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머/행복제안(송길원)

하나님더러 놀다 가라고?

미션(cmc) 2009. 3. 3. 20:02

“너희는 왜 시를 배우려 하지 않느냐? 시(詩)는 감흥을 돋우게 하고, 사물을 보게 하고, 여럿이 어울리게 하며, 은근히 정치를 비판하게 한다.”
이 말은 기원전 6세기 전 공자가 한 이야기입니다. 시인의 흉내라도 내볼 참으로 시집을 가방에 꼭꼭 챙겨 떠나곤 하지만 아름다운 시 앞에서 서서 자신의 초라함만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기발한 시 세계의 상상 앞에 또한번 무릎을 꿇었던 시가 하나 있습니다. 신현정 시인의 '하나님 놀다 가세요'라는 시입니다.

하나님 거기서 화 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오늘따라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들판은 파랑물이 들고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정 그렇다면 하나님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풀 뜯고 노는 염소들과 섞이세요
염소들의 살랑살랑 나부끼는 거룩한 수염이랑
살랑살랑 나부끼는 뿔이랑
옷 하얗게 입고
어쩌면 하나님 당신하고 하도 닮아서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놀다 가세요 뿔도 서로 부딪치세요.

반칠환 시인은 그의 시를 이렇게 평합니다.
"한없이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시다. 누가 하나님을 이렇게 허물없고 가까운 존재로 호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더러 염소와 뿔 치기를 하라지 않는가. 염소와 섞이는 인간적인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를 안심시키는가.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모를 지경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마주치는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현현이 아니겠는가?"
새해엔 두려움과 경외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 보다 우리 곁에 와 계시는 친구같은 하나님을 더 많이 체험하는 한 해이기를 기도해 봅니다. 아니 나의 초라함 때문에 쥐구멍을 찾게 되는 때라도 시(詩)만큼은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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