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어린이 설교

[스크랩] ▒ 어린이 설교 70편 ▒ [2]

미션(cmc) 2010. 2. 11. 07:06
▒ 어린이 설교 70편 ▒ [2]


    ▒ 어린이 설교 70편 ▒ [2] 어린이 설교 70편 ▶▶악 쓰지 않는 삶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세기 26:12-13) (미리 T.V나 어린이들의 놀이터, 시장 등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악 쓰는 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줌으로 시작하라. 준비가 안되면 곧바로 시각자료 20-1을 보여 주며 말하라) 이 그림은 음성 그래프입니다. 밤낮없이 소리를 질러대던 거라사인 땅 귀신들과 사람의 음성 그래프를 상상해서 그려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똑같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제 뜻대로 안되면 신경질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씁니다. 차근차근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쉽게 성내며 악을 쓰고 싸웁니다. 노래도 악을 쓰고 코미디도 악을 씁니다. 이 시대는 한마디로 악 쓰는 시대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 한 평생을 조용히, 정말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삭입니다. 그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한 번도 혈기를 부리거나 핏대를 내거나 멱살을 쥐거나 악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뜻대로 잘 돌아갔으나까 그랬을 거라구요? 천만에요. 사실 그는 (시각자료 20-1로 바꾸어 들고) 이렇게 소리를 질러야 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복 형인 이스마엘과 작은 엄마 하갈은 어린 이삭을 시샘하고 헐뜯으며 미워했습니다(창 21:9).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칼에 찔려 죽을 뻔했습니다(창 22:9-10). 또 그가 사는 땅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을 면하려고 블레셋으로 잠시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창 26:1). 블레셋에서 그는 하마터면 그 나라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지요.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심술 사납게 다 메워버렸기 때문에 그가 우물을 다시 파내자 그들이 와서 빼앗았습니다. 그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거기까지 그들이 쫓아와 그 우물도 빼앗아 버렸어요. 두 번씩이나 어처구니 없는 행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이삭이야말로 악을 써도 시원치 않을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이삭은 조용히, 정말 소리 없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를 낼 줄 모르는 바보 천치였나요? 시비 거는 사람들이 두려워 아무 소리 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겐 실력이 있었습니다. 악 써야 할 상황에서도 악 쓰지 않을 수 있는 실력 말입니다. 실력이란 바로 그의 믿음이었어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이지요. 500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버스 기사 아저씨와 버스요금 부족액 10원 때문에 악 쓰며 싸우겠어요?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유리 구슬 한 개를 남이 가져 갔다고해서 멱살 쥐고 핏대 세우며 싸우겠어요? 이삭이 조용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악을 쓰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있었습니까? 바보 취급을 당했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는 블레셋과 아비멜렉이 두려워할 정도의 거부가 되었어요.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이에요. 이삭은 그의 믿음으로 또 순종으로 하나님 마음에 웃음을 드렸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해 주셨던 거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야'라고 독점하시는 친 백성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악을 쓰면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이삭처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시각자료 20-1을 왼손에 들고) 이런 삶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껌 하나 과자 한 봉지 때문에, 돈 몇 백원 때문에, 예쁜 옷 한벌 때문에 소리지르고 악 쓰는 것은 친 백성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요. 양보해야 해요. 넘겨줘야 해요. 다 주어도 여러분은 손해볼 것이 없는 사람이쟎아요?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으니까요. (시각자료 20-2를 오른손에 들고)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믿음의 삶을 사셔야 어울리지 않겠어요? 기도 : 주님! 저에게도 이삭처럼 크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신 사람답게 악 쓰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먼저 구할 것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이 일렁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쉽게 평안을 잃고 화를 냅니다. 또 쉽게 기쁨을 잃고 슬퍼합니다.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낙심합니다. 사람이 사는 건지 염려가 사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걱정 근심에 싸여 당황해 합니다. 만약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안정되지 않고 술렁대는 원인을 그대로 찍어 보여줄 수 있는 X-레이가 있다면 (시각자료 21-1을 보이며) 그 X-레이 필름에는 이런 그림이 찍혀질 것 같아요. 사람들의 삶을 출렁거리게 만드는 가장 깊은 원인은 바로 이 의식주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이것에 골똘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뭘 해먹고 사나? 뭘 걸치고 사나? 어떤 집에서 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은 파도처럼 치솟아 오르기도 하고 내리꽂히기도 합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죽기도 하고 남을 죽이기까지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세 분의 선생님을 들판에 두셨습니다. (시각자료 21-2를 보이거나 아름다운 생화 한 송이를 보이며) 첫 번째 선생님은 꽃입니다.(꽃을 귀에 대고 무슨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해보리라) 이 꽃이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지요? 제가 이 꽃이 하려는 말을 통역해 드리겠어요. "당신네 인간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하게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은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분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툭하면 입을 옷이 없다느니, 마땅치 않다느니, 구식이라느니, 무엇이 어떻다느니, 불평들을 하는군요. 난, 정말 여러분을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살다가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던져질 나 같은 꽃 한 송이에게도 이런 멋진 옷, 솔로몬 대왕도 걸쳐보지 못한 이런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는 하나님이신데요...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당신들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너무너무 안 어울려요." (시각자료 21-3을 보이거나 실제 새 한 마리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와서 보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보내신 두 번째 선생님은 바로 이 새입니다. 이 새도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하네요. 제가 통역을 해드리겠어요. "우리 새들의 사회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 소재는 바로 당신들- 인간들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툭하면 '뭘 해먹고 사나? 굶어 죽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조금 더 잘 먹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당신네 인간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새들의 코미디 소재라구요. 우리는 당신들처럼 심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지만 결코 염려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니까요. 당신네 인간들- 어려서부터 움켜쥐고 빼앗고 쌓아오면서도 어찌 그리도 마음이 늘 궁색합니까? 여러분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들에게는 우리를 돌보시는 그 좋은 하나님이 안계신 것 같은 확신이 든다구요." (시각자료 21-4를 보이며)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생님은 달팽이입니다. 이 달팽이도 할 얘기가 많아요. 여러분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해 드리죠. "여러분이 집 문제를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간들이 잘못 번역한 듯이 느껴져요. '하나님이 달팽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에요. 나 같이 가치 없고 연약한 달팽이 한 마리도 이처럼 사랑해서 이 멋진 집을 설계하시고 완공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여러분을 그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꼭 맞는 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당신네들을 위해 천국을 준비해 주신 분이 그분이시라면 그 하나님 앞에서 집 문제로 안달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세 선생님들은 우리를 너무너무 부끄럽게 하고 있지요? 이들의 마음을 특수 X-레이 기계에 넣으면 (시각자료 21-5를 보이라) 이런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이들의 관심은 의식주가 아니라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인 것 같아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쪽에 집중되어 있나요? 의식주 문제? 하나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볼까요? (마태복음 6:31-33을 한 목소리로 읽으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 멘 기도 : 주님! 꽃도, 새도, 달팽이도 걱정하지 않는 의식주를 염려하는 그런 품위 없는 삶을 살지 않게 도와 주세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만 신뢰하고 살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생과 사의 경고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2:1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네, 그래요. 요즈음 유행하는 유머들을 들어보면, '썰렁하다', 'Short 다리' .... 등등 TV에서 개그맨들이 사용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도 유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세상에 유머가 없다면 세상은 정말로 재미없고 짜증날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필요한 유머가 예배시간이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분반 공부시간,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 분별없이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깨뜨릴 때는 참으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러한 것들은 유머가 아닌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어린이들은 건전한 유머와 말장난은 분명히 구별해야 겠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서 유황과 불로 심판을 받았던 성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 성은 지금은 사해바다 남쪽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데 싯딤 평원이란 곳에 있었던 성이었어요. 어느 성인지 아는 어린이 있나요? 네, 맞았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이 바로 오늘 성경말씀의 무대예요. 당시에 소돔성은 풀이 넉넉해서 '하나님의 동산'이라고 불릴만큼 기름진 땅이었어요(창 13:10). 그런데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었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아지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멸하기로 하셨어요. 하나님은 그 성에 의인 열사람만이라도 있으면 멸망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어요. 그렇지만 그 성에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유황과 불로 멸망당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세 종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 하나님께서 성을 불로 멸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롯은 자신의 두 딸과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었어요. "얘들아! 하나님께서 이 성의 죄악을 보시고 이 성을 불로 심판하신다는구나. 빨리 일어나 이 죄악의 성을 빠져 나가야겠다. 자! 어서 빨리 따라나서렴!"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롯의 두 사위들은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어요. "장인 어른은 참으로 농담도 잘 하시네요. 아니 아버님 저 하늘을 좀 보세요! 하늘이 저렇게 아름답고 멀쩡한 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가시려거든 장인 어른이나 가세요." 롯의 두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기에 그 성을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결국 그들은 불의 심판을 받아서 죽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 주는 삶과 죽음의 전환점과도 같아요. 이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다면 멸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롯의 두 사위는 "빨리 일어나서 이 죄악의 성을 빠져나가라." 는 말을 진심으로 받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어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죄악의 도성에서 당장 떠나는 길 뿐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답니다. 전도사님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질문 한 가지를 해볼까요?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짓는 데 몇 년이 걸렸을까요?" "네, 맞았어요. 120년 걸렸어요." 그럼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 성을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며칠 후에 심판하신다고 하셨을까요? 맞아요. 40일이예요.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120년간이나 주셨어요. 또한 니느웨성에도 40일이란 시간이 회개의 기간으로 주어졌어요.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은 지금 즉시 그 성을 떠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 데도 롯의 두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기에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친구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해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2. 하나님의 경고를 반신반의한 사람들 '반신반의'란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한다는 뜻이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한 사람은 다름아닌 롯의 아내였어요. 하나님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두 딸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그들이 성에서 빠져나오기를 지체하자 천사로 하여금 그들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인도하여 주셨어요. 그리고 결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면 멸망함을 면하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롯은 그 산이 멀어서 갈 수 가 없으니 가까운 '소알성'에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하나님은 롯의 청을 들어주셔서 소알성으로 피신하도록 허락하셨어요.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알성으로 피하자 하나님께서는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어요. 그 순간 롯의 아내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을까요? 소돔땅은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래서 농사도 잘되고 먹고 살 것이 풍부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그들이 쌓아논 재물과 부귀영화가 모두 불에 탈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던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또한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버리고 사람의 말로 들었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회하지 못하고 의심하였기 때문이예요. 그 성이 멸망 당할만한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는 데 그 성이 멸망한다고 하니까 그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고 반신반의 했기 때문이예요. 결국 롯의 아내는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의심하며 우습게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 어린이들은 꼭 기억하셔야 해요. 3. 하나님의 경고를 순종하여 구원받은 사람들 롯과 그의 두 딸은 생과 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생명의 길을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이었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이예요.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롯은 처음부터 순종하지는 못했어요. 롯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자 대피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즉시 대피하지 못하고 지체하였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체하는 롯과 가족들을 천사로 하여금 이끌어 내게 하셨고 롯이 피할 때까지는 그 성을 심판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은 롯을 끝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롯을 구원해 주셨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은 소돔성에서 나온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소알성까지 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임을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서 죽게 되었을 때 먼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 이셨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예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여 방주를 만듦으로 40주야 동안 내렸던 빗속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들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하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소중한 말씀을 들을 때에 옆사람과 장난치고, 떠들면서 농담처럼 듣고 흘려버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행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단비처럼 내려주실 수 있도록 진실하게 드릴 수 있어야 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은 구원의 문턱에서 유황불 속의 재가 되고 말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 하였던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죄악의 성을 떠났던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구원을 받았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일까요? 