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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도가 바다와 대륙 사이에 있는 것처럼 그 반도의 문화에는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중간 공간이 존재한다. 그것이 툇마루와 장독대가 있는 한국의 뒤울안 공간이다. 군화 소리가 아무리 크게 울려도, 대문 빗장이 벗겨져 바깥바람이 세게 몰아쳐도 그것은 집안 앞뜰에서 멈춘다.
놋주발과 놋대야, 모든 쇠붙이를 공출로 걷어가던 날, 손때 묻은 그 살림 도구를 망치로 조각을 내던 날, 어머니가 그 아픔을 견뎌내신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인기척이 없는 뒤꼍 툇마루와 장독대에서는 장들처럼 조용히 아주 조용히 부글대는 생명들이 발효되고 있었다. 분을 삭이고 오랜 소망의 기도가 숙성되어 간다.
그것이 외적들이 침략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한반도의 삶과 문화를 숙성시킨 생명 공간이었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낸 곳도, 남편의 구박을 이겨낸 곳도 바로 눈물방울과 손때로 찌든 그 툇마루였다. 어떤 역사도 범하지 못하는 그 집안 장맛을 담은 장독대였다. 정말인가. 미당 서정주 시인이 쓴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란 시 한 편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 한 먹 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 날마다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는 ‘툇마루’는 이미 우리가 읽었던 이상(李箱)의 연작시 ‘오감도 시제2호’에 나오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장소다. 아버지 손에 든 도끼와 무기(戈)를 빼앗겨도 천기에 따라서 장독 뚜껑을 열고 닫는 어머니의 손은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라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도 우리는 그 땅을 모국(母國)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 속에 바다가 있었네”라는 그 글에서 우리는 20억~30억 년 전에 모태에서 겪었던 생명의 역사. 그까짓 36년은 불똥만도 못한 그 왕양한 자궁 속의 바다 말이다. 그런데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매개 공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바다의 생명체들이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겠는가. 그 매개 공간이 반도이고 그 반도를 집으로 옮겨 온 것이 우리의 툇마루요, 장독대다.
과장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툇마루 공간은 건축적으로 볼 때 안도 아니요, 바깥도 아니다. 그리고 장독대 역시 지붕이 있는 내부 공간도 아니면서 비와 이슬에 그냥 노출된 한데 공간도 아니다. 장(醬) 문화 자체가 화식과 생식 사이에 존재하는 발효식품이다.
의지할 곳 없을 때 뒤울안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따주신 오디를 약처럼 먹고 숨을 돌리는 아이. 오디는 선악과처럼 산고의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지 못하는 이브의 혈액을 가장 많이 닮은 열매다. 붉다 못해 까매진 오디 물을 입술에 묻히고 외할머니 얼굴과 하나가 되는 툇마루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계로만 이어져 내려온다는 DNA의 ‘미토콘드리아’가 보인다. 우리의 몸, 우리의 피, 그리고 모든 흙 속에 내재해 있는 반도의 미토콘드리아를 찾아가 보자.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