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칼 빈 신 학

존 칼빈의 예배 이해/이정현 교수

미션(cmc) 2009. 10. 25. 06:39

존 칼빈의 예배 이해/이정현 교수

 

I. 들어가는 말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종교개혁자들의 모토였다. 이것은 중세 카톨릭 교회가 말씀의 권위를 무시한 채 의식적 요소와 무리한 상징들을 교회에 들여옴으로 타락한데서,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교회의 개혁은 곧 예배의 개혁이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자기 표현적 기능이 예배였기 때문이며, 예배에 불순물들이 너무 많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 또는 갱신이라는 말은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기존의 것에 대한 불완전 내지는 위험성을 전제하고 있는 용어이다. 비록 그 같은 전제가 없더라도 현실에 안주함으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생명 없는 의식화에 빠질 염려 때문에도 개혁은 필요하다(이정현 2001:505).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예배는 어떠한가? 예배학적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교회 예배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 예배의 문제점 중 하나는 기독교 예배에 이교적 요소가 많이 가미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4300여년의 샤마니즘과 2000년의 불교, 1500년의 유교라는 이교적인 토양 속에서 자라온 민족이기 때문이다. 장구한 이교적 배경에 비해 기독교는 2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아직까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교회의 가장 큰 맹점은 예배와 생활을 조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 예배와 삶의 예배를 연결시키지 못함으로 큰 괴리를 안고 있다. 셋째 말씀 위주의 예배가 갖는 문제점이다. 넷째 전통과 자유의 부조화의 문제이다. 다섯째 준비되지 못한 예배의 문제이다. 이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의 예배는 그 어느 때 보다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러하듯 이미 동일한 문제를 놓고 답을 얻고자 노력하고 기도했던 앞선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을 더해준다. 그들이 어떠한 고민을 했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선택에 도움을 줄 것이다.

여기에서는 칼빈을 모본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칼빈의 예배 신학의 형성과정과 주요한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가 직접 작성한 두 예배 예식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수고는 단순히 칼빈의 예배를 오늘의 교회에 재현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가 가졌던 예배의 신학과 순전한 예배를 향한 갈망을 우리의 것으로 한 이후, 현대 개혁교회의 예배가 어떻게 개혁 되어져야 할지를 가늠해 보고자 함이다. 이 같은 고찰은 예배개혁을 위한 기초 작업이 될 것이다.

II. 칼빈의 예배

1. 칼빈의 예배신학의 형성

칼빈은「기독교강요」초판에서 이미 예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이은선 1998:192). 그리고 초판부터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로 기도와 찬양, 설교, 성찬, 헌금을 들고 있다. 특히 초판에서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의 통일성을 강조한 이후 계속하여 설교와 성찬의 유기적 통합을 원했으며 성찬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쟁점으로 보고 계속하여 이러한 견해를 유지하였다. 초판에 나타난 예배의 예전적 모델을 칼빈이 어디서부터 얻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가 1534년 5월 카톨릭 성직을 반납하고 추방되어 포이티어(Poitiers)에 머물러 있던 기간에 가까운 친구들과 동굴에서 드린 예배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Peter 1986:225). 또한 당연하게도 당연히 그 이전의 개혁자들 - 1523년과 1525년의 쯔빙글리, 1533년의 파렐, 혹은 외콜람파디우스가 바젤에서 시행했던 예전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이은선 1998:197).

칼빈은 목회자가 매 주일 수행해야 할 중요한 직무로 설교와 교육 그리고 매주일의 성찬 집례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미 쯔빙글리 예배의 영향권에 빠져 있던 제네바 의회는 전혀 동조 하지 않았다. 이 때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 있지 않던 환경이었기에 제네바의 행정관료들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그러나 제네바의 행정관료들은 칼빈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갈등만을 계속하다가, 1538년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칼빈의 예배신학이나 의식은 스트라스부르그 시절(1538-1541)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망명 온 칼빈은 이 도시에서 프랑스인들을 위해 목회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자국어로 된 예배모범이 필요했다. 물론 그 당시 1533년 파렐에 의해 만들어진 불어판 개혁파 예배모범이 있었지만 칼빈은 이것을 채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트라스부르그의 예전을 따랐다. 칼빈은 이 예전을 따라 아마도 1538년 9월 8일 주일부터 예배를 드렸다고 본다(박건택 2000:39). 예배 중 설교와 찬송, 기도가 시행되었고, 한달에 한번씩 성찬도 있었다.

