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신앙서적의 요약

하나님의 임재에 굶주린 예배자

미션(cmc) 2010. 6. 19. 09:18

1부 하나님의 임재에 굶주린 예배자

1장 하나님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한다.

♦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만일 당신이 당신을 어떤 초월한 어떤 것, 오늘날 교회에서 들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소식을 듣기를 갈망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굶주린 예배자이다.

‘그들을 대해서 아는 것’과 그들을 아는 것’은 다르다.  교회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단지 하나님에 관한 것들에만 관심을 집중해왔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테크닉이나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굶주린 예배자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과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의 차이다.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거룩한 불만

하나님은 기꺼이 헌신의 반지를 낄 신부를 찾고 계신다. 만일 하나님께 헌신할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굶주린 예배자이다.

 우리는 깊은 헌신을 배제한 채 값싼 흥분만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에 진정한 부흥이 도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갖고 계신다.

♦거룩한 강박관념

 우리는 현재의 교회 음악에 만족한다.  현재의 모임에 만족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룩한 불만’을 품을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쫓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을 쫓는 추적자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하나님을 쫓는 추적자는 불가능한 것을 추적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장 형식적인 껍데기 예배를 온 몸으로 거부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굶주림

굶주림이란 감격적인 찬양과 예배를 향한 갈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굶주림, 바로 그것이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임재를 좇고 있는가?

 당신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포함하여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흘러나와야 마땅하다.

그러나 신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생각에 몰입한 나머지 하나님을 망각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요즈음은 좋은 것이 최선의 것을 가로막는 원수가 되어 버렸다. 지금 이 순간, ‘성령으로 당신 심령을 부수라.’라고 도전하고 싶다. 바야흐로 지금은 당신 삶을 거룩하게 될 때이다.

♦위선적인 예의범절을 버리라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만든 모든 예의범절을 망각할 만큼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갈망할 필요가 있다..

의식적인 예배와 은혜를 갈망하는 예배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전자가 활자로 인쇄된 순서에 의해 진행되는 반면 후자는 심령에 각인된 갈망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껍데기 예의범절을 망각한’ 사람들치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무례함 그 자체를 위한 무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필사적인 갈망에서 나온 무례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과 은혜의 방향을 우리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굶주림뿐이다.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얼굴!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곳은 바로 그 곳이다.


3장 거룩한 굶주림으로 하나님 임재의 빵을 사모한다.

♦‘빵’을 얻기 위해서라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임재하셨지만 충만하게 임재하지 않으셨다는데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느낌을 받지 못한 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삶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감지하도록 우리ㅡ이 감각을 회복시킨다.

♦위험 감수의 결단

 이제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방법을 취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우리 심령에 소유하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굶주린 자들이 전하는 소식

 빵집에 빵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굶주린 자들이 듣는다. 그러면 그 소식은 발전소에서 송출하는 전력처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퍼져 나간다.

♦하나님 임재의 신선한 빵

 우리는 교만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과거에 계셨던 곳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아들의 분명하고도 명백한 영광을 부인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 임재의 신선한 빵을 맛볼 것이요. 그와 더불어 골판지로 만든 모든 잘못된 신학의 집들은 붕괴될 것이다.

 어떤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굶주린 예배자이다.



2부 하나님의 사랑에 굶주린 예배자

4장 은사가 아니라 은사 주시는 하나님을 갈구한다.

♦오직 하나님만 원합니다.

 모세는 이적이나 은사도 갈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원했다. 사실 하나님 자신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사요 축복이다.

♦‘은사’가 아니라 ‘은사 주시는 분’을 갈구한다.

 우리는 은사가 아니라 은사주시는 분을 갈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갈구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가락을 보는 것, 혹은 구름 속에서 말씀하는 음성을 듣는 것 혹은 불타는 떨기나무 이상의 어떤 것을 원했다.

♦상한 심령과 회개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면 은전이나 혜택을 갈구하기를 중단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축복되신에 상한 심령과 회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마음(하나님 손이 아니라)에 합한 다윗의 교회를 원하신다(행13:22)


5장 축복보다도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열망한다.

♦휘장 앞에서 춤추다가 휘장 안으로

하나님께서는 서늘한 저녁에 백성들과 나란히 앉아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과 내게 바라시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하소서. 설령 제가 죽는다 하더라도 제게 말씀하옵소서! 라고 간청해야 한다.

♦성장할 것인가, 교회를 다니기만 할 것인가?
하나님은 굶주린 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 굶주린다. 는 말은 지금까지의 삶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없었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모든 삶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길 때,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아오신다.



3부 하나님의 영광에 굶주린 예배자

6장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영광의 하나님 경배하기를 소원한다.

♦하나님 임재로 향하는 지름길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것들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한다.

거룩한 방지 턱에 부딪혔을 때

 참된 회개란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외심을 불어 일으키는, 생명을 바쳐야 하는, 감히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요, 대가를 지불하기 어려울 만큼 값비싼 희생을 요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에 굶주린 예배자이다.


7장 옥합을 깨트리는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누구를 즐겁게 하기 위한 예배인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말이나 행위를 초월한 심령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와 경배이다.

♦옥합에서 희생의 찬양과 예배를 꺼내라

만약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원한다면, 옥합을 들고 마리아를 따라 주님의 발자치로 나아가라. 옥합에서 소중한 희생의 찬양과 예배를 꺼내라. 당신은 소중한 것들을 너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바치기에 합당한 분이 여기 계신다. 더 이상 간직하지 말라. 주님께 드려라. 주님을 예배하라.



4부 하나님의 부흥에 굶주린 예배자

8장 하나님의 불길이 떨어지는 부흥에 목말라한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흥을 일으키려고 정말 오랫동안 애써왔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부흥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보라

부흥이란 구원받는 사람들이 교회 속에서 계속 순환하며 교회에 뜨겁게 지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 곧 불어올 진정한 부흥의 파동은 교회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 단 한 번도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사람들을 빵집으로 데려올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인간의 빈 곳을 채우기를 원하신다. 이제 후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어처구니없는 장소와 터무니없는 사람들로부터  발산 될 것이요, 그곳에서 흘러 가장 비어 있는 사람들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을 것이다.


9장 자신이 온전히 깨어지는 영적 부흥에 헌신한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치지 말라

 당신이 오직 회개하는 마음으로 상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이 찾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결함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죽은 자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

♦하나님의 향기를 지닌 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목적은 하나님 자녀들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함이다.


10장 돌발적인 하나님의 개입을 오히려 환영한다.

♦하나님이 ‘상자(궤)’에서 자주 나오시게 하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는 하나님 임재의 풍성한 빵을 분배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오래 전에 야고보 사도가 지적한 대로, 구하지 않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약4:2)

현재 우리가 소유한 것과 우리의 지위와 우리가 도달한 지점 등이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초라하고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예배당 건물 안에 신앙을 잘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도시와 나라의 경계를 넘어 신앙을 확장하라고 촉구하고 계신다.

우리가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비극적인 실상은, 삶 속에 있는 난삽한 것들을 정결하게 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그분의 손길에 맡기면, 결국 그 분께서 우리를 능력과 생명과 영예를 지닌 그릇으로 만드실 것이다.

♦전자레인지에서 데운 부흥

 지금은 교회가 예수님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포착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굶주림으로 육신의 죽음을 넘어 하나님 영광의 빛과 생명으로 나아갈 때이다. 이것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 교회의 궁극적인 숙명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우리가 끈덕지게 밀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속적인 영광의 거주권 안에서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로 흠뻑 젖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임재의 향내를 우리 몸에 지니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