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신 학 과 제 물

영적 도해를 이해하기 위해

미션(cmc) 2008. 12. 8. 08:43

영적 도해를 활용한 선교 중보기도의 동력화1

이름 : 강순관 목사

출처 : 사이버선교대회 2001

강순관 목사

침례신학 대학원 졸업(M.Div)

성균관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B.S)

한국과학기술대학 기독학생회 전임간사

갈보리침례교회 대학, 청년부 전도사

한국해외선교훈련원 수료(9개월)

침례교 해외선교회 총무로 사역(2000년 12월까지)

Strategy Coordinator훈련(WMTC)

미국 IMB Career Missionary Training 훈련

Missionary Learning Center(미국 리치몬드 버지니아)

현, 지구촌교회 부목사, 선교원 원장, 중보기도사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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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도해를 이해하기 위해

영적 도해라는 말은 생소한 말이다.

사실 성경에 없는 말이요 숨어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선교 사역에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많고 또 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다분히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본인이 중보기도 사역을 진행함에 있어 많은 경우 이 주제에 대해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개념이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개념을 활용하여 중보기도 사역을 실시하면

더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기에 본인은 영적 도해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성경에서 그 사례를 살펴보며 이러한 개념을 활용한

전략적인 중보기도 사역을 설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그러한 개념과 중보기도 사역을 실제 적용하여 사역한 사례를 소개하고 정리하면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앞에 제안하는 바를

내 놓으려 한다.

 

I. 영적 도해의 개념

- 영적 도해를 이해하기 위해

빈집과 사람 사는 집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사람 사는 집은 그 집에 들어가면 체취가 느껴진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사느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교인의 집을 심방 하다보면 어느 집은 영적으로 평안함과 좋은 분위기를 느끼는 반면에 어떤 집은 집이 잘 정리되고 값나가는 물건으로 잘 꾸며놓았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차갑거나 어두운 느낌을 갖는 집이 있다. 그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그 집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독특한 이유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집에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특별한 요소가

있으면 그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부적이나 특정한 영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물건들을 집이나 특정 장소에 두면 그 정도가 더 강화되는 것을 본다.

이러한 예는 조금 예민한 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은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며 선교지에서 많이 경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영향력의 정도는 그것에서 발휘되는 영적 영향력의 정도 차이나

그러한 사람이나 물건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정 지역에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들이 얼마나 존재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그 지역의 영적 상태는 달리할 수 있다.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강도와, 그것의 수적 정도는 영적 영향력을

나타내는 수치나 상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들

중보기도 사역자들이나 선교 학자들 중에서

중보기도 사역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견고한 진’으로 표현하여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나 지역적, 사역적인 영역에서 견고한 진들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단순히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만 언급하기로 한다.

긍정 및 부정적 영향력: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영적 영향력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교회, 성도들의 집, 선교단체의 모임 장소, 기도원 등 우리는 쉽게 구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장소나 물건들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소가 된다.

부정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사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술집, 포르노 극장, 점보는 집, 절, 이단들의 집회장소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말한다.

음란한 사진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잘못돼가며,

밝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건강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처럼

음란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나 사창가 등이 있는 지역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영향력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중립적인 장소 그렇지만 영향력을 가진 중요한 곳:

어떤 장소는 중립적인 곳으로 긍정적인 세계관과 영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 사용되면 긍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사람에 의해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해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립적이지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장소나 매체가 긍정적인 사람에 의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학교,

관공서, 방송국, 병원 등이 그러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혹은 중립적이던지 간에 그 장소나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이다.

무당이나 절의 승려, 유행을 창출해 내는 가수나 연예인들 그들의

역량에 따라 그 영향력의 정도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승려라 하더라도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 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다.

라마 불교의 ‘달라이 라마’ 같은 사람의 영향력은 나라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에 종교나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유행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요즘처럼 메스컴이 발전되고 유행이 세상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 시대에서는 가수나 연예계의 스타들의 생각이나 행동 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성을 갖기도 한다.

최근 성전환 수술을 하고 메스컴에 등장하고 있는 '하리수'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의 가치를 무너트리며 특히 가치 정립이

아직 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성 역할을 왜곡하게 하고 가치 혼란을

야기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거나 활동하는 지역, 출신지 등에서 갖는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또 한가지의 영역이 된다.