전도사님과 함께 따라하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자." 자, 기도해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1-12)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 탱크나 장갑차를 직접 본 어린이 있나요? 아마 전쟁 기념관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거예요. 전도사님은 군대에 있을 때 장갑차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탱크와 장갑차는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그런데 6.25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그런 무기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어요.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것을 노리고 1950년 6월 25일 주일날 새벽에 북한 김일성이 소련의 원조를 받아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어요.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남쪽에서는 수도 서울을 순식간에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수원, 대전을 차례로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대구 근처 낙동강 아래까지 내려 갔어요. 나라는 정말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어요. 이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의 달성공원에 교인들을 모아 놓고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하고 호소했어요. 그리고 학생, 청년, 장년들까지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많은 교인들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유엔군(세계 16개국)을 보내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하셨고, 또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을 해서 서울을 다시 찾고 북진을 했어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 거예요. 이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게 숙제로 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어요. 그것은 대통령과 국민들의 눈물의 기도때문이었어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망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이스라엘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쳐했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아말렉이라는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아말렉 족속들은 유목민들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서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게 될까봐 두려워서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게 되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민족이었는데 처음으로 아말렉과 전쟁을 치르게 됐어요. 아말렉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여호수아야! 너는 백성들 중에서 믿음이 강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나가서 아말렉 사람들과 싸우도록 하여라. 내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여호수아는 믿음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뽑았어요. 오랫동안 애굽에서 종노릇만 하였기에 대부분 용기가 없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강한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이 좋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을 선택하도록 한거예요.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사람들은 특별한 무기도 없었고 갑옷도 준비하지 못한 군대였지만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아말렉과 싸우기 위해서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전쟁터에 나가서 용감히 싸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고 있을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모세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이기고 모세가 힘이 들어서 두 손이 쳐지니까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기는 것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는 것을 본 모세는 다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이 또 승리했어요. 그렇지만 손을 들고 있는 것이 힘이 들어서 두 손을 내리면 또다시 이스라엘이 지고 아말렉이 승리를 했어요.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생각했어요. "아니!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있쟎아. 안 되겠다. 우리가 가서 모세를 도와야지!" 아론과 훌은 큰 바위를 들어다 모세를 바위 위에 앉게 한 후에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들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물리칠 수가 있었어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이기기까지 모세의 손은 내려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론과 훌이 곁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도와주었기 때문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아말렉을 물리친 원동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거라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모세는 힘이 들어서 자기 팔을 혼자 들 수 없을만큼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거예요. 아말렉과의 전쟁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된 것을 책에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가 외울 수 있도록 항상 들려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여호수아를 모세 뒤를 이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처음으로 전쟁을 치뤘던 아말렉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 진멸해 버리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기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어요. 그 이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찬양으로만 영광을 돌렸는데 아말렉과 전쟁을 치룬 후에는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어요.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케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말이예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는 언제든지 승리케 하여 주신다는 귀한 믿음을 담고 있는 말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럼 이제부터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어요. 1. 기도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왔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이었어요. 모세는 바로 앞에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게 했던 지도자에요. 지팡이를 든 모세의 손을 바다위에 내밀자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평펑 솟아나올 정도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 모세였어요. 그렇지만 모세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예요. 모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후에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한 것은 기도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어린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소원을 이루어 주실 거예요. 2. 서로 돕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이스라엘이 지게되자 아론과 훌이 바위를 들어다가 모세를 앉게 한 후에 양쪽 팔을 받쳐서 높이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또한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므로 모세를 도왔어요. 모세가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모세를 도왔던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교회에는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요.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들이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는 착한 어린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답니다. 남이 잘못하였을 때 손가락질이나 하고 비판만 하는 친구들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기도해주고 도와주고 어려움을 함게 나누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겠어요.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사도들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도와주었던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훌륭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도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처럼 서로 돕고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3.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고 아론과 훌이 아무리 잘 돕고 여호수아가 열심히 많은 책임을 잘 감당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세는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닛시'라고 불렀어요. 모세는 하나님께서 항상 승리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고 그를 도운 아론과 훌, 그리고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운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기도 해 주셨다는 사실과 모세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이예요.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많은 영적인 싸움을 해야해요. 욕심과도 싸워야 하고, TV와도 싸워야하고, 이기심과도 싸워야하며 거짓 우상과도 싸워야해요. 그때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기도밖에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바로 맥추감사주일이예요. 어떤 친구는 장난으로 '맥주감사주일'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예요.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서 보리를 추수하기까지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절기때만 감사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또 어떨 때 감사를 드렸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하박국 선지자가 드렸던 감사를 배워보도록 하겠어요. 1. 환난날의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 나라가 멀지 않아 바벨론이라는 강한 나라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제 유대 나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는 폐허가 되고 농작물을 빼앗기고 짓밟히며 가축들까지도 우리를 떠나서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전쟁의 공포로 인해서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고 온 몸이 떨리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얼마나 귀한 감사인가요. 어제(97.7.5) 패스 파인더라는 우주 비행선이 화성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소식이 뉴스 속보로 TV에 보도가 되었어요. 벌써 오래전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과 미국의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었는데 이젠 화성에까지 우주선이 도착할 만큼 과학이 발달되었어요. 달에 도착했던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말을 했다고 해요. 먼저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달에 도착해서 "봐라! 그 어느 곳에 가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는데 암스트롱은 "봐라! 하나님의 솜씨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 어느곳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다."라고 했다고 해요. 어쨓든 화성에까지 인간의 손길이 이르렀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예요. 이것은 과학자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도사님이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한 가지 예화를 들려주겠어요. 에디슨이 어렸을 때였어요. 그의 집은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그가 발명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문을 팔아 돈을 벌어서 필요한 약품을 구입해야만 했어요. 어느날이었어요. 에디슨이 열차를 타고 집에 오다가 약품이 쏟아져서 열차에 불이 붙고 말았어요. 불이나자 사람들은 달려들어서 불은 끄고 말았지만 화가 난 차장 아저씨가 에디슨을 기차 밖으로 던져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그때 기차에서 떨어진 에디슨은 귀가 멀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에디슨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적인 훌륭한 발명왕이 되었답니다. 훗날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귀머거리가 되지 않았다면 이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연구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귀머거리가 된 것 때문에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발명왕 에디슨이 세계적인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귀가 들리지 않아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지헤를 주셔서 발명왕이 되었나봐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 여러분들도 전쟁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2. 없는 중에서 드리는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17절 말씀 속에서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했어요. 무엇 무엇인지 말해 볼까요?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러나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만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해도 감사한다고 했어요. 모든 것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감사하는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이예요. 비록 가진 것이 적거나 없다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정말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 3.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드리는 감사 18절 말씀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예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어둡고 답답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면 언제나 힘이 솟고 희망이 생기며 언젠가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은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과부의 헌금 정신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헌금'이나 '연보'라는 말을 들어 본 친구들 있나요? 들어 보았다면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는 친구 있나요? '헌금'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을 말하고 '연보'란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기 위해서 내는 돈을 말해요.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먹을 것도 살 수 있고 집도 마련할 수 있고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학용품도 살 수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에도 돈이 필요해요. 교회를 운영해 나가고 선교사업도 하고 전도지도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교회에도 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할까요? 하늘에서 떨어질까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던져주고 갈까요? 아니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바친 돈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바로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헌금이라고 해요. 어느날 예수님께서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헌금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셨어요. 당시에 헌금궤는 놋쇠로 만들어져 있었고 헌금을 넣는 구멍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구멍을 통해서 헌금을 넣었어요.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났어요. 그런데 어느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하면서 '쫘르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으와! 저 사람은 굉장한 부자인가 보다! 저 부자는 굉장히 훌륭한 분인가봐! 저렇게 많은 돈을 남을 위해 헌금하다니 믿음도 좋은 분일꺼야!...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 부자는 어깨를 으시대면서 자랑스러워 했어요. 조금 후에 한 과부가 오더니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어요. '렙돈'은 구리로 만든 동전을 말하는 데 가장 가치가 작은 돈을 일컫는 말이예요. 그 모습을 보신 에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가난한 과부가 한 헌금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단다."라고 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요? 분명히 부자가 한 헌금이 훨씬 많은 데 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더욱 높이 평가해 주셨을까요? 제자들이 물어 보았어요. "아니, 선생님! 분명히 부자가 더 많은 헌금을 했는 데 어떻게 과부가 더 많이 바쳤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부자는 풍족한 가운데서 조금 바쳤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전부를 헌금궤에 넣었기 때문이란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과부가 어떠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는지에 대해서 선생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어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이유는 그가 자기 생활비 전체를 드렸기 때문이에요. 당시 성전의 뜰은 네 군대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들의 뜰', 그리고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 등이 있었어요. 연보궤는 여인들의 뜰에 있었는데 이곳에는 나팔같이 생긴 13개의 연보궤가 놓여져 있었어요. 13개 중에서 9개는 성전 세와 각종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고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어요. 가난한 과부는 이 연보궤에 두 렙돈의 헌금을 정성껏 드렸어요. 이 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액수의 돈이었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정신을 칭찬하셨어요. 가난한 과부가 바친 헌금은 작은 것이었지만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바친 것과 같았기 때문이예요. 