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4> 소금장수 이야기 ③ 질화로에 재가 식으면

미션(cmc) 2009. 5. 7. 07:53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4> 소금장수 이야기 ③ 질화로에 재가 식으면 [중앙일보]

말 달리던 사냥꾼, 농사꾼으로 변해
짚으로 새끼 꼬고 짚신 짜며
질화로 식을 때까지 이야기로 지새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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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사람이 오면 나는 으레 엄마·아빠의 뒤에 숨었다. 그러면 손님은 “이 녀석 낯가림하네”라고 서운해하고, 어른들은 “괜찮아. 인사드려라” 하고 말씀하신다. 우리 아저씨, 우리 아주머니, 우리 동네분…. 무엇이든 ‘우리’란 말만 붙으면 낯선 것은 사라진다. 그때 나는 ‘우리’라는 말이 ‘울타리’라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말 낯선 사람이면 울타리 밖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렸으니까. 밤에 오줌을 싸면 아침에 키를 뒤집어 쓰고 동네방네 얻으러 다녀야 하는 것도 바로 그 소금이었다. 그게 설탕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던 시절에도 소금은 항상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 우리를 따라다녔다.

약장수 아저씨가 일본 순사들에게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난 것도 소금장수 이야기였으며, 일본 순사는 인간의 간을 빼먹는다는 구미호고, 아저씨는 불쌍한 그 소금장수였다. 민족이니, 공동체니 하는 거창한 역사책에서가 아니라 그 뒤에도 내내 소금장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욕망이 없으면 결핍도 없다(want not lack not)”는 말로 구석기시대의 경제학을 찬미한 마셜 샐린즈와 같은 석학이 만약 소금장수 이야기의 원리를 알았더라면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 한국인의 그 자족적 삶 속에서도 결핍이란 단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소금이다. 그것이 먼바다로부터 소금장수가 산골로 들어오게 된 이유며, 또 산골 사람들이 낯선 떠돌이를 반갑게 맞이해야만 했던 이유다. 그리고 그들은 한 울타리를 만들어 이계(異界)의 낯선 요괴들에게 소금을 뿌렸다. 그것이 선녀 얘기든, 도깨비 얘기든 옛날이야기들은 소금을 구하고 소금을 뿌리는 동일구조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핍이 있다. 나물을 익혀 먹으려고 할 때의 욕망인 그 ‘불’이다. 나물을 무쳐 먹고, 삭혀 먹고, 익혀 먹었던 한국인들은 화롯불에 둘러앉는다. 소금장수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 노변정담(爐邊情談)이다.

감히 정지용의 시 ‘향수’를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히리야….” 이 시 구절 속에는 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 바뀐 한국인 전체의 아버지 모습이 담겨 있다. 팔베개가 ‘짚벼게’로 바뀐 것이 그것이다. 한국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짚으로 새끼를 꼬며 짚신을 짜면서 질화로에 재가 식을 때까지 이야기로 지새우는 사람들이다. 질화로 옆에서 잠자는 농부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아니다. 도끼를 든 구석기시대의 아버지며 대초원에서 말을 달리며 사슴을 잡던 수렵민, 그것도 말 위에서 90도로 돌아 등 뒤의 사슴을 쏘는 고구려 벽화의 그 사냥꾼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작물을 거둔 빈 밭에 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면 평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연상하는 사람들이다. ‘뷘’ ‘밭’ ‘밤’ ‘바람’의 ‘ㅂ’음이 네 개나 겹쳐 두운(頭韻)을 이루고 있는 그 아름다운 시 구절의 ‘ㅂ’음은 이미 앞 글에서 지적한 대로 아버지와 불을 상징하는 배꼽말의 유아어로 되어 있다. 어머니와 물을 상징하는 ‘ㅁ’과 대응되는 그 ‘ㅂ’음은 말이 되고, 활이 되고, 벌판에서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되었다가 이윽고 질화로의 불이 되고, 그 불은 재가 된다.

지용 자신이 그 시에서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이라고 말한다. ‘파아란 하늘빛’을 ‘초록빛 넓은 초원’으로 고치면 금세 그 장면은 고구려 벽화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벌판에 불을 피워놓고 사슴 고기를 먹으며 이야기하던 그 이야기꾼들은 어느새 질화로에 밤이나 콩을 구워 먹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농사꾼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말과 사슴이 뛰던 초원은 황소가 게으르게 우는 실개천이 흐르는 들판이 되고, 나물 캐던 여인네들은 벼 이삭을 줍는 아내와 누이로 그려진다.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던 곳….” 같은 곡식이라도 이삭은 흘린 것, 버려진 것으로 소유자가 없다. 룻기에 쓰인 것처럼 줍는 사람이 임자다. 옛날의 그 나물이 아닌가. 농경시대에는 장돌뱅이, 산업시대에는 약장수가 소금장수를 대신해도 한국인의 옛날이야기는 똑같지 않은가.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