를 아야기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간의 관계로도 생각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행복은 서로의 의무를 다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3절에 보면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는 말씀은 부부의 성적인 의무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생활은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신성한 의무이지 일방적인 발산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성생활에서 균등한 책임과 균등한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 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생활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의 각자 의무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의무감을 다하기 위해서는

▶첫째, 마땅한 호의감을 가져야 합니다. 즉 상대방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책임감을 다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책임,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책임을 서로가 다할 때 가정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행복은 상호보완적이며 상대적이며, 인격적이며, 수평적이며, 협조적인 관계를 이룰 때 가능 합니다. 위의 모든 조건을 잘 지키며 서로의 의무를 다할 때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가정이 될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리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역사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조건들을 모두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 주 안에서 온전한 가정이 되도록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 길자연 목사 (왕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