영적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활동들

(굿놀이, 의례, 정기적인 행사 등):

지역이나 특정 공동체 내부에 영적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행사나 활동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성을 채우기 위한 자구책으로 자신의 의존하는 종교 행위를 하게 되는데 그러한 행위나 행사는 그들이 추구하는 영적 존재들의 잔치상을 마련해 주는 것이 되며 그 행위나 사역에 참여함으로 그들 자체의 영성을 강화하는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성향을 형성한 부분들

(사건, 사고, 전쟁, 원한, 지역감정 등):

개인의 인격 형성에 자신의 과거의 사건이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태교라고 하면서

좋은 영향을 태아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이 지역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 전쟁등이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적인 정보나 지식은 그 지역의

사람들의 심성과 정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이러한 정보는

사역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영역들은 위의 각 요소들과 연결되어 그 배경에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적 세력들의 활동들에 의해 사람들과 지역,

더 나아가서는 정치, 경제, 문화 각 부분과

심지어는 영적인 세계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모두를 소개하는 것 보다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그것이 영적 도해의 개념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 영적 도해란

민수기 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을 약속했으면서도 그 땅을 정탐하게 하신다.

각 족속의 족장, 즉 각 종족의 리더인 두령 12명을 선정해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면서 조목조목 자세히 보고 올 것을 지시하신다.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강한지 약한지,

땅은 좋은 땅인지 그렇지 않은지,

거주하는 형태가 산성에 있는지 혹은 평지에 거주하고 있는지,

토지는 비옥한지 척박한지와 수목이 많은지 적은지를

정탐할 것을 말씀하셨고 또 그 땅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인

열매를 가져올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은 확실한 사실인데

그럼에도 그 땅을 자세히 정탐하고 돌아올 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은

그 땅에 대한 특별한 의도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후에 정탐을 하고 돌아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자신이 보았던 정보를 활용해 진행했을 것이다.

선교 전략가나 혹은 중보기도자들은 그들의 사역 중에 지역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사역에 활용하면서 영적 도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신디 제이콥스는 도시를 사실 그대로 보게 하기 위해 복음의 확산을

방해하고 특정 도시를 복음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단이 만든 침입로를 찾아내기 위해 도시를 조사하는 것으로 영적 도해를 정의한다.

그는 조지 오티스가 제안한 개인과 마음, 이념, 주술, 사회, 도시와

교회사이, 사단의 자리, 분파주의, 불법의 견고한 진들을 개념을 따라 개인과 지역, 사회와 영적인 영역 그리고 사상적인 영역 등의 영향력을 표면과 이면의 영적인 영역까지 이해하는 노력을 영적도해의

방법으로 제시한다.(지역사회에서의 마귀의 진을 헐라, p 92)

해롤드 카발레로스는

'영적 도해란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수의 정체를 분별하고

그들의 전략과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지역을 세밀하게 구분해서 역사적, 물리적, 영적 요소를 조사해 도식화하는 노력'을 말하고 있다. (같은 책, 145-171p)

밥 베케트는 도시의 역사와 도시 사이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격 형태 그리고 주술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당, 주술사, 뉴에이지, 철학관 등

사신의 센타 등을 조사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도식화해서 전략을 추출해 내는 행위(같은 책 201p)를 말하고 있다.

빅토르 로렌조는 체계적인 리서치와 성령의 계시 및 다양한 증거 등을 한데 묶어 영적 어두움의 세력들의 정체와 그들이 어떤 도시의 사람들과 교회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과 방법들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얻어내는 행위라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영적 영향력을 지도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긍정적인 영역과 부정적인 영역을 표시하고 그것의 조밀한 정도와

영향력의 강약을 표시하면 그 지역의 영적인 상태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영향력 중 그 지역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특정

세력과 그것의 영향에 연관되어 있는 특정 집단의 연관성을 연구하여 그 분포도나 연결 사항을 표시하고 색을 달리하며 구분하게 되면

그 각 지역마다 특징을 분별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것들의 역사적으로나 특정 사건과 연관되어 미치는 상황을 파악하면 그것의 정체나 영향력의 정도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 조사시 특별한 은사를 가진 중보기도의 은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예상치 못한 특별하고 의미있는 사항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예가 종종 있다.

