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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한자가 그랬다. 그것은 여남은 살 어린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한자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렀던 시절, ‘전쟁’을 수식하는 말로 늘 이 여섯 글자가 따라다녔다. 그러기에 어느 한자보다도 낯이 익다. 더구나 처음 ‘입춘대길(立春大吉)’의 한자를 쓰면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한가운데가 대칭형으로 갈라지는 한자가 길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동아공영권’이야말로 맨 끝의 ‘권(圈)’자만 빼면 모든 글자가 좌우대칭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라 ‘국(國)’자만 배우다가 그보다 더 크고 더 넓은 뜻의 ‘권’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봐도 이상한 것이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 이름에도, 동아시아라고 할 때에도 큰 대(大)자가 붙어 있는데 막상 제일 큰 아세아(亞細亞)에는 어째서 ‘세(細)’자가 들어 있는가. 일본말로 무엇을 만드는 것을 ‘사이쿠’라고 하는데 그것을 한자로 쓰면 ‘세공(細工)’이 된다. 그러니 ‘세’자는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 때에나 쓰는 별 볼일 없는 글자가 아닌가.
사실 그랬다. ‘亞細亞’라는 한자어는 중국에 선교하러 온 마테오 리치(1552~1610)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한자어다. 그런데 그가 ‘ASIA’를 음역해 한자로 옮길 때 만약 대명제국이 자기네도 그 아세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면 거기에 ‘세’자를 붙이려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한 일본인들 역시 자신들은 항상 아시아 밖에 있는 특수한 나라로 인식해 왔다. 쇼토쿠다이시(聖徳太子)가 수양제에게 국서를 보내면서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 보낸다”고 한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말이 국가 기밀과 전쟁 첩보를 다루던 이와구라 히데오(岩畔豪雄)라는 군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0년에 마쓰오카(松岡洋右) 외무대신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진 말이라는 것을 알면 처음부터 아시아의 번영이 아니라 전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구호임을 알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대동아공영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한자는 영화 ‘영(榮)’자가 아니라 ‘비(非)’자였다. 건듯하면 ‘비상시(非常時)’라는 말을 내세워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깎고 여성들의 긴 옷고름을 가위로 잘라 리본처럼 만들어 놓았다. 남자들은 군민복을 입어야 하고 여성들은 ‘몸뻬’(순우리말로 ‘허드렛바지’ ‘일바지’라 한다)를 입어야 한다. 몸뻬는 옛날 일본의 동북지방 사람들이 일할 때 입었던 옷인데 정부(후생성)에서 디자인해 보급운동을 통해 식민지까지 강제로 착용케 했던 것이다. 어머니도 누이도 몸뻬를 입은 모습으로 바뀐다. 그것이 대동아공영권의 이미지였다. 가수 아와타니(淡谷) 노리코가 전시 위문 연주 때 몸뻬가 아니라 무대의상 차림으로 출연했다고 해서 군 당국의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 하나로 그 억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비상시국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비국민(非國民)’이라는 딱지가 붙어 비상미(非常米) 배급도 어렵게 된다. 매일같이 비상령이고 비상 경계령이다.
폭격에 대비한다고 웬만한 문에는 모두 ‘비상구(非常口)’라고 표시돼 있었다. ‘대동아’란 말과 함께 한국인에게는 늘 이 ‘비’라는 한자가 따라다녔기에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된 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상구’ ‘비상문’이란 글씨를 볼 수 있었다. 영자로는 그냥 ‘EXIT’이고,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태평문(太平門)’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같은 한자, 같은 문인데 한쪽은 비상이고 한쪽은 태평이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여섯 자는 뜻하지 않게 내 작은 영혼을 만주 벌판으로, 그리고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1894~1963)처럼 아시아의 밤으로 향하게 했다. “고량바다케와 히로이나!(수수밭은 정말 넓구나)” 언뜻 들은 이 한 대목이 나의 먼 조상이 달렸던 만주 벌판의 바람소리를 듣게 한 것이다. 금지의 문자 ‘비’에 마음 ‘심’을 붙이면 정말 눈을 감고 울고 있는 슬플 비(悲) 자가 되고, 그 반대편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닮은 웃음 소(笑)자가 보인다. 한자는 어떤 폭력으로도 지울 수 없는 문화유전자였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