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케내스 해긴 지음/김진호 옮김
믿음의말씀사/2001년 7월/234쪽/8,500원
▣ 저 자 케내스 해긴
17세 때 선천성 기형 심장병과 불치의 혈액에 관계된 질병을 앓았으나 치유를 받았다. 그 이후로 60여 년 넘게 2004년 현재까지 세계적인 사역을 해오고 있다.
▣ 역 자 김진호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및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숭실대학교 교목(전도사) 역임했다. 2004년 현재 미국 뉴욕에서 ‘Bridge-Builders’(다리를 놓는 사람)라는 선교 단체를 설립했다. 지은 책으로 『숨겨진 보물 예배』『예배와 삶』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믿음은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서 시작한다고 보고 있으며, 믿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해주고 있는 책. 성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승리와 실패의 차이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책에 담긴 스물 여섯 가지 가르침은 당신의 삶에서 활용할 수 있는 믿음의 역사, 즉 역사하는 믿음을 얻도록 도와 줄 것이다.
▣ 차 례
1.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될까요?
2. 믿음이란 무엇인가?
3. 믿음과 소망
4. 믿음은 응답을 바라봅니다.
5. 행동하는 믿음(1부)
6. 행동하는 믿음(2부)
7. 믿음과 느낌
8. 심령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부)
9. 심령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부)
10. 고백 : 믿음을 여는 열쇠
11. 고백은 끊어졌던 친교를 회복시킵니다
12. 하나님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을 세워 줍니다
13.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의 특권인 고백
14. 바른 고백과 잘못된 고백
15. 축복을 위한 믿음
16.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1부)
17.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2부)
18.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3부)
19.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4부)
20. 믿음의 여섯 가지 적
21. 하나님과 같은 믿음
22. 믿음과 일치하는 행동들
23.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표를 쓰는 법
24. 의심,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도둑질하는 자
25. 당신은 당신이 말한 것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26. 인간의 영을 어떻게 훈련하는가?
믿음의 계단
케내스 해긴 지음/김진호 옮김
믿음의말씀사/2001년 7월/234쪽/8,500원
제1과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될까요?
핵심 진리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없는데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도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생산하는 것을 우리 권한으로 두셨다면 우리가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모자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탓한다면 그것은 무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비하셨습니다.
제2과 믿음이란 무엇인가?
핵심 진리 : 믿음은 바라는 것(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붙잡아서 실존의 영역으로 가져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신자든 불신자든 타고난(natural) 일반적인(human)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초자연적인 믿음, 즉 우리의 육체적 감각이 말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으로 믿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바라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붙잡아서 실존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장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그 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마귀가 교회에 믿음 대신에, 정말 믿음 같아 보이고 믿음 같이 들려서 극소수의 사람만이 구별해 낼 수 있는, ‘지적 동의(mental assent)'라는 대용품을 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고 또 그 말씀이 진리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오로지 지적으로만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은 심령에 있는 믿음뿐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질 때 도마는 “내가 그를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수년 전 나는 심장병을 치유 받은 후 심장병 증상이 다시 몰려오곤 할 때마다 심한 통증으로 고통받으며 믿음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면 주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기시키시곤 했습니다.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서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과 함께 병 고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반복할 때 내 몸의 모든 증상들은 떠났습니다. 우리는 실제적인 고통이나 증상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고통과 증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자신과 확신을 세워줍니다.
제3과 믿음과 소망
핵심 진리 :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긍정적인 믿음 즉, 현재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은 미래 시제이며 항상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재입니다. 믿음은 일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병으로 고통스럽다면 당신은 병 고침을 미래에 원하지 않고 지금 당장 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성령 세례나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막연한 미래가 아닌 지금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육체적 힘을 가지게 되길 소망할 때, 믿음은 “주님은 내 생명의 능력입니다”(시 27:1)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말합니다. 당신이 “믿는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만일 당신이 그것을 미래에 놓고 있다면 당신은 믿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하려면 시제를 바른 시제, 즉 현재 시제로 고쳐야만 합니다.
