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선택이 아닙니다.
(살전 5:16-23)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살전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에는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축복이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책임과 의무까지도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1) 구약 성경에는 그 책임과 의무를 계명과 율법이라고 일컬었고,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으로 ‘하라, 하지 말라’는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력으로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잘 아시면서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구약 성경만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도 ‘하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잘 아시면서 왜 신약 성경 여러 곳에 ‘하라와 하지 말라’는 명령의 말씀들을 하시는 것일까요?
물론 인간의 의지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잘 순종하는지 여부를 통해서 누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책임과 의무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그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신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악해져가는 반면에 신자들의 믿음이 점점 약해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건강한 믿음이 될 수 있을까요?
1. 행복한 삶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옛날에 비하면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살고 있지만 왜 자살자와 이혼자와 흉악범죄자들이 점점 더 많아져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세의 현상에 대해서 예언한 것처럼 세월이 흘러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부모도 하나님도 거역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존재로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나 그 결과는 인간이 바라는 행복이 아니라 점점 더 원치 않는 고통이 가중될 뿐입니다.
예화
중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그룹 회장인 ‘마윈’의 재산이 약 20조 4천 7백억 원이고, 하루 온라인 매출액이 10조원을 넘는 신기록을 세움으로 며칠 전 중국의 최고 부호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윈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야하는데 정반대로 자신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햇습니다.
마윈은 지난 11월 11일 미국의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부자가 좋은 건 맞지만 중국 최고부자인 게 좋은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가가 오르면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기도가 높아지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해야 할 것이 많아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게 되고, 길을 걸어가노라면 사람들이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부자이기 보다는 나 자신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고통에서 덜려고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빌게이츠와 자신은 자선 활동을 위해서 누가 더 많은 돈을 효과적으로 쓰느냐? 가 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의 행복은 더 많은 소유보다 더 많은 나눔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옛날에 비하면 훨씬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사는 것 같은데 왜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나라보다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율과 이혼율과 경제사범이 점차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논할 수 있겠지만 오늘 성경은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에 감사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으로는 멀쩡한데 치매나 정신병에 걸린 경우이고, 또 하나는 스테디의 말처럼 감사 불감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사 불감증에 걸리게 되면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절망이 찾아오면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는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을 불평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잘살고 못살고 돈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나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나를 보는 사람까지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행복의 통로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하는 드리는 기도는 무한한 우주공간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 보내는 카톡 메시지가 됩니다.
2. 유기적인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건강한 믿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 세 가지가 상호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육신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장기인 심장이나 위장이나 간장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세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만일 그 중 심장이나 위장이나 간장 중에 어느 하나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장기까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1) 만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각각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로 만일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쉬지 않고 기도 할 수 없고,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정반대로 항상 기뻐하면 기도의 문이 활짝 열려서 계속 기도할 수 있게 되고, 평소에 꾸준히 기도생활하게 되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를 다 감사할 수 있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항상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행복이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왜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행복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삶의 목표를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과 이웃과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의 문과 이웃과 화목의 문이 열리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예 화
저 지난 주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중국에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갔지만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발각이 되면 비자를 회수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근래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목사가 삼자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주일 낮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초청을 받았지만 반신반의 하면서 지난 주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성령께서 이미 작업을 다 해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큰 은혜를 끼친 정도가 아니라 저와 장로님들이 큰 은혜를 받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요, 여러 성도들의 기도 때문임을 압니다. 기도해주신 성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배후에서 도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습니다.
중국 교회를 방문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 교회가 크게 부흥된 것 같고,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은 줄만 알았었는데 막상 중국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였을 때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를 선교하겠다는 생각이 도리어 교만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보다 외형적인 건물이나 시스템이나 경제가 더 앞선 것처럼 생각되지만 정작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었어야 할 교회의 본질과 내면적이고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중국 교회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한국 교회가 아니라 중국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시간 관계상 전부를 다 소개할 수 없지만 오늘 추수 감사절과 관계된 범사에 감사하는 중국교회 성도들의 순수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시겠습니다.
