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머/행복제안(송길원)

스님으로부터 받은 세뱃돈

미션(cmc) 2009. 3. 3. 20:21

함양 행복마을을 찾았습니다. 20여년 전 만났던 용타스님을 찾아뵙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부산의 동생이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차를 따라주는데 차맛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20년 전에는 백장암이라는 산사에서 오늘날의 템플스테이라 할 수 있는 동사섭에 참여하기 위해서 갔다가 뵈었는데, 오늘은 이곳에 새롭게 꾸며진 수련장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던 스님이 이야기 끝에 가톨릭 수녀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수녀님이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분이라며 소개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농을 섞어 불쑥 물었지요.

“스님, 그 수녀님 예쁜가요? 안 그러면 요새는 안 쳐다보지도 않는대요, 글쎄.”

머뭇거리던 스님이 “아, 그게 그러네요. 그 생각을 못했는데…목사님 사모님보다야 못하지만 아주 미인이시죠.”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나저나 저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두 분은 기회가 되시니….”
갈수록 태산이라고, 옆에 앉아서 긴장한 모습으로 두 성직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동생은 이 성(性)스러운 이야기에 그만 웃던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이건 선문답이 아니라 완전히 ‘속문답’이었던 것이지요.

2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스님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나하고 동업합시다.”

목사와 스님의 동업이라니요? 그 말씀이 하도 뜬금없고 재미있어서 저도 “그러려면 스님이 파계부터 하셔야죠” 했더니, 스님이 “그럽시다” 하고는 파안대소 하셨지요. 스님의 너그러움 속에서 부처님 마음(?)을 읽었다면 말이 될까요?

그런데 오늘은 그곳 시설을 돌아보고 떠나려 하는데 스님이 제 손을 꼭 잡으시고 호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차비라도 하라고….”

마치 허를 찔린 듯 당황하는 저를 향해 스님은 웃으며 꼬옥 안아주셨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로비에서 부둥켜안고 우리는 한참을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새로 은행에서 바꾼 빳빳한 새 지폐. 시주 돈은 아닌 듯하고, 이럴 것 같으면 세배(?)라도 해서 ‘절값’으로 받을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용돈 때문인지 바깥 추위는 아랑곳없이 온 몸이 훈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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