아울러 영적인 부분에서 긍적적인 영향의 주체가 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의 숫자 퍼센트, 성향 등을 적절히 표시해 둔다면 영적 접전의 상태나 대결 양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사역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영적 도해란

복음 사역을 위해

특정 지역이나 나라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

그 상태와 연관성을 분석, 파악하고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함으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사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노력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계속 : 영적 도해를 활용한 선교 중보기도의 동력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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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Ⅴ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그 제 이 일에도 성을 한 번 돌고 진에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수 6:12-21)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영적인 도해에 대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영적인 도해가 뭐냐? 내 삶의 현장을 영적으로 분석하고, 거룩한 역사를 방해하는 게 뭐냐 알아낸 후에 그 사탄의 견고한 진을 공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도해입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어떤 장소든지, 사건이든지, 혹은 질병이든지, 무엇이든지 다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신앙을 방해하고, 거룩한 역사를 거절하고 훼방하는 견고한 진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뜨려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방해를 받기도 하고, 또 내가 결정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를 한다고 할 때, 무조건 나가서 "전도합시다!"하고 발로 뛰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좀 더 전략적이 된다면,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수준 높은 대안이 있을 수가 있지요. 먼저는 그 지역에 전도를 방해하는 견고한 진이 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 얘기지요. 그리고 그것을 부수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 안에 지역 사회 전도팀이 구역마다 되어 있는 구역이 많은데, 우리 기도팀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면 서로 모여서 기도하는 것도 좋고, 함께 활동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지요. 아주 적극 추천해야 할 일이지만 빼놓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속한 이 지역, 내가 속한 이 구역 내에 복음을 방해하는 근본 세력이 무엇인지를 부수어 주옵소서."라고 꼭 기도해야 돼요. 그래서 자기 구역 안에 있는 복음을 방해하는 진들을 각 구역마다 부수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전도하는 거에요. 전도가 엄청난 효과로 그렇게 역사가 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전쟁과 똑같은 거에요. 여러분, 미군이 공격을 하는데 맨먼저 무얼로 공격을 해요? 미사일로 공격하잖아요. 포가 멀리서 쏴버리잖아요. 그죠? 아니면 배에서 쏘든지, 비행기에서 쏘든지... 폭격을 한다구요. 그래서 뭘 부수느냐? 견고한 진을 부순다구요. 견고한 진을 일차적으로 사람 가기 전에 날려서 부숴버리는 거에요. 일차적으로 목표한 것들을 대충 때려부순 다음에, 그 다음에 하는 게 뭐예요? 지상군을 투입하는 거에요. 이것은 전쟁의 기본이에요. 보병이 먼저 가는 게 아니에요, 그죠? 먼저는 미사일을 날려버리고, 그러니까 포병이 먼저 때리고, 나중에 보병이 가는 거다, 그런 얘기지요.

영적도해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영적도해를 하고, 뭘 공격할까 목표를 정한 후에 일차적으로 기도로 부수고 나면 그것을 정복할 지름길이 활짝 활짝 열려가는 것이다 라고 하는 패턴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지상군을 어떻게 투입하고 활동시켜야 하는 문제지요. 구체적인 목표물에 어떻게 접근하고 공격하여 최종적인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 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이 말씀을 잘 아실 거에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작전입니다, 그죠?

여리고가 어떠한 곳인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요르단 지역을 넘어가서 가나안의 서쪽으로 오지요. 서쪽으로 와서 요단강을 건너가지고 가나안 땅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첫 관문이 바로 여리고 성인 거에요. 한반도를 놓고 비유를 하자고 하면 한 가운데서 조금 내려온 곳이니까 강릉 쯤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사실은 강릉과 포항의 가운데쯤 되겠는데. 한반도에 어떤 군대가 이제 상륙을 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어디로 들어오는고 하니 예를 들면 강릉으로 들어와야 돼요. 그러면 강릉이 첫관문이 되는 거에요, 그죠? 여기의 이 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키지 않으면 북으로도 갈 수가 없고, 남으로도 갈 수가 없는 거에요. 이 반도에 상륙할 수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에요. 요단강을 건너 왔는데 이 가나안 땅으로 딱 진입하려고 하니까 첫관문이 철저한 요새에요. 그게 어디냐 하면 바로 여리고성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가나안의 입구, 바로 진입로지요. 진입로. 그러므로 요새 중의 요새입니다. 그러므로 견고한 진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에요.