그는 두 가지 목표를 가졌는데, 첫째는 예배에서 성만찬이 초기의 단순성과 조화를 되찾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예배에서 성경말씀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예배 가운데서 주님의 만찬이 완전히 정착 될 수 있기를 원했다.

칼빈의 프랑스어 예식서 발간은 1539년 말(혹은 1540년 초)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는 이때 첫 예식서를 발간하였는데, 거기에는 회중 찬송을 위한 프랑스어 운율과 멜로디로 된 몇 개의 시편송도 담고 있었다. 이 예식서의 제 1판은 지금은 잃어버렸으며, 제 2판의 복사본이 제네바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스트라스부르크에 발간된 제 2판(1542년)은 같은 해에 제네바에서 발간된 것과 다르지 않다. 제 3판은 1545년에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발간되었는데, 이것은 칼빈을 이어 그곳에서 프랑스 망명인 들을 위해 목회를 했던 풀레인(Valerand Pullain)에 의하여 활용되었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돌아와서 “교회법”(1541)과 “교회의 기도와 찬송 양식”(1542/1545)(원제는 “교회의 기도와 찬송양식 및 고대교회의 관습에 따른 성례시행 방식과 결혼 축성 방식”이다)을 펴낸다. 이 책들은 우리에게 칼빈의 예배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제공한다. 칼빈은 나중 책 서문에서 설교를 비롯한 기도와 성례가 예배의 세가지 표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사용한 것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며 약간 단순화시켰다. 그 후 칼빈은 1547년과 1559에 다시 예식서를 발간하였다(Maxwell 1996:155). 그는 이러한 예식서를 만들면서 항상 사도와 교부들의 초대 교회와 일치된 예식서를 만들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 칼빈의 두가지 예식서 - 스트라스부르크 예식서(1540), 제네바 예식서(1542)

1)두 예식서의 비교

1540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작성된 예식서와 1542년 제네바에서 작성된 예식서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두 예식서에 나타난 자세한 설명은 B. Thompson의 “Liturgies of the Western Church" 의 197-210 페이지를 참고하라)

〈말씀의 예전〉

(스트라스부르크 예식서-1540) (제네바 예식서-1542)

성구 : 시편 124편 8절 성구 : 시편 124편 8절

죄의 고백죄의 고백

사죄의 선언

십계명(곡을 붙여 노래함)시편(곡을 붙여 노래함)

Kyrie eleison을 매 계명마다 부름

조명을 위한 기도조명을 위한 기도

설교 본문(Lection) 설교 본문(Lection)

설교설교

〈다락방 예전〉

구제헌금(Collection of alms)구제헌금

중보기도(Intercessions) 중보기도

주기도(길게 풀어서)주기도(길게 풀어서)

성물준비(사도신경을 노래하는 동안)성물준비(사도신경을 노래하는 동안)

성찬기도

주기도

성찬제정의 말씀성찬제정의 말씀

권면의 말씀(Exhortation)권면의 말씀

성찬기도

떡을 뗌 떡을 뗌

배찬(시편을 노래함)배찬(시편의 노래 또는 성경봉독)

성찬 후 기도(Post-communion collect)성찬 후 기도

시므온의 찬미

아론의 축도아론의 축도

2)스트라스부르크 예식서

칼빈이 만든 예식서는 예배의 부름 , 용서를 위한 기도, 설교, 중보의기도 등을 보완하고 대신 자비의 연도 (Kyrie eleison) 나 영광송등을 생략한 것을 제외하고는 부처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운율을 붙인 십계명(Decalogue)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자는 의도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붙여졌다. 이 십계명이 물론 칼빈의 예식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기는 하나, 부처의 기록(Grund und Ursach - 근본원인)을 보면 이미 그것이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이 시므온의 찬미(the Nuncdimittis)를 성만찬 후에 넣고 있으나 이것 역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가 이미 루터와 쯔빙글리의 예배의식을 종합해 놓은 것에다가 자신의 주장을 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만찬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여 매주일 거행할 것을 주장한 점의 그의 신학에 근거한 특성이기도 하다.

