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개혁주의 설교학

[개혁주의 설교학] (14)본문이 환경을 주도해야 한다

미션(cmc) 2015. 7. 23. 07:02

[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14)본문이 환경을 주도해야 한다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환경이 강단을 조정하지 않게 하라
 

설교자가 청중을 고려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청중은 설교자에 의해 전달되는 복음의 수신자요, 복음이 지향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복음이 청중에게 올바르게 전달되도록 반드시 청중을 고려해야만 한다.

탁월한 교사는 세 가지 면에서 평범한 교사와 구별된다. 첫째, 교사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을 우둔하다고 탓하지 않는다. 둘째, 학생들의 형편을 이해하여 그 눈높이에 맞추어 가르친다. 셋째, 학생들이 잘 깨닫도록 가르치는 교수법까지 연구한다.

미국 시카고에 소재한 달라스신학교의 기본적인 교육철학은 이것이다. “비록 훌륭한 교수가 귀중한 진리를 가르쳤다 할지라도 학생이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가르친 것이 아니다.”

학교란 무엇보다도 학생의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므로, 학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학생이 깨닫고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교수들은 먼저 학생들의 형편과 능력을 고려하여 눈높이 교육을 실시한다.

따라서 달라스신학교는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며, 이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수들은 그 가르치는 교수법까지 연구하고 있다.

교수법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탁월한 교수법을 소유하셨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비유’의 말씀을 통해 가르치셨다. 어원적으로 말하자면, 비유(parable)란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서, ‘곁, 옆’이라는 ‘파라’(παρα)와 ‘두다, 놓다’라는 ‘볼레’(βολη)가 합쳐진 합성어다.

따라서 비유란 천상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상의 것을 곁에 두는 것이다. 즉, 곁에 놓인 지상의 것을 보고 천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속에 하늘의 진리를 담아 비추어주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평범한 눈으로 볼 수 없는 빛의 세계가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색깔의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보여주듯이, 비유에 나타난 지상의 이야기들을 통해 하늘나라와 영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비유를 즐겨 사용하신 까닭은 청중들의 형편과 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대 설교학에서 청중에 대한 관심과 강조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설교학자 존 맥클루어(John S. McClure)가 주장하는 소위 ‘원탁의 설교(the Roundtable Pulpit)’는 설교자와 평신도 사이의 협력을 강조한다. 그는 협력적 설교야말로 청중을 감동시키고 인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는다. ‘협력적 설교’란 설교자가 평신도들과 더불어 원탁에 둘러 앉아 교회 공동체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그 논의된 내용을 주일 설교에 반영하는 것이다. 맥클루어는 평신도들의 지혜와 경험을 설교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의 평신도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현대 청중들의 필요와 요청이 강단을 지배하거나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설교자가 성경의 권위에 의거하여 청중의 상태와 위치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특별히 현대를 살아가는 청중들은 탈권위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정당한 권위마저 부정하고 거부하는 조류 속에 빠져 있다. 이러한 때에 설교자는 시대적 유행이 아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독특한 권위에 근거하여 청중을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text)과 청중의 환경(context)을 모두 고려해야 하되, 항상 본문(text)이 환경(context)에 대해 우선권과 주도권을 갖는다.

이러한 청중 분석과 평가는 언제나 참되고 정확해야 한다. 잘못된 회중 평가는 잘못된 평가 아래서 설교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지적하는 20세기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은 “교회 회원으로서 교회 출석과 정규적인 예배 참석하는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가정 하에서 모든 예배의 설교는 기성신자에게 적합한 교훈적 설교로 일관하여, 불신자에게 향하는 복음 전도적 요소와 요점은 무시되고, 결국 복음전도는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이러한 지적은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적인 목회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목회 사역 중 가장 흔한 체험은 젊은 대학생들이 주일 저녁 전도설교를 듣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짓된 가정 하에’ 살아왔던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고 고백한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정규적인 예배 참석자들이 누구나 틀림없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설교자의 ‘완벽하고도 위험한 실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