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설교' '어처구니'는 있다 (삿 16:18~22) |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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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갈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장군을 기억하며,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6.25당시, 그는 ‘크로마이트’(Cromite)라는 작전명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적화일보직전이었던 이 나라를 구해냈습니다. 그런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이 철거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맥아더는 또 다른 점령군의 괴수다. 백성을 죽이고 주권을 빼앗은 침략자의 동상을 세워놓는 것은 민족적인 수치다” “우리가 싸움을 하든지, 더 나아가 적화되든지 그건 우리 일인데 너희들이 왜 끼어들었느냐”는 논리를 펴는 자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이때에 써도 될 성싶습니다. 사건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은 이렇게 상이합니다. 삼손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역사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 인물이요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것조차도 인정하려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주경학자 모르(G. F Moore)입니다. 그는 사사시대의 연대에서 삼손시대를 아예 빼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학자의 견해를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삼손에 대해서 부정적이며, 거부감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물론 그는 사사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삼손을 ‘성경이 어떻게 취급하고 있느냐’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삿15:20). 놀랍게도 이 사실을 반복하여, 상기시키고 있습니다(삿16:31). 이는 그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를 아브라함, 이삭과 같이 믿음의 반열에 우뚝 세워놓고 있습니다(히11:32).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상반될 수가 있을까요. 어느 쪽의 견해에 동의해야 합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시각으로 그가 갇혀있는 감옥을 들여다봅시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삿16:21).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원수들이 그로 하여금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삿16:21). 왜 하필이면 맷돌을 돌리게 했을까요? 저들은 몇 가지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감옥에서 조차도 편히 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천하의 삼손이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 얼마나 ‘존심’ 구기는 일입니까. 셋째는,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기 위한 계략이 숨어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맷돌은 생명을 끊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곤 했었기 때문입니다(삿9:53). 그런데 보십시오. 삼손은 저들의 간교한 책략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맷돌을 돌립니다. 돌리되 끝까지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요, 이런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 않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그 ‘한심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어처구니는 있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를 가리킵니다. 삼손이 맷돌을 돌렸다는 것은 맷돌의 손잡이 즉 ‘어처구니’를 잡고 돌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던 중 ‘어처구니’ 즉 그 조그마한 손잡이에 의해 그렇게 크고, 무거운 맷돌이 쉽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깨달았습니다. 맷돌에 있어서 ‘어처구니’가 그렇게 중요한 줄 이전엔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황당하고, 어이없을 경우를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의 맷돌에는 ‘어처구니’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 그래도 어처구니는 있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깨달음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가 하는 점입니다. 수많은 블레셋 사람이 다곤 신전에 모였습니다. 신전 지붕에만 삼천 명이 될 정도로 많은 숫자였습니다(삿16:27). 드디어 저들은 삼손을 감옥에서 끌어냈습니다. 물론 천하의 삼손을 희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머리가 밀리고, 눈 뽑힌 그는 그 무엇을 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야말로 ‘독안의 쥐’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삿16:26). 신전의 기둥을 만지는 순간, 뇌리에 대체 어떤 생각이 스쳐갔기에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손끝에 전달되는 촉감으로 무엇을 떠올렸습니까. 그렇습니다. 맷돌의 ‘어처구니’입니다. 깊은 감옥에서 수없이 돌리고 또 돌렸던 그 ‘어처구니’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큰 신전이지만 어딘가에 버틴 기둥, 즉 어처구니가 있겠지!’ 그래서 그는 즉시 ‘어처구니기둥’(?)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신전의 두 ‘어처구니’를 붙잡고 멋진 역전승을 거둡니다(삿16;30). 지난날 깊은 감옥에서 맷돌을 돌려야만 했던 그 ‘어처구니’없는 나날이 결코 ‘어처구니’없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있습니까. 혹시 삼손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져 있습니까. 앞이 캄캄한, 아니 앞을 볼 수조차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 져 가고 있습니까. 더 나아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일을 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까.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래도 ‘어처구니’는 있습니다. 열매는 없을지라도 무화과나무는, 소는 없지만 외양간은, 양은 없지만 우리는, 식물은 없지만 밭은 있지 않습니까(합3:17).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한심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결국은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롬8:28). 그러므로 나의 ‘어처구니’를 돌리고 또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나중에 내 삶에 어떤 극적인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처구니’가 없기로는 모세만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최고의 권좌에 근접했던 그가 미디안 광야의 늙은 목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 다 잘려 나간 채 말입니다. 이제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단 하나, 지팡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는 그 지팡이를 놓지 않습니다(출3:1). 양떼를 쳐야만 하는,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을 무려 사십 년 동안이나 묵묵히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결국 모세의 ‘어처구니’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애굽 왕과 대결할 때(출4:20), 홍해를 가를 때(출14:16), 반석에서 샘물이 터뜨릴 때(출17:6), 이 지팡이가 긴요하게 사용됩니다. 그야말로 전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제는 ‘어처구니’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삼손과 같은 사람입니다(히11:32). 비록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졌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할 수 있습니까(욥11:7). 때문에 지금의 스스로를 바라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맷돌을 돌려야만 합니까. 당당히 돌립시다. ‘어처구니’를 붙잡고 돌립시다. 그래도 붙잡고 돌릴 수 있는 ‘어처구니’가 있음에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때가되면 이런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께서 ‘어처구니’ 대신 ‘큰 기둥’을 붙잡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설교노트) 외환위기 이후, 소위 하이트칼라가 무너지고 있다. 전에 그야말로 ‘괜찮은’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한 순간, 밑바닥인생 그야말로 ‘한심한’처지가 되어 버렸다. 삼손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신을 추스르면서, 지금 나의 이 일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기대하며 나아갈 때, 불원간에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삼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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