헌금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정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헌금은 결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다 바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땅에 몇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기근이 심할 때였어요.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로 가서 물과 떡 한 조각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 집의 과부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웅큼과 기름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그것은 자신과 아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대로 그것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바쳤어요. 그 결과 과부는 쌀 창고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얻게 되었어요. 이 축복은 사르밧 성의 과부가 온전한 희생을 드렸기 때문에 얻은 것이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도 이와같은 정신으로 드려야 해요. 부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적게 바쳤고, 가난한 과부는 작은 것을 가졌었지만 전체를 바쳤어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칭친하셨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을 기뻐받으시고 칭친해 주실 거에요. 2.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게 헌금을 드릴 때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예수님은 부자가 헌금 하는 것을 보았지만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얼마를 넣은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도리어 두 렙돈의 적은 돈을 드린 과부의 믿음을 칭친하셨어요. 예수님은 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칭친하셨을까요? 그것은 과부가 드린 헌금은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이예요. 바로 이것이 헌금 정신에요. 올바른 헌금 정신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느냐에 달려 있어요. 과부가 드린 헌금이 자기의 생활비 전체를 드린 것이라고 해도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리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 모세는 성막을 짓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바칠 것을 권유했어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헌금하였고 하나님은 그 헌금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셨어요. 또한 우리 어린이들은 삭개오를 기억하실 거에요.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사람말이예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신 후에 제일 먼저 어떤 행동을 하였지요? 삭개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삭개오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겠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자신이 가진 재물들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실거예요. 3.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어요. 우리 어린이들 중에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세금을 내 본 어린이들 있나요?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자동차세... 등' 수없이 많은 세금을 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나라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이 아니예요. 헌금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헤에 감사해서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예요. 만일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고 은혜받지 않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을거예요.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대한 감사이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에요. 초대교회에 헌금을 잘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네, 아나니아와 삽비라예요. 그들은 소유를 팔아서 그 돈 중에서 얼마를 숨기고 일부를 전부인양 사도들 앞에 내어놓고 성령을 속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어요. 이유는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예요. 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없었어요. 그들이 갖고 있던 소유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 헌금하는 시간이 되어서 헌금함이 앞에 오면 그제서야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헌금을 찾는 어린이도 있고 돈을 꺼내어 보고 오백원 짜리인지, 백원 짜리인지, 십원 짜리인지를 살펴본 후에 십원 짜리를 골라서 그것도 성의 없이 헌금함속에 집어 던지는 어린이가 있어요. 또 어떤 어린이들 중에는 부모님께서 헌금하라고 주신 돈을 가지고 교회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먹고 남은 돈을 가지고 와서 남은 돈만 헌금하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비록 적은 액수라해도 정성껏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꼭 그 헌금을 기쁘게 받아주실 것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외국의 어느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선교를 위해 헌금을 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정성껏 헌금을 했는데 한 소년은 주님께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 푼의 동전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헌금 주머니가 자기 앞에 왔을 때 그 소년은 헌금 주머니에 자기 몸을 바쳤어요. 그리고 그 소년은 후에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였고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어요. 혹시 그 선교사가 누군줄 아시겠어요? 바로 리빙스턴 선교사님이예요.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헌금을 원하고 계세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자의 예물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신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칭찬해 주셨어요.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게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제부터는 올바른 헌금과 올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풍성히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미가 6:6-8)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하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찬송을 많이 부르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하면 좋아하실까요? 도대체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옛날 이스라엘 땅의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는 자기의 아들을 신들에게 바치면 신들이 가장 기뻐하며 복을 내려 준다고 생각하여 귀여운 어린 아들을 장작불에 태워 자기가 믿는 신에게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무식한 일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아봅시다. 1. 공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의란 의롭고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보면 불공평한 일이 너무 많아요.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 이용해 먹는 악질적인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늘 이용만 당하고 가난하게 사는 일이 많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말하고 나쁜짓을 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기뻐하십니다. 맨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은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랍니다. 하나님은 속임수가 없기 때문에 맨 나중에 정확히 판단해서 상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억울해 할 것이 없어요. 세상에는 돈을 벌기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도둑질이나 강도질이나 혹은 사기를 쳐서, 또 어떤 사람은 술을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팔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소녀들을 꾀어 술집이나 미군부대 홀에 팔아넘겨서 돈을 모읍니다. 그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생명도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숨과 돈을 바꾸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결국 남의 인생을 망치고 남을 원통하게 하는 일이랍니다. 뿐만아니라 그 결과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으로 벌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하나 사랑하지 못하고 돌로 동생을 쳐 죽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어요.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은 사람을 특히 좋아하십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교회도 잘 다니고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또 방언도 잘하고 설교도 잘 하지만 사랑이 부족해서 날마다 서로 시기하고 싸움만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에배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랍니다. (예화) 순덕이는 전라북도의 어느 시골에 사는 어린이입니다. 순덕이는 친구 영실이를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러나 영실이는 어느날 학교에 갔다 오다가 마을 앞 찻길에서 버스에 치어 다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주일날이 되어도 교회를 나갈 수가 없었어요. 어느날 순덕이는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하나님! 영실이가 다 나아서 교회를 혼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제가 도와주겠어요!" 그리고 순덕이는 주일 아침만 되면 영실이를 교회까지 업고 갔어요. 비가 올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게다가 교회가 멀기 때문에 순덕이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도 순덕이는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영실이를 교회까지 갈 수 있게 힘을 다해 도와주었어요. 두달이 지나자 영실이는 많이 나아서 순덕이가 부축만 해 주어도 교회까지 걸어갈 수가 있었고 세달이 되자 영실이는 절뚝거리며 혼자서도 교회를 걸어 다녔어요. 그러나 순덕이는 늘 영실이와 같이 다니며 성경책을 들어 주었어요. 그러나 석달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영실이의 손발이 되어 희생하는 것을 본 영실이의 부모님은 큰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영실이의 부모님은 동네의 유지였기 때문에 그 뒤 동네 사람이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져 많은 사람이 에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순덕이의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덕분에 교회도 부흥하게 되었어요. 이와 같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랍니다. 3.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신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인 원인도 교만한데 있었고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교만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너무 자랑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돈이 많다고, 착한일 좀 몇번 했다고, 힘좀 세다고, 공부좀 많이 했다고, 성적이 좋다고, 똑똑하다고, 재주가 좋다고.. 등등 너무 자기를 자랑하고 뻐기고 으시대면 하나님은 싫어하신답니다. 예수님도, "너희중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리라"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면 코끼리 앞에 개구리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하고 찬송도 잘 드려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과 사랑과 겸손임을 깨닫고 실천해야 되겠어요. -- 아 멘 --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시 118: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분은 선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땅위에, 혹은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새순들은 맑고 순수합니다. 어린이들도 새순과 같이 맑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사랑스럽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새순은 귀엽지만 매우 여리기 때문에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돌봐주시고 언니나 형이 지켜줍니다. 선생님도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 보다도 어린이 여러분들을 더 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려쪼이는 여름철, 그리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십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는 한겨울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십니다. 병들어 고생할 때에도, 악한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할 때에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던지 두손 모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어린이를 더욱 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는 축복의 손을 펴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나 찬송할 때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감사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입니다. 우리 어린이도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어린이, 지혜로운 교육을 통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는 어린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가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합시다 (시 116: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드리면 드릴수록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면서 한 가지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크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너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어떤 벌을 받을까요?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 무서운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뿐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낮의 따스한 해와 밤의 아름다운 달을 쳐다 보세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하나님께 누가 감사함을 게을리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 크신 은혜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미국에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아버지 목사님은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가고 아들도 자기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갔습니다. 주일날 모든 예배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아버지 목사님이 먼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조금 후에 아들이 돌아 오더니 아버지 목사님의 손을 잡고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려야 겠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앞으로 달려 들어 그것을 피하다가 차가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다치지 않고 차도 많이 부서지지 않아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네가 체험을 하였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은 어디서든지 이렇게 지켜 준단다. 정말 감사하다. 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런 사고없이 에배를 보고 돌아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위험한 일을 당해서도 무사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생활 속의 이런 일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늘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 5:18) 좋은 일에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일에 감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유익을 늘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척척 아주 잘되는 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도 병이 들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또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고생 시키는가? 낙심도 될 때가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일없이 잘 되어 가는데 나만 왜 이 꼴인가?' 스스로 낙심되어서 눈물만 나올뿐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어린이를 유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너무나 감사해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열심스러운 전도로 어느 때에는 수없이 맞았고, 어느 때에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더위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또 강도의 위협과, 배가 파선해서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위험도 있었고 뱀에 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은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주시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기차 안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틈틈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기차 한모퉁이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기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실험실의 약품이 쏟아져 기차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차장이 급히 달려와 불을 껐습니다. 잔뜩 화가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열차 밖으로 떨어진 에디슨은 불행하게도 귀를 다쳐서 영영 귀가 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위대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때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귀에 딴소리가 들리지 않음으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발명왕이 된 것처럼 감사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큰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또 평온하게 지내는 어린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에도 믿음을 갖는 어린이에게 유익함을 주십니다. -- 아 멘 -- ▶▶정직하게 행하자!