제대로 사용되어지는 소망은 가장 축복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다시 오시리라는 것이나 천국에 대한 소망,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들을 천국에서 다시 볼 소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 시제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열망하고 있는 축복된 소망으로서, 우리가 믿든 안 믿든 일어납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케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치유와 승리를 가져오는 것도 소망이 아니고 바로 믿음입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믿음, 즉 현재 시제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4과 믿음은 응답을 바라봅니다
핵심 진리 :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바라봄으로 믿음은 응답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이미 성취된 응답을 바라봅니다. 잠언 4장 20~22절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여 나의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내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건강’이라고 해석된 히브리어는 ‘약’이라는 단어로도 쓰입니다. 약은 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바른 방법으로 복용되어야만 하는데, 그 방법 중의 하나는 “내 말이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실패하는 것을 바라봄으로 실패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바라보십시오.
또한 이미 응답 받았다는 것을 마음에 두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얻기 전에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속의 많은 일들이 볼 수는 없지만 믿는 것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바르게 믿도록 하기 위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돕는 자이십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믿는 도리’라는 헬라어는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 곳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를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계시며, 우리는 이곳에서 ‘똑같은 것을 고백하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당신의 심령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그렇게 하라는 대목은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당신 심령 속에만 있는 믿음은 당신의 몸에 병 고침을 주지 못하고 성령 충만함도 줄 수 없으며 기도의 응답도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심령 속에 있는 믿음이 당신의 입술로 내보내져 고백될 때에야 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5과 행동하는 믿음(1부)
핵심 진리 : 큰 이적들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한 사람들에 의해 행하여졌습니다.
신약과 구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는지 많은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큰 기적들은 단순히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한 겸손한 사람들에 의해 행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성벽이 아직 꼼짝도 않고 서 있을 때 그들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성벽이 무너질 때 소리지르는 것은 믿음이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은 먼저 “크게 소리질러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벽들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믿고 행동한다면 그 어떤 일은 일어납니다.
신약에서도 중풍에 걸려서 일어날 수 없는 병자를 지붕을 뚫고 침상 채 주님 앞으로 달아내린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셨고, 그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병 고침은 그 결과로 왔습니다. 믿음에 대한 최고의 정의 중의 하나는 만일 당신이 믿는다면 그 믿음을 행동에 옮긴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당신은 그 말씀이 진짜인 것 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제6과 행동하는 믿음(2부)
핵심 진리 : 행동하는 믿음의 공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선물을 받을 때와 똑같이 성령 세례 받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연구해 보면, 오순절 날 이후 사도들은 언제나 신자들에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 성령의 선물이 있다. 네가 거듭났으면 지금 너는 기다릴 필요도 없이 성령을 받을 준비가 이미 다 된 거야.” 우리는 말씀 안에 이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영이 사는 집입니다. 당신이 거듭나는 순간 성령님께서 당신의 영 속에 사시기 위해 들어오시므로 당신의 몸은 그 때부터 성령이 사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새로운 탄생에 뒤이어 나타나는 경험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정신적 체험이나 육체적 체험이 아니고 영적 체험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God is a spirit)…"(요 4:24)라고 말씀하셨을 때, 단지 ‘영(spirit)'이 아니라 ’한 영(a spirit)'임을 주목하십시오. 그 분은 신성한 인격체이신 영적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리의 영을 통해서 접촉하며, 이것이 성령 세례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점입니다.
성령 세례에서 단 하나의 육체적 부분은 방언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발음(utterance)을 주시면 당신이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에게 다른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은 바로 당신 안에 계신 성령님이며 당신은 성령님께 응답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성령님께서 발음을 주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적 감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실패하나, 당신은 먼저 믿고 성령님을 받고 나서 성령을 받은 결과로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4). 이 성경 구절에서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충만함을 받은 후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성령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다른 어느 것을 받을 때와 똑같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행동하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7과 믿음과 느낌
핵심 진리 : 믿음을 위한 요소
① 당신이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위한 약속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찾으십시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③ 말씀과 반대되는 환경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④ 응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느낌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만약 하나님이 그것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진리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것, 즉 영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병 고침도, 하나님의 병 고침은 영적인 치유입니다. 의학은 물리적인 것을 통해 치유하고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는 마음을 통하여 치유하지만, 하나님은 치유하실 때 영을 통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새로운 탄생 즉, 영이 거듭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받습니다. 당신이 거듭날 때, 거듭난 것은 당신의 몸이 아닌, 영의 재탄생입니다. 육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이 거듭난 속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영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즉시 말할 수 없지만, 만일 그 사람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빛 안에서 행한다면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은 명백해질 것입니다.