이 요새를 부술 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느냐? 없었어요. 그런데 이 여리고성은 첫 성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거에요. 왜냐하면 여기서의 성공의 여부는 다음 번의 전투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첫 관문, 통과해야 할 성이 너무나 센 상대에요. 그래서 여호수아가 크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지요. 견고한 악의 진을 부수는 작전을 알려 주셨어요. 그 내용이 뭐냐? 6장 3절에서 5절 사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리 찾았으니까 3절에서 5정을 함께 읽읍시다.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맨 앞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서라. 그 다음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들고 서라. 뿔나팔을 불면서 행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법궤가 따라오고, 그 뒤에는 군사들과 백성들이 따라오라, 그런 얘기입니다. 그리고서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여리고를 뺑 돌아라. 며칠동안? 엿새동안. 그리고 마지막 칠일째 될 때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소리를 지르면 성이 무너질 것이다 그랬지요. 그 때 공격하라 그랬어요. 그럼 왜 맨 앞에 무장한 군인이 가야 되는가 하면 이유가 확실하지요. 여리고성 주위는 평지가 아니거든요. 산지도 있고, 장애물도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길을 개척해 나갈 사람이 필요한 거에요. 소위 말하면 길을 뚫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된다 말이에요. 또한 이것은 적진이거든요. 적의 성 앞을 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 위에서 공격이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뒤에 오는 후발대를 보호해야 할, 경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바로 누가 오고 있는가 하면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며 오고 법궤를 모셔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호해야 할 천병이 앞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 그래서 무장란 군인들이 맨 앞에 서고, 그리고나서 이제 나팔과 법궤가 가고, 군사와 백성들이 따라가는 거니까 실제로 맨 앞에 가는 것은 뭐예요? 내용적으로. 법궤가 맨 앞에 가는 거에요. 법궤를 따라서 이제 군사와 백성들이 따라오라,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뺑뺑 뺑뺑 돌다보면 될 거다 그런 얘기 아니겠어요, 그죠?

자, 이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어요? '참 웃기는 방법이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그죠? '하나님이 그냥 성벽을 확 무너뜨려 주면 될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보고, 아니면 "얘들아, 정말로 어렵긴 한 난공불낙(難攻不落)의 성이지만 내가 점령하게 될테니 마음 놓고 성벽을 올라가라."라고 명령할 수도 있는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그 성을 정복할 가능성은 애시당초 없었어요. 그 성은 너무도 견고한 요새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는 거지 자기들의 능력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지요. 주시긴 주실 거에요. 약속을 했으니까 선물로. 그러나 선물로 주면서 꼭 가르치고 싶은 게 있는 거에요. 그게 뭐냐하면 "내가 주는 거다." 선물로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이 노닥거리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꿀떡 먹는 것은 아니에요. "너희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고, 열심히 따라올 때 하나님이 얻게 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지요. 이 영적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상한 행군을 명령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라고 하시는 거에요. 이것은 신앙적인 측면의 분석이고.

그렇다면 이제 군사적인 측면에서 뺑뺑 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의미가 있는 거죠. 군사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죠.

군사적인 효과는 뭐냐하면 첫째는 숫자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 여기 여리고성이 요렇게 있는데 성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돈다 말이지요. 성을 돌며 행군을 할 때는 앞 사람과 뒷 사람과의 거리가 필요한 거에요, 그죠?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돌아가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바퀴 돌게 되며는 원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과 끝이 없지요. 돌다 보면 원과 원이 이어지는 거지요. 그러다보면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을 할 수 있지요. "뭐야, 이거? 도대체 몇 명이야? 뭐 이거 뭐 끝도 없네. 끝도 없어."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숫자로 적들은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하는 거에요.

두 번째는 뭐냐하면 10절에 보면 조용히 돌았다고 그랬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러분, 엄청난 군대가 말이지요, 아무 것도 안하고 뺑뺑 도는데 수가 무지무지해, 아무튼.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처음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시끌벅적하지 않다는 거에요. 모두 침묵한 상태에요. 엄청나게 잘 훈련된 정예 군사가 되는 거에요.

