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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형제 자매 관계의 치유

미션(cmc) 2008. 12. 24. 17:24

형제 자매 관계의 치유

 

천재적인 음악가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생애를 주제로 한 연극「아마데우스」는 많은 비평가들이 격찬했다. 이 연극을 토대로 만든 영화는 아카데미 상까지 받았다.

 

  「아마데우스」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시기심 때문에 멸망하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당시 비엔나 왕궁 전속 음악가인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천재 음악가 소년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만났다. 젊은 모차르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 태어났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는 미성숙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저속하고, 호색적이었다.

 

  한편, 살리에리는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음악을 작곡하며 사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은 시절부터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양시키는 음악을 작곡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리에리에게 그런 재능을 허락하시지 않았다. 살리에리의 재능으로 괜찮은 음악을 작곡할 수는 있었지만 대작은 작곡하지 못했다.

  비록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살리에리는 자신은 평범한 재능밖에 가지지 못했으며 그의 작품도 곧 잊혀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살리에리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모차르트가 가진 사실을 알고 난 후 부러움이 지나쳐서 마침내 시기심에 불타서 연극의 마지막 절정인 독백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는 그런 뛰어난 재능을 주고 자신에게는 주지 않은 하나님을 저주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도 동료에 대한 경쟁심이 지나쳐서 시기에 이르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결국에는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무서운 예를 본다.

 

  이러한 예는 일찍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두 형제 가인과 아벨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생인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시고 형인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다( 4:3-8).

 

아벨은 최고의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가인은 대충 하나님께 드렸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11:4).

  하나님의 차별 대우에 격분한 가인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시는커녕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동생 가인을 질투하여 결국 죽이고 말았다.

 

 

갈등과 상처의 원인 

 

  부러움과 시기. 형제 간의 갈등은 대부분이 시기와 질투에서 생긴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지만 속으로는 나보다 낫고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나보다 잘난 형제 자매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죄인된 인간의 속성이다. 

 

  어느 신앙이 좋은 자매가 불신자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이런 저런 집회에 데리고 다녔다. 어느날 이 두 자매는 성령 집회에 참석했다. 바로 그 날 처음 집회에서 불신자 친구는 성령 체험도 하고 여러 가지 은사도 받았다. 그러자 불신자 친구를 전도한 자매는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런 은사를 오랫동안 사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험과 은사를 주시지 않으시면서 어떻게 죄악된 삶을 산 제 친구에게는 그렇게 순식간에 주십니까? 하나님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이후 두 자매간의 사이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친구를 전도한 자매는 자기보다 많은 은사를 받은 친구를 시기 질투하면서 "그게 과연 성령의 은사일까 마귀가 준 것이 아닐까?" "은사 받았으면 다냐? 그래도 내가 성경 지식은 너보다 많고 신앙 인격도 너보다 낫다"라면서 친구가 받은 은사를 깍아내리고 의심했다. 한편 은사를 받은 친구는 "자기가 은사를 못 받으니까 괜히 시기하고 질투한다"면서 서로 크게 싸운 후 서로 교제를 끊었다.

 

  이와 비슷한 예가 성경에도 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말째인 요셉은 일찍이 어릴 때부터 영안이 열려서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신앙 인격적으로는 여전히 철부지였다. 그는 자기가 본 꿈 자랑을 하여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유발했다. 더욱 형들을 분개하게 만든 것은 형들이 언젠가 자기에게 절을 하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 형들은 시기하되"( 37:11). 마침내 형들은 적당한 기회가 오자 서로 모의하여 동생 요셉을 이방인의 노예로 팔아버렸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7:9).

 

  얼굴도 미모이고 학력도 좋은 자매 한 분이 치유 기도를 부탁했다. 밝고 명랑한 표정의 이 자매는 딸만 일곱인 집안의 셋째 딸인데 자매간의 시기 질투로 인해 마음이 너무 상해 있었다. 마음 속에는 원망과 좌절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그로 인해 복수의 영, 미움의 영, 죽음의 영이 역사하여 결혼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시기하고 질투한 형제를 용서하고 또한 그들을 미워한 죄를 회개하게 하고 악한 영들을 쫓아낸 후 상태가 급진전되었다. 오래만에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잤다고 한다.

