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칼 빈 신 학

칼빈의 성경 해석학에 사용된 성령의 조명

미션(cmc) 2009. 10. 25. 06:42

칼빈의 성경 해석학에 사용된 성령의 조명

안 명 준 교수

(기독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한국 칼빈학회

<목회자를 위한 칼빈 신학 해설>

칼빈의 성경 해석학에 사용된 성령의 조명

안 명 준 교수(기독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서론

오늘날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성령의 역사나 성령의 조명과 같은 말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말일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그를 알지 못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성경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은 그들이 인식하는데 있어서 이성의 한계를 벗어나서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을 완전히 배재시킨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 역사하심, 조명하심은 칼빈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신학적 해석 방법이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은 기원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은 성령의 내적 증거가(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러 방법적이며 신학적인 전제들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한가지 중요한 칼빈의 해석 방법을 살펴 보려고 한다. 이 방법이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과 관련하여 칼빈이 사용한 신학적 해석 방법 즉 성령의 조명에 의한 해석 방법이다. 오늘날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서는 누구든지 성령의 조명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성령의 조명이란 성령이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신비한 음성으로 자신의 계시를 구술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령의 조명이란 성경의 문자적 의미와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칼빈은 성령의 조명에 의한 신학적 해석 방법을 그의 성경 해석에서 올바르고 그리고 분명하게 사용하였다. 과연 성령의 조명이란 어떻게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해석과 성령의 관계를 칼빈의 입장에서 규명해 보려고 한다.

성령의 역할

“성령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고 전제하는 것을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켜 왔다. 실존주의 해석학을 주창한 불트만과 언어의 기능에 관심을 갖는 신 해석학파인(New Hermeneutic) 현대 자유주의 해석자들은 성령의 역할을 전혀 강조하지 않지만, 칼빈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필연적으로 여긴다. 칼빈을 따르는 소수의 개혁파 신학자들 역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는 신학자와 목회자에게도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만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해석자는 단지 이성에 근거한 학문적인 방법으로 종교의 경전을 윤리적으로 해설하는데 그치게 될 것이다.

해석자가 성경을 해석 할때 본문에 대한 자세는 성령의 감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게르스트너 말하기를 성령의 역할은 증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진리를 거부하는 데서 벗어나 진리를 순종하도록 인간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 역사하고 증거하는 성경 말씀 그 자체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수단으로 해서 신비한 내적 계시를 체험하려고 한다. 이것은 종교 개혁시대에 재 세례파가 내적 광명을(Inner Light) 주장한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도록 한다고 했다.

윌필드는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로 불렀는데, 칼빈은 당시에 루터나 쯔윙그리, 멜랑톤 등과 같은 다른 종교 개혁자들 보다도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더많이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칼빈에 있어서 특이한 것은 그가 성령의 조명을 해석학적 관점에서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점과 관련하여 구약학자 챠일즈는 성령의 조명에 대한 연구는 칼빈이 철저하게 발전시켰기 때문에(Inst. 1. 7) 더이상의 노력이 불필요 하다고 말한다. 예를들면 칼빈은 로마 카톨릭 추기경인 사돌레토에게 보낸 글에서 성령의 권위를 강조하고, 성령이 교회를 비추어서 성경이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한가지는 그 교회가 성령과 성경위에 자기의 권위와 전통을 두는 것이다. 트랜트 회의에서는 개인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엄하게 처벌하는 조항을 갖고 있다.