세 번째는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돌았거든요. 그죠? 13절에 보면 나오지요?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뿌우∼" 하면서 다녔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뿔나팔은 금속나팔 보다 소리가 더 은은하면서도 멀리 퍼집니다. 아마 가슴 속으로 푹푹 파고 들어오는 소리였을 거에요, 그게. 다시 말하면 이 군대가 조용히 숨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나팔을 불면서 당당하게 오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여기 왔다!" 그런 얘기입니다. 자신 있다는 그 소리지요. "나팔을 불고 있으니 나와 보려면 나와 보라!" 그런 얘기입니다. 사기가 충천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자, 이 군사적 효과를 종합해 볼까요?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만큼 엄청난 군대가 너무도 일사분란하게 훈련된 정예 부대가 움직이는데 겁에 질린 게 아니라 자신감이 넘쳐 흘러요. "너희들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 여기 있으니까 나와 봐!" 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는 비추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는 거에요.

자, 보세요. 지금 여리고의 상태는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요. 저들이 말이지, 저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척 애굽을 무너뜨리고 말이야, 그죠?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 40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에서 저 수 많은 백성이 40년 동안 쌩쌩하게 살았단 말이지, 그리고 자기들의 남부 지방을 다 점령하면서 요단강을 건너 왔어요. 홍수 때. 그것 자체가 너무너무도 무서운 얘기인데, 소문만 듣고도 오금이 저려 죽겠는데 그들을 막상 눈으로 딱 보고 나니까 '환장하겠네...' 그런 얘기지요. 여간내기가 아닌 거에요. 수도 많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감으로 팽배한 이스라엘 군대를 본 거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완전히 전의 상실이에요. '이젠 죽었다.'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자, 이렇게 해서 엿새를 돌았어요. 이제 일주일째 되는 날 일곱 번을 뺑뺑 돌았어요. 그리고 나서 이제 일곱 번을 돈 다음에 뭐라고 그랬지요? 16절, 우리 함께 봉독합시다.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하고 외쳤어요. 뭐라고 외쳤을까요? 뭐라고 외치라고 그럴 때 외치는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웃겼을 것 같아요. 그죠? 각자 다 지껄였을 것 아니에요? "야호!" 그랬을까? "만세!" 그랬을까?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한 25명이 훨씬 넘지요. 그 때 제가 이제 그 비무장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 아이들하고 이렇게 마주 보면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가끔 이제 서로 햇빛 쬐러 나와 보면 그 아이들도 이렇게 나와 있단 말이지요. 그러면 이제 대남 방송 하고, 우리도 대북 방송 하고 그러는데, 서로 마주보고 얼굴이 구별이 될 정도로, 한 350m 정도 직선 거리로 있을 때는 얼굴이 보인다구요, 그러면 마이크 안쓰고 손마이크 가지고 서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그 북한 아이들은 말들을 참 잘해요. 마이크 탁 주면 아무나 5분, 10분 그만두라고 그럴 때까지 지껄여요. "이보라우 애미나이들, 오라우 건빵 줄게. 니네 소대장 누구지?" 다 얘기해요. 뻔히 보면서 "이리 오라우, 이리 오라우, 건빵 줄게." 얘기한다 말이에요. 그럼 그런 얘기를 한참 듣고 있다가 우리도 좀 그렇잖아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우리 중대장님 한 분이 우리 고참한테 "야, 너도 한마디 해!" 하고 손마이크 탁 줬어요. 그랬더니만 "북한 병사들아, 남한으로 넘어와라." 그러면서 할 말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중대장을 이렇게 쳐다 보니까 "더 해! 더 해!"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할 말이 있나? "김일성 개새끼!" 그런 거에요. 아 참,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 아이들은 말 무지하게 잘 해요. 우리는 준비가 안되어 가지고, 평소에는 이제 준비된 정훈 테이프를 가지고 틀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말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그래서 외히라고 해도 할 말도 없어요. 욕하고 마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걸 보더니만 "아이구, 우리 정훈 교육 좀 시켜야 되겠다."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여리고 성이 이제 무너질 건데 "외치라!" 뭐라고 외칠까? 오늘 본문에 가르쳐 줬지요? 뭐라고 외치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여호와께서 이 성을 우리에게 주셨느니라!" 라고. 그렇게 외쳤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말을 가르쳐 준 거에요, 그죠? "이 성은 우리의 것이다." 혹은 "이 성은 무너질 것이다." 혹은 "여호와께서 이 성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는 구호를 외치게 한 거에요. 그리고 온 백성이 그 성을 향하여 확 외쳤어요. 그 때 어떻게 되었어요? 20절에.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성벽이 무너져 내렸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성벽이 무너져 내리면 누가 다쳐야 돼요? 이스라엘 백성이 다쳐야죠. 왜냐하면 성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비탈길에 세워져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이렇게 비탈길에 성이 이렇게 세워져 있을 때 무너지면 어디로 무너지겠어요? 밑으로 내려지면 다칠 사람은 누구에요? 이스라엘 백성들만 다 다치게 되어 있는 거에요. 정상적으로는. 그런데 하나도 안다쳤대잖아요.

