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계가 1000년을 넘어설 때 서유럽은 교회를 교황과 국왕 중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국왕들은 교회를 관장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적 책무라고 믿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평신도 임에도 주교와 수도원장을 임의대로 임명하거나 파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돌한 것이 교황 그레고리 7세와 독일 국왕 하인리히 7세였다. 때는 1075년이었다.
하인리히 4세는 당시 로마에서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치루지 못해 황제가 아니었지만 그의 권위는 황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는 작센 왕조의 시작인 오토대제는 970년부터 독일 왕들은 교회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국가지원금을 교회에 요구해왔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교회를 하나의 부속기관으로 간주한 것이었고 하인리히 4세도 그 관례에 따라 그레고리 7세에게 공납을 요구한다. 이에 교황은 황제에게 바치는 공납을 폐지하고 더 나아가 황제에게 주교 임명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물러설 하인리히가 아니었다.
그는 교황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밀라노와 스플레토,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역의 주교들을 마음대로 임명한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이런 경고를 한다. “그대의 번성은 은총으로 된 것이니 늘 겸손하며 또 국왕일지라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서신을 읽은 황제는 분노했고 브롬스에 독일 주교들을 불러 모아 그레고리 7세를 거부하는 결의문을 발표토록 강요한다. 그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제 힐데브란트여, 그대는 불법으로 교황에 선출된 후 거만했고 또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였다. 이에 우리는 그대에게 순종을 맹세한 적이 없어 따를 의무가 없으며 그대가 교황이 아님을 선언하노라.” 결의문을 받아 본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주교들과 하인리히 4세를 향해 교서를 내린다. “나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수호를 위해 하인리히가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상실했음을 선포하노라. 또한 하인리히에 대한 신하들과 백성들의 충성서약도 무효가 되었노라. 때문에 누구도 그를 왕으로 섬길 수 없다. 순종을 거부한 하인리히는 저주의 파문에 처하노라.” 이 교서를 접한 하인리히는 교황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겠다고 공언한다. 저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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