성령의 조명의 필요성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의 전제는 인간과 그리고 성령의 영감으로 된 성경과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즉 성경과 인간성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가 칼빈 해석학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어떤 책이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다. 이런 관점으로 부터 볼때,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Dei cognitio et nostri), 비록 이것이 칼빈 신학의 중심 주제가 되어 왔지만, 칼빈의 신학적 해석 방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과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특별히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칼빈의 신학적 전제는 매우 중요하였다. 인간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이해 하는것이 해석자로 하여금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우리는 칼빈의 성경 해석학이 그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칼빈은 인간이 자연적 오염을 통해 전적으로 타락 되었음을 말한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 되었다는 것은 어거스틴의 사상으로 칼빈에게 영향을 주었고 칼빈의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에베소서 5장 8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자연인을 어두움이라고 불렀다. “어두움은 중생하기 이전의 모든 자연인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비추지 않고, 오직 두려운 어둠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향하기 전에는 그의 모든 삶이란 파괴적인 미궁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죄와 어두움 아래 있게 된다. 칼빈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 되었다고 주장한다. 플오르는 칼빈의 해석학에 인류학적인 배경을 적용한다. “성경 이해와 관련하여 칼빈이 성령을 강하게 강조하는 신학적 배경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의 전적 타락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아래 있는 자연인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의 영적 진리를 결코 이해 할수 없다. “육은 하나님의 영으로 조명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칼빈은 중생하기 이전의 인간이성은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이성의 빛은 어두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의 타락이 인간 이성을 질식 시킨다고 칼빈은 생각하였다. 우리는 올바르게 생각 할 자격이 없다. 우리의 이성적인 기능은 비참하게 타락하였다. 우리에게 깨달음 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이성은 단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복음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명석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지적하기를 심지어 그리스도까지도 우리의 이성을 의지하지 말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칼빈은 좋은 해석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성령을 알지 못하며 또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중생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그를 대면 할 수 없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의 참된 의미를 이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에 의해 영감되었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헤인즈는 말하기를 성령은 “인간 마음의 자연적인 저항을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칼빈은 믿음의 사람이 성경을 해석 할때 성령은 해석의 인간적 과정을 지배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불안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셔야 한다. 칼빈은 성령은 우리의 정신으로 깨닫게 하고,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고 한다. “성령의 힘에 의하여 마음이 힘을 얻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성령에 의하여 조명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지 않는다면 성경 해석시에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서 사람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성경을 이해 할 수 없다.” 칼빈은 1545년 제네바 교회 교리 문답서에서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조명과의 관계성을 말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의 생각은 너무 오만하여 영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파악 할 수 없고 오직 믿음을 통하여 그것이 계시되고,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면 우리가 이해 하는것 이상으로 성경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칼빈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우리는 적절하게 성경을 읽고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

칼빈은 해석자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를 죄로 부터 보호하고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 하도록 도와주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인간의 해석 사이에 관계에 대해 질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성령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비록은 칼빈은 성령의 조명이 역사하는 세밀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조사해 본다면 우리는 칼빈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활동으로서 몇가지의 강조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 칼빈은 성령이 성경의 참된 저자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해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성령님께 있다. 결국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해석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 브로밀리 또한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며, 성경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 본질적이다 라고 말한다. 루터는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그의 빛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성경을 왜곡 시킨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석자로서 성령을 말하는 것은 성경의 둘레를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칼빈은 ‘성령 그 자신이 해석자’ 라는 말로써 그의 해석학의 신학적 전제를 설명한다. “복음의 교리의 원천인 성령은 우리에게 그것을(복음의 교리) 열어 줄수 있는 참된 유일한 해석자이시다. 그러므로 그것을(복음의 교리) 판단 할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조명을 받지 않는다면 반드시 장님이 될수 밖에 없다.“ 칼빈은 말하기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은 스스로가 참된 유일한 해석자다” 라고 한다.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은 확실한 해석자“ 라고 말한다. H. W. 루쏘는 이것이 영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오해 받지않게 칼빈의 견해를 방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이 유일한 참된 해석자로 보는 칼빈의 교리는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성경을 정확하기 해석하기 위한 조종은 인간의 해석 활동이 역할을 하지 않은 하나의 순수한 신비적인 사건이다. 그런 영적인 해석은 칼빈이 설명을 분명하게 주지 않지만, 본문 해석에 광범위하게 공헌을 주었다.

칼빈은 비록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지만, 성경 해석의 참된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언어의 최고 권위자이신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은 내적 선생이요, 충성스런 해석자이다.

‘성령이 유일한 참된 해석자이다‘ 라는 칼빈의 견해는 결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성경의 저자는 성령의 도구임을 주장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모세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았고, 성령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을 구술하시고, 그의 입에 그것을 제안하셨다.“ 라고 한다. 사도들은 성령의 확실하고 진정한 기록자들 이었다(certi et authentici Spiritus sancti amanuenses).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칼빈에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도구들 이었다. 성경의 문학적 스타일에 관하여 논평하면서 칼빈은 인간 저자의 정신은 성경을 산출하는데 남아 활동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칼빈 또한 이 과정은 성경 저자들의 전체 인격들이 관련 되었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만을 믿지 말고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참된 의미를 알수 있게 하시는 분은 참된 해석자이신 바로 성령이시다.