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는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반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장차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나는..." 그런데 가필드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필드에게 다시 물었다. "가필드는 무엇이 되고 싶니?"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학생들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게 무슨 뜻이니?"하고 진지하게 물으셨다. "예,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웃던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숙였다. 1983년 5월 29일 오후 인이와 영이는 우주 과학 박람회를 재미있게 견학하고 저녁에야 피로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길바닥에 낯선 여자용 손지갑이 눈에 띄었다. 얼른 집어 들고 지퍼를 쭉 펴서 열어 보았다. 속을 들여다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많은 돈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놀란 것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인 영이의 손을 쥐어잡고 마구 집으로 뛰어갔다. 대문에서부터, "어머니!"하고 소리쳤으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안방으로, 부엌으로, 목욕탕으로, 모두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가슴은 쉬지 않고 뛰었다. 수돗가에서 냉수를 한 바가지 먹었다. 그러니까 약간 안정이 되는 듯하였다. 그리고 아침 집을 나설 때 아버지는 사업일로밖에 나가시고 어머니는 볼일로 외출하신다는 말씀이 겨우 생각이 났다. 인이와 영이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바라보다가 둘이 똑같이 일어섰다. "영아, 파출소 가자." "응, 그래." 둘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에서 약 1km 떨어진 독산3동 파출소로 급하게 달려갔다. 습득물을 접수한 경찰관 아저씨는 지갑 속의 돈을 세어 보았다. 무려 1백 1만 5천원과 저금통장, 도장 등이 들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얘들아, 참 좋은 일을 했구나." 경찰관 아저씨한테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겨우 진정이 되는 듯하였다. 경찰관 아저씨가 지갑 속에서 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 연락을 하였더니 조금 후에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돈지갑을 가슴에 움켜잡고 마구 뛰기도 했다. "학생들 고마워..." 몇 번이고 되풀이하시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는 것을 본인이와 영이는 참으로 좋은 일을 했구나하고 느꼈다.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딤후 3:16)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암8:11-14)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19:57-72)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놈으로 소문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김익두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착실한 교인이 되어 금주와 금연을 하니 그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참으로 의아해 하며 "도대체 자네는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어떻게 끊었나? 정말로 요즘은 술과 담배를 안 하나?"라고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때 김익두 목사는 "나는 요즘 약 두 첩씩을 먹고 있다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뭐야! 술, 담배 대신 약을 두 첩씩 먹는다고? ...." "그렇다네! 이 약 두 첩씩을 먹으니 술, 담배는 물론이고 엄청난 복이 쏟아지네 그려!" 하고 대답을 하니, 친구들이 몹시 궁금해 하며 "우리도 좀 가르쳐 주게나"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김익두 목사는 "그러면 그르쳐 줌세 두 첩의 약이란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일세" 라고 하였고 그 후 친구들에게 신약과 구약에 대한 교리와 도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는 성경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김명배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교회의 젊은 집사였다. 그는 서울에서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고 즉시 서울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을 끝냈다. 큰형은 의사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돈도 잘 벌었고, 둘째 형은 사업가로서 윤택한 생활을 했다. 또한 막내는 외무부 공무원으로 해외 근무를 많이 했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어머님이 남기고 가신 재산을 처리하자고 해서 삼형제가 식구들과 함께 한 방에 모였다. 큰 형님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남기신 재산은 공무원으로 제일 어려운 막내가 책임지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둘째 형이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하면서 찬성을 표시했다. 그러자 셋째인 막내가 나섰다. "형님 그것은 안될 말씀입니다. 재산은 당연히 장자이신 큰 형님이 맡으시든지 아니면 사업가이신 둘째 형님이 맡으셔야지 어찌 막내가 그것을 맡습니까? 그것은 안될 말씀이고 사실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자기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큰 형님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머님이 평생에 보시던 성경책입니다." "야, 그것은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장자에게 가야지 ...." 그러자 둘째 형도 "반드시 장자에게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 .... "하며 자기도 성경책을 마음에 두었노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형님이 재산을 맡으시고 성경책은 둘째인 저에게 주십시오 했다. 그때 막내인 셋째 아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형님들은 언제나 어머님이 묻혀 계신 고국 땅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언제나 해외로 떠도는 몸이니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듯 어머님의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두 형님들은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식구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 이처럼 그 성경은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한 책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성경을 믿는 이유 천문대 소장이 성경책을 읽고 있는 부하 직원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여보게 자넨 과학시대에 맞지도 않는 그런 책을 아직도 읽고 있나? 더구나 누가 기록했는지 조차 모르는 그 따위 책을!" "소장님, 소장님은 천문학을 계산할 때 구구단을 사용하시죠?" "그렇지." "그럼 그 구구단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모르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고 이용하십니까?" "그야 정확하고, 또 편리하게 계산하는 데 꼭 필요하니까" "제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유와 꼭 같군요." 시편 19편 49절과 5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나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힘과 생명이 되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이 의욕을 상실했을 때 새로운 삶의 힘을 얻게 합니다.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에 위로를 얻게 합니다. 실망과 좌절에 싸일 때 새로운 소망을 얻게 합니다. 1977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세계에서 8번째로 우리나라 등반대원들이 등정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목사님이 펴서 읽은 성경이 시편 121편이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독실한 크리스쳔인 등반대장의 사모님은 등반대원들의 가슴에 성경을 한 권씩 넣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떠났습니다. 제1캠프를 올라갈 때 산소통이 모자랐습니다. 아이스폴을 지날 때에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믿고 시편 121편을 읽고 또 읽으며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에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그는 태극기와 네팔기를 올리고 그 눈속에 무릎을 꿇고 성경을 꺼내서 시편 121편을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리고 그 성경과 태극기를 눈 속에 파묻고 내려왔습니다. 그후 등반대의 대장이었던 김영도 집사가 간증을 하기를,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힘이요, 신앙의 힘이요, 하나님의 도움의 힘이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내 힘이 부족할 때에 하나님의 호흡을 마셔야 합니다. 말씀을 먹을 때에 초인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능력의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시히 토키치라는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살인을 하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서 사형당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있던 감옥에 어느날 캐나다 선교사들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시히는 짐승 같은 표정으로 그들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선교사들이 방에 넣어 주고 간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시히는 잠시 성서에서 손을 놓고서 '주여, 이것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습니다. 내 강퍅한 마음이 깨졌습니다'하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쁨으로 죽음에 임하면서 이제 주님께로 가까이 간다고 말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서의 힘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시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아시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대언하여 뼈들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때 마른 뼈들에 살이 입혀지고, 생기가 들어가고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에는 의원들의 발언대 위에 이상한 상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속에는 성서가 있어서 의원들이 의안을 성서 위에 놓고서 토론을 벌이며 정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민주주의를 행하는 나라는 성서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링컨대통령은 말하기를 "나는 성서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 구세주의 모든 선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 성서협회원의 방문을 받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피곤하여도 잠자리에 들기전에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28대 윌슨 대통령은 1911년 5월 7일 덴버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운명은 여러분이 위대한 계시의 책인 성서를 열심히 읽느냐, 안 읽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 1대 워싱톤 대통령은 말하기를 "하나님과 성서가 없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밀란의 정원에서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읽을때에 변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참된 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조오지 뮬러는 시편 63편 5절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일생을 바쳐 고아를 돌보는 사랑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리빙스톤은 사도행전 16장 31절을 통해 거듭났고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은 고린도전서 15:1-4절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밀림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읽으면서 거지 나사로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흑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흑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섬기는 어린이가 되자 (마20:27-28) 윤식이가 유치원에서 생일이 들어있는 1월이 되어 큰 케잌과 푸짐한 떡과 과일과 과자를 차려놓고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열 명의 어린이가 각자 인사하고 자기의 희망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윤식이의 차례가 되자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였습니다. 생일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윤식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쟎아요. 삼촌도 의사니까 돈 많이 벌쟎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윤식이의 동생인 윤정이가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윤정이도 오빠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윤정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엄마가 매일 아프니까 엄마를 치료해 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다른 아픈 사람도 고쳐줄꺼예요." 엄마는 기뻤습니다. "우리 딸이 최고야!" 윤식이와 윤정이가 똑같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그 뜻은 아주 달랐습니다. 윤식이는 돈을 벌기 위해, 윤정이는 엄마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몇일 전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황태자비는 여왕을 말합니다. 어제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호화스럽게 거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행렬들이 나와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반 평생을 온갖 호화로움 속에서 지내고 죽을 때도 호화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위대한 여인이 죽었습니다. 어제 테레사 수녀님이 별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언론이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영국의 황태자 비의 죽음과는 뭔가 다른 죽음이었습니다. 다이애나는 한평생 호화속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다가 온갖 추문(나쁜 소문)에 쫓겨 교통사고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다가 아름답게 죽어갔습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고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자비의 선교단'을 이끌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탄자니아, 요르단 등지에서 빈민가에 '죽어가는 자를 위한 집'을 세우고 버림받은 병자, 나병환자 등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 병자들과 악수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해주는 이들의 손은 훌륭한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그 영광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입술에만 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함께 일하는 수녀들에게 계속 가르쳐 온 그녀의 신조였습니다. "여러분, 자랑삼아 일하지 맙시다. 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은 주님의 굶주림이며, 저들의 질병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1950년 인도 칼카타 빈민굴에 테레사 수녀가 들어갔을 때 그곳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암한 지옥이었습니다. 굶어 쓰러지고, 병들어 죽어가고, 도둑과 살인이 백주에 난무하며, 창녀가 거리를 누비는 혼돈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여성은 문맹자를 위하여 여러학교를 세워 7천 5백명의 어린이를 졸업시켰고, 진료소들을 지어 96만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며, 54개의 나병치료소를 만들어 4만 7천명의 문둥병자들을 도왔으며, 20개의 고아원을 지어 1천 6백명의 고아를 길렀고, 의지할 곳 없이 죽기를 기다리는 3천 4백명을 위해 23개의 숙소를 지어 돌보아 왔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인간들 속에서 예수의 아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그 골고다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져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2달 밖에는 더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간암이라고 병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세상에 더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화목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빚진 돈도 모두 갚았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친구에게 찾아가서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유언을 써놓고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2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았더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잘못 진단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뜻밖의 오진에 감사하면서 지난 2달간 살았던 경험을 귀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섬기면서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인 것을 깨우진 것입니다. 어느날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미국 시카고 시를 방문 하였는데 기차역 앞에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슈바이처 박사가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출구로 나오시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시더니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의 트렁크를 받아서 기차 안까지 다시 들어가 그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드린 후 내려와, 시장님께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내가 늘 하던 습관 때문에 실례를 했습니다." 이것을 본 신문기자가 슈바이처 박사님의 선행을 신문에 크게 보도해서 박사님의 인격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이 위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긴데에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인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정신박약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한 선생님께 가장 힘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매일 몇 명씩 목욕을 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발가벗은 아이를 대할 때 '이 아이가 예수님이다'하고 생각하며 목욕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사표를 낼까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예수님으로 생각할 때 목욕 시간은 나의 기도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참다운 기도와 봉사를 아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된 일을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학교는 모범적인 특수 학교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 일어나시더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다 물을 담아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드디어 시몬 베드로가 씻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시나이까?