 

  부모의 편애. 요셉의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유발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이다.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 요셉을 유난히 편애했다. 야곱은 형들과는 달리 요셉에게는 값비싼 채색 옷을 입혔고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아버지의 점수를 땄다( 37:2-3). 당연히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37:4).

  형제 간의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형제 간의 경쟁 심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부모의 편애에 의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야곱 집안의 편애는 아버지 이삭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 이삭은 들짐승을 잡아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에서를 좋아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히 천막에 거하는 야곱을 좋아했다( 25:27-28).

  부모의 이러한 편애는 나중에, 리브가가 야곱과 공모하여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자기의 축복이 야곱에게 넘어간 사실을 안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불안을 느낀 리브가는 야곱을 오빠인 라반에게로 피신 시킨 후 죽을 때까지 야곱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이러한 가계의 잘못된 전통을 야곱도 이어받았다. 야곱은 두 아내 레아와 라헬 중  라헬을 더 사랑하였고 당연히 레아의 소생들보다는 라헬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을 더 사랑했다. 비록 야곱의 열 두 아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이 되었지만, 요셉의 꿈 자랑과 아버지의 편애로 인한 형제들의 시기심으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과 고통은, 이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때까지 십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부모가 어느 특정 자녀를 지나치게 편애하면 형제 간에도 "왕따" 현상이 벌어져서, 요셉을 노예로 판 형들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또한 형제 자매들 중에서 지나치게 뒤떨어지는 자녀들을 구박하거나 핍박하면 그 사람은 거부감과 낮은 자화상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K양은 부유한 집안의 막내 딸이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데 둘 다 얼굴도 잘 생기고 체격도 늘씬하고 공부도 잘하여서 어릴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서 좋은 대학을 거쳐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K양은 날 때부터 조금 부족하게 태어났다. 생긴 것도 그렇고 지능도 평균 이하였다. 부모들은 K양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어디서 저런 것이 태어나서 집안 망신시키느냐?"자연히 부모들은 K양을 학대하고 업신여기고 심지어는 말이나 행동으로 심하게 구박했다.

  다른 두 형제 자매에 비해 자신이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안 K양은 심한 정서불안, 거부감, 낮은 자화상―열등감―, 그로인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치유 기도를 통해, 자기를 구박한 부모와 형제를 용서하고 그들을 미워한 죄를 회개하게 했지만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본인의 결심에 찬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동료들로부터 집단 왕따를 당한 어느 장년이 칼부림으로 보복한 사건이 발생하여 가정은 물론 사회에서의 왕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이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발전할 때 망국병이라도 할 수 있는 집단이기주의로까지 발전한다.

 

  형제 자매나 동료 사이에 건전한 경쟁심은 바랄만한 일이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시샘, 시기, 질투에 까지 이르면 개인은 물론 가정이나 사회에 파괴하는 요소가 된다.

 

  사람의 조상인 아담이 타락한 것도,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부러움과 시샘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다.

  하늘의 성가대장인 그룹 천사장이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쫓겨나서 마귀로 저주를 받은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부러워 하고 탐내었기 때문이다( 14:12-16; 28:12-15).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넘나보게 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3:5-6).

 

  성경은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큰 해악인가를 말한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14:30).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27:4). 중세 교회에서 지정한 7대 죄악 나머지 6 개는 나태, 정욕, 분노, 교만, 과식, 탐욕이다. 그 중에 "시기"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정 생활, 교회 생활 및 사회 생활에서 시기와 질투를 처리하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다. 가정에서는 형제 자매 사이에,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동료 직원 사이에, 교회에서는 동료 형제 자매 사이에, 심지어 교역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중의 하나가 시기와 질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드러내 놓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사회가 경쟁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사회는 성공와 업적 중심의 사회이다. 특히 매스컴이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업체들은 물건을 팔아 먹기 위해 사람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한다. 마치 이 물건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실패자라는 자각을 가지게 만든다.

