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힘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글 >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못된 것들 (0) | 2008.12.29 |
---|---|
에스컬레이터 (0) | 2008.12.29 |
엄마의 런닝구 (0) | 2008.12.29 |
그 낯익은 담 모퉁이 은행나무 (0) | 2008.12.29 |
녹슨 못을 보았다. 나는 (0) | 2008.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