제8과 심령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부)
핵심 진리: 사람은 영이며,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살고 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 “사람이 마음(heart : 심령)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할 때나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령을 말하실 때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중심인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사람의 영(spirit of man)'이란 말과 ’사람의 심령(heart of man)'이란 말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도록 사용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겉사람은 우리의 몸이고, 속사람은 우리의 영입니다. 그리고 그 영은 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이라고 말할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사람, 즉 거듭난 속사람이며, 몸으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몸을 복종케 합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고 그의 영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지만,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무엇인가가 되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자신으로부터 영을 취해서 사람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영이 들어온 후에 비로소 사람은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혼은 지적인 능력과 감정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의 혼은 육체가 죽을 때 함께 죽으나 인간의 혼은 육체에 그 기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 기반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죽어도 혼은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면 그들이 죽을 때 육체만 떠났을 뿐 몸 안에 있을 때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9과 심령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부)
핵심 진리 : 온 심령을 다하여 믿는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이나 육체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mind)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영(spirit)으로 또는 심령(heart)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성경 구절은 열두 번을 읽어도 참 뜻을 모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때가 바로 말씀을 우리의 심령으로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를 우리의 심령으로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열리고 또 가리웠던 것이 벗어지도록 하나님의 영에게 의지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확신과 자신감으로 차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만드는 양식입니다. 우리의 영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걷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말씀을 모든 것보다 가장 위에 놓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온 마음(심령)을 다해 하나님을 믿을 때 고요와 평안이 오게 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는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영은 용기를 얻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논리나 인간의 지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습니다. 아마 인간의 논리나 육체적 증거와 반대될 수도 있습니다.
리언 오맨즈 박사는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그들의 발 밑에 하나님 말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 위로 발을 내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패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불일 듯 일어나시기에 우리가 정복당할 수 없음을 압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제10과 고백 : 믿음을 여는 열쇠
핵심 진리 :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백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을 붙들고 있다는 것을 적은 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사전에 의하면 고백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실수를 고백한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는 네 가지의 고백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과 예수께서 언급하신 유대인들의 죄의 고백, 둘째는 오늘날 구원 받지 못한 죄인들의 고백, 셋째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멀어졌다가 자기의 죄를 고백함, 넷째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신 후 오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책망할 한 가지 죄는 “나를 믿지 아니함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불신자가 구원 받기 위해 그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이 주장해 왔던가요?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불신자가 해야 할 최고의 고백은 예수께서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사람 앞에서의 고백은 세상과 단절하는 우리의 위치를 정의해 줍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를 즉시 주님의 감독과 보호 아래 있게 합니다. 이로써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을 뿌리치고 예수님을 통해서 정복함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제11과 고백은 끊어졌던 친교를 회복시킵니다
핵심 진리 : 친교가 끊어졌을 때 믿음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시편 137편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극적인 예를 봅니다. 죄의 결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온을 기억하며 슬픔에 싸여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 짓는 그 순간에 우리는 간증을 잃게 됩니다. 죄는 언제나 빛을 꺼버립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8~9). 이 말씀은 삶에 있어서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그리스도인에게 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하게 짚어두어야 할 한 가지는, 당신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잘못하는 순간 당신 안에 새로 창조된 영이 즉시 당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이 때는 지체하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이 죄를 고백하는 즉시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주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용서하시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을 기꺼이 용서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본인의 믿음을 도적질 당하곤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이 구절은 종종 병 고침을 위한 기도와 관련해서 사용되는데, 옳은 사용입니다. 병 고침 안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식으로부터 구속하셨습니다. 이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12과 하나님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을 세워 줍니다
핵심 진리 : 고백은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믿음의 고백은 실제를 창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다음의 5가지를 중심으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① 구속의 계획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② 그의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④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지금 하고 계신 일
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성취하시는 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온 그의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만으로 사람들을 구원받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질 때만 역사하십니다. 나는 전통이나 내 의견이 아닌 묽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고 전할수록 더 많은 이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백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 같은 문제에 대면하고 있습니까? 당신 안에 계신 그 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라고 말하십시오. 당신의 믿음의 고백이 하나님이 당신을 대신해서 일하시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고백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도 사랑처럼 심령의 일이며 고백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고백으로 자라납니다. 믿음은 당신이 고백하는 것 이상으로는 절대 자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에게 선언하고 계신 것을 담대하게 고백하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누구든지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무엇이든지 그가 말한 대로 얻으리라”(막 11:23). 처음에는 이 말씀들이 사실같이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고백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은 믿음의 고백이 실제를 창조하는 것을 그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13과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의 특권인 고백
핵심 진리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에 따라 생각할 때 - 우리가 그것을 믿고 고백할 때 - 우리에게 실패가 없습니다.