중국교회 영상소개
부흥회는 아침 8시 30분부터 12시까지 그리고 1시까지 식사 시간입니다. 점심 식사는 국 한그릇과 빵 한 덩어리였지만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사람은 다시 예배당에 올라가서 은혜 받기 위해 강사를 위해 기도하고, 찬송배우고 2시 시간이 되면 5시까지 오후 집회가 이어지는데도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표정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입에서는 감사가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 번 출애굽기 40일 캠페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만나와 반석의 생수와 메추라기 고기를 질리도록 먹으면서도 감사는 고사하고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세계에서 한국 교회만큼 하나님의 기적과 큰 은혜를 받은 나라가 또 어느 나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선교를 받은지 불과 130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 더 이상 교회가 부흥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교회로 전락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 답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교회 건물은 크고 아름답고, 교회 안에는 많은 교인들이 모이고, 교인들의 삶은 윤택하여지면서 점차 감사를 잊어버리고, 기도를 쉬기 시작하면서, 기쁨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땅콩 알맹이는 버리고 껍질을 씹어 먹으면서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 가지가 바로 기쁨입니다. 기도입니다. 감사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의지나 기분에 따라서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약속된 축복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율법을 통해서 명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난 그와 같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나의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순종을 해야 하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의 감사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명령을 주셨는데 1) 항상 기뻐하라,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3)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나 감정에 따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마치 대한민국 남자 청년에게 병역이 필수적인 의무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과연 누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지를 가려내는 증거는 1) 신앙고백과 예배만이 아니라, 2) 일상적 생활에서 얼마나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여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평소의 실력을 시험 성적을 통해서 인정받는 것처럼, 평소에 신앙이 얼마나 독실한가? 하는 여부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얼마나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는 여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독실한 신앙은 평소 좋을 때만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고, 어쩌다가 아니라 쉬지 않고 기도하고, 안 좋은 일을 당할 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만을 주시지 않고 때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부담스럽게 생각되는 책임과 의무를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잘 살펴 선한 것은 붙잡고, 악한 것은 흉내도 내지 말라”
물론 그렇게 살려고 할 때 불이익을 당하거나 멸시와 조롱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얽어매어 부자유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렇게 순종하는 자에게 1) 소극적으로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고, 2) 적극적으로는 더 크고 좋은 복을 주시기 위한 빌미임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oJlotelhv", 홀로텔레스)은 턱걸이나 후보가 아니라 ‘모든 점에서 완벽한, 완전한’이라는 뜻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 삶이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모습을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육신과 영혼과, 우리의 가정과 국가와 교회에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켜보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도우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현세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더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려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흠 없는 믿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산다면 행복이 늘 우리와 함께 할 뿐 아니라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때로 우리에게 원치 않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도 내가 교만하여 넘어지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로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깨우치는 신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신호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도 옛날 어려웠을 때는 지금의 중국 교회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잘 먹고 잘살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은 봄날에 눈 녹듯이 점차 기쁨을 잃었고, 기도를 쉬게 되었고, 감사는 고사하고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의 경제만이 아니라 교회도 점점 더 어려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니 우리와 똑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난과 질고와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산상팔복 중에 왜 첫째 복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경제가 아닙니다. 물론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나보다 건강한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병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눈을 들어 내 주변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나보다 더 가난하고, 나보다 더 중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기쁨과, 내가 하지 못하고 있는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 화
혹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습니까? 아하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서 하체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운동하라고 하시는 구나! 감사합니다. 혹시 기다리는 택시가 오지 않습니까? 아하 걸어가면서 택시를 기다리면 그 만큼 더 운동이 되고 요금도 줄어들게 되니까! 감사합니다. 병에 안 걸리는 것도 감사하지만 병에 걸렸을지라도 약을 먹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 내가 직면한 상황이 고통스러울 때 거기서 벗어나고 싶고, 전화위복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라도 우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과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는 거기서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교훈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고통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고통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고통을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고통은 앞으로 다가 올 더 큰 고통을 예견하여 막게 하려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가 있는 것,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만도 만만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노라면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에 약속하신 축복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을 기대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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