이 본문을 보면서 이상해가지고 고고학자들이 뒤져본 거 아닙니까? 여리고성을 발굴해 봤더니만 벽돌이 전부 다 성 안쪽으로 무너져 있는 것을 발굴했어요. 그리고 결론이 뭔지 아세요? 국지적인 지진에 의하여 성 안이 약간 함몰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성 안으로 폭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피해가 엄청 큰 거에요. 문 꽉 닫아 놓고 안나가려고 했는데, 약간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꺼진 거에요. 지진계로 6도 이상이면 성이 무너진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자기들의 성이 자기들을 덮은 거에요. 그러니까 혼비백산 하는 거지요. 거기다가 큰 함성과 함께 어떻게 돼요? 그 많고 담대한 용사들이, 정예병들이 막 몰려 오는 거지요. 꼼짝 못하고 당하는 거지요, 뭐. 그죠? 그렇게 해서 여리고성이 나가떨어지게 되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지진에 의한 지층이 가라앉은 것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들은 성문만 닫고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하나님이 흔들어버리는데 뭐, 땅이 푹 꺼지는 판에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은 이 계획을 다 가지고 계셨고, 타이밍을 잘 맞춰서 이런 멋진 작품을 이루어내시게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혼비백산하게 되었고, 그래서 여리고를 점령하고,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전을 가리켜서 '여리고 작전'이다,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에요? 그 이후로는 이제 중요한 영적 원리로 오늘까지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우리가 정복하고, 소유하고, 가지려고 할 때, 요즘의 믿는 성도들도 "한 번 돌지." 그러잖아요. 그게 다 여기서부터 나온 게 아니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그렇게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이 그런 말 하신 것이 제가 기억납니다. 신학생 시절에 어느 날, 외국 선교사님 댁에 놀러 갔는데 아 집에 딱 들어가 보니까 책상이 있는데 와 너무 좋더라는 거에요. '아, 나도 이런 책상 좀 하나 가져 봤으면...' 그 순간에 뭐가 생각났냐? 여호수아가 생각났어요. '일곱 번 돌아야지.' 그래서 '하나님, 저 책상 저를 주십시오.' 하고 뺑뺑 뺑뺑뺑 돌았다는 거에요. 그런데 아무 일도 없지 뭐. 그래서 집에 돌아왔는데 며칠 후에 선교사님이 오라고 그래서 갔더니만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책상 필요없으니까 가지겠어요?" 그러더랍니다. "아멘!"하고 접수했답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지요. 저도 우리 교회, 지금 여기 잔디밭하고, 저 하우스하고 합해 있는 이 땅 300평 살 때, 여기 다 밭이였다구요, 그죠? 딸기밭이였고 그리고 물이 막 나고 그랬는데 '아, 하나님께서 이 땅을 꼭 주셔야 되는데... 교회에 너무너무 필요한 땅인데 주셔야 되는데...' 하면서 생각나기를 '나도 여호수아처럼 돌아 봐?'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도는데 아, 그 도는 게 만만치 않습디다. 왜냐하면 가시도 많고, 제 구두가 두어번 빠졌어요, 여기. 그걸 몰랐는데 진창에 쑥 빠지는데 발목이 쑥 들어가더라구요. 구두도 못 꺼내가지고 손으로 꺼내고 그랬는데... 그리고 가시도 있고 그래서 '야 이거, 매일 돌아야 되나, 이거? 안돌면 안되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갈등이 생겼어요. '이거 꼭 돌아야만 되나?' 또 하나의 갈등은 뭐냐면 '언제까지 돌아야 되나, 이거? 하루에 한 번 돌아야 되나? 일주일 때 일곱 번 돌고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일주일 안에 산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어떻게 하나, 이거?' 하면서 생각을 했어요. '도대체 돈다고 하는 의미가 뭐냐?' 하는 거에요. 돈다는 게 뭐냐?

