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구약시대부터 대망하던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로서 이 땅 위에 탄생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점에서 다른 유대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메시아의 출현을 구약의 성취로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신봉해왔다. 이스라엘 민족이 특별히 선택된 것은 모든 국가 모든 민족들을 위해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로마황제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황제를 위하여 하나님께 회당들을 봉헌하기도 했지만 황제 숭배의 종교적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유대인들은 어디에 거주하던지간에 다른 이방 민족들과 동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저들은 매주 토요일에 만나 시편을 노래하고 구약을 낭송하고 이 구절들을 기초로 한 설교를 듣고 함께 기도하곤 했다. 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시온’을 생각하였고 예루살렘에 순례를 행함은 물론 성전유지보수를 위해 헌금을 보내면서 고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유대교는 구약에 기반을 두고 있는 종교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고대 종교들과 구별된다. 비극적인 바벨론 포로시대가 끝난 후에도 유대사회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하여 튼튼하게 재건된다.
당시 저들의 무너진 사회가 재건될 때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선포할 선지자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성문 경전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를 해석할 권위 있는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이 필요하였다. 이들에 의해 원래의 경전들은 각종 학파의 해석에 따르는 주석들로 보완되면서 기원후 1세기 경 교회 내에서는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유대 땅 밖에서 거주하던 자들에게는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이 필요하였기에 몇 가지 번역본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번역들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이 70인역(Septuagint)으로 불리는 성경이었다. 기원 전 3세기 경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프톨레미 필라델푸스의 후원 아래 제작된 이 성경 70인역은 팔레스타인 이외의 땅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경이었다. 그 후 기독교인들이 이 70인역을 원본과 비교하여 그 오류를 지적해내자 기독교인들은 문자적으로 원본에 충실한 다른 번역본들을 찾기에 열심이었고 그리스화된 유대인들을 적대시 하면서 경멸하던 유대 랍비들은 성경을 다른 말로 번역하는 것을 금송아지 숭배보다 더 큰 죄라고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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