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2> 소금장수 이야기 ①

미션(cmc) 2009. 5. 7. 07:50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2> 소금장수 이야기 ① [중앙일보]

삿갓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나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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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 한 자루만!”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에게만 성화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장마철이거나 눈이 많이 내린 겨울밤이면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옛날 얘기를 음식 조르듯 한다. 호미처럼 이야기에도 자루가 달려 있는가. 그것을 잡고 상상의 밭고랑을 매면 우렁각시가 나오고 선녀가 내려오고, 도깨비와 옆구리에 비늘 돋친 장수가 나타난다. “옛날 옛적 어느 곳에…”라고 말문만 열리면 불가능은 없다. 따분한 일상(日常)이 하늘 옷을 입고 이야기 나라로 들어간다.

땅에서는 기차가,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나는 시대였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콜 사인은 여전히 소금장수였다. 아무리 옹색해도 소금 없이는 못 사는 것처럼 아무리 쫓겨도 ‘이야깃거리(정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산동네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소금만 아니라 이야깃거리도 한 가마니씩 지고 오는 소금장수들은 멀리 떨어진 바다와 두메산골을 이어주는 신문이요, 라디오요, 영화다.

소금장수가 아니면 누가 이 높은 고개를 넘어오고 으슥한 산길을 지나 오두막 외딴집까지 찾아 오겠는가. 온몸에 바닷바람을 묻히고 걸어오는 소금장수가 아니면 누가 그 환상적인 이야기판을 꾸며주고 떠나겠는가. 더구나 소금장수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뿌리는 보통 미디어가 아니다. 그들 자신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구미호에게 홀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산동네 사람들은 그냥 이야기의 소비자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들이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금장수 이야기도 라디오와 TV의 전파를 타고 인터넷의 네트워크와 연결된다. 그것이 ‘전설의 고향’이요, ‘인터넷 괴담’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한국적 패턴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궁금하면 안동시 북후면에 있다는 400년 묵은 노송을 찾아가면 된다. 높이 10여m, 나무둘레 4m가 넘는다는 소나무가 눈을 끌지만 우리 관심을 돋우는 것은 ‘김삿갓 소나무’라는 그 이름과 그에 얽힌 이야기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이곳 신전리 석탑사에 들렀다가 지나는 길에 이 소나무 아래에서 쉬어 갔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그 소나무 가지가 삿갓 모양으로 변했다는 것인데 놀라운 건 옛날 삿갓을 쓴 소금장수들도 이 소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는 이야기다. 김삿갓과 소금장수가 한 소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는 말은 한국의 옛날 얘기 공간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보여주는 것이고, 400년 묵은 그 소나무가 두 삿갓의 비밀을 증언해 주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규태 칼럼’에서도 보듯이 소금장수를 김삿갓과는 반대의 극에 존재하는 물질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다. 옛날 기방(妓房)에서 기생들이 반기는 인기 손님 순위 1위는 소금(鹽) 자루를 메고 오는 염서방으로, 은이나 곡식 자루를 메고 오는 은서방·복서방을 따돌렸다. 그만큼 소금은 곡식이나 돈보다 얻기 어려운 귀물이었다는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소금장수는 가장 기다려지고 선망받는 직업이어서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속담이 생겨나고 괜히 히죽거리면 ‘소금장수 사위 보았나’라는 속담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장수의 삿갓이 김삿갓이 머물던 같은 소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을 모르면 한국인 이야기도, 한국인의 정보공간의 특성도, 오늘날의 인터넷 공간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소금장수와 김삿갓이 동행할 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장돌뱅이 나귀가 등장하는 중대한 의미도 놓치게 된다. 낮에는 장터에서 물건을 팔고 달밤에는 산길에서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는 허생원의 나귀 등에는 장 보따리만이 아닌 이야기 보따리도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 날 샐 줄 모르는 겨울밤에 아이들이 조르던 ‘이야기 한 자루’의 그 자루는 호미자루가 아니라 소금을 담았던 ‘이야기 자루’였던가 보다.

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