그럼 돈다고 해서 나쁜거냐? 아니에요. 사실은요, 요즘에도 도는 사람 많구요, 특별히 이제 큰 선교 대회 같은 것을 하게 될 때, 어느 도시를 전략적으로 전도하려고 할 때에, 우상의 도시를 그리스도의 도시로 만들려 할 때는 전도 집회 하기 전에 기도하는 중보 기도자들이 많이 그 도시로 모여가지고 그 사람들이 믿음의 시가 행진을 해요. 그리고 돌면서 기도하고, 때로는 땅에 엎드려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도시, 이 지역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도록, 악의 견고한 진이 파괴되도록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그리고 선포해요.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다. 이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지어다."라고 그렇게 명령하고 선포해요. 그리고나서 집회해요. 그럼, 집회가 잘 될까요, 못 될까요? 잘 되지요. 왜요? 견고한 진이 부숴졌잖아요. 그러니까 오늘도 이러한 역사는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문제는 안돌면 안되는가 하는 거에요. 그것은 아니지요. 신앙 스타일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돈다는 것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법궤를 앞세우고 나갔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신뢰하고 나가야 된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야망과 내 의지, 내 고집... 뭐 이런 거, 나의 유익이 아니잖아요. 오늘 본문에 보면 노략질하지 말고, 뭐 자기 유익을 위해 하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그죠? 나의 고집과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목적으로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첫째 나가야 된다, 그런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발로 밟아야 된다는 거에요. 발로 밟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어요? 구체적으로 수고하고 노력한다는 거에요.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잊지 않고, 생각하며, 노력한다는 거에요.

세 번째는 "이 땅을 주셨다!"고 선포를 했어요. 선포는 중요한 거에요. '땅 보고 선포하나, 그래? 살아있는 것이 아닌데도 선포가 가능할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 선포가 가능해요. 주님은 풍랑을 보고 "잠잠하라!" 그러셨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이 나무는 이제 실과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랬어요. 못 맺는 거에요.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씨와 같아요, 그죠? 씨를 뿌리면 그 다음부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자, 예를 하나 들게요. 여기 어떤 땅이 있다고 합시다. 자, 이 땅을 놓고 이제 우리가 직접 돌 수도 있고, 안 돌 수도 있어요. 그러나 돈다는 의미가 뭔가를 생각해 보자는 거에요. 이 땅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나가면 되는 거에요. 이것은 법궤를 메고 나가는 것과 같은 거에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땅으로 주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이 땅을 취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수고하고, 기억하고, 관심 갖는 행위들... 이게 뭐예요? 이게 밟는 일이에요. 그 다음에는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라고 하는 고백, 선포. "땅아, 너는 하나님께 속했느니라."라고 하는 담대한 선포, 이것은 마지막 선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도는 것의 핵심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가 없으면 뺑뺑 돌아봤자 헛것이다, 이거에요.