  또한 매스컴은 우상이 없는 사회에 우상을 만들어서 TV의 시청율을 올리고 신문의 판매부수를 늘린다. TV의 껄렁한 퀴즈 쇼에 잠시 출연한 사람이 백만장자가 되는가 하면, 특히 한국의 매스컴은 대학 입학 시즌이면 각 대학 수석합격자와 수석 졸업자를 발표한다. 정부나 유명 단체의 인사 시즌이 되면, "누가 누가 몇 ---기의 선수 주자다"라는 식으로 영웅을 만든다. 그 결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마치 실패자나 낙오자인 것처럼 부추겨서 동료 사이에 헛된 경쟁심과 시기심을 부추긴다.

 

  또한 한국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유난히 심한 것같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도 있듯이 특히 이조 오백년사 역사는 시기와 모함과 반목으로 인한 당파 싸움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파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반대파를 모함하고 시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로 인해 집단 이기주의가 조성되었고, 자기 파에 유력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자연히 학연, 혈연, 지연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시가가 되면 해묵은 지역 감정과 학연이 거론되는 것은, 한국 민족 전체에 흐르는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시기와 질투는 한국 민족의 뿌리 깊은 저주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 삼국 시대부터 시작하여 이조 오백년 기간 동안 극에 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한 어느 외국인은 한국인의 이런 심정을 날카롭게 꼬집어면서 말하기를, 한국 사람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파냐 반대파냐 에 따라 법적용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비판한 외국인도 죄인이란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경찰의 심문에 이상한 태도를 취한 흑인 가게 주인에게 경찰 3명이 무려 40여발의 총을 발사하여 즉사시킨 사건에 대해,  3명의 경찰 모두 무죄 평결을 받자, 흑인은 인종차별적인 판결이라고 다시 한 번 시위를 했고,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대통령 영부인 힐러리 여사는, 즉각 인종차별적인 재판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민족성을 타고 나서 그런지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 중에서 더욱 심함을 볼 수 있다. 이는 특히 기득권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에게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님이 하나님 행세를 하고 유대의 법을 어긴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는 시기 질투 때문임을 알았다.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27:18).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파인 예수님의 무식한 제자들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무리가 그들을 따르니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여 그들을 잡아서 때리고 옥에 가두어버렸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5:17-18).

  특히 오늘날, 성령의 새로운 기름 부음을 받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자기들과 다르게 보이는 교리를 주장하고 기존 교회를 비판하면, 표면적으로는 교리가 어떻느니 실천상의 문제가 있느니 하지만 그 저변에는 시기와 기득권 보호라는 집단 이기주의 이중 잣대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Q라는 지도자가 집회 도중에 안수하여 쓰려지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자기 교단 내에서 Q를 지지하는 경쟁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애�은 Q를 속죄양으로 삼아 이단 시비를 제기했다. 주도자인 Z 목사는 나중에 본인 자신이 어느 집회에 참석하여 평신도의 안수를 받고 쓰러진 후 성령 체험을하여 Q가 주도하는 집회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언젠가 형제들끼리 기도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손을 얹고 기도해 준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막 예언의 은사를 받았을 즈음이다. 어느 한 형제에게 손을 얹었더니 갑자기 그 형제의 마음속에 시기와 의심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전해 왔다.

 

  이 형제는 제가 받은 은사에 대해 한편으로는 부러워서 시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일까"하고 의심하는 것같았다. 특히 성령 운동을 비판하는 자들이 이런 태도를잘 가진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은사가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일까 하고 의심한다.

  형제 간의 시기와 반목은 심지어 타국에 복음을 전파하러간 선교사들 사이에도 심하다고 한다. 일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서로간의 시기와 질투와 반목으로 인해 오히려 원수같이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쉽게 용납하고 포용하지만 자기와 비슷하고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마음 속에 경쟁심, 자존심, 시기심 등이 있어 쉽게 마음문을 열거나 관대하게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것조차 모두 주님께 내려 놓아야 한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Kingdom-building)보다는 내 왕국(Empire-building)을 세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로 할 수 있다.