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 것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을 듣고나니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불쌍한 사람, 죄인, 병든 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섬기면서 살으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나니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자기도 예수님처럼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낮추고자 하는 자를 높혀 주십니다. 이와같은 삶은 예수님이 살으셨고, 바울이 본받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생활이 은혜가 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말씀하소서! (눅8:22-25)"...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설교하기 전에 복음성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니"를 부르고 시작한다.) 지금 부른 찬송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는 찬송이지요. 이 찬송가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사건들이 나와요. 해마다 명절만 되면 TV에서 마술 쇼를 보여주곤 해요. 여러 마술사들이 출현해서 갖가지 마술들을 과시하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흰 천으로 비둘기가 되게해서 날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위험한 톱니바퀴 속에서 탈출하기도 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술을 보고 진짜인줄로 착각하곤 해요. 그만큼 속임수에 능한 기술들을 갖고 있어요. 전도사님도 수원에서 어떤 사람이 마술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았는데 사과에 여러개의 바늘을 꽂고 그것을 하나씩 빼서 먹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모를정도예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분명히 그것은 속임수라고 자신도 인정을 했어요.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섰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기적이었어요. 그러나 잠시후 박수와 술객, 마법사들이 똑같이 흉내를 내었어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마술이었어요. 모세의 뱀이 마법사들의 뱀을 잡아먹어 버린 것으로 알 수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은 마술과 기적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마술은 속임수이지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예요. 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즐겁게 하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해요. 그러나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줘요. 그래서 마술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즐거워 하지만 "나 이다음에 마술사가 될테야"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적들을 행하셨는지 이 찬송가를 통해서 생각해 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1절의 이 가사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말하는 가사예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가나"라는 지방에 혼인잔치가 있어 제자들과 함께 가시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는 잔치를 할 때 포도주는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큰일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이예요. 이 일을 안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어요.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어요. 기적이었어요. 예수님께서 맨 처음 행하신 기적이었어요. 다음 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를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에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길거리에 앉아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어요.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불러 눈을 뜨게 해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셨어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어요. 순전히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기 위해서 눈을 뜨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디매오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생각되어서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신 거예요. 3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신 사건이예요. 예수님이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쳐 주시려고 가보니 이미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버렸어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니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이예요. 끝으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폭풍을 잔잔케 하신 사건이 나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가는데 큰 폭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게 되자 어부출신인 제자들도 겁을 먹고 안절부절 하는데 예수님은 글쎄 잠을 주무시는 거예요. 제자들이 폭풍이 심해지자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 예수님 큰일났습니다. 배가 뒤집혀서 다 죽게 됐어요." 제자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잔잔해졌습니다. 자연도 예수님께 복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기적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일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예요. 오직 하나님 아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적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난다는 거예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잠잠하라!"는 말씀 앞에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후렴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 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예수님께 "저에게도 말씀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린이에게 말씀해 주셔요. 예수님께 기도해 보세요! "예수님 저는 지혜가 부족해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 저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자신의 문제들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예수님은 꼭 말씀해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복있는 사람 (시1:1-2) 복이 있는 사람과 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인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오직 성경의 진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서는 복을 받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복 받는 길을 가장 잘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꾀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꾀어서 자기처럼 나쁜 짓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아무리 꾀어도 어린이 여러분은 그 꾀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속은 후 겪은 손해에 후회가 되어도 이미 그때는 마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면 죄인과 함께 죄를 짓게 되고 결국은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업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젖어 믿음에서 떠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겐 늘 기쁨이 있고 그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의 말씨는 공손하며 그 행동이 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땅에서 하는 일마다 기쁨을 갖고 하기에 복을 받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 너무나 가난하여 통나무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말씀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어릴 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의 아주머니로부터 성경책을 빌려와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어찌나 사랑하였던지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릴 때는 성경을 사랑하고 예배당에 열심히 다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술친구와 어울리고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함없이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에 드디어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를 해방하는 큰 일을 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성경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약속이므로 이 말씀대로 살 때 복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사랑하여 복받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원자탄 (기도)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지으시고 일생동안 사랑을 나누어 주시면서 사신 손양원 목사님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목사님은 경상남도 함안군 철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목사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아버지 어머니께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신앙으로 자라났다. 국민학교 다닐 때 새벽 기도회에 늘 나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어했으나 일어나지를 못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새벽기도회에 나갈 수 있도록 깨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깨어 주시지를 않았다. 잠을 깨고 나면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날은 밝아오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 나도 새벽 기도회에 같이 데려가 주세요. 나도 어머니처럼 가고 싶거든요. 또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는 귀여운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다. "어머니! 내일은 새벽 기도회에 데리고 가 주세요. 꼭 깨워주셔야 해요."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잤지만, 그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았다.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마치시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왜 아참에 깨워주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여셨다. "양원아, 곤히 잠을 자는데 차마 깨울 수가 없었어. 너무 피곤해 할 것 같아서..." "어머니, 그럼 내일 아침에는 깨워 주세요.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힘도 생기고 용기도 갖게 되거든요." 그러나 다음날도 어머니는 깨워 주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참 생각한 끝에 좋은 궁리를 해냈다. 어머니가 잠이 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잠이 드시면 어머니의 치마끈에 자기 허리띠를 묶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갈 시간이 되어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무엇이 자기를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알고 보니 치마끈에 아들의 허리띠가 묶여 있지 않았는가! 그 때 벌써 손양원 목사님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양원아! 그렇게 새벽 기도회에 가고 싶었니?" 어머니가 묻자, "그래야 새벽 기도회에 따라 갈 수 있지 않아요?" 손양원 목사님은 픽 웃고는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띠를 매고야 잠을 잤다. 이 일이 동기가 되어 매일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우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산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으로 자라나서 평생 사랑을 나누어 주신 훌륭한 목사님이 되신 것이다. 특히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를 침입하였을 때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시다가 죄없이 일본 경찰에 붙들리어 교도소에서 생활하기도 하셨지만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기도 하였다. 육 년 동안 옥살이를 하시고 해방이 되어 나오시자마자 다시 교회 일을 보시다가 6. 25동란 때엔 사랑하는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당했고 그 후 목사님께서도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끝내 순교당하셨다. 목사님은 살아계시는 동안 사랑의 운동만 펼치시면서, 특히 불쌍한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끈을 매고 자는 아들의 모습 뒤에는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가 숨어 있었다. 어느 소녀의 헌신적인 기도 어느 소녀가 난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됨을 괴로와 했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고민했다.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아뢰자 그것은 "기도"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했다. 이번엔 어떤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믿지 않는 자들의 인가기도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기도했다. 손님이 문안 올 때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했고 전도했다. 어머니께 늘 물었다. ○○○ 교회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고.. 그때마다 대답은 "Yes"였다. 그때마다 너무 기뻤고 확신에 찼다. 그녀의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아름다운 기도였다. 결국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그녀가 기거하던 병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밑에서 한 수첩을 발견했다. 그 수첩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이름 옆에는 †표를 그려 놓았는데 모두 56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텐데 자신의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위한 헌신적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죠지 뮐러'의 성공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단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내가 성공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어떤 목사가 차를 타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금방 고개를 듭니다. 옆에 있던 신자가 묻습니다. 그러자 "내 영혼을 ..."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를 묻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차타고 가다가 죽게되면 기도할 틈도 없쟎은가? 그래서 미리 기도합니다"라고 했답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꼭 주십니다 (마 7:11) * 이끄는 말 *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꼭 주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어린이도 부모님이 제일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늘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유익한 모든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고 싶어 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부모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믿는 어린이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찰리라는 어린이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찰리는 치료비도 없고 먹을 것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중에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주실 것이다." 찰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지금 우리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계십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약이나 음식을 살 돈이 없어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제가 커서 꼭 보답하겠어요." 그리고 편지 겉봉에 보내는 이는 자기의 주소를, 받는 이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고 와서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2-3일이 지난 어느날 신사 한 분이 찰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신사는 우체국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주소의 편지가 있어 뜯어보고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 찾아온 것입니다. 딱하고 기특한 소년에게 치료비와 음식을 살 돈과 찰리의 학비까지 모두 준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체국 직원인 신사분을 통해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약속대로 주셨던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또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넘치게 주고자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고 하는 기도는 응답됩니다 (마21:22) 믿음으로 의심치 아니하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어린이가 됩시다.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농부가 봄이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이 때에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릴 수는 있지만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아는 사람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햇볕을 뜨겁게 비추어 주어야 곡식의 열매가 잘 익을 수 있으며, 또 병이나 벌레가 곡식을 해롭게 하지 못하게 막아 주어야 하며, 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지 않아야 가을에 많은 곡식을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농부는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처럼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여 전도사님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대전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분이 여름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급한대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교회를 섬기는 여전도사님은 혼자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전도사님의 기도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예배당이 너무나 낡았으니 좋은 예배당을 하나 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시골 교인들의 형편이 넉넉하질 않아 새로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하나님께서 예배당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비가 그치자, 그 사업가는 나가면서 전도사님께 명함을 주면서 꼭 자기에게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후에 전도사님이 대전에 가서 그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반갑게 맞이해 주며 예배당을 새로 지을 설게도를 가져 오라고 해서 곧 그대로 했더니 예배당 지을 돈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강원도 산골 마을에는 아주 크고 좋은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어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목을 놓고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홍해도 갈라집니다 (출15:21) 애굽에서 해방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다달았습니다. 