두번째로, 칼빈은 성령의 의도를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는 성경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의도를 이해함이 없이는 결코 성경의 참된 의미를 이해 할수 없다. “우리는 성령이 말씀하신 그 목적에서 우리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칼빈 만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강조한 해석자는 없었다. 스가랴서 5장 1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말하기를 “성령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해석자들은 결코 이 예언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성경의 구절들에서 성령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칼빈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저자를 강조한 사실은 그의 주석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란 무엇인가? 칼빈은 성령의 의도를 우리 마음속의 새로운 내적 계시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령의 의도는 성경 밖에서 오지 않고, 오히려 저자가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기록한 본문안에 나타난다. 칼빈은 성령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과 같은 저자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령의 의도를 성경 저자의 의도와 동일시 한다. 칼빈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성령의 의도로 본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찾는 것은 본문의 참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번째로,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 리쓰는 칼빈이 믿음의 유추를 규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하기를 “ 칼빈이 믿음의 유추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 실패한 것은 궁극적으로 그가 강조한 자신의 신학에서 성경의 통일성을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칼빈이 믿음의 유추나 사랑의 유추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그의 신학을 매우 어렵게 인도한 반면에 불링거는 믿음의 유추와 사랑의 유추를 발전 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리쓰는 칼빈이 믿음의 유추에 의하여 성경의 본문을 해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탑페르너는 주장하기를 칼빈은 성령의 의한 믿음의 유추를 사용했다고 한다. 성례전에 대한 설명에서 그는 말하기를 칼빈이 해석학적 법칙으로 믿음의 유추를 성례전 설명에 사용했다고 한다. 리쓰의 견해와 탑페르너의 견해 가운데 믿음의 유추에 관해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가? 탑페르너의 진술이 리쓰의 견해 보다 더 정확하다. 푸르만에 따르면, 칼빈의 장점은 믿음의 유추에 의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은 성령의 주요한 사역이며, 오직 믿음에 의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한다”고 한다. 성경은 믿음이 있을때만 이해가 될 수 있다. 칼빈에 따르면 “오직 믿음이 이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해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 칼빈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 이성이 아닌 성령을 통해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은 그의 유일한 선물이며, 또 믿음은(오직 믿음에 의하여 그는 올바르게 알려진다) 성령의 조명으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때, 우리 인간의 정신은 그것을 이해를 할 수 없고, 우리를 단지 본성으로 인도한다.” 칼빈은 믿음이 이해를 앞서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상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함과 함께 시작하며, 이해를 앞서며, 그런 방식으로 믿음은 확실한 지식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한다.” “눈으로도 결코 보지 못하고 귀로도 결코 듣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초월하는 모든 것들을”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이해 할 수 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더욱더 많은 이해의 불빛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우리를 조명하는 성령의 힘에 의해서 된다. 우리가 믿음에 따라 성경을 해석 할 때 성령은 우리가 육신의 이성에서 보호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인도하신다.

네째로, 칼빈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성령의 조명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들면 칼빈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오 전능한 하나님 우리에게 올바른 판단력이 없을때, 또 우리 마음이 대낮에 조차 소경이 될때, 당신의 영으로 우리를 빛추사 당신의 말씀의 빛에 들어가게 하소서.” 칼빈은 우리가 성령의 의도에 의해 다스려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함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올바른 이해를 주시는 성령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 챠일즈도 성령의 조명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일이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칼빈과 챠일즈와 같은 의견을 갖지않은 학자들은 성경 해석을 위해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단지 문자를 배우는 열매없는 일에 힘을 소비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기도 생활과 그가 성령을 의지 하는일 사이에 하나의 고리가 있다고 인정 하는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칼빈은 성경 해석자는 그의 부족과 무지를 알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믿었다.

결론

성경은 성령에 의해 영감받은 저자들이 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참된 저자는 결국 성령이시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자는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깨닫음 받아야 본문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참된 성령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중생하지 못한 인간의 이성이 가는데로 끌려 간다면 아무리 좋은 해석학 방법을 사용해도 그 결과는 잘못된 것을 낳을 것이다.

칼빈은 성경을 해석 할때 여러가지 학문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했지만 그 어떤 것 보다도 성령의 조명에 의한 신학적 해석방법을 가장 중요하게 간주했다. 오날도 많은 성경 해석학 원리가 제시되고 있다. 물론 최근 발견된 원리를 성경 해석에 사용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은 성령이 그 저자라는 사실을 잃어서는 안되며, 또한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연약한 인간은 그를 의지하여 그의 도우심 속에서 그분의 의도를 본문을 통하여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성경 해석자란 자신의 방법만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그 모든 방법들이 성령의 지배를 통하여,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성령의 의도 즉 성경의 저자를 밝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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