3) 제네바 예식서

제네바 예배 의식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더욱 빈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가능하면 예배 의식을 간단히(simple)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네바 행정 관료들의 극단적인 입장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의 입장이 잘 반영된 예배 의식은 제네바 보다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만들어진 예배 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이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으로서 강조한 두 가지는 말씀(the Word)과 성례전(the Sacraments)이었다. 하지만 칼빈의 입장이 실제 현장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행정 권한을 가졌던 제네바 관료들이 이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규 일요예배에서 성만찬이 분리된 쯔빙글리의 예배방식을 제네바 시가 따르도록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망명을 마치면서 그는 제네바로 되돌아오도록 초청받았다. 그래서 그는 각 시의 교회들이 성만찬 일자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완화시키고, 성만찬을 더 자주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웃 교회의 성만찬에 참석토록 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관들이 이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은 성만찬 예전이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추수절(Harvest-tide)에만 행하도록 되었다. 칼빈은 시의 간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원치 않는 성만찬 관례를 따랐지만, 이것이 신약성서와 초대교회의 가르침이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 두 예식서에 나타난 칼빈 예배의 특성(칼빈의 예배신학과 예식서에 나타난 특성)

칼빈의 예배에 관한 기록들을 토대로 볼 때 비록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의 예배의식을 많이 차용했지만 그는 예배 영역에서 행한 모든 활동에서 자신의 독특한 흔적을 남겼다.

두 예식서에 나타난 칼빈 예배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칼빈은 예배가 성경적이어야 하고 신학적으로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예배에 있어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견실성을 주장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교회 생활에 관하여 성경적 비판을 가할 때 그는 과격하였다. 그는 모든 실행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경적 비판으로부터 예배시간이나 심지어 예배하는 날 같은 많은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시켰다. 성찬 예식을 행할 때 포도주의 색깔, 기도 할 때 무릎을 끊는 자세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칼빈은 교화(敎化)의 목적을 가지고 행하여지는 한 어느 것을 택하여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필요이상으로 예배의 모든 행위나 부대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는 않았다(Leith 1996:209-210). 칼빈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의 말씀 속에서 지정해 주신 방법에 따라서 예배드려야 하고 예배 속에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된 것을 준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칼빈은 예배를 인간의 상상력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로 보았다(Fisher 1996:115). 따라서 모든 예배행위는 성경과 신학에 부합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영한 1997:3).

2) 칼빈은 예배의 이해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예배가 신학적으로 틀림이 없을 뿐 아니라 이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의 예배에 감정적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예배는 전 인격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예배에 있어서 이해를 매우 강조하였다. 칼빈은 명료성에 이르는 첫 단계로서 개신교 예배가 보통사람들의 언어로 드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설교자의 학식으로 회중에게 감동을 주려하지 말고 사상을 전달하는데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성례전적인 행위는 언제라도 교육과 설교를 행함으로써 그 행위나 상징이 분명히 이해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교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상황, 우리의 실패와 하나님의 용서를 동시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고 보았다. 즉 예배의 의식은 불분명한 의식이 되어서는 안되며, 예배는 그 속에서 우리가 마음과 정성으로 참여 할 수 있는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이 주장한 예배의 명료성은 고도로 훈련된 회중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유로 칼빈은 교육하는 교회를 원한다. 따라서 성찬식에 처음으로 참여하는 것보다 교리문답 교육을 먼저 받아야만 했다(Fisher 1996:115). 결국 칼빈은 예배의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 칼빈에게 있어서 예배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했다.

이것은 칼빈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칼빈은 자기가 교회에 제시한 예배형식은 전적으로 교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교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교회에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예배가 실용적으로 갖는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와 충성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 가운데서 찾아진다.

칼빈에 따르면 예배는 신앙과 사랑 안에서의 갱신을 목표로 한다. 설교는 지적인 훈련이 아니며 예식은 심미적인 성취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예배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이 삶 모든 영역에 스며 들 수 있도록 문들을 열어야 하며 그리고 감사하는 삶을 살려는 의지가 예배의 전체사건을 지배해야 한다고 칼빈은 강조하였다.

4) 칼빈은 예배의 단순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예배의식 속에 있는 모든 과장된 허식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그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찬식을 행함에 있어서도 칼빈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감각을 속이는 이외의 다른 아무 목적도 없는 극적인 요소와 생명이 없는 과장된 요소들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허식과 무가치한 인간적인 영광보다는 경제적이다. 칼빈의 예배에 있어서 이처럼 모든 불필요한 동작이나 행동이나 말은 배제된다. 더욱이 예배에 쓰이는 말과 행동과 도구들은 모두 그것들이 전하거나 표현하는 실체(實體)에 적합해야 한다.

4. 현대 개혁교회에 적용할 점

1) 예배와 생활을 조화

바울과 칼빈은 모든 삶 자체를 예배로, 세상을 성소로 보았다고 하듯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는 모든 것이 예배가 된다는 것이다.(드 종1997:183) 공적예배의 연장선상에서 사적예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예배를 생각해야지,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예배의 광의적 의미를 고려하지 못하고 협의적인 뜻만 생각한다면 삶 자체가 공 예배의 구현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소위 모이는 예배를 통하여 흩어지는 예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도 된다.

