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장9-11)
성경본문|누가복음 02장 09절 ~ 11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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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인류에게 소망의 종교가 될 수 있는가? 이 대답의 확실성과 명확성은 기독교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두말 할 필요없이 기독교는 인류에게 기쁨의 희망을 줄 수 있는 복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철학적 사색이나 인간 이성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온 초자연적인 하나님 자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eujaggevlion)의 구약적 배경은 전쟁승리의 좋은 소식과 관계하고 있습니다(삼상 31:9). 뿐만 아니라 아이 출생과 관계되어 좋은 소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렘 20:15). 그러나 영감의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가 그 백성에게 온다는 메시야적 강세를 예언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사 40:9, 50:7). 신약 복음시대를 여는 역사의 아침에 보냄받은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은 양치던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eujagglivzomai uJmi'n cara;n megavlhn)이 되는가?
Ⅰ. 하나님께로부터 온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2절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 「…하나님의 복음으로」라고 하였습니다.
9절에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복음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보내어진 좋은 소식’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이 세상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산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다른 신의 산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높고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자신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생각도 못한 기상천외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양을 띠고 세상 중에 임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쇼킹한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였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 자기 사랑의 최대, 최고, 최귀, 최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Ⅱ.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달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13절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4절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기 때문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 자신’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 바로 그 장본인이 되기 때문입니다(마 1:21). 예수는 복음입니다.
그 둘째는 예수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도록 실제로 구현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놓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막 10:45). 그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직접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복음의 정체로 오시고, 복음의 정체성을 십자가의 희생으로 드러내신 분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 것입니다.
Ⅲ.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11절에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의 내용은 구주의 탄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주’이시라고 하였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① 너희에게 - 곧 개인의 것입니다.
② 다윗의 동네 - 곧 가정과 이웃의 것입니다.
③ 온 백성의 것입니다.
④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세상의 구주’였기 때문입니다
(요 4:42).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렇게 온 우주가 공유할 구원의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Ⅳ.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이 크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① 진리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5절에 ‘복음의 진리’, 아니면 ‘진리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갈 2:14). 골로새서 1장 5절에는 ‘복음의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② 소망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23절에 ‘복음의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평화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평안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죄의 평안, 사랑의 평안, 기쁨의 평안, 복된 평안, 영원한 평안의 소식입니다.
④ 불멸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하였습니다. 그 복음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쇠하거나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소멸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받고, 가지고, 먹고 사는 자에게는 죽음이란 생명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멸절에로의 출발이 아니고, 영원과 함께 출발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 중에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8). 말하자면 좋은 소식이 담고 있는 내용의 정체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진리의 좋은 소식이요, 소망의 좋은 소식이요, 평화의 좋은 소식이요, 불멸의 좋은 소식이요, 부활의 좋은 소식이란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구원의 복음인고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사실상 예수님의 성탄을 가르쳐 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갈 1:11~12).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것이 예수 자신의 화육강세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 세상에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성탄은 온 세상 사람 모두에게까지 미치는 우주적 기쁨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러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보유하고 있는 지상최대의 복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라고 하는 이 공동체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고, 믿고, 즐기는 자들로 하여금 형성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교회로 하여금 이 복음을 선포하도록 대명을 내렸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전하기를 부끄러워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롬 1:15, 16). 그는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고후 11:7)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성탄을 맞는 다윗의 동네는 불가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고 전하는 복음의 고장이 된 것입니다. 실로 최초의 아름다운 원시적 복음의 동네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네게 구주가 나시리니 / 예수는 놀라운 주님 / 선생이나, 좋은 모범이 아닌 / 하나님의 아들, 살아계신 말씀. 공상으로 꿈의 씨실을 잣고 있는 철학자도 / 미래를 주시하는 예언자도 / 과거를 탐구하는 학자도 아니신 분. 오늘날 네게 구세주가 나시리니 / 빛나라 별들이여! 소리치라 천사의 음성이여! 네게 이 귀중한 선물 주어졌으니 / 노래하라 땅이여 / 하늘의 모든 것들아 기뻐하라. 그러한 구세주를 오래 기다려온 이 세상은 / 죄에 빠져 있고, 의심과 공포로 찢어져 있네. /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진리와 지혜를 찾아 헤맸지 / 영광 영광의 빛이 드러나네. 오늘날 네게 구세주가 나시리니 / 이 땅의 유일한 희망, 생명, 진리, 길 / 능력의 하나님 영광스러운 구세주 /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나셨네. (Wilfred A. Peterson, ‘The Art of Living’)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그것은 나의 것입니다.
나의 동네의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의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것입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은 자들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에게 영광이 있을 지어다! - 아 멘 -
출 처| 석원태목사(경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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