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39주(9월 24일)/ 하나님의 돌아보심(스 5: 1-5)
*최상의 도움 받았던 일 또는 최선의 도움을 주었던 일
*성경을 읽는 것에는 1)눈으로 읽는 것은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며 다독하는 것 2)머리로 읽는 것은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 3)가슴으로 읽는 것은 마음에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건축의 재건은 중단 된지 15년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건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재건하게 되었는가?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15년의 침묵을 깨셨는데 나의 어려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침묵이 깨시지 않겠는가?
스 5:5에 하나님이 유대장로들을 돌아보았다는 것은 볼 수 있다는 것은 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15년간 동안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침묵을 깨셨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하나님이 돌아 보셨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는 것은 말씀의 은혜이며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G12의 원형 셀 리더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리더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하나님의 돌아보심이 있습니다. 학개1장과 스 5:2에서 이에는 정신이 들어 회개 후에 형통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후 성경말씀을 영으로 읽어 집니다. 내가 일어날 부분은 내가 깨어질 것은 내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1.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무슨 일을 끝까지 성공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떤 게으름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데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성공할 수없는 원인은 1)고난 후에 쉽게 좌절하는 것입니다. 성공은 필수적으로 고난이 따라옵니다.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식을 고생만 하게 하는 부모가 있는가? 2)게으름입니다. 선천성 게으름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뜨거우나 나중에는 주저앉게 됩니다. 보편적 게으름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보편적인 게으름이 있습니다. 선택적 게으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들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직장을 열심내면 가정에 불충실하고 그러고도 당연시 합니다. 영적인 불균형이 문제입니다. 이들도 과거에는 성전을 재건에 열심을 냈는데 가정에 부실했는데 이제는 가정에 열심을 내는 반면에 성전 재건에 게으름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선택적 게으름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불균형입니다.
2.성전 공사가 중단 된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그런 상태에 있는 백성들에게 깊은 침묵을 깨뜨리고 말씀하신 영적 알람은 무엇입니까?(스 5:1 학1:1-6 슥 1:1 벧전1:13)
.성전공사가 중단된 것은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비전을 상실했습니다. 왜 예루살렘에 오게 하시고 자기들이 왜 왔는지 목적이 상실 되었습니다. 그 후에 좋은 집이 목적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적상태 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지금까지 살려 두셨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자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답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루의 삶이 중요합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일을 상실하고 사는 것입니다. 영적인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선지자의 예언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3.영혼을 일깨우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영적 자명종을 들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악조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무엇입니까?(스 5:2 스 3:2 잠21:1)
.다시 비전이 회복되고 다시 성전을 재건하는데 자기들이 해 간다는 회복이 왔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 최상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입니다. 누구나 다 돌보심의 은혜를 주시는데 2가지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1)잘못된 삶의 회개가 일어나고 2)그 일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응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밀어 주십니다.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 2가지를 안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체험을 모르게 됩니다.
4.호사다마라는 말처럼 닷드내 총독이 주모자와 그 경위를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답변을 통해 소중한 두 가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 무엇입니까?(스 5:5, 8, 10,11)
.호사다마는 좋은 일에는 많은 마귀가 있다가 아니라 갈마 자를 써서 당연한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의 사명을 회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고 자기의 나라가 망한 것 고레스왕의 성전을 재건케 한 것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기위하여 다시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5.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종임을 믿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계19:5)
.말의 효과는 말을 정리하게하고 말이 올무가 되고 족쇄가 되는 것입니다. 강론으로 말해야합니다. 기도를 요청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는 것의 구체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계19:5에 마지막의 회복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깨닫고 성전재건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영적 균형을 잘 이룰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