2)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

성만찬은 ‘보이는 말씀’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예배요소이다. 원래의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대가 변모하면서 개신교가 가톨릭의 의식적 요소들을 버리다보니까 예배의 주가 되어 있는 예전적 요소를 제거하게 되었다. 말씀이라는 기둥을 높이 세움으로 자연히 성찬이라는 부분을 약화시키고 만 것이다. 생명 없는 의식을 반대하여 새롭게 출발한 개신교의 예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찬 없는 말씀만의 또 다른 의식주의 예배로 고착되고 말았다. 그래서 현대 개신교 예배는 성만찬이 제외된 말씀위주의 예배로 전향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두 기둥이 균형 있게 발전함으로 원래의 예배로 복원되어야 하겠다. 은혜의 수단으로써의 성찬, 교회의 표지로써의 진정한 성찬을 복구함으로 예배의 2부 구조를 조화롭게 구성해야 한다.

3) 전통과 자유의 조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예배의 순서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기계적 형식이 아니다. 다시말해 성경에는 예배의 순서를 기계적으로 제시해 놓고 그것에 준하여 예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파나 개 교회마다의 자유로운 예배형식은 당연한 현상이다. 예배의 자유는 방임과 구별된다. “예배는 분명한 신학과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서 명맥을 이어온 교회가 지닌 전통이라는 요소에 기초하고 있다. 즉 자유라는 부분과 본질이라는 부분은 언제나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자유없는 전통에의 집착은 또 다른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를 불러오며, 전통을 무시한 자유는 방임과 무질서로 빠질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한다.”(정인교 1997:225-226) 우리의 예배는 언제나 신학적 본질과 원리를 근거로 정형화되되, 기계화되지는 않으며, 형식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자유의 기본정신이 살아 있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5) 잘 준비된 예배

목사가 예배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평신도가 예배를 준비하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같고, 이것은 직무유기의 죄에 해당한다. 예배드리는 자들이 몸과 마음과 물질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공 예배에 참여해야 하듯이 예배 인도자인 목사는 더욱 더 철저히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 며칠을 보내기도 하는데, 왜 다른 예배요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가? 공 예배의 기도, 찬송, 성경읽기, 헌금, 광고, 새 신자 영접 등을 효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함이 필요하다. 예배의 실행적 차원에서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준비 없이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으로, 이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를 가볍고 소홀히 취급하게 하고 쉽게 식상하게 만든다. 은혜롭게, 새롭게, 박진감 있고 무엇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예배가 되게 하려면 잘 준비되어야 한다.

III. 나가는 말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시행하면서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예배였다. 왜냐하면 당시 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직자들의 독점물이었고, 의식적이었으며, 회중들은 단지 구경꾼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예배가 형식화되어 있었고, 라틴어로 진행되는 예배를 회중들은 이해할 수 없어서 동참할 수 없었다. 결국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했으며, 회중들에게도 은혜가 되지 못했다. 이런 이유에서 개혁자들이 예배를 개혁하려고 하였고 쯔빙글리, 부쳐 그리고 칼빈은 초대교회와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런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많은 개신교회는 더 개혁적이며, 창조적이고 선교적 마인드를 가진 신선한 예배가 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지금의 예배가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최상의 것은 아니다. 예배를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하는 이유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 속에 ‘예배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교회가 본래의 예배가 추구하던 목적을 지속해 나감으로 예배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의의를 공교히 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과거의 예배는 현대를 사는 사람과 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너무나 상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개혁을 말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와 내용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예배 신학적 근거 속에서 회중을 고려한, 회중에 적합한 예배로 발전시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국내서

김영한. “칼빈의 예배신학”. 숭실대학교논문집 27집(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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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칼빈의 예배개혁과 교회의 21세기 예배의 갱신”, 성경과 신학 24 (1998)

이정현. 개혁주의 예배학. 서울: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2001.

정인교. 예배학원론. 서울: 솔로몬, 1997.

번역서

de Jong, J. A. In to His Presence. 황규일 역, 개혁주의 예배.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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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well W. D.. 예배의 발전과 그 형태. 정장복 역, 서울: 쿰란출판사. 1996.

Fisher L. 개혁교회의 증거. 이형기 역. 서울: 장로교 출판사. 1996.

국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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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pson B. Liturgies of the Western Church. New York: The Word Publishing Company,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