뒤에는 애굽병정이 따라 왔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손들고 기도하니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기뻣을 때가 애굽의 노에 생활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처럼 일만하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애굽에 살면서 고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을 향해서 기쁘게 찬송하며 신나게 애굽 땅을 더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애굽의 많은 군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왔습니다. 왜 따라 왔을까요? 그들을 잡아다가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한시 바삐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큰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로는 애굽군대에 쫓기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죽게 되었구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곳까지 인도해 낸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나서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홍해 바다가 육지 같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홍해를 건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빨리 뒤따라 오던 애굽 병정들은 모세가 다시 손을 드니 갈라졌던 물이 다시 합해져서 모두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돌보아 주던 서울 청계천 빈민들의 거주지인 청계천을 정부시책에 따라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들을 이끌고 경기도 화성군 이화리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바다를 흙으로 메운 간척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새로운 땅에 논을 만들고 모를 심은 것이 다 말라 죽어 버렸습니다. 다시 충청도에서 모를 사와서 심었으나 또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바다를 메꾸어 일군 땅이라 많은 소금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농민들은 큰 걱정을 했습니다. 농사가 안 되면 그곳에 희망을 걸고 살아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울 빈민촌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인솔자인 김목사님은 이번에는 강원도에 가서 모를 사와서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김목사님은 모를 세 번째 심고 난후 논뚝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불쌍한 농민들을 기억하시고 이번에는 꼭 심은 모가 죽지 않고 살아서 결실을 맺게 해주세요." 그날밤 많은 비가 내려서 논의 소금기를 모두 씻겨 내렸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를 보고 농촌 진흥청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새 땅은 3년이 지나야 농사가 되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참으로 홍해의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해서 홍해의 기적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를 받읍시다. ▶▶구하여 얻는 자가 됩시다 (마7:7-8) 예수님은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여 얻어 누리는 사람이 됩시다. 어린이 여러분, 과자를 사서 먹고 싶을 때에 어떻게 하지요? 엄마나 아빠에게 과자 사달라고 조르지요? 그러면 엄마나 아빠가 여러분을 사랑ㄴ해서 맛있는 과자를 사먹게 돈을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게로 가서 과자를 사서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어린이들의 아버지시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자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우리가 필요해서 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있는데 그것이 내게 없다고 불평을 하거나 또는 스스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은 어린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어떤 청년이 눈병이 나서 안과에 찾아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수님을 믿는 청년이었는데 큰 믿음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세히 진찰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무서운 독이 퍼져 있습니다. 만약에 두 눈을 즉시 빼지 않으면 독이 몸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두 눈을 빼는 수술을 해서 생명을 건져야 합니다." 이 청년은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고 크게 낙심을 했습니다. "내가 소경이 되다니 아이구 원통해라!"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잘 믿는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예배당으로 가서 예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친구와 함께 예배당에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밤새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눈을 고쳐주세요." 기도하면서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수술하기 위해서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진찰을 한 의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균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의 절실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그 청년은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주시겠다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본 받읍시다 (약5:17-18)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하니 3년 6개월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아니 했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믿고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꾸짖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나타낸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 아합왕이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자를 왕후로 맞이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스라엘 나라에는 바알이라는 우상 종교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바알이란 왕후 이세벨이 시집 올 때 자기의 나라에서 데리고 와서 백성에게 섬기라고 강제적으로 명령을 내린 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무서운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이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왕의 우상을 섬기는 죄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경고대로 이스라엘 나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백성들은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지 3년 6개월만에 엘리야가 나타나서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각자 기도해서 불이 내리는 신이 참 신임을 인정하기로 하여습니다. 결과는 바알 선지자 450명 모두 실패했으나 엘리야의 기도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내기한 대로 바알 선지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시 엘리야가 기도하니 이번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으로써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백성들은 더욱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우리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황해도 봉산군 당포에 100년전에 세워진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는 믿음이 독실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자식이 없으므로 교회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어느 여름, 교회 청년들과 노부부는 함께 산너머에 있는 밭에 김을 메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황급히 달려 오더니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은 큰일 났다 싶어 호미를 내던지고 달려 갔지만 할머니는 그저 그 자리에서 고요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껏 하나님이 잘 먹여 주시고 입혀 주셨는데, 이제 그 집이 불에 탄다해도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청년들이 언덕까지 다다랐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더니 그 초가에 불붙은 이엉이 돌돌 말려서 집 앞의 개울물 속으로 풍덩 내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할머니의 기도에서 온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 후 그 할머니는 기도의 할머니라고 불렸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하는 어린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꼭 들어 주십니다. '설마 이런 것도 들어 주실려고?' 하는 의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모조건 믿고 기도하세요. 여러분 기도에 합당한 응답을 반드시 해 주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눅18:7) 하나님께서는 밤낮으로 울부짖고 기도하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기도할 때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좋아서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에 불쌍한 한 과부가 하루는 그에게 찾아가 자기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판사는 과부의 부탁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자기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법관의 힘으로 원한을 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이 법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분 끝에 법관은 만약 자기가 이 과부의 원수를 갚아주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찾아와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 여기고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법관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꼭 들어 주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응답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고 마는 것입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동이라는 곳에 최충만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군에서 폐병3기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니 한 분만 계셨고 사는 것 또한 넉넉하질 않아 셋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반가웠으나 먹을 것이 없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을 얻어다 아들을 먹였습니다. 이때에 그 동네 최성래 집사님 댁에서 교회 개척예배가 시작되었고, 박기용 전도사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우연하게 이 예배에 참석하게 된 최충만은 예수를 믿기로 하고 매일 새벽마다 추운 겨울이지만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직이 목수였기 때문에 그의 재주를 살려 그의 손으로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또한 동네의 목수일을 도맡아 하여 생활문제가 해결리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그가 살 집을 짓게 했고, 또 결혼을 위해 기도하니 믿음이 좋은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또 기도하니 건강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후 최충만은 집사가 되었고, 몇 년 후에 장로가 되어서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아니 하십니다. 믿고 기도합시다.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와 최충만 집사님의 기도생활을 기억하고 응답이 될 때까지 기도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글쓴이: 밝은미소 ▶▶ 어린이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0:13-16 김찬종 목사(과천교회)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양육에 대한 말씀을 정리하며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제목은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어린아이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이라고 정했습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그는 어린이가 가정과 사회, 국가의 장래임을 부르짖으며 어린이날을 지킬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되어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이 계속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어린이날을 지킨 것은 1923년부터입니다. 1948년 우리나라의 정부가 수립된 후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입니다. 미래의 희망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기초입니다. 새싹입니다. 어린이는 약해 보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싱싱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튼튼하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가꾸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의무이며 부모님들의 의무입니다. 시대의 과제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속죄의 죽음을 담당하시려 제자들과 같이 올라가실 때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데 큰 역할을 한 제자들 사이에 서로가 크다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의 다툼이 심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기 자식들의 지위를 부탁하게 된 것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의 겸손, 정직, 순수, 깨끗함, 정결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갈 표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들이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바라고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13절, 14절, 16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입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게서 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축복하며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설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때론 욕을 들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좋은 말대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축복한 것만큼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저주는 저주한 것만큼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 너희 혀를 자갈 먹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도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민족이 광야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하나님은 그 지파의 두령들을 한 사람씩 선출하여 그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 땅을 정탐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한 땅은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기가 매우 좋은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신체조건도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탐꾼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장부들이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신세한탄부터 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넘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어본 사람들입니다. 바위에서 나온 생수를 마셔 본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원망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아무리 큰 기적을 체험했다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입니다. 원망하는 자에게는 원망할 일만 있습니다. 짜증내길 좋아하면 짜증날 일만 생깁니다. 결국 그들은 정탐한 40일, 하루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년 간을 더 광야에서 살게 되었고 출애굽했던 자들은 광야에서 재앙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또 다른 사건하나가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잡아서 재판하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석방시켜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군중들에게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이 피 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유대군중들의 대답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서대장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민족이 되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세 계 제 2차대전 때는 600만이 독일 나치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대인이기에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돌아가게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자식에게 축복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긍정적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복 받기를 좋아하던 야곱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애굽에 갔을 때 그의 아들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를 축복 기도했습니다. 복은 축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이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받아들이면 그 집것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축복은 빈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읽게 해야 합니다. 