 

  부모의 죄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 대표적인 예는 다윗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은 비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지만 끔찍한 죄악으로 인해 형제 자매들에게 씻지 못할 재앙을 안겨주었다. 이 문제는 가계 치유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아무튼 부모의 죄가 형제 자매간의 사이에 어떤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하고 우리아 마저 치열한 전장에 보내서 죽게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다윗 집안에 임할 재앙을 경고하셨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삼하 12:10-12).

  하나님의 말씀은 이후 그대로 이루어졌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동생 다말을 겁탈했고(삼하 13:1-4), 이 사실을 안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은 복수의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이년 후에 잔치를 빙자하여 암논을 초청하여 무참히 죽여버렸다(삼하 13:23-33).

  이후 또한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쫓아내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겁탈했다(삼하 16:21-22). 이후 다윗은 반격하여 압살롬 군을 몰아내었을 때 다윗은 누구든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군장 요압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무참히 죽여 버렸다(삼하 18:5, 9, 12-15).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축첩과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형제 자매들 사이에 상처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T 집사는 만병 혈루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인해 이 병이 생긴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 않고 급기야는 암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는 병의 원인을 오래 동안 숨기다가 임종이 가까워 져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청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산을 남기셨는데, 배 다른 형제들이 자기를 완전히 따돌리고 재산을 빼돌린 사건에 충격을 받고 몸이 심하게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는 수십 여년 동안 이복 형제들에 대한 미움과 배신감으로 인해 서서히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섭섭하고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운명했다.

   

해결책 

 

  형제 간에 생긴 시기, 질투, 배신감, 분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 용서하라. 자기를 이방인의 노예로 판 형들이 보복이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을 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용서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50:18-21).

  요셉은 자신의 경솔한 꿈 자랑, 아버지의 편애가 형들의 시기심을 유발하여 자기를 애굽의 노예를 팔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 일어난 사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05:17).

  누가 여러분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고통에 당하게 만들었는가? 요셉의 경우를 묵상하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기 바란다.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들의 나쁜 계획도 선하게 들어 쓰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둘째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비록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받아들이지 않은 왕따를 당하셨다. 또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시기 때문에 그분을 처형했다( 27;18).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그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고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시셨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2:19-21).

 

  셋째 받은 은사에 만족하라. 많은 경우 형제 자매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유는 잘못된 경쟁심 때문이다. 건전한 경쟁심은 장려할만한 일이지만 파괴적인 경쟁심은 자신은 물론 형제 자매에게 해악을 끼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보다 나은 재능이나 은사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 하거나 시샘하지 말고, 많은 은사에 만족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2:3).

  형제 자매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그들이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부러워하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내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만족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군의 자세이다. 예수님은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하기를 원하시지 주시지 않은 것까지 탐내면서까지 열심을 내라고 하지 않으셨다( 2514-30의 달란트 비유 참조). 

  우리는 지체 의식을 가질 때, 몸을 위해서는 모든 재능이나 은사가 유익하고, 때로는 오히려 연약한 것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20절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절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절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24절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25절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 보게 하셨으니 26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0-27).

 

  넷째 겸손하라. 또한 많은 재능과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은사나 재능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주님께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은 선물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내가 얼마나 그런 것들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용했느냐 에 달려있다.

  은사나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은사도 없는 주제에," "이런 체험도 못한 주제에"라는 교만한 언행 때문에 동료들의 시기나 질투를 유발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섯째 공동체 의식을 가져라. 내가 가진 재능이나 은사는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물건을 운반해오자 몸의 각 지체가 서로 공치사를 했다. 눈이 먼저 "내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져왔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손이 나서면서 "보기만 하면 뭘해, 집어서 가져와야지." 그러자 발이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 집으면 다냐? 가고 오는 것은 누구 덕분인데?"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성경 특히 신약에는 "서로 ---하라"라는 말이 58회 나온다. 몇 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5:13).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6: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10:24).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4:11).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5:9).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벧전 4:9).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서로 의식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그럴 때 형제 간에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출처 : storyhouse4u
글쓴이 : cleanai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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