고백할 때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특별히 서신서를 읽으면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들어간 성경 구절들을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옮겨 적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고백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며칠만 지나면 당신의 삶이 달라질 것임을 저는 보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능력을 우리 안에 가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저주 또는 형벌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둘째 사망이었으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 구절은 우리가 흑암의 권세, 즉 사단의 능력으로부터 풀려났다고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롬 8:31). 이 구절을 우리 자신의 개인적 메시지로 삼을 때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 언약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제14과 바른 고백과 잘못된 고백
핵심 진리 : 우리의 입술로 하는 고백은 하나님이나 사단, 둘 중의 하나가 우리를 지배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고백이 잘못되면 우리가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우리가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은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또 만일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난 가장 큰 일은 그가 영적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의 지성과 육체적 감각은 영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순간마다 그를 가로막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마음은 자연적인 영역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적 영역이 있고 이곳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영역입니다.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믿음, 잘못된 고백은 패배와 실패와 사단의 우월함 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고백하게 함으로써 마귀는 당신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을 억압하며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백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바를 확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입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스리게 할 수도 있고 사단이 다스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심령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입술의 고백은 모든 전쟁에서 마귀를 철저하게 패배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우리가 가끔 자연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두려움을 고백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의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을 고백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을 고백하십시오. 너무도 자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는 것보다 우리의 육체적 감각이 증거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도록 하나님 말씀을 고백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제15과 축복을 위한 믿음
핵심 진리 : 거듭난 신자로서 우리는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었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번영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랑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이 성경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저주인 가난과 질병, 그리고 둘째 사망에서 속량하셔서 아브라함의 복인 물질적, 재정적 축복과 육체적 축복, 영적 축복의 유업을 잇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서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후에 인간 아담을 지으셔서 그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대 반역죄를 지었고 통치권을 사단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세상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단의 능력과 지배로부터 속량하기 위해 오셨고,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우리가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환경을 지배해야 합니다. 가난이나 질병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생명 안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왕 노릇합니다.
제16과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1부)
핵심 진리 : 우리가 사단을 이기는 것은 어린 양의 피와 우리의 증거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사람의 아들의 나라로 옮김을 받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믿음에 대하여 배우고, 당신의 삶에 배운 것을 적용하고 있다면 마귀는 당신과 겨루려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미래를 위해서 7가지 단계로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 1단계 - 하나님 말씀의 성실함
우리가 알아야 할 첫 번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선언한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이고,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당신이 말씀을 받아서 행할 때만 당신에게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믿음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실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 2단계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
우리가 두 번째로 알아야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우리의 구속의 실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2~14). “건져내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건져내셨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사단의 지배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을 통해 마귀를 지배할 지배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어린양의 피와 우리의 증거하는 말인 고백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여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새로워진 몸과 영으로 영광 돌려야 합니다.
제17과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2부)
핵심 진리 : 친교가 바로 믿음의 근원입니다. 그것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근원입니다.
․ 3단계 - 새 피조물의 실체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며 그 분을 주로 고백하던 순간에 우리는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 영 안에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우리 영의 실제적 탄생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요일 3:14). 이렇게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실 때 가졌던 것만큼 하나님 아버지와 많은 친교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이러한 새 피조물로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믿음의 창조자이시며 완성자이십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엡 2:10).
․ 4단계 -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친교의 실체
구속의 핵심 이유는 교제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여하신 최고의 영예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실행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성령님과 함께 공동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교제는 믿음의 근본이며 기쁨과 승리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한다면 기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로 달콤하고 위대한 특권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사 28:11~12).
․ 5단계 - 예수 이름의 권세의 실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마귀적인 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습니다. 대부분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법적 권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사용하는 일이며, 우리에게 속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고, 말씀이 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제18과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3부)
핵심 진리 : 우리는 하나님께 확신에 차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6단계 - 우리의 의의 실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3~26).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들의 ‘의’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라는 것은 사람이 바르게 삶으로 인해 이루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옳은 행위나 깨끗한 삶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선물은 즉각적으로 받는 것이고 영적 성장의 단계는 열매입니다. 만일 ‘의’가 열매였다면 성경은 ‘의의 열매’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똑같은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성과 영원한 생명을 넣어 주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이 성경 구절은 불신자에게 씌어진 것이 아니라 신자에게 씌어진 것입니다. 죄를 자백하고 불의로부터 깨끗케 되었다면 나는 또 다시 의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비난이나 열등감 없이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정죄 때문에 혀가 굳어지거나 무지 때문에 두려움에 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의로워졌으므로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19과 최고의 믿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단계(4부)
핵심 진리: 하나님 자신인 성령님께서 신자의 안에 거주하십니다.