교회출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언젠가 비행기로 부산을 다녀올 때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까지는 이륙 후 약 50분 거리입니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때쯤 옆자리에 젊은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아기가 울기 시작하더니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이리 안았다가 저리 안았다가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기를 받았습니다. 꼭 품어 안고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두 번쯤 불렀을 때 아기가 조용해지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 아기의 부모들도 교회에 다니는데 찬송소리에 아기가 잠이 드니까 신기하다고 하였습니다. 신기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하여진 것이지요. 자기들도 이제부터는 아기에게 찬송을 불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찬송하십시오. 같이 성경을 읽으십시오. 영적으로 통합니다. 같이 교회에 나오십시오. 부모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아이들도 그대로 따라합니다. 술을 먹습니다. 담배를 피웁니다. 그러나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 그대로 따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그대로 합니다. 주일 잘 지키면 그것도 따라서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하면 그대로 따라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훌륭한 자식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님이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는 모세입니다. 그 아들 뒤에는 어머니 요게벳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의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사회입니다. 이 넷 중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비록 형편상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릴 때 인격 훈련이 바로 된 사람은 유익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출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안가는 것은 큰 일처럼 여기고 교회 가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피아노 레슨이나 과외 빠지면 큰일이고 교회는 갔는지 안 갔는지 헌금은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챙기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기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해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자식이건 남의 자식이건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믿음의 훈련을 시킵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무한합니다. 30년 후의 과천교회는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장성해서 이 교회를 봉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바르게 물려주는 선조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셋째, 사회성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독선적이면 안됩니다.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을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 맹목적이면 안됩니다. 내 자식이 하는 일이 전부 다 좋으면 안됩니다. 잘못했을 때 매를 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기지 못했을 때는 승복할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Fair Play입니다. 지금은 아기들을 적게 낳기 때문에 자식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잘못 교육되기 쉽습니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아이들로 자라기 쉽습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줄 모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아들이 쓴 청구서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1. 이번 주 아빠 구두 닦아 드린 것. 5,000원 2. 엄마 심부름 세 번 한 것. 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것. 2,000원 합계 10,000원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그 밑에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10,000원과 함께 식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1. 너를 몇 달동안 내 뱃속에 넣고 다닌 것. 2. 너를 그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돈. 3. 네가 아플 때 밤새 울며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간호한 것.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공짜이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 편지를 읽고서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 위의 것은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돌려드립니다. 엄마의 아들.? 지금 아이들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봉사할 줄 모릅니다. 정리할 줄 모릅니다. 궂은 일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없습니다. 학교 청소도 엄마가 가서 해주어야 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빗자루를 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걸레를 손에 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란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 놀림을 당하며 자라난 아이는 수줍음을 타게 된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관용 속에 자란 아이는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된다.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란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된다. 안정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된다. 기도로 자란 아이는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된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를 가르쳐야 합니다. 봉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인공, 이 세계의 주인공으로 양육되는 우리의 자손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C3TV 설교방송 2003년 5월 4일 ▶▶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태복음18:1-14 석원태 목사(경향교회) 누군가 18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역사의 원년을 이루는 그의 삶 속에서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인의 표본으로 교훈하셨습니다(마 18:2, 막 9:36). Ⅰ. 예수의 어린이관에 대한 성경을 봅니다(마 18:1-5). 마태복음 18장 2?5절 중에서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에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 35?37절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3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어린이관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어린이는 한편 구석에 있어야만 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른들 구석이나 가족들의 구석이나 사회나 국가의 한 구석이나 교회의 구석에 있어야 될 존재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들 한가운데 세우셨을까? 우리는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사실을 능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1) 어린이 자체의 존재적 중요성을 일깨워 줌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예수님 제자들이나 어른들은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업신여겼습니다. 사실상 저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여자들과 함께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어린이는 아직까지 미숙한 존재로 가운데가 아닌 구석이나 밖에 있어야 될 자들로 취급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실로 놀라운 예수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존재적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2) 어린이는 마땅히 영접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서 언제나 그 중심으로, 한가운데로 영접 곧 환영받아야 될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어린이를 영접함이 곧 예수를 영접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영접할 정도가 아니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가운데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어린이는 천국인의 표본이 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게 있는 특성을 강조함으로 중생인(거듭남)의 품성을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① 돌이킴, 곧 회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잘못에 대한 자기 변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②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③ 남을 섬기는 받듦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④ 부모를 향한 신뢰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⑤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⑥ 주어진 행복에 대한 만족과 감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⑦ 미래를 향한 소망심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3복음서에서는 어린이에 대하여 말할 때,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한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이 아닌가! 4) 어린이는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① 영접하였습니다. ② 자기에게 나옴을 용납하였습니다. ③ 그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④ 저희 위에 안수해주셨습니다. ⑤ 그리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마땅히 가운데 세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 아닌가! 예수 사랑과 축복의 대상들은 언제나 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입니다. 5) 어린이는 하늘에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 18:10). Ⅱ. 교회의 한가운데 어린이를 세워야 됩니다(마 18:6-14). 예수님의 삶은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에 대한 교훈을 행하신 그 배경에는 제자들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쟁론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게 된 것입니다(막 9:33?34). 저들은 또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라고 주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크냐고 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제일 큰 자?라고 대답하시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고 천국에 대한 교훈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에 와서 교회로 하여금 어린이를 교회 가운데 세워야 한다는 책임 있는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우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1)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실족케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8:6?9).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소자?는 앞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지목할 뿐만 아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에게도 해당됩니다. ?실족?이란 말은 ?넘어지게 하다?(마 16:23), 혹은 ?오해하게 하다? (마 17:27)라는 뜻으로 유혹에 빠뜨려 그 믿음을 넘어뜨리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함으로,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의 받을 앙화(殃禍)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자를 실족케 하는 손이나 발이나 눈은 예외 없이 지옥 불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마 18:7?9). 2)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멸시하지 말라, 관심 밖의 존재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있는 데도 없는 것 같이, 귀한 데도 천한 것 같이 여기지 말라고 한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그 소자들은 이미 하늘에서 파송받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국가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단 10:13, 12:1). 교회를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1:20). 혹은 개인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12:15). 본문에는 어린이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마치 신복이 왕을 가까이 배알하듯이(왕하 10:8), 하나님 앞에서 저 어린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8:10). 3) 예수 믿는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지 않고 다 찾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3?14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심정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그것을 100마리의 양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예수의 목자적 가슴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소자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가슴은 ① 개인적인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리 양, 한 소자입니다. ② 참으시는 인내의 사랑입니다.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는 인내입니다. ③ 궁극적으로 찾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찾고 마는 것입니다. ④ 그것은 기뻐하는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궁극적 구원의 사랑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 교회가 어린이(小子)를 한가운데 세워야 할 책임있는 사명입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움에 있어 그 어린 소자 하나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는 찾도록 찾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아니 감사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라고 하였습니다. 천국복음의 비밀이 어린아이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 현장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를 찬양하는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마 21:16)라고 격찬하며 만족하셨습니다. 천국은 바로 아이들의 세계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였습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어린아이에게 끌려 다니는 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6). 젖 먹는 어린아이와 젖 뗀 어린 아이들이 맹수들과 함께 사는 평화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8). 말하자면 갓난아이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영적 중생인들의 세계를 말합니다(벧전 2:2, 벧전 1:2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5:17). 이것은 지상의 전투 교회와 내세의 승리 교회(천국)의 특색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세계입니다. ※ 어린이는 하나님의 날 한가운데서야 될 존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시민성을 교훈 하였습니다. 중생 받은 영적 어린이는 하나님나라에서 중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접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회개와 겸손과 신뢰심과 순종과 감사와 소망의 품성을 지닌 천국인의 표본이 됩니다. 저들이야말로 주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교훈 하였습니다. ※ 교회는 모름지기 이러한 어린아이들을 한가운데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을 한가운데 세우기 위하여 하나라도 실족케 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그 하나를 잃으면 찾도록 찾아내고 마는 예수님의 목자적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인의 품성을 교훈 하셨습니다. 지적으로, 체력적으로,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도록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야말로 가정과 교회와 역사의 중심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중심에는 영적으로 거듭난 아이, 곧 갓난아이, 젖 먹는 아이, 젖 뗀 아이,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저들이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회된 특색과 미래적인 중심의 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받은 새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교회의 한가운데, 역사의 한가운데 세우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영적 어린아이는 교회에서 가장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이 집의 가운데는 어린아이들이 서 있어야 합니다. - 아 멘 - 출처 : C3TV 설교방송 2003년 5월 4일 ▶▶ 어린이 마가복음10:13-16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오늘은 5월 첫 주 성찬주일입니다. 또 오늘은 2003년도 예수님 부활주일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더 귀한 것은 오늘은 2003년도 어린이주일입니다. 이제 내일은 5월 5일, 2003년도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 어린이는 부모들에게 큰 기쁨, 또 즐거움이요, 행복이요, 보람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3살 때까지 그 삶이 부모에게 일평생 할 효는 다 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기쁨입니다. 또 어린이는 나라의 희망이요, 또 가정의 기둥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화를 낸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잘 내지 아니하시는 분인데, 예수님이 화를 내셨습니다. 언제 화를 내셨느냐? 마가복음 10장 13절로 14절 상반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어린 아이를 만져주기를 바라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이 좀 피곤하시다고, 힘드시다고 그들을 꾸짖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되게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신할 때도 화를 내지 아니하셨습니다(막 10:26-52). 예수님은 예수님을 찾는 소경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을 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화를 내지 아니하셨습니다(막 10:13-14). 또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죽이자고 사람들이 선동할 때도 화내지 아니하셨습니다(요 8:1-11). 그런데 예수님은 화를 내신 것입니다. 언제? 