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2층인데 상층에는 손양원 목사의 유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이하게 눈에 띤 것이 헌금 봉투 한 장입니다. 두 아들을 잃고 오히려 감사 헌금을 한 증거물입니다. 거기에는 순교자를 둘이나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글귀와 함께 '일만원야'라는 액수가 적혀 있습니다. 일만원을 헌금한다는 말입니다. 당시 손양원 목사의 월 사례금이 50원쯤이었다 하니 200개월 월급을 감사 헌금으로 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그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경건한 신앙인. 손양원 목사. 그를 아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53번지에서 손종일 장로와 김은주 집사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08년 7세 되던 해에 부친이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를 교회에 데리고 갔다. 이 때 부터 그는 부모를 따라 새벽 기도회 까지 참석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기도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14년 4월 1 일, 칠원 공립 보통 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의 왕이 살고 있는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할 것을 강요하는 동방 요배(東方遙拜)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년 손양원은 부친이 동방 요배가 십계명 중에서 제1 계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궁성 요배를 하지 않다가 결국 3학년 때 퇴학을 당했다. 맹호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복학을 했으나 주일에도 학교에 출석하라는 요구에 대해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출석하지 않았다. 18세인 1919 년 칠원보통공립학교 졸업과 함께 서을 중동 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낮에는 학업에 임하고 밤에는 만두 장사를 하면서 고학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안국동 교회를 다니며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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