․ 7단계 -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실체
최고의 믿음으로 가기 위한 일곱 번째 단계는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삶의 위기마다 본능적으로 “창조주가 내 안에 사시므로 나는 승리자보다 더 크다.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큰 이가 내 안에 살고 계시다. 그 분이 나를 끝까지 승리하도록 할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성공하게 만드시므로 나는 실패할 수 없다.”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4:16).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불일 듯 일어나셔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고 우리 영을 인도해 주시며 우리 몸에 건강을 주시고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그 분의 임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나는 할 수 없어요.’가 ‘나는 할 수 있어요.’로 바뀝니다. 우리의 믿음의 말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도록 만듭니다.
귀신들과 악한 영들은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면서 지배하지만 우리 안의 성령님은 신사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돕는 자로 보내지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를 위해서 일하게 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라고 보내지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일하는 것을 돕기 위해 보내지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해주시기를 원하면서 밖의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심령의 보좌에 앉으신 왕으로 다스리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왕이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총명하게 행동할 때 그분은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제20과 믿음의 여섯 가지 적
핵심 진리 :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우리는 실패라는 좁은 장소에서 빠져나와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이 “마귀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와 싸우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우리를 위해서 마귀를 패배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또 나는 사람들이 죄와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깨끗케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오직 한 가지 믿는 자가 싸워야 할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뿐입니다.
싸움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적이나 방해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믿음의 적이 없다면 싸움도 없겠지요. 나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믿음의 적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실패함
②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실패함
③ ‘의’를 이해하는 데 실패함
④ 예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이해하는 데 실패함
⑤ 하나님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것에 실패함
⑥ 믿음의 고백을 붙잡는 것에 실패함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고한 것과 같이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비로소 우리는 실패와 연약함의 좁은 장소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21과 하나님과 같은 믿음
핵심 진리 : 우주를 존재하라고 말했던 그런 믿음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또는 관주에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고 한 문장을 주의하여 봅시다. 헬라어 학자들은 이 구절이 “하나님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주가 생기라고 말씀하셨고 그 분이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믿음’은 사람이 그의 심령으로 믿고 그의 심령의 믿는 것을 그의 입으로 말하는 믿음이며,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믿음을 시범으로 보여주셨고 그들에게도 그런 종류의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도 하나님께 그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려고 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이 말씀을 듣는 자의 심령에 오도록 만드십니다. 예수께서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당신이 말씀을 정중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할 때 믿음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믿음’은 심령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내게 와서 자신은 패배했다고 고백하기 전까지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믿음이 없다고 말하면 의심이 거인과 같이 일어나서 당신을 묶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한 말로 감금됩니다. 그러나 패배나 실패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들이 들어와서 계속 머무르려고 우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은 채 죽습니다. 당신의 영을 따라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믿음의 고백은 실제를 창조하고 소유를 가져옵니다.
제22과 믿음과 일치하는 행동들
핵심 진리 :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의 행동은 그의 고백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면 우리의 행동들이 우리가 말하는 것과 일치해야만 합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믿음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마귀를 탓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곤 합니다. 이러한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폭풍들은 우리 모두에게 옵니다. 그러나 우리를 패배시키는 것은 인생의 폭풍들이 아니라 그 폭풍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날 때, 말씀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믿음의 고백을 굳게 잡을 것입니다. 질병이 온다면, 그는 그의 자리에 버티고 서서 질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폭풍에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패배 당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그가 하신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좋은 것을 가져다 주시기 위하여 사용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 약속한 모든 것들을 당신이 갖길 원하십니다. 나는 내 심령을 다하여 말씀을 신뢰할 때, 비로소 사람의 이성에 의지하는 것을 멈추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멈추고 내 믿음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내 행동은 나의 믿음의 고백과 완벽한 교통 안에 있게 됩니다.