어린 아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을 때 그것을 보고 분히 여겼다, 그랬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가 제자들처럼 어린이가 예수께 가는 것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린이도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린 아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4절 하반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2003년도 어린이주일을 맞이해서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오늘 귀한 날, 이 시간 성경적인 어린이 양육법에 대해 알아봄으로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 가정의 어린이뿐이 아니라, 예수 안 믿는 가정의 어린 아이도, 우리가 사는 인천의 어린 아이뿐 아니라 이 대한민국 어린 아이, 또 대한민국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저 북한 땅 어린 아이, 이라크 땅 어린 아이, 전 세계의 모든 족속, 모든 나라의 어린 아이가 다 예수께로 가게 해주고, 그래서 그들이 모두가 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예수 아이로 키워주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사랑하자 첫째로, 어린이를 ?사랑하자.?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자.? 그렇습니다. 어린이는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또 어린이는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어린 아이에게 먹는 것은 젖뿐이 아닙니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사랑,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사랑 없는 젖은 어린 아이에게 배탈이 납니다. 몸이 병듭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먹이는 엄마의 젖은 그 어린 아기에게 영양입니다. 힘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럴 겁니다. ?아이고, 목사님, 나는 우리 자녀 사랑하는데요.? 네, 사랑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랑할 줄을 모른다, 그 말입니다. 과잉보호가 사랑인 줄 압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물질을 많이 주는 것이 사랑이냐?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과잉보호만 사랑이냐? 아니다, 그 말입니다. 물질만 해도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엄마의 사랑이 뭘까? 부모의 사랑이 뭘까? 부모의 손길, 손길. 어린 아이에게는 뭐가 필요합니까? 엄마의 손이 자주 가야 합니다. 손이 자주 가야 합니다. 이 손은 사랑입니다. 손은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손은 참 아주 어떻게 보면 신기한 것입니다. 고무장갑 끼고 만든 반찬보다 고무장갑 안 끼고 만든 반찬이 맛있거든요. 왜 그렇습니까? 그 손에는 뭐가 있습니까? 사랑 맛, 있습니다. 사랑 맛, 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엄마의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녀의 이름을 부르고, 함께 놀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돈 벌어서 자녀들 학원비 내준다는 핑계로, 여러 가지 핑계로, 자녀 이름 불러주지 못하고, 함께 놀아주지 못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면,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어린이들을 부르고, 가까이 하고, 안아줘야 할 것입니다. 바쁜 엄마들, 바쁜 아빠들, 정말로 하루에 몇 번이나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 주냐, 그 말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가까이 해 주냐, 그 말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안아 주냐,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바쁘세요?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메시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6절 상반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그랬습니다. 또 마가복음 10장 16절 상반절에 보니까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랬습니다. 또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할 때, 그 자녀에게 물질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과잉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줘야 한다, 그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무시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그, 말이 잘 안 통하는 떠듬떠듬하는 말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은 모두가 다 명령입니다. 절대자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받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 함께 기도하자?, ? 우리 함께 기도하자?, ?우리 함께 감사하자.? 효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효도하라?, ? 부모 공경하라?, 그 말만이 아니라, ?우리 함께 효도하자?, ? 우리 함께 부모와 어른들을 공경하자?, ?우리 함께 해보자.? 열 번 하라는 것보다 한번 함께 하자 그럴 때, 어린 아이들이, 학생들이 더 많이 따라오고 실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라고 해서 업신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보세요. 현대인의 성경, 번역성경을 보면 마태복음 18장 10절 상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런 어린 아이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희는 이런 어린 아이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업신여기는 게 아니다. 명령만 하는 게 아니다. 인격적으로 대해줘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오병이어를 가져온 소년을 작다고 무시하지 아니했습니다. 먹여야 할 사람들은 남자만 5천 명, 부녀자까지 수만 명입니다. 그런데 고작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덩어리를 가져온 소년을 무시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받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감사하셨습니다.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어린 소년이 가지고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어리, 그 많은 사람, 먹을 사람에 비교하면 아주 작지만 그것을 작다고 무시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께 축사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가 늙고 병이 들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메시지 하나만 들려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눈을 감은 채 말했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테네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에게 크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그 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 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으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고귀한 교훈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한 다고요? 사랑해야 합니다.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둘째, 가르치자 두 번째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어린이를 가르치자?, ?가르치자.?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성경 66권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제일 핵심적인 것 6가지가 뭡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라.?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또 두 번째는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효를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가정을 사랑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천국 나라가 있고 조국 나라가 있습니다. 자기 조국 나라,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사랑할 것을, 애국할 것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연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자연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사람을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할 것을 가르쳐줘야 돼요. 그 뿐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과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라. 봉사를 가르쳐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죄악 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지를 너무나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남북한 다 합쳐봐야 그 면적이 22만 평방 km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한에 4천 6백만 국민이 삽니다. 북한에 2천 3백만 동포가 삽니다. 미국이나, 뭐 중국이나, 저 독일이나 큰 나라에 비교하면, 그 면적이나 인구가 너무나 작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음란, 자살, 도박 등 인터넷 유해 사이트 수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 두 번째로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음란 메일은 무작위로 발송되어서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악된 것을 끊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이냐? 오직 예수 믿고, 성령 받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그 길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아무리 걱정한다고 되겠습니까? 그게 되지 않아요. 어떻게 되느냐? 예수를 믿게 하고, 성령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말씀대로 살 것을 가르쳐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들을 물리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힘으로 안 되고, 능으로 안 되되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면, 누구처럼? 요셉처럼 유혹이 와도 유혹을 뿌리치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치면 인생을 실패 당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함께 이 세상을 물리치며 능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착각하는 것입니다. 벌써 엄마가, 산모가 아기를 잉태했을 때부터 태교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려주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제일 좋은 교육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젖 먹을 때, 엄마 품에 안고 젖을 먹으면서 자장가 불러주는 대신에 찬송가를 불러주고, 그리고 흥얼대기 전에 기도하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서양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빌어먹게 하려면 재산을 남겨주고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신앙과 신념을 넣어 주라.? 자녀는 부모의 말로 자라는 것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새벽기도, 철야예배, 주일예배에 틀림없이 주일성수 하는 것으로, 그 뿐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선교헌금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배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전도도 가르치고, 기도도 가르치고, 예배드리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중에 무엇도 가르쳐야 합니까? 헌금을 바르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를 꼭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배운 자녀들은 주일성수를 잘 합니다. 새벽기도 잘 합니다. 철야기도 잘 합니다. 가정예배 드립니다. 구역예배 드립니다. 틀림없이 헌금도 합니다. 십일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기도하고, 말씀 읽고, 예배드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본 자녀는 반드시 신앙으로 자랍니다. 틀림없이 부모 속 썩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성경적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성 어거스틴은, 20대까지는 허랑방탕 했습니다.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모니카가 기도했습니다. 그 어거스틴이 자기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 어머니는 눈물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내 아들 어거스틴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내 아들 어거스틴을 불쌍히 보아주옵소서.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해주시옵소서.? 어머니 그 모니카가 울며 기도합니다. 통회하며 기도합니다. 가슴을 치며 기도를 합니다. 그 어거스틴이 본 어머니는 항상 기도합니다. 결정적일 때, 그가 회심할 때, 무엇을 보고 회심했습니까? 어머니의 기도한 모습을 보고 ?가자. 우리 어머니가 나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내가 이렇게 살 게 아니다. 나 이제 가자.? 그리고 회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가정의 품으로,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서 결국은 기독교를 세계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많은 저서와 많은 기록으로, 그래서 그 한 일이 너무 귀하니까 어거스틴을 말할 때, 그냥 ?어거스틴? 그러지 않습니다. ? 성 어거스틴?, 성자의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의 한 일을 맡았던 칼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겨야만 자기 자녀들을 매우 뛰어나게 기르게 된다? 그랬습니다. 또 어느 교육자, 심리학자의 말입니다. ?문제 있는 자녀는 없다. 다만 문제 있는 부모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문제 있는 자녀가 많다. 문제 있는 어린 아이가 많다. 청소년이 문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합니다. ?문제 있는 자녀는 없다. 문제 있는 청소년은 없다. 다만 문제 있는 부모만 있을 뿐이다.? 부모가 문제일 때, 자녀가 문제인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문제일 때, 청소년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본을 보이며 가르치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셋째, 축복하자 세 번째, 어린이를 ?축복하자.?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 어린이를 축복하자?, ?어린이를 축복하자.? 그렇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손을 들어 축복하신 예는 딱 두 군데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어린이를 축복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6절에 보니까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나는 성경을 그대로 읽은 것입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우리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안았다, 그랬습니다. 그들 위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안수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자녀들을 안아줘야 합니다. 그들 머리에 손을 얹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많이 자녀를 안아주셨습니까? 얼마나 많이 자녀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 해주셨습니까? 오늘 깊이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바쁘잖아요. 직장이 바쁘잖아요. 사업이 바쁘잖아요. 돈 벌기 바쁘잖아요.? 엄마들도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그럴 시간 없어요. 쟤들 학원비 대려고 파출부 가야 돼요.? ?나도 공장에 가서 일해요. 너무 바빠요.? ?나도 식당에 가서 일해요. 너무 피곤해요.? 그러나 여러분, 그것 다 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냐? 자녀를 안아주는 것입니다. 손을 얹어주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자녀의 미래를 항상 축복했습니다. 보세요. 히브리서 11장 20절로 2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아브라함은 이삭을 축복했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지파장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세워졌느냐? 그 부모가 자녀들에게 축복함으로 말미암아. 선민국가 이스라엘이 세워진 것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부모가 손을 얹고 축복기도 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렇습니다. 어떤 대리자이냐? 축복권 대리자, 말씀권 대리자, 훈육권 대리자, 신앙전수권 대리자입니다. 축복권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말씀권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권세입니다. 훈육권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하는 권세인 것입니다. 또 신앙전수권이 뭡니까? 아버지의 경건한 신앙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는 권세, 이것이 신앙전수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노아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효자 셈과 야벳을 노아가 축복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낸 함을 노아가 저주했습니다.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장자 축복 기도를 가로챈 야곱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이 손을 얹고 기도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많이 받고, 자녀들을 위해서 더 많이 축복을 빌어주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하라? 그래요.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했다면, 공부 못 할 놈 한 놈도 없을 거다. 아마. 그런데 여러분,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하라? 그래도 공부가 되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이 뭐냐? 하루에 한번이라도 그 자녀의 머리에 엄마가, 아빠가 손을 얹고 축복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도 있고, 건강도 있고, 순종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는 믿음의 아들로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딸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부모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하나님이 키우실 때, 더 잘 성장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의 사랑의 말과 부모의 사랑의 눈물과 부모의 사랑의 기도로 그것 먹고, 그 사랑 먹고, 사랑의 말, 사랑의 눈물, 사랑의 기도 먹고 자녀가 잘 성장하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2003년도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부모의 축복으로 미래를 만들어 간다, 그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거목으로, 하나님 나라의 재목감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으로 키웁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을 아시고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모든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복 주시는 대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끼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잘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출처 : C3TV 설교방송 2003년 5월 4일

    ▒ 어린이 설교 70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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