물론 돌면서 하면 더 좋겠지요. 왜냐하면 더 확실해지고, 담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냥 도는 것은 무의미하고,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돌아야 하고. 사실은 이것만 정확하다면 돌 수 없는 곳도 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돈다는 것의 의미가 뭐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체적으로 수고하고, 노력하며, 선포하며 나가는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서 중간에 조심해야 될 게 하나 있는데 뭘 조심해야 되느냐? 10절에 나오는데 우리 10절을 꼭 봉독해야지만 되겠어요. 함께 봉독합시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뭐라고 그랬어요? "아무 말도 하지마. 입 꼭 다물어." 그랬어요. 왜 입 다물라고 했을까요, 여러분. "말 많이 하면 기운 빠지잖아." 에너지 절약하라고 그랬을까요? "걷기도 힘든데 말까지 하면 힘들지 않아?" 그런 의도가 아니겠지요. 부정적인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사람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많은데 의견이 다 같을 수가 없는 거에요. 여호수아의 명을 따라 도는데, 도는 것을 좋아하고 기분 좋아서 순종하여 적극적으로 도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런 걸 왜 돌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많지요. 얼마든지 있는 거에요. 그러므로 자유롭게 말하게 두었다가는 "이거 뭐야, 이거? 다리만 아프게. 걷는다고 성 무너져?" 이러기 시작하면 중구난방이에요. 막을 수가 없는 거에요.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말이 새끼를 깝니다. 말이 새끼를 치는 거에요. 그러면 기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걷던 사람도 낙심이 되는 거에요. 좌절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결코 일주일 동안 돌 수가 없는 거에요. 중간에 와해되고 마는 거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 하지 마. 입 다물어!" 그랬잖아요. "의심스러워도 꾹 참어!" 그리고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일을 보면 될 것 아니냐 이거에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요? "입 다물어라." 입 조심해야 됩니다. 조심해야 될 것이 뭐냐? 요 입이에요.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라. 초 치지 마라." 그런 얘기에요.

여러분, 부정적인 말도 열매를 맺을까요, 안 맺을까요? 맺어요. 그러니까 좋은 말만 하세요. 생각도 좋으면 좋은데 생각이 나쁘더라도 일단 내 속에서 말로만 안 튀어나오면 괜찮아요. 그 때부터는 아직 안 뿌려진 것이니까. 내 입으로 툭 튀어 나오기 시작하면, 씨는 땅에 묻히면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력을 냅니다. 나쁜 말도 자꾸 까발려 놓으면 거기서 얻어지는 열매가 있어요. 그래서 인생이 고단한 사람을 잘 보세요. 꼭 피곤하게 사는 사람을 잘 보라구요. 그 입이 어떤가? 그 입이 문제에요. 꼭 피곤하게 만들 일을 입으로 말해요. 그래서 사건을 만들어요. 언제나 있는 거에요. 거룩한 역사를 하고 조용히 마음을 다하여 약속을 믿고 달려가서 "와!"하고 한꺼번에 힘을 빵 쏟아야 되는데 시부렁 시부렁 시부렁 시부렁하면서 이 말, 저 말 그냥 다 얘기하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안된다, 얘기에요. 그래서 입을 딱 다물어라, 입 조심하고, 잘 돌아야 된다. 그런 얘기지요.

그러므로 입을 조심하면서 세 가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그것을 향하여 수고하면서 선포하면서 나가면 무너지는 거에요.

여러분, 옛날의 여리고는 빼고 이제 우리로 말하자면 나의 여리고. 나의 여리고가 뭐냐? 많지요 뭐. 어떤 사람은 진학이 여리고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여리고일 수도 있지요. "으이구, 되게도 안 믿네. 내 누구..." 이것도 여리고일 수도 있지요. 나의 여리고. 혹은 어떤 장소나 어떤 건물도 여리고일 수 있지요. 어떤 사업일 수도 있어요. 나의 여리고는 다양한 거에요. 그것을 향하여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어떻게 나아가야 될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노력하고 수고하면서, 선포하면서, 인내하며 나아갈 때 그 어떤 것도 다 무너질 수 있는 거에요. 중간에 낙담하지 말고. 여기서는 일주일이지만 사실은 일주일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는 거에요. 그 때까지 인내하고 꾸준해야지요. 서둘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고, 꾸준히 말씀을 붙들고 수고하면서 선포하고, 믿고 나아가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세상이 강하고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도, 아무리 난공불낙인 것 같아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노력하고 선포하며 나아가며, 예수의 이름으로 나갈 때는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리고성 점령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다 여러분의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그러한 승리하는 군사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우리 들은 바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여리고가 무엇입니까? 여리고를 어떻게 점령해야 됩니까? 그 여리고 점령의 방법을 알게 하시고, 그대로 행하여 늘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한 2분간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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