우리의 최고로 나쁜 적은 육신입니다. 육신과 인간의 이성이 우리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우리는 환경과 여러 가지 문제와 시험과 폭풍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의심의 말과 육신 그리고 감각은 “내게 그럴 만한 능력이나 기회가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은 “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지혜가 내 지성을 지배하게 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감히 하나님을 좇아 하나님과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시다”, “주께서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나는 기차표를 가지고도 배낭을 등에 지고 철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른 행로에 들어와 있을지라도 그는 걷지 말고 기차를 타야만 합니다. 또한 짐은 짐칸에 놓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것들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제23과 하나님께 당신 자신의 표를 쓰는 법
핵심 진리 : 만일 우리 자신이 인생의 맨 아래 계단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믿고 말한다면 우리는 맨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의 표를 쓰는 4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그것을 말하십시오 (Say it)
2단계 - 그것을 행하십시오 (Do it)
3단계 - 그것을 받으십시오 (Receive it)
4단계 - 그것에 대해 말하십시오 (Tell it)
구원 받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께 자신의 표를 쓰기 위해 이 네 단계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탕자의 비유를 보면, 우리는 그 탕자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말하리라.” 그는 그의 믿음과 필요를 고백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행동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렇게 했을 때 그는 온전한 용서를 받고 그의 아버지와 모든 것이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기쁨에 찬 아버지는 이 좋은 소식에 대해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자신을 탕자와 같이 낮추고 이 네 가지의 간단한 단계들을 밟는다면 하나님은 달려와서 그들을 만날 것이며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제24과 의심,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도둑질하는 자
핵심 진리 : 의심은 믿는 자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최고 축복을 도둑질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려면 더 큰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성령 충만을 받은 신자는 그들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최고를 얻을 만한 충분한 능력을 그들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의심 때문입니다. 능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역사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을 이용하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행한다면, 우리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들을 성취하게 됩니다.
제25과 당신은 당신이 말한 것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핵심 진리 :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은 가나안 땅에 사는 거인들이 아니고 그들의 심령 안에 있는 거인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당신의 믿음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리가 구약에 나와 있는 가나안을 정탐하러 간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긍정적인 방법뿐 아니라 부정적인 방법으로도 역사합니다. 이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그 땅을 취할 수 없다고 말했고, 정확히 그들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예에 반대되는 실례입니다. 의심할 때도 당신은 무엇인가를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패배, 당신의 잘못된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당신이 믿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것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떤 것을 일정 기간 자꾸 말하면 결국 그 말들이 당신의 영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것들이 당신의 영에 새겨지면 그것들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기 전에 나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믿음에 가득 차서 재빨리 고백하는 사람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치유 받습니다. 신자로서 우리는 실패를 말하거나 의심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오직 믿음을 말해야 합니다.
제26과 인간의 영을 어떻게 훈련하는가?
핵심 진리 :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영을 사용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이 지적으로 훈련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영도 영적으로 훈련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영적 훈련의 네 가지 원리들을 매일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삶의 사소한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고 그는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영적으로 깊은 사람들은 묵상에 많은 시간을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영적 지혜를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고 하루에 10~15분 정도 묵상하는 것을 시작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당신의 영을 발전시키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②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행하는 것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새 언약 아래서는 오직 한 계명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바울은 사랑은 모든 계명의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믿는 자들은 계명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들을 실천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바울은 빌립보서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귀가 주려고 애쓰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평안케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적 혼란이 계속되면 나는 단순히 이 구절로 돌아가서 다시 읽습니다. 만일 우리가 염려를 그친다면 다음 구절에 따라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당신은 영적으로 자랄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에 두기
가족이나 친구들은 항상 그들의 의견과 충고들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을 훈련시키는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바를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듣고 읽고 외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네 귀를 내가 말하는 것에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성경이 큰 소리로 읽혀질 때 그 단어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말씀들이 당신의 생각과 심령에 깊숙하게 가라앉게 하십시오.
④ 우리의 영의 소리에 즉시 순종하기
인간의 영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의 소리라고 부릅니다. 어떤 때는 직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안내하는 내적 소리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았든지, 못 받았든지 각 사람의 영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은 인간의 영이 재탄생하는 것이며 이때부터는 성령님이 당신 안에 사시므로, 말씀을 묵상할 때 당신의 영은 정보를 얻습니다. 당신의 영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신자 안에 사시므로, 이들에게는 양심이 안전한 안내자입니다. 믿는 자의 양심, 그의 영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가 됩니다. 바울도 그가 그의 양심에 순종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영은 점점 더 안전한 안내자가 됩니다. 우리의 영이 말씀 안에서 훈련되어지고 